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길거리의 앳된 고3은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4.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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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저글링 10년만에 라스베이거스 찍고 월드투어 공연 나섭니다"
함서율 저글링 서커스 공연가
10대때 저글링 공연 시작해
넌버벌 공연으로 글로벌 진출

공부에는 영 관심없던 소년이 있었다. 고등학교생이 되자 대입 준비 대신 돈을 벌자고 결심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우연히 이벤트 회사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삐에로 분장을 한 채 요술 풍선을 불고 만들었다. 그가 다니던 이벤트 회사에는 삐에로뿐 아니라 다양한 역할이 있었다. 그 중 저글링(Juggling·둘 이상의 물체를 교대로 공중으로 던지고 잡으면서 허공에 유지시키는 것)을 하는 직원들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저글링 하는 법을 알려 달라며 졸랐고,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집에서 공연 영상을 보며 연습했다. 그렇게 저글링에 빠졌다. 독학하다 막히는 부분은 몇 없던 저글링 공연 단체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곧 연습한 걸 남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고등학교 3학년인 19살 첫 공연을 시작으로 10년째 국내외로 저글링 서커스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공연가 함서율(28)씨의 이야기다.

출처: 서커스.D.랩 제공
함서율 공연가.

“2009년 5월 5일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휴일이라 학교 대신 강원도 한 연수원으로 저글링 공연을 갔습니다. 고속버스를 탔는데 차가 막혀 공연 몇 분전에야 도착했죠. 공연을 못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과 첫 공연에 대한 긴장감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공연 직전까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런데 살면서 이토록 가슴 뛰는 날이 얼마나 될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 무대에 올랐죠. 최선을 다해 공연했고 그를 알아봐주신 관객분들이 열렬히 반응해주셨습니다. 그때 ‘평생 공연가로 살면서 더 좋은 공연을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 길거리 공연에서 라스베이거스 쇼까지


함씨는 2009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초청 행사·축제 뿐 아니라 길거리 버스킹 등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했다. 2013년에 첫 기획 공연인 ‘더 해프닝쇼(The Happening Show)’를 시연했다. 더 해프닝쇼는 예상치 못하게 벌어지는 사건을 광대의 연기와 디아볼로(중국 요요)·불 저글링·사다리 서커스 등으로 구현한 넌버벌 퍼포먼스(가급적 언어를 배제하고 비언어적 상징과 표현, 몸짓과 소리, 음악 등으로 극을 꾸미는 성격의 공연)다. 언어를 초월해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공연 말미에 자신을 소개하는 것 외에 가급적 말을 하지 않는다.

출처: 서커스.D.랩 제공
'더 해프닝쇼' 공연 모습.

2013년부터 국내를 시작으로 호주·일본·대만·영국·폴란드 등에서 초청을 받아 더 해프닝쇼를 선보였다. 길거리 버스킹 공연도 했다. 그러다 2018년 7월에는 세계마술올림픽대회(FISM)에 초청됐다. FISM은 3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마술 축제다. 작년에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한국에서 개최됐다. 함씨는 일본 유명 마술가 슛 오가와(Shoot Ogawa)와 호주 유명 마술사 시몬 코넬(Simon Coronel)의 원맨쇼 게스트로 참여했다. 현장 반응이 뜨거웠던 덕분에 일회적으로 끝날 공연을 2019년 8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Magic A Live’에서도 선보일 수 있었다. ‘Magic A Live’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적인 마술 축제로 함씨는 슛 오가와, 시몬 코넬과 함께 초청받아 1시간동안 공연했다.


“10년간 선보인 모든 무대가 소중하지만 ‘Magic A Live’ 공연은 더 특별했습니다. 2018년 슛 오가와와 시몬 코넬과의 합동 공연을 계기로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할 수 있었는데, 저글링·서커스 불모지인 한국 출신 공연가가 서커스 공연 선진국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섰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죠. 그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거예요.”

출처: 서커스.D.랩 제공
함서율씨는 슛 오가와, 시몬코넬과 함께 2018 FISM과 라스베이거스 'Magic A Live'에서 공연했다.

함씨는 서커스 공연이 활발한 유럽을 돌아다니며 국내 공연 분야를 발전시키는데 어떤 밑거름이 되어야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세계유럽저글링페스티발(EJC)에 참여했다. EJC는 1년에 한 번씩 유럽 국가를 순회하며 열리는 저글링 축제다. 3만명 정도의 저글링 서커스 공연가들이 3주동안 프로그램과 공연을 함께한다. 공연가들이 뭉침으로써 발산되는 에너지를 경험하면서 팀을 꾸려야겠다고 결심했다. 본래 알고 지내던 이준상 공연가와 의기투합해 2018년 ‘서커스.D.랩’이라는 서커스 단체를 만들었다. 저글링을 포함한 다양한 서커스 동작과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서커스 올림픽’을 기획했다. 컬링, 테니스 등 스포츠 종목을 서커스 공연으로 재해석했다. 서커스 올림픽은 2018년 5월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공연무대로 선정돼 처음 선보였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한국에서 손 꼽히는 거리 축제로, 세계 각지에 있는 공연 기획자들이 방문해 국내 공연팀들을 섭외하기도 한다.

출처: 서커스.D.랩 제공
함서율 공연가와 이준상 공연가의 합동 공연 '서커스 올림픽'.

◇ 경제적 이득보다는 심적 만족이 커


그가 나름 인정받는 국내 저글링 서커스 공연가가 되기까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먼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길 바라던 부모님을 설득해야했다. ‘제풀에 꺽여 그만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10년차 공연가인 아들을 보며 부모님은 대견함 반, 걱정스러움 반을 내보인다. 공연 특성 상 몸을 사용하는 기술을 써야해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 사다리 위에서 공연하던 중 중심을 잃고 추락한 적도 있다.


“공연가로서 또 다른 어려운 점이라면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이죠. 공연 섭외 요청 스케쥴은 늘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올해 하반기도 10월은 바쁘지만 11월, 12월은 아직 정해진 게 없습니다. 공연이 없으면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안정된 직업은 아니죠.”


보통 국내 축제가 많은 5월, 9월, 10월에는 국내에서 공연을 하고 7월, 8월, 12월은 해외 공연을 다닌다. 비수기인 1월, 2월, 3월은 공연 기획에 힘을 쏟는다. 기존 공연에 동작·기술 혹은 에피소드를 추가하거나 새로운 공연을 기획·창작하기도 한다. 한 동작과 기술을 완벽히 익히기 위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보고 연습한다. 한 동작을 1만번 이상 반복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동작은 일주일이면 습득하지만 3~4년 이상 걸려 익힌 동작도 있다.

출처: 서커스.D.랩 제공
'서커스 올림픽' 공연 모습.

함씨는 공연가로서 살아가는 힘은 늘 무대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의 밝은 표정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한강시민공원에서 더 해프닝 쇼를 매주 진행할 때였다. 유독 얼굴색이 어두운 관객이 있었다. “안색이 파랗게 질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공연을 하면서도 계속 그 관객에게 시선이 가더군요.” 그 관객은 매 공연을 빠지지 않고 관람했다. 어느날 함씨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그 관객이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제 첫 공연을 보던 날 사실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한강을 왔다더군요. 우연히 공연을 봤고 처음으로 행복했다고요. 이제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재취업도 했다며 자주 공연을 보러온다고 하는데 뿌듯한 한편 책임감도 느꼈죠.”


공연 중에 순발력이 필요한 상황도 있다. 특히 길거리 버스킹 공연 시 무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린이가 난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때는 마치 원래 기획된 공연의 일부분인마냥 정리하죠. 아이를 손으로 번쩍 들어 마임으로 관객석에 돌려보내거나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 혼내는 연기를 합니다. 그러면 관객석으로부터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할 수 있어요.”


◇ 30분의 공연에 공연 인생 10년을 담아

[CCBB]“길거리 저글링 10년만에 라스베이거스 찍고 월드투어 공연 나섭니다”

함씨의 10월 공연 스케쥴은 빡빡하다. 국내 축제·행사를 마치고, 10월 말부터 지방에서 열릴 더 해프닝쇼 극장 공연을 준비 중이다. 라스베이거스 공연 작품 ‘Magic A Live’는 일본을 시작으로 월드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저글링 서커스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망설임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연 예술은 물질적 가치를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제 공연을 보고 삶의 희망을 얻은 관객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스치듯 볼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무수한 시간을 쏟죠. 누군가에게는 제 공연이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 삶을 불태워 사람들을 즐겁고 유익하게 만드는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거예요.”


그는 공연 말미에 늘 이렇게 인사한다. "저는 저글링 10년, 벌룬 아트 3년을 공부했습니다. 또 마임·마술·아크로바틱 등 여러 예술을 하나로 종합하여 지금 보고 계시는 '더 해프닝 쇼'를 만들게 됐습니다. 제 꿈은 전 세계인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입니다. 오늘 이 30분이라는 시간에 제 공연 인생 10년을 담았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 jobsN 박한솔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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