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기없던 고3, 수능 보고 영화관 갔다 인생 바뀌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4. 15: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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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아날로그 정해인

학창 시절 정해인은 부끄러움이 많고 숫기가 없는 학생이었다. 워낙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던 그는 “친구들이 제가 연기하는 걸 보면 놀란다”고 말했다. 배우가 된 건 우연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영화관에 갔다가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평범했다”고 설명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북적이는 강남의 영화관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뭐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에 찾아온 우연을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대학교 전공도 연기로 정했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연극, 뮤지컬 등을 경험하면서 연기에 입문했다. 스물하나, 이른 나이에 군대에 가면서 결심했다. “연기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제 인생에 몇 번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어요. 한 번은 뜻밖의 캐스팅 제의를 받은 일이고, 또 한 번은 군대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이었어요.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병장 때, 비가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가는데 시동이 갑자기 꺼졌어요. 건너편에서는 대형 트럭이 달려오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죠.”


‘이제 죽는구나’ 싶은 순간에 도로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침착하게 차량을 통제했다. 덕분에 그는 포상을 받고 ‘운전병 교육 모범 사례’에 뽑히기도 했다. 그보다 더 뜻깊은 일은 이후 그의 인생관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생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하루에도 숱한 사고가 일어나고, 그 사고의 당사자들은 그날이 마지막일 줄 몰랐을 거예요. 평소와 다름없이 양치질을 하고 하루를 시작했겠죠. 그 이후로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첫 단독 주연 영화의 첫 인터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

감색 정장에 검은 타이를 매고 나타난 정해인은 헤어나 메이크업을 따로 받지 않았지만 티 없이 말간 얼굴이었다. 초가을이라도 아직 한낮엔 열기가 남아 있는데, 그는 재킷을 벗거나 타이를 풀지 않았다. “지금이 편하다”며 웃는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흐트러지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싶은 자기와의 약속이랄까. ‘첫 단독 주연 영화의 첫 인터뷰’ 자리라 긴장된다고 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 특유의 안정감이 배어 나왔다.


정해인은 2018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홈런으로 단박에 스타가 된 슈퍼 루키다. 사실 2군 생활도 길었다. 2014년 TV조선의 〈백년의 신부〉로 데뷔한 후로 한 번도 쉬어본 일이 없다.


“소속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게 스물여섯이에요. 보통 청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긴 하지만, 배우로서 이른 출발은 아니었죠. 이후로 단역이든 조연이든 작품 활동을 꾸준히 했어요. 지금까지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의 그가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그의 나이 서른하나 때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연출한 안판석 감독은 당시 “원래 정해인이라는 배우를 몰랐다. 주변에서 추천을 받아 동영상 클립을 봤는데 세 편을 보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1분 보면 잘하는지 못하는지 다 안다. 짧은 클립에서 잘했던 사람은 긴 호흡의 드라마도 잘한다”는 게 그의 촉이었고, 그 1분의 촉이 적중해 정해인은 그해 하나의 신드롬이 됐다. 그리고 안판석 감독은 차기작인 〈봄밤〉에서도 정해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감독님 작품으로 첫 주인공을 했다는 건 저로서는 말할 수 없는 축복이에요. 안판석 감독님의 현장에서는 배우가 늘 존중받아요. 그 현장에서 배우로서뿐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예의’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봄밤〉 드라마를 함께하자고 제안해주셨을 때, 너무 감사하지만 당시 스케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하고 싶었고, 감독님뿐 아니라 선후배 배우분들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함께할 수 있었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서준희와 〈봄밤〉의 유지호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에게서는 하나의 숨결이 읽힌다. 그건 정해인이라는 배우가 맡았기 때문이 아니라, 두 인물 모두 배려가 호흡처럼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장악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상황을 해결하려 무리하지도 않는다. 연애에도 중요한 건 예의고, 그가 분노할 때는 누군가 무례하게 행동했을 때지 자기 자존심이 상했을 때가 아니다. 그는 한 번도 그 흔한 재벌 2세나 백마 탄 왕자 역을 맡은 바 없지만, 그의 인물들은 그들보다 눈부시지 않았던 적이 없다. 불리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정해인의 인물들은 특유의 여유와 단단한 자존감으로 완주에 성공한다. ‘스펙보다 중요한 건 스토리’라는 걸, 그의 드라마는 증명한다.


사랑도 결국 자존감의 문제

첫 주연 영화인 〈유열의 음악앨범〉도 그 궤도 안에 있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그 그림자가 끝없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인물. 불리한 상황에서 자기를 연민하고, 세상에 분노하기보다 묵묵히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청년이다. 그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포효하는 순간은 그의 불우한, 그래서 불량해진 친구들에게 “우리 이제 좀 제대로 살자”라고 외칠 때다. 영화 속에서 그는 제대로 살지 못했거나,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변명하기보단 차라리 입을 다문다. 영화 속에서 현우(정해인)와 미수(김고은)가 어긋나는 지점은 이런 순간들이다.


“영화는 사랑도 자존감의 문제라고 말해요. 상대방 앞에서 떳떳하게 설 수 없는 순간은 그 앞에서 제대로 웃을 수 없는 순간이거든요. 두 사람은 안타깝게 엇갈리지만 그 시간을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으로 만들죠. 두 사람이 만나 다시 행복해질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예요.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는 나도 상대도 행복할 수 없죠.”


배우를 시작한 후 그의 일상도 매일이 자존감과의 싸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무너지면 자신이 하는 연기도 믿을 수 없다. 그건 무명인가, 스타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작품이 잘될 때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한다.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를 할 때 김해숙 선생님 막내아들 역할이었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지금도 마음에 새기는 말 중 하나가 ‘멀리 보고 길게 봐라’는 말씀이에요. 지금 잘된다고, 혹은 안 된다고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늘 다짐하죠.”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건 분명 배우로서 행운이지만, 정해인이라는 한 사람에게는 불행이기도 하다. 그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해왔고, 할 수 있었던 일들에 제약이 생긴다. 촬영하다가 다친 손가락을 치료할 틈이 없어서 그의 새끼손가락은 굽어진 채로 굳어지기도 했다.


“배우로서 정해인은 일과 분리가 잘 안 돼요. 물리적으로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배역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때도 있고, 스스로 연기가 만족스럽지 못해 밤에 이불을 찰 때도 많죠. 여기가 내 한계인가 싶고요. 어떤 분들은 저를 ‘대세’라고 해주시는데, 감사하긴 하지만 대세가 영원할 순 없다는 걸 알아요. 언젠가는 잊히죠. 그런데 가족들을 만나면 그런 생각에서 빠져나와요. 부모님과 있을 때 저는 그저 큰아들이고, 동생이랑 있을 땐 그냥 형이니까요. 그럴 때 인간 정해인은 안심이 돼요.”


일곱 살 어린 동생은 ‘뼈 때리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동생의 입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고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건 큰 복이에요. 〈유열의 음악앨범〉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님도 그런 분이었어요. 현장에서 모든 사람의 이름에 ‘~님’자를 붙이세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카메라 앞에서 소리치지 않고, 달려와서 그 사람만 들을 수 있게 말씀하세요. 배려와 존중이 몸에 밴 분이죠. 감독님의 작품들이 좋기도 했지만, 감독님이라는 사람이 참 좋아요. 그래서 오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내일이 없는 듯 오늘을 산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 그리고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까지 3연타석 멜로물을 만나면서 혹자는 정해인을 ‘멜로 장인’이라 부른다. 그는 손사래를 친다. 다만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고, 그 관계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에 마음이 쓰인다. 〈봄밤〉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겨울이 지나 봄바람이 불면 언제고 마음이 아릴 것 같고, 〈유열의 음악앨범〉은 라디오를 들을 때나 창 밖에 단풍이 들면 그 골목이 생각날 것 같다.


“아날로그적인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요. 저도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옛날 음악 듣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날로그는 디지털이랑 다르잖아요. ‘단 한 번밖에 없다’는 애틋함이 있어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신중하게 되죠.”


그런 그에게 ‘오늘만 산다’는 건 단 한 번뿐이라 그만큼 소중하고 신중한 일이다. 가장 요즘의 얼굴을 하고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랑을 하는 정해인에게 그 바닥 사람들과 대중이 함께 열광한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어떤 감수성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게 촌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는 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늘 멜로만 해온 건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흑운처럼 조선 제일의 호위무사였던 기록도 있고,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유대위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이었던 흔적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드라마 〈도깨비〉의 ‘태희 오빠’처럼 누군가의 첫사랑으로 기억하긴 하지만.


앞으로 그의 작품이 또 어떤 기록으로 채워질지 아직은 모른다. 짐작할 수 있는 건 지금껏 그래왔듯 ‘멀리 보고, 길게 보며’ 발을 떼리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는 만큼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는 데 충실하면서.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냈어요. 지금도 좋은 일이 생기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을 해요.”


정해인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올라가면 거기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6대손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먼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어릴 적 할아버지는 이따금씩 다산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정해인은 그의 저서를 찾아 읽어보기도 했는데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실감만 커졌다”고 한다. 그저 자신은 주어진 일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하지만 엉뚱하게도 인터뷰를 마치고 한동안 정해인이라는 인물의 인상을 떠올리면, 그의 해사한 이목구비와 울림 있는 목소리보다 ‘정약용 선생의 후예’라는 사실이 더 와 닿았다. 삶은 순탄하지 않았으나, 진중하고 뚝심 있게 제 갈 길을 간 인물. 아마 다산 선생도 내일이 없는 듯 오늘을 사르며 살아내 이토록 오래오래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글 톱클래스 유슬기
사진제공 CGV 아트하우스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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