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수장' 박진영이 조선시대에 살았다면?

조회수 2020. 9. 24. 14: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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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엔터테이너' 궁중 별감

“10년은 돼야 가수라 하지 / 20년은 돼야 스타라 하지 / 30년이 되면 레전드라 부르지”

박진영은 수식이 필요 없는 한국 최고의 엔터테이너. 자전적인 곡 ‘살아있네’의 노랫말처럼 레코드판이 카세트 테이프, 카세트 테이프가 CD, CD가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으로 변했지만 그는 살아 있다. 1990년대 가수로 데뷔해 2000년대에 작곡가 겸 프로듀서, 2010년대에 엔터테인먼트 업계 실력자로 진화했다. 명문대 출신이지만 날라리 같은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선다. 내일모레 오십의 나이에도 파격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도 박진영 같은 사람이 있었을까? 다시 말해 박진영이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무슨 일을 했을까? 조선시대에도 흥과 끼로 대중을 사로잡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실력자, 최신 유행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조선의 엔터테이너’ 궁중 별감이다. 

(왼) 박진영 페이스북 캡처, (오) 박진영 '어머님이 누구니' MV 캡처

19세기 별감, “우리도 놀 만큼 놀아봤어”


2012년 40대에 접어든 박진영은 인생의 의미를 찾으면서 ‘놀 만큼 놀아봤어’라는 곡을 발표했다. 19세기 조선 사람들의 삶도 다를 게 없다. 알고 보면 놀 만큼 놀아봤다. 

“화려가 이러할 제 놀인들 없을소냐 / 남북촌 한량들이 각색 놀음 장할시고 / 공물방 선유놀음 포교의 세찬놀음 / 각사 서리 수유놀음 각집 겸종 화류놀음 / 장안의 편사놀음 장안의 호걸놀음 / 재상의 분부놀음 백성의 중포놀음 / 각색 놀음 벌어지니 방방곡곡 놀이철이구나.”

19세기 풍물가사 ‘한양가(漢陽歌)’의 한 대목이다. 당시 서울 풍속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사람들이 즐긴 놀이들을 나열하고 있다. 조선하면 도포자락 휘날리는 양반들이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먹고살기 바쁜 백성들을 들볶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쩐지 고리타분하고 숨 막힐 것 같은데, 어라, ‘한양가’가 묘사한 조선은 의의로 활기가 넘친다. 산으로 강으로 꽃놀이, 뱃놀이도 다니고 방방곡곡 온갖 놀음들이 흐드러졌다.

출처: 간송미술관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야금모행’.

그 가운데서도 으뜸은 ‘승전놀음’이었다. ‘한양가’도 전체 분량의 17%를 승전놀음에 할애한다. 여기서 ‘승전(承傳)’은 왕명을 전달한다는 뜻이다. 이 놀이판의 주역은 바로 궁중 별감이었다. 별감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사극 속 궁중 장면을 보면 붉은 옷 입고 초립을 쓴 남자들이 때때로 임금 주변을 서성인다. 내관, 궁녀들이야 뭐 하는 사람인지 알겠는데 이 자들의 정체는 아리송하다. 별감은 사실 ‘액정서(掖庭署)’라는 곳에 소속된 하급 관리였다.


“액정서는 왕명의 전달과 알현,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궐문 자물쇠와 열쇠의 관리, 궁궐 마당의 설비 등을 임무로 삼는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吏典)’에 나오는 액정서와 별감의 임무다. 그런데 별감의 진가는 따분한 궁궐이 아니라 놀이판에서 드러난다. 궁중 사극에선 분량도 없고 구색만 맞추는 별감이 역사 예능에서는 일약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별감은 19세기 조선의 엔터테인먼트를 이끌었다. 승전놀음은 이 놀 줄 아는 사내들이 기획하고 프로듀싱 한 ‘조선판 K팝 공연’이었다. ‘한양가’는 마치 카메라로 촬영하듯이 승전놀음을 낱낱이 뜯어보고 세세히 묘사한다.

출처: 우리역사넷
신윤복의 그림 ‘야금모행’에 등장하는 별감의 모습.

‘조선판 K팝 공연’, 승전놀음


“금객 가객 모였구나. 거문고 임종철이, / 노래의 양사길이, 계면의 공득이며 / 각생 기생 들어온다. 예사로운 놀음에도 / 치장이 놀랍거든 하물며 승전놀음 / 별감의 놀음인데 범연히 치장하랴 / 백만교태 다 피우고 모양 좋게 들어온다 / 내의원 침선비며 공조라 혜민서며 / 늙은 기생 젊은 기생 명기 동기 들어온다.” (‘한양가’ 중에서) 

공연에 앞서 잘 나가는 소리꾼과 악공, 그리고 기생들이 군중의 환호와 함께 입장한다. 기생들은 어여쁘게 치장하고 ‘백만교태’ 피우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동양월 밝은 달의 밝고 밝은 추월이!” 진행자도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간드러지게 소개한다. ‘여성 예인’ 기생은 조선시대에 민간의 스타이자 셀럽이었다. 노래, 춤, 악기 등의 솜씨로 연회의 흥을 돋울 뿐 아니라 놀이판에서도 분위기를 띄우는 존재였다.

출처: 간송미술관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쌍검대무’.

그럼 ‘한양가’는 왜 기생들의 승전놀음 출연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조선 후기에 기방을 장악한 것은 하급 관리나 군인들이었다. 지방에서 재능 있는 기생이 올라오면 그들이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일을 알선했는데 그 중심에 별감이 있었다. 오늘날로 치면 연예 기획사 경영자인 셈이다. 당시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바로 별감이었던 셈이다. 기생들이 승전놀음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윽고 악공의 기악 연주로 공연이 시작되면 놀이판은 흥겹게 달아오른다. 소리꾼의 창과 가곡에 ‘쑥대머리’ 군중들은 머리를 끄덕끄덕, 눈을 까막까막하며 황홀하게 빠져든다. 풍악과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에 익살꾼이 섞여 앉아 신소리를 늘어놓는다. 오늘날의 랩이다. 흥은 점점 더 고조된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후기 풍속화가 김홍도의 ‘무동’.

“춤추는 기생들은 머리에 수건 매고 / 웃영산 늦은 춤에 중영산 춤을 몰아 / 잔영산 입춤 추니 무산 선녀 나려온다 / 배떠나기 북춤이며 대무 남무 다 춘 후에 / 갑사 군복 홍수 달아 남수화주 긴 전대를 / 허리를 잔뜩 매고 상모단 노는 칼을 / 두 손에 빗겨 지고 잔영산 모든 새면 / 항장의 춤일런가 가슴이 서늘하다.” (‘한양가’ 중에서)


기생의 춤사위는 승전놀음의 백미였다. 웃영산에서 잔영산까지 기악곡 ‘영산회상’의 변주에 따라 춤이 갈수록 빨라지고, 서도민요 ‘배따라기’와 어우러진 북춤에 이르면 놀이판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피날레는 검무(劍舞), 곧 칼춤의 몫이었다. 고전소설 초한지에 나오는 홍문의 연회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항우의 부하가 유방을 노리고 칼춤을 추는 듯 서늘한 한기가 가슴에 꽂힌다. 그 소름 돋는 전율과 함께 승전놀음은 막을 내린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평안감사 연회 풍경.

승전놀음을 기획하고 프로듀싱 한 별감은 박진영처럼 당대의 ‘패셔니스타’이기도 했다. ‘한양가’가 묘사한 별감의 복장은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상투에 꽂는 동곳은 꿀이 엉긴 것 같은 밀화호박을 썼고, 망건 줄을 거는 관자는 외점박이 거북 등껍질로 만들었다. 붉은 옷은 삶지 않은 명주실로 짠 최고급 비단이었으며, 초립도 궁중 상의원에서 직조한 귀한 천으로 안을 받쳤다.


궁중 별감은 조선 후기에 도시가 발달하고 시장이 확산되며 나타난 대중문화의 총아였다. 유교 윤리와 신분질서에 억눌려온 조선 사람들은 부의 과실을 문화적으로 향유하려고 했다. 별감들은 기생, 악공, 소리꾼들을 모아 놀이판을 벌이며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활약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흥부자’다. 어깨춤, 엉덩이춤 추며 놀이판을 펼치고 그 신바람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해 왔다.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힘이다. 박진영처럼, 19세기 별감처럼 놀 줄 아는 엔터테이너들이 그 흥겨운 힘을 끄집어내고 북돋운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고 했다. 인생을 즐기는 자가 이긴다. 엔터테이너는 힘이 세다.


글 jobsN 권경률(역사 칼럼니스트)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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