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치·깻잎으로 만드냐고요? 난 한국 사람이니깐요

조회수 2020. 9. 24. 15: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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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오미자 넣어 만든 수제맥주, 세계적인 맥주회사 AB인베브가 샀습니다
핸드앤몰트 도정한 대표
기자→MS코리아 최연소 임원→수제 맥주 회사 CEO
"좋은 품질의 맥주 만들어 착한 가격으로 제공"

'김치 유산균', '깻잎', '오미자' 등 한국에서 나는 재료로 맥주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재료로 맥주를 만들어 다른 나라에 자랑하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이 사람은 '핸드앤몰트(Hand and Malt)' 도정한(45) 대표다. 핸드앤몰트는 도대표가 2014년에 설립한 수제 맥주 회사다. 1년 내내 맥주 9종, 과실주 3종을 생산해 700~800곳에 유통하고 있다. 이 밖에도 시즌마다 생산하는 한정판 맥주, 한국식 에일 등을 만들고 있다. 2017년부터는 서울 경복궁, 광희문, 용산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수제 맥주 펍을 차려 운영 중이다.


도 대표는 국내서 수제 맥주가 인기를 얻기 전에 양조장을 차렸지만 처음부터 맥주 전문가는 아니었다. 아리랑TV에서 기자로, 마이크로소프트 코리아 최연소 임원으로 일하다가 맥주 회사를 차렸다. 서울시 용산구 브루 랩 용산(Brew lab)에서 도정한 대표를 만났다.

출처: jobsN
핸드핸몰트 도정한 대표.

◇미국에서 한국 술 문화 접해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재미교포로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죠. 그렇다고 처음부터 집이 잘살았던 건 아니에요.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4식구가 방 한 칸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1980년대 초 아버지가 하시던 자개 수출 사업이 잘돼서 집안이 조금 폈어요. 그래도 갖고 싶은 건 스스로 돈을 벌어서 해결했습니다. 12살 때 자전거를 사고 싶은데 부모님께서 사주시지 않아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해서 샀어요. 그 이후 대학생까지 핫도그 장사, 은행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죠."


-언제까지 미국에 있었나요.


"대학 졸업하고 2주 뒤에 한국에 들어와서 쭉 살았어요. 대학은 UCLA에 진학했고 정치학과를 전공했습니다. 그때 한인 동아리에서 한국인들과 어울리면서 한국 술 문화를 처음 접했죠. 윗사람과 술을 마실 땐 고개를 돌려 마시는 예의부터 신발이나 항아리에 술을 따라 마시는 것도 배웠어요. 누구는 나쁜 문화라고 하지만 당시 제게는 큰 도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한국말도 못 하는 애가 술 문화는 잘 안다며 칭찬도 받았어요.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1997년에 한국에 왔고 1998년부터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을 다니면서 친구가 차린 인터넷 회사에서 2년 동안 일했습니다. 이후 평소 기자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아리랑 TV에 입사했어요. '일이 아니라 취미활동'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이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돈의 필요성을 느꼈고 돈을 벌기 위해 '에델만 코리아'로 이직했죠. 2년 동안 마이크로소프트(MS), 골드만삭스 등 외국계 회사 담당했고 그러던 중 MS 측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요. 이직 후에는 엑스박스 브랜딩을 맡았고 5년 동안은 싱가포르 지사에서 비즈니스 매니저로 컨슈머 파트를 담당했습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오피스 프로그램을 맡았어요. 불법 다운로드를 막고 정식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 많이 했습니다. 40대 초반에 상무로 승진했고 당시 한국지사 최연소 임원이기도 했죠."

출처: 핸드앤몰트 제공
슬로우 IPA(좌), 생 홉으로 만드는 시즌 맥주 하베스트 IPA(가운데), 국내 최초 크래프트 사과주 브랜드 '핸드앤애플'의 오리지널 사이더. 사이더는 사과즙을 발효해 만든 발효주다.(우)

◇퇴사 후 핸드앤몰트 설립


-퇴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수제 맥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들어올 때 수제 맥주 키트를 가져와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나눠마셨습니다. 당시 반지하에 살 때라 온도와 습도가 딱 맥주를 만들기 적당했습니다. 2012년에 친구와 작게 수제 맥주 바를 차렸어요. 손님들이 수제 맥주를 마시면서 놀라기도 하고 맛있어서 웃기도 했습니다. 그 표정을 보며 '저게 내 맥주였다면 얼마나 뿌듯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사업가인 아버지께서는 제게 항상 '왜 너는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사람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냐'고 말씀하시면서 사업을 해보라고 하셨죠."


-그래서 핸드앤몰트를 차렸나요.


"시장 조사를 하고 데이터를 쌓았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수제 맥주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분명 시장이 커질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MS주식을 다 팔아서 자본금을 마련했습니다. 양조 전문가를 섭외했고 저를 포함해 3명이 2014년 2월 남양주에 핸드앤몰트를 설립했습니다. 6개월 뒤 첫 맥주 '모카 스타우트'를 만들었습니다. 바에서 잘 팔렸던 게 흑맥주기도 했고 손님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 커피를 좋아하고 그들이 선호하는 맛인 초콜릿을 배합하고자 했죠. 당시에는 첨가물을 넣을 수 없어서 다양한 맥아를 섞어서 목 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커피와 초콜릿 향이 나는 배합을 찾았습니다. 스타우트 외에 엑스트라 스페셜 에일, 벨지움 위트 3종류로 영업을 시작했죠." 


-시장 반응은 어땠나요.


"저와 다른 친구가 영업을 담당했습니다. 샘플을 페트병에 담아 유통회사를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반응은 다양했어요. 사장이 직접 맛을 보고 칭찬하는 곳이 있는 반면 그냥 한쪽에 두고 가라며 잡상인 취급하는 곳도 있었죠. 첫 유통 계약은 대전 유통사와 했습니다. 유통 후 우리 맥주를 공급하는 식당에 몰래 가 손님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손님이 우리 맥주를 마시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습니다."

출처: MBC 방송화면 캡처
도정한 대표는 세계적인 모델 송경아씨의 남편이다. 대중은 핸드앤몰트 대표보다 송경아 남편으로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한다.

◇일관성 있는 맛을 내는 게 비결


-맛있는 맥주를 만드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일관성입니다. 좋은 재료를 선별해 그 재료로 한결 같은 맛을 내는 것이죠. 중간에 재료가 바뀌면 손님들은 바로 알아차립니다. 그러기 위해 처음 계약했던 곳에서 홉과 맥아를 지금까지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소비자뿐 아니라 점주들도 좋아했고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나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었죠. 처음 맥주를 출시했을 때는 ‘맥주 덕후’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죠. 실력 있는 양조 전문가와 함께하는 회사라고 알려졌는데 맛이 그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거죠. 그래도 첫 IPA인 '슬로우 IPA'를 출시하고는 인정받았습니다.”


-국내 최초 홉 농장 조성, 토종 재료를 사용 등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요.


“미국에서 그날 수확한 홉으로 만든 에일을 마셨는데 맛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맛의 맥주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홉 농장과 가까워야 합니다. 가평에 농장을 마련했고 하베스트 IPA를 시즌 한정으로 생산합니다. 5월부터 8월까지는 일주일에 2~3번씩 농장으로 출근해요. 깻잎, 오미자 맥주를 만드는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죠. 국내에서 나는 재료로 맥주를 만들어 다른 나라에도 자랑하고 싶었어요. 유산균 맥주는 일본에서 인기가 많았고 미국 양조사랑 같이 만든 수정과 에일도 인기가 좋았죠.”


-탭룸을 차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핸드앤몰트 라인업이 다 모여있는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중심이 어딜까 고민하다가 광화문에 있는 한옥을 개조해 첫 탭룸을 차렸어요. 이어 광희문점, 용산점을 열었고 다음 달 초에는 잠실점이 문을 엽니다.”

출처: 핸드앤몰트 제공, jobsN
백두산 정상에서 소원 페일 에일을 들고 있고 있는 도대표. 백두산 물과 남한의 물을 합쳐 만든 최초의 맥주다(좌), 용산 브루랩 2층.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족'을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우).

◇“작은 마을 치킨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맥주”


-2018년 4월 AB인베브가 인수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한국에서 가장 질 좋은 맥주를 착한 가격으로 만들어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작은 마을에 있는 치킨집에서도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5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유통의 중요성을 느꼈고 꿈을 이루려면 유통사와 손을 잡아야 했죠. 이것저것 따져봤을 때 AB인베브가 가장 적합했어요. 그동안 키운 자식을 입양 보내는 기분이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용산에 있는 탭룸에는 지하에 미니 양조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동안 바쁘기도 하고 양조장 규모가 커서 해보지 못했던 저만의 맥주를 연구하고 만들 예정입니다. 또 한국 사람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맥주를 만들고 전국 CVS에 유통하는 게 목표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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