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로 전세계 호평받은 여성, 요즘은 벤츠 만지죠

조회수 2020. 9. 24. 15: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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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인 아미글로비즈 대표가 청년들에게 조언해주는 말
아미글로비즈 박재인 대표
삼성에버랜드 최초 여성 상무
2017년 디자인 총괄 회사 창업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반얀트리 등 인테리어

“목표를 이루고 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수월해요. 돌이켜보면 늘 단기 목표만 집중했습니다. 수석으로 대학 졸업하기. 글로벌 대기업 들어가기.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해보기. 전부 이룬 뒤 다음을 고민해보니 창업밖에 없더군요.”


◇1980년대 말 미국 유학 떠나 수석으로 대학·대학원 졸업 


박재인(51) 아미글로비즈 대표는 살면서 한번도 낙제를 받아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큰 꿈을 꿨다. 국내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1987년 미시간 주립대학에 입학했다. 첫 전공은 미디어였지만 그림과 디자인 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인간공학부 실내디자인학과로 전과했다. 박 대표는 스무살 전까지 외국 경험이 전무했다. 영어로만 이뤄지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친구들에게 노트를 빌려 가면서 공부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서관에서 지냈다. 그 결과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을 수석 졸업한 뒤 대학원(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과)에 갔다. 역시 4.0점 만점으로 졸업했다. 

출처: 본인 제공
박재인 아미글로비즈 대표.

학업을 마치자 세계 유수 디자인 회사에서 함께 일해보자 제안했다. 미국 대형 건축사인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 LLP(Skidmore, Owings and Merrill LLP)에 입사했다. 골드만삭스타워 뉴저지 본사 인테리어·뉴욕증권거래소 내부 리뉴얼 등 유명 건물의 내부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2002년 한국에 돌아와 CJ디자인센터, 2008년 한화호텔&리조트 디자인지원팀을 이끌었다. 2010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에 입사했다. 2012년 12월 정기 임원 인사에서 삼성에버랜드 최초 여성 상무에 올랐다. 에버랜드·캐리비안베이의 독특한 공간 디자인은 박재인 전 삼성물산 상무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에버랜드 로스트밸리 기획으로 국내외 호평···여성 최초 삼성물산 임원


“삼성은 시스템을 잘 갖춘 회사예요. 구성원이 도태되지 않고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고의 멘토링·교육 등을 지원해주는 곳입니다. 면접을 볼 때부터 회사에선 제게 전반적인 테마파크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아야 한다고 했어요. 오피스·호텔&리조트·식음시설 등의 실내 디자인을 한 적은 있었어도 테마파크는 난생처음이었어요. 해본 적은 없지만 포부는 컸어요. ‘디즈니랜드를 넘어서는 아시아 최고의 테마파크로 만들어보겠다’라고 했죠. 한 달 정도 공부할 시간을 달라고도 말씀드렸어요. 세계의 놀이공원을 돌아다니면서 한국형 놀이공원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했습니다. 인천 월미도처럼 재미 위주의 놀이기구보다 입장객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다는 환상을 안겨주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요. 에버랜드의 판다월드·로스트밸리·스카이크루즈 등을 디자인 기획했습니다.”

출처: 아미글로비즈 제공
2012년과 2013년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았던 에버랜드 로스트밸리(왼쪽)와 매직타임 레스토랑.

에버랜드 로스트밸리의 독특한 디자인은 국내외 큰 호응을 얻었다. 2013 대한민국 커뮤니케이션 대상 최우수 아이덴티티 디자인 대상·한국 굿디자인 특허청장상, 2014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대표이사상, 2015 일본 굿디자인 우수디자인 선정, 2016 한국색채대상 대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커리어상 최고점을 찍은 셈이다.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2012년 삼성물산 최초 여성임원 자리에 올랐다.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쏠리는 대내외적인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그저 “좋았다”고 답했다.


“2000년대만 해도 건설 현장에 나가면 인부 아저씨들이 ‘여자가 무슨 현장에 오냐, 재수 없다’고 하셨어요. ‘이 부분 고쳐달라’고 해도 들은 척을 안했습니다. 디자인에서 꼭 필요한 부분인데, 본인들 편하게 하려고 마음대로 생략하는 거예요. 그럴 땐 직급이 깡패라는 말이 있죠. 현장 소장에게 ‘저분들이 하기 싫어하면 안 하게 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거친 건설 현장의 기싸움을 견디면서 성장해갔죠. 조직에서 인정을 받았던 비결에는 타이밍이 좋았던 것도 한몫했다 생각해요. 제가 일했던 시기는 실내건축디자인 전문가가 국내에 많지 않았거든요. 한국의 인테리어 디자인의 역사를 개척해나간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스스로 여자라는 한계에 가두지 않았으면”


박재인 대표는 “직장에서 스스로 ‘여자’라는 생각에 갇혀있으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닫힌다”고 했다. 여성이니까 대우해 주길 기대하기보다는 모두 똑같이 경쟁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워킹맘의 고충을 들어보면 직장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이 많죠. 남편의 밥을 챙겨줘야 해서, 집에 애를 봐야 해서, 아버님 제사라서 등이 있습니다. 상사나 동료들이 보기엔 그건 배우자와 잘 분담해야 할 부분인 거죠. 무조건 여자만 집안일을 챙기다 보면 남자동료들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워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자라서 이해해줘야 할 점이 아닌 겁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직장여성들이 스스로 만든 한계에 갇히지 말고 남편과 더 분담하면서 용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많은 젊은 여성 직장인분들이 잘 해주고 계시다 생각해요.”


커리어상 최고점을 찍고 나니 그 다음이 고민이었다. 박재인 대표는 2016년부터 창업을 생각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꿈. 대학생 땐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하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공부했다. 결국 임원까지 오르면서 그 목표를 이뤘다. 그 뒤엔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다. 2016년 말 삼성에 사직서를 냈다. 그의 상사는 “휴가 줄 테니 쉬고 와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휴가를 다녀와서 보니 계획이 더 분명해졌다. 퇴사 후엔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왜 진작 그만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드디어 저만의 아이디어를 실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생각했죠.”

출처: 아미글로비즈 제공
디자인 매니지먼트를 한 2019 동탄메가센터(왼쪽), 2018 해운대 메르세데스 벤츠 전시장.
출처: 아미글로비즈 제공
2018 하남스타필드 메르세데스 벤츠 카페 전시장.

◇청년들에겐 “주체적으로 배워나갈 수 있는 경험 쌓기를” 조언


2016년 말, 디자인 매니지먼트 전문 회사 아미글로비즈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부터 주요 기업의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베이 동탄오피스·반얀트리 페스타·메르세데스 벤츠 주요 전시장 등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와는 연간계약을 맺어 3년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총 48개 전시장과 서비스센터의 설계·디자인 컨설팅을 담당했다. 중소기업현황시스템 공시 자료를 보면 2018년 12월 기준 아미글로비즈의 매출은 약 22억원, 영업이익은 8억5000만원이다.


“지금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온 것 같아요. 모범생처럼 모든 단계를 착실히 밟아왔지만 돌이켜보면 ‘대학 졸업 후 꼭 대기업에 가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대기업은 시스템이 잘 짜여있는 조직이죠. 그만큼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과 한계가 분명합니다. 반면 회사를 나오고 나면 또 완전히 새로운 시작점에 서야 해요. 삼성에서 만들었던 타이틀이나 포트폴리오는 제 목표와는 다른 기록들이죠.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라도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분들께 ‘대기업에만 가려고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겁니다. 관심분야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배울 수 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주체적으로 다양한 업무를 접해본 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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