"버릴 수 없었어요" 폐업 위기에서 찾은 놀라운 돌파구

조회수 2020. 9. 24. 14: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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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66년간 운영했던 조선소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3대 째 가업으로 이어 온 속초 ‘칠성조선소’
2017년 영업 종료 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최근 속초를 찾는 이들이 빼먹지 않고 방문하는 '핫플(핫플레이스)'이 있다. 조선소를 카페이자 문화공간으로 개조한 '칠성조선소'다. 칠성조선소는 1952년 실향민이었던 고 최칠봉씨가 속초 청초호 일부를 메워 세운 조선소다. 이후 그의 아들 최승호(66)씨와 손자 최윤성(38)씨가 물려받아 2017년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영업 난에 더 이상 조선소를 유지할 수 없었고, 고민 끝에 카페를 포함한 문화공간으로 개조했다.

출처: jobsN
칠성조선소 입구.

고 최칠봉씨는 이북에서부터 목선을 만드는 배 목수였다. 배 목수는 배를 만드는 목수를 칭하는 말이다. 일제 때는 남만주로 징용을 가서 배를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왔다가, 휴전선과 가까운 속초에 자리잡았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속초에서 조선소를 열었다.


◇조선소 더 이상 유지 어려워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수산업이 발달한 도시 답게 과거 속초에서는 조선업이 흥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어획량이 급감했고, 철선과 플라스틱 배가 등장하면서 목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칠성조선소는 목선과 함께 철선을 제작하고, 배를 수리하면서 조선소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수요가 계속 줄어 더 이상은 조선소를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1952년부터 약 66년간 문을 열었던 칠성조선소는 2017년 8월을 끝으로 조선소로서의 영업을 종료했다.

출처: jobsN
칠성조선소의 역사를 기록한 공간.

3대째 조선소를 운영한 최윤성씨는 칠성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바꿨다. 2017년 9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2018년 2월 새 칠성조선소를 오픈했다. 나무를 제련하던 야외 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나무놀이터인 ‘플레이스케이프’로 변신했다. “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면서 제일 처음으로 구상했던 공간이 나무 놀이터에요. 어렸을 때 제가 놀았던 공간인 만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네, 미끄럼틀 등 놀이방법이 정해진 놀이터가 아니라 그냥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족들이 살던 곳은 카페 공간인 ‘칠성조선소 살롱’으로 다시 태어났다. 배를 만들던 작업장이면서 사무실이었던 공간은 ‘뮤지엄’으로 바뀌었다. 칠성조선소의 역사를 기록한 전시 공간이다. “3대째 이어온 가업인 만큼 더 이상 조선소로 운영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저뿐 아니라 저희 가족들에게 이 공간은 집이었고, 저희의 삶이 녹아있는 터전이었으니까요. 부모님께서는 정리하려고 하셨는데, 이 곳에 대한 추억이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보다는 마지막으로 공간을 지킬 수 있는 걸 해보자 해서 문화 공간으로 바꿀 생각을 했습니다.”

출처: jobsN
칠성조선소 내 공간들. 아래 사진 왼쪽이 놀이터인 '플레이스케이프', 오른쪽이 카페 공간인 '칠선조선소 살롱'이다.
출처: jobsN
카페 내부와 박물관, 2층 식당으로 쓰던 공간. 창문을 통해 청초호를 바라볼 수 있다.

공간을 지키려는 마음이 컸던 만큼, 칠성조선소 곳곳에서 옛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배를 끌어 올리고 고정해 수리하던 철길인 ‘철까치’는 이제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쉴 수 있는 의자 역할을 하고 있다. 식당으로 쓰였던 공간도 방문객들이 청초호를 바라보면서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칠성조선소의 협력사였던 협성기계 내부는 그대로 유지한 채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손 떼가 묻은 기계들이 그대로 놓여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최윤성씨는 조선소를 재단장하면서 뭘 남기고, 뭘 버리고,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가장 고민했다고 한다. “조선소의 이야기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지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물건을 버리는 게 가장 힘들었고요. 사실 저희에게는 다 의미있고, 추억이 있는 물건들인데 사람들에게는 쓰레기이고, 고철이고 버려야 할 나무들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여기 놔두고, 저기 놔두고 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냉정한 시각으로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출처: jobsN
(위) 배를 끌어올리던 철길인 '철까치' (아래) 칠성조선소 내 협력사였던 협성기계.

◇조선소 역사 기록하기 위해 폰트 출시·책 출간


10월 26일 방문한 칠성조선소는 주말답게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도 특히 ‘칠성조선소’ 간판 아래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간판은 최씨의 아버지인 최승호씨가 직접 썼다. 정갈하면서도 옛스러운 글씨체가 칠성조선소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9월 말에는 ‘산돌 칠성조선소체’가 출시되기도 했다. 폰트를 만드는 회사인 산돌과 협력해 최승호씨의 글씨체를 디지털화한 것이다.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 때 가장 마지막 작업이 뱃머리에 이름을 쓰는 작업이에요. 카페를 문화공간으로 바꾸면서 아버지의 글씨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공간이야 저희가 보존하면 되는거지만, 서체는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산돌 측에 제안을 했고, 공동으로 개발해 9월 말 서체가 탄생했습니다.”

출처: jobsN, 산돌 제공
(왼) 최승호씨가 직접 쓴 칠성조선소 간판, (오) 산돌 칠성조선소체.

최윤성씨는 칠성조선소를 기록하기 위해 2018년 책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속초에서 일했던 배 목수 두 분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기 전부터 아쉬웠던 게 조선소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 곳에서 일하면서 취미로 조선소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마침 동아서점의 김영건 대표를 만나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 대표가 책을 기획하고, 맡아서 진행해준 덕에 쉽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출처: jobsN
책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와 칠성조선소에 전시된 관련 사진들.

◇창고 개조해 배 만드는 프로그램 운영하고 싶어


최윤성씨가 처음부터 배 목수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작가를 꿈꿨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서 계속 배에 대한 것을 만들었고, 결국 배 목수가 되기로 결심해 201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랜딩보츠빌딩스쿨에서 3년간 목선을 만드는 법부터 디자인, 복합 소재 배를 만드는 법까지 배웠다. 돌아와서는 아버지를 도와 칠성조선소에서 일했다. 최씨는 2013년 칠성조선소 내에 카약과 카누를 주로 만드는 ‘와이크래프트보츠(ycraftboats)’를 런칭하기도 했다. 조선소를 문화 공간으로 바꾸면서 현재는 배를 판매하거나 제작하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는 작은 배를 만들거나, 배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방향으로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조선소 내 창고 부지를 단장하고 있다. “원래 카누, 카약을 만들던 공간인데 새롭게 공간을 오픈하면서 창고처럼 쓰고 있었어요. 오랫동안 공간을 방치한 것 같아서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 곳을 활용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배 만드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거창한 배를 만드는 게 아니더라도, 아이들이랑 타고 놀 수 있는 작은 배를 만드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출처: jobsN, 칠성조선소 인스타그램 캡처
새 단장을 위해 공사하고 있는 옛 작업 공간.

뒤늦게 배 목수가 됐지만, 목선에 대한 최윤성씨의 사랑은 남달랐다. 최씨는 목선이 본인의 삶의 일부이자, 자연스러운 풍경이라고 말했다. “저한테는 조선소, 목선이 매일 같이 보던 너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어요. 배 만들 때 나는 망치질 소리며 나무 냄새며 배 만드는 과정까지 모든게 당연한 풍경이었죠. 너무 자연스럽고, 그리웠던 일이에요. 또 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고요. 앞으로도 계속 어떤 형태로든 목선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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