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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고정하던 거였는데.." 스벅 때문에 대박난 농부

조회수 2020. 9. 24. 15: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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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라이스칩'으로 대박 난 박사 농부
전대경 미듬 영농조합법인 대표

한여름의 평택 평야. 뙤약볕 아래서 뜬 모를 심는 데 열중하던 청년이 굽혔던 허리를 편다. 쏴아!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파릇한 벼도 굽었다 일어선다. 등줄기를 타고 또르르 흐르던 땀이 바람에 말라간다. 멀리서 청년의 아버지도 불어오는 바람에 모심기를 멈추고 허리를 편다. 서로 눈이 마주친 부자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푸른 바람이 들판에 넘실거리던 그 순간을 청년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농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이 오십을 훌쩍 넘겨 중년이 된, 전대경 대표의 이야기다.


전 대표는 영농 후계자다. 학창 시절 그의 일과는 논에서 시작됐다.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농사 자체를 즐기던 분이었다. 일찌감치 농부의 꿈을 꾼 건 낙천적인 아버지 영향이 크다.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정식으로 교육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던 그는 농대를 졸업하고 농업 분야로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농사지으며 가장 안타까운 건, 농부들이 잘 몰라서 당하는 일이 많다는 거예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요. 아버지는 정부와 계약을 맺고 질 좋은 종자를 농가에 보급하는 ‘채종포’ 역할을 맡았는데, 한번은 종자 관리 부실 책임을 떠안아 낭패를 봤어요.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설명하려면 농업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농촌의 성장은 농민들이 직접 나서서 농산물과 농가공품을 어떻게 차별화하고 다각화할지 고민하는 데서 시작된다”, 전 대표의 신념이다. 한창 쌀값이 폭락하던 2005년, 그는 미듬 영농조합법인을 세우고 쌀 가공품과 과채 가공품 생산을 본격화했다. 쌀농사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박사 학위까지 받은 농부가 뭐든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공을 시작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죠. 쌀 가공 과정을 알기 위해 떡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고, 쌀을 이용한 장류, 술 등의 제작 과정을 배웠습니다.”


지역과 환경을 살리는 사업 모델

전 대표는 먼저 평택 지역 농가와 협력해 친환경 가공 쌀 재배단지를 만들었다. 2007년에는 우렁이 농법을 도입하고, 여기서 연간 1000여 톤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그가 가공식품을 사업화할 무렵, 스타벅스가 경기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우리 농산물로 만든 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전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타벅스를 즐겨 찾는 젊은 세대와 1인 가구를 위한 메뉴와 제품 개발에 골몰했다. 이를 위해 가공 생산팀과 디자인팀을 따로 뒀다.


첫 사업은 컵케이크 형태의 ‘찜 케이크’다. 쌀로 쪄낸 케이크는 커피와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냉동 유통에 어려움이 있었고, 품질 유지 기한이 짧다는 한계에 반려됐다. 돌파구는 뜻밖의 곳에서 생겼다. 케이크를 고정하기 위해 상자에 함께 넣어 보낸 쌀과자가 주목받은 것. 전 대표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쌀과자에 ‘라이스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포장 디자인까지 마쳐 납품했고, 스타벅스 메뉴에 선정됐다. 


쌀과자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 대표는 이 기세를 몰아 쌀로 만든 라이스바, 과일을 말린 리얼 후르츠 등 60여 가지 가공품을 내놨다. 호평이 이어졌다. 미듬 영농조합법인이 만든 쌀 가공식품은 3년간 100만 개가 넘게 팔렸다. 2015년에는 경기도 지역 농산물인 옥수수와 고구마, 감자로 구성한 ‘옥고감’을 내놨고, 이는 스타벅스 인기 메뉴로도 자리 잡았다. 미듬 측의 가공식품 유통망은 점차 확장해갔다. 스타벅스 외에도 농협 하나로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와 아시아나항공 기내식까지 납품하고 있다. 


전대경 대표는 스타벅스와의 첫 인연을 계기로 또 다른 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커피 찌꺼기를 비료로 활용하는 상생 협력 협약을 체결한 것. 스타벅스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들어 지역 농업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농민들은 친환경 비료를 활용해 생산한 농산물을 다시 스타벅스에 공급하는 ‘선순환 상생 협력 구조’를 만들었다.


전 대표는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함으로써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되고, 우리 농산물 소비도 이뤄지는, 농업과 기업 간 모범적인 상생 모델”이라고 강조한다.


친환경 쌀로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 농업과 기업 간 상생 협력을 구축한 공로로 전대경 대표는 2010년 고품질쌀생산유통 분야 대통령상 수상, 2012년 가공용 쌀 재배단지 평가 최우수상 수상, 2013~2015년 쌀 가공품 TOP 10 선정, 2015 대한민국상생협력대상 수상 등의 이력을 갖게 됐다. 


동네를 담은 8년간의 기록, 《쌀을 닮다》


전대경 대표의 요즘 관심사는 ‘로컬 문화’다. 기존 농업이 먹거리를 제공하는 1차 산업에 그쳤다면, 이제는 가공식품을 만들고, 한 발 더 나아가 그 지역을 문화로 엮어내는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해에는 ‘오성 강변 뚝방길 르네상스 프로젝트’라는 관광 상품도 평택시와 만들어가고 있다. 안성천과 진위천, 평택호에 이르는 강변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또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구성했다. 논밭에서 이삭줍기나 농산물 채취 체험을 한 뒤 쌀겨 찜질방에서 찜질을 하고 인근 막걸리 공장에서 양조장 체험을 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마을 해설사’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 전 대표는 미듬 영농조합 내에 빵집을 겸한 문화 공간을 열었다. 미듬의 쌀 빵을 소개하는 장이자, 마을 주민을 위한 사랑방이다. 공간 이름은 청년 시절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그때’를 떠올리며 ‘푸른 바람을 만나는 곳’이라 지었다.


이를 기반으로 전시나 문화 행사도 이어가고 있다. 평택 오성면 신리에 사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엮어 책 《쌀을 닮다》를 내는가 하면, 평택 출신의 음악가 정태춘을 테마로 전시와 콘서트도 열었다. 그는 이 모든 활동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말한다.


“책 《쌀을 닮다》는 동네를 기록하기 위해 8년 전 시작한 일이에요. 동네 어르신들이 연로하셔서 더 늦기 전에 자료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을 재생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유행 따라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로컬 푸드 매장을 열거나 예술 창작촌을 세우면 모두 똑같은 마을이 되어버립니다. 우리가 가진 이야기를 우리 손으로 정리하고 캐릭터를 만들 때 차별성이 생깁니다.”


오래전 그가 한여름 뙤약볕에 만난 ‘푸른 바람’은 하나의 이야기로 남아 문화의 알곡으로 여물어가고 있다.


글 톱클래스 서경리
사진제공 미듬 영농조합법인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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