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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식당은 왜 망했을까’ 고민하던 대학생은 지금…

“부모님 사업은 왜 망했을까?” 고민하던 월가 한인 투자매니저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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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 로보어드바이저 ‘에임’ 이지혜 대표
공학박사 꿈꾸며 에디슨 다닌 미국 쿠퍼유니언대 공대나와
동료 20여명과 100조 굴리던 월가 펀드매니저 생활 접고
부자들만 찾던 프리미엄 자산관리 대중화 꿈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로봇 자문가)란게 있다.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다. 쉽게 말해 로봇이 자산 관리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개인 맞춤형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각광을 받으며 새롭게 부상하는 분야이다. 이 분야에서 꿈을 찾아 수많은 스타트업이 쏟아지는 가운데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가인 미국 월가에서 잘나가던 한 애널리스트가 한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를 세웠다.‘에임(AIM∙Automated Investment Management)’을 운영하는 이지혜(39) 대표이다. 미국 쿠퍼유니언대 공대를 졸업한 이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계량경제학을 공부했다. 또 뉴욕대학교 MBA 과정을 마쳤다. ‘에임’을 창업하기 전까지 자산운용사인 씨티그룹 에셋매니지먼트의 애널리스트,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컨설턴트, 벤처캐피탈인 더벤처스의 파트너로 일했다. 또 글로벌 상위 1% 퀀트 헤지펀드인 '아카디안’에서 퀀트 매니저로 일했다. 퀀트 매니저는 알고리즘, 데이터, 통계를 분석해 고객 자산을 투자하는 일을 한다.


이 대표는 기관투자자나 돈 많은 자산가만 누릴 수 있던 프리미엄 자산관리 서비스를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2015년 ‘에임’을 창업했다고 한다. 이 대표를 서울 중구에 있는 AIM 사무실에서 만났다.

'에임' 이지혜 대표.

출처에임 제공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어릴 때는 공학박사를 꿈꿨다.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시대를 앞서간 사람에게 영감을 받았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미국의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이었다. 백열전구, 축음기 등을 발명해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을 줬다는 점이 존경스러웠다. 또 물건을 고치거나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계, 리모컨, 냉장고 등이 고장 나면 직접 고쳤다. 병이 잘 안 따질 때 따뜻한 물에 담가 놓는다든지 논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해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다.”


-언제 미국으로 갔나.


“한영외국어고등학교를 다녔다.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공부했다. 학교, 학원, 독서실 생활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씻다가 욕조에서 잠이 들었다. 저체온증으로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화장실 문을 따고 들어와 발견했다.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으셨다. 한국의 교육 환경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고 하시더라. 삼 남매 교육을 위해 이민을 결정하셨다.


1996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 실리콘밸리로 이사했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프리몬트 크리스천 스쿨(Fremont Christian School)에 다녔다. 부모님은 아시안 음식을 팔던 식당을 인수해 운영을 시작하셨다. 집 근처에 야후, 마이크로소프트, 썬 등의 기업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공학박사를 꿈꿨던 만큼 자연스럽게 공대 진학을 꿈꿨다. 1999년 공학 전문대학인 쿠퍼유니언대학교에 진학했다. 에디슨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피터 쿠퍼였다. 쿠퍼유니언대 설립자로 많은 학생에게 교육의 기회를 준 사람이다. 피터 쿠퍼는 ‘교육은 공기와 물처럼 누구에게나 제공돼야 한다’는 교육철학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모든 학생의 학비가 전액 무료였다. 토마스 에디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에임' 이지혜 대표.

출처에임 제공

-공학박사를 꿈꾸다가 왜 월가를 택했나.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이 망했다. 비슷한 시기에 쿠퍼유니언대 재단이 닷컴 버블(dot-com bubble·인터넷 관련 분야가 발전하면서 산업 국가의 주식 시장에서 지분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거품 경제 현상) 때 투자를 잘못해서 재정 위기에 빠졌다. 160년간 장학금으로 운영해 온 학교가 휘청하더라. 하루아침에 재정난을 겪는 것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었다. 돈 때문에 오랜 시간 지켜온 게 한순간에 무너지더라.


가족과 학교가 어려워지자 돈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왜 부모님 사업은 망했을까’ ‘어려워진 집에 도움이 될만한 지식이 무엇일까’ ‘학교는 투자를 어떻게 잘못해서 160년의 전통이 흔들릴 정도로 재정 상태가 나빠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다. 2001년 교환학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영대에서 1년간 재무를 배웠다. 자본의 흐름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돈이 많은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난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사람들이 우리 집이나 학교처럼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융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또 다른 얘기지만 서울대학교에서 1년간 다양한 경험을 했다.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다. 서울대학교 여자 스키부에서 배우 김태희, 이하늬, 오정연 전 아나운서와 함께 운동했다. 2002년 겨울 대학 스키연맹에서 주최하는 연맹배 시합에서 전국 4등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또 시작하면 열심히 해서 끝을 보는 성격이다.


-어떤 일을 했나.


“쿠퍼유니언대 졸업 후 2004년 자산운용사인 씨티그룹 에셋매니지먼트에 입사해 1년 반 정도 일했다. 공대생이 월가에 입성하기 쉽지 않았다. 미국 운용사들은 학부 출신을 바로 뽑지 않는다. 보통 학부생이 졸업하면 투자은행에 취업했다. 운 좋게 당시 퀀트팀에 빈자리가 났다. 퀀트 본부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운용사였던 만큼 업계 전문가인 선배들로부터 다양한 투자전략을 배웠다.


2006년에 회사가 팔리면서 퀀트 전문 헤지펀드인 아카디안(Acadian Asset Management)에 입사해 5년간 퀀트 매니저로 일했다. 알고리즘, 데이터, 통계를 이용해서 투자 의사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한다.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 수치만 보고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아카디안’은 글로벌 상위 1% 퀀트 헤지펀드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는 곳이다. 20명가량의 초 전문가집단이 100조원을 운용했다. 인원은 적지만 큰 규모의 자산을 굴렸다.


2006년 국민연금을 담당해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한국인으로서 기뻤다. 또 짐바브웨, 에스토니아 등 프런티어 시장(Frontier Market·증시 규모가 작고 개발이 덜 된 국가)을 대상으로 투자를 위한 자연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컴퓨터를 이용해 사람이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언어인 자연어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기술)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머신러닝이란 컴퓨터가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러닝)하고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기술을 뜻한다.”


이 대표는 일하면서도 학업을 병행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계량경제학을 공부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뉴욕대학교에서 MBA를 했다. 그 과정에서 스타트업에 눈을 떴다고 한다. 새로운 도전과 끊임없는 성장을 하는 스타트업에 매력을 느꼈다. ‘아카디안’을 나와 미국 액셀러레이터인 테크스타에 들어갔다.


-연봉도 높았을 것 같다. 월가를 떠난 이유가 있나.


“연봉은 억대였다. 성과급도 받는다. 하지만 극도로 자동화, 고도화된 시스템이 지루해졌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또 퀀트펀드 같은 프리미엄 자산관리 서비스는 보통 부자나 기관투자자들의 영역이다. 자산 관리를 받으려면 수천억원이 필요하다. 소액 투자자는 프리미엄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일반 고객과는 전혀 호흡하지 않더라.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와닿지 않았다.


각자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정보와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 대표는 가족이 있는 한국에 돌아왔다. 2013년 한국에 돌아온 후 오퍼 받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1년간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후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관련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초기 스타트업 투자사인 더벤처스에서 약 6개월간 일했다. 커뮤니티 플랫폼 ‘빙글’의 투자유치와 팀 빌딩 하는 일을 맡았다.

앱 '에임' 프로세스 화면.

출처에임 제공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창업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


“창업은 무섭고 험난한 도전의 연속이다. 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또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전문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월가에서의 경험을 살려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개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전문적인 1:1 자산관리 서비스를 앱으로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게 하고 싶었다. 2015년 ‘에임’을 설립했다.”


‘에임’은 2015년 디티앤인베스트, 수림창업투자, 서울시 중소기업지원기관인 SBA(서울산업진흥원)로부터 총 11억원을 투자받으며 사업성을 인정 받았다. 2016년 글로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레인메이킹 컴퍼니(Rainmaking Company)에서 약 1억5000만원을 투자 유치했다.

'에임' 이지혜 대표.

출처에임 제공

-매출이 궁금하다.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현재 앱 사용자는 약 19만명이다. 개인 자산관리를 받는 사람이 6000명 이상이다. 실제로 금융 투자를 하는 사람이다. 국내 투자 자문사 중 개인 고객 수가 가장 많다. 10월 현재 고객들이 에임에 맡긴 돈(누적액)은 690억원이다. 지난 3년여간 누적 수익률의 중간값은 36.06%다. 누적 투자계약은 약 1만건이다.”


-앞으로의 꿈과 목표는.


“올해 안에 고객이 에임에 맡긴 누적 금액이 1000억원을 돌파하는 것이 목표다. 사람들에게 ‘투자’라는 인식에 대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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