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개그맨을 모델로 쓴 맥주 회사의 입장

조회수 2020. 9. 24. 14: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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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 성폭행범 음주상태라 감형, 음주운전한 개그맨이 맥주 광고 나오는 나라..괜찮나요?

술에 너그러운 대한민국

맥주회사 음주운전 이력 광고모델

주취 감경 받아 2020년 출소하는 조두순

알코올의존증 범죄자 형벌 낮추는 나라


최근 한 맥주회사가 음주운전 이력이 있는 개그맨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논란이 됐다. OB맥주다. 이 회사는 개그맨 김준현과 걸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을 광고모델로 선정했다고 10월8일 밝혔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은 김준현이 과거 음주운전을 했다고 주장했다. 2010년 5월 김준현은 서울 관악구 인근에서 술 취한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를 몰던 중 길 가던 40대 여성 보행자를 바퀴로 쳤다.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는 면허정지 수준인 0.091%. 피해자는 왼쪽 발등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3~4주의 부상을 입었다. 김준현의 소속사 측은 당시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했다”고 했다. 김준현은 4개월간의 자숙 끝에 복귀했다.

출처: OB맥주 광고 포스터·tvN 인생술집 캡처
주류회사 광고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현은 과거 음주운전 한 이력이 있다. 이 밖에도 술을 마시는 tvN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서 진행자를 맡아 논란이 있었다.

10년 전 사건이라 하지만 대중들은 음주운전 한 이력이 있는 개그맨을 맥주회사 광고모델로 봐야 하는 것이다. OB맥주 홍보팀 백주환 부장은 “광고를 집행하는 마케팅 부서에서 알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백 부장은 “맛 표현을 워낙 잘 하는 예능인이다 보니 적임자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OB맥주 측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준현을 계약 기간까지 모델로 내세울 예정이다.


◇"술병에 연예인 사진 붙여 파는 나라 한국밖에 없어"


그러나 음주 광고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봤을 때 주류 업체가 보다 책임감 있는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018년 2월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개인 음주 행태 요인 분석 및 음주 행태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보고서를 보면, 연예인을 활용한 주류광고는 대중의 음주를 촉발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성의 경우 31.5%, 남성은 24.3%가 TV드라마·광고·포스터 등에서 음주 장면을 보면 술을 마시고 싶어진다고 답했다.


연구 책임자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조병희 교수는 “대부분 음주 광고는 대중에게 술이 활력과 에너지를 준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고 했다. 또 “먹방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음주를 너무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유명인의 술 광고로 음주가 좋게 보이게 하는 것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10월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술병에 연예인 사진을 붙여 판매하고 있는 사례는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2018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 보고서

미디어가 음주를 장려한다는 연구 결과(2018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 보고서·보건복지부)도 있다. 2017년 상반기 방영한 청소년 시청률 기준 20위권 드라마(19)·예능(15) 속 715개의 음주 장면을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전체 음주 장면 중 35.2%는 술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은 술을 마시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연출했다. 절주 문화 확산을 위한 전문가 협의체는 “미디어와 달리 현실에서는 음주가 공격적 대화나 폭력을 유발해 오히려 갈등을 더 크게 키운다”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방송이 음주로 인한 유쾌함, 화해 등 긍정적 효과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부정적 결과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만 있는 단어 ’주량’, ‘N차’···외국인은 이해 못해


예능 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주량’이다. 토크쇼에 출연한 연예인은 빠짐없이 자신의 주량을 자랑한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주위의 놀라움을 산다. 한번 주당으로 소문나면 네티즌 사이에서 오래도록 화자가 되기도 한다. 방송에선 연예인이 술주정을 부린 에피소드라던가 필름 끊긴 경험담을 늘어놓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인에겐 ‘주량’이나 ‘N차’라는 개념은 익숙한 단어다. 그러나 외국인이 봤을 때 이런 음주문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출처: KBS 해피 투게더 캡처
클럽 버닝썬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빅뱅의 멤버 승리가 과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량과 술자리 에피소드를 말하고 있는 장면.

“외국인들은 주량이라는 단어를 절대 이해하지 못해요.”

 

박개대는 한국 문화를 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설명하는 샌디애고 출신의 미국인 유튜버다. 약 5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했다. ‘외국인은 주량이 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영상은 한국 음주 문화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선 술 마시면 그냥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면서 “반면 한국에선 술이 직장뿐 아니라 모든 것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한다. 한국 대학에서 교환학생을 경험했던 그는 “한국 대학의 축구·농구·사진 동아리 등에서 활동했다. 동아리는 그저 술 마시기 위한 구실에 불과했다”고 했다. 한시간 정도 축구를 뛰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술집에서 술을 잔뜩 마시는 식이었다는 말이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어서와’는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외국인이 모국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을 여행하는 예능 프로그램. 지난 10월24일 방송에선 노르웨이 방송인 호쿤이 한국을 찾은 자국 친구들에게 “한국에서는 밤새 술 마시는 걸 몇 차에 걸쳐서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가네”라며 깜짝 놀랐다. 핀란드 출신 방송인 페트리도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이 오후 4시에 소주를 시켜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핀란드에서 낮술을 마시면 알코올중독자처럼 여기면서 비난받는다"라고 말했다. 또 “오후 9시 이후엔 술을 절대 팔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인 출연자들은 소주를 마시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고 “인당 1병씩은 기본”, “한국 적응 끝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MBC every1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캡처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는 해외에서도 주목한다. 지난 3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서울을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도시 중 하나’로 꼽았다. 가디언은 “증류수(소주) 소비를 보면 서울이 전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도시일 수 있다"라고도 했다. 서울에는 알코올 도수가 20도에 달하는 소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사에선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의 연구 결과(2014년 2월)를 인용했다. 한국인은 일주일에 평균 소주 13.7잔을 마신다는 통계였다. 이는 대표적인 과음 국가로 알려진 러시아의 2배였다. 가디언은 서울이 세계적 음주 도시인 이유로 “회식을 통해 직장 동료끼리 유대감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의 직장문화는 회식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도 했다. 이같은 분석은 국내 조사 결과로도 입증됐다.


◇"술 마시면 즐겁고 친목 도모에 좋다?” 사회적 손실은 매년 증가


보건복지부는 2018년 7월 ‘음주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최종 보고서’에서 성인 남녀가 술 마시는 이유를 발표했다. 응답자 상당수는 “음주를 하면 즐거워지고 친목 도모에 도움을 준다”라고 답했다. 설문 대상자 3000명 중 남성의 52.2%, 여성의 53.2%는 “음주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했다. 또 10명 중 6명(60.1%)은 “함께 술을 마시면 빨리 친해져 친목 도모에 좋다”고 했다. 이 밖에도 상당수가 어려운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데 술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7월 발행한 음주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최종 보고서 자료

대한민국의 월간 음주율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월간 음주율이란 최근 1년 동안 한달에 1번 이상 음주한 비율을 말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제공한 ‘성인 음주율’ 자료를 보면 2013년 60.2%에서 2017년 62.1%로 증가했다. 1회 음주에서 여자 5잔, 남자 7잔 이상 마시는 사람의 비율을 고위험 음주율로 구분한다. 고위험 음주율은 2013년 12.6%에서 2017년 14.2%로 늘었다. 술을 많이 먹을수록 사회적 손실은 크게 발생한다. 무엇보다 건강이 상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에 제출한 ‘음주로 인한 건강보험 총 진료비 지출 규모’를 보자. 2018년 총 진료비는 2조7879억원이었다. 2016년에는 2조3937억원을 지출했다. 2년 사이 4000억원 가량 늘었다.


◇내년은 주취감형된 조두순 출소하는 해···전문가들 "음주 상태 범죄자 처벌 강화해야"


음주는 각종 범죄와 자살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의 범죄 분석 자료(2015년)를 보면 폭력 범죄와 살인·강도 등 흉악범죄의 30% 이상은 음주 상태에서 일어났다. 또 전체 자살 시도자 중 44.1%는 자살 시도 전 술을 마셨다(2014년 보건복지부 자살 실태 조사 결과). 절주 문화 확산을 위한 전문가 협의체는 “음주 후 일탈 행위, 폭력, 자해, 자살 등 극단적 위험 행동을 연출하는 것에 대해 미디어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대중들의 음주 인식 개선을 위해 미디어의 역할뿐만 아니라 법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독 한국에선 음주 후 일탈 행위에 대해 관대하게 여긴다. 형법 10조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한다. 범죄자가 심신미약 상태인지는 판사가 결정한다. 음주나 마약 등 약물복용을 했을 때도 행위자가 심신미약 상태라고 인정받는 것이다. 2020년 12월 만기 출소하는 8세 여아 성폭행범 조두순이 대표적 사례다. 조두순은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데다 음주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징역 15년에서 12년으로 감형(주취감경)받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출처: 조선DB
2018년 11월 부산 해운대구 한 병원에서 열린 고 윤창호 상병 영결식(왼쪽). 이후 음주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하라는 내용의 법안인 윤창호법이 마련됐다. 한 경찰이 시내에서 낮부터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는 모습(오른쪽)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송인한 교수는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음주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책임을 덜어주는 나라”라고 했다. 송 교수는 “현재 형법은 음주자를 처벌하는 수준이 약하고 일관성이 없어 범죄 예방 및 제재수단으로 효과가 미흡하다”며 “음주 상태의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교육 및 치료 제도의 도입 방안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작년 9월 만취 운전자 차량에 치여 22살 청년 윤창호씨가 숨졌다. 이 사망사건을 계기로 ‘윤창호법’이 만들어졌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를 살인죄 수준으로 강도 높게 처벌하고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3~0.08% 미만인 경우 운전면허 정지, 0.08% 이상인 경우는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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