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둬두고 못가게 하고 싶다" 이효리가 가장 의지한 알바생

조회수 2020. 9. 24. 16: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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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외모를 넘어 센터의 정석
배우 임윤아

윤아는 외모도 아름답지만 주변을 장악하지 않는다. 그를 비유해 ‘사슴 외모’라고 하는데, 사슴이 무리를 공격하는 일은 잘 없다. 춤선도 그렇다. 윤아의 춤선은 파워풀한 효연의 춤과는 다르다. 유려하고 단정하다. 오늘의 소녀시대를 있게 한 ‘칼군무’도 윤아가 센터에 서면서 정리된다. 그는 가장 ‘튀게’가 아니라 가장 ‘정확하게’ 안무를 소화해 중심을 잡는다. ‘센터의 정석’이라는 게 있다면 윤아를 참조하면 된다. 센터의 정석 1장은 욕심이나 야심이 아니라 책임감과 조화력이다.


이런 예감은 JTBC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2〉를 보면서 더 굳어졌다. 이 민박집에는 숱한 투숙객뿐 아니라 여러 알바생도 다녀갔다. 시즌 1에선 아이유, 시즌 2에서는 윤아와 박보검이 있었다. 이 정도 라인업이면 연말 대상 시상식을 열어도 모자랄 판인데, 이 중 ‘베스트 알바상’을 준다면 수상자는 윤아다.

물론 아이유와 박보검도 나무랄 데 없는 알바생이었다. 이들은 이효리와 이상순에게 “이런 딸, 이런 아들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 싱그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윤아는 민박집 사장이 가장 의지한 존재였다. 갑자기 음식을 해야 할 때나, 화장실이 막혔을 때 이효리는 윤아를 찾았다. 그리고 윤아는 침착하게 미션을 해결했다. 이효리와 이상순은 윤아 같은 알바생을 자식으로 삼는 대신, “라푼젤처럼 성에 가둬두고 서울로 못 가게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겨울 지나 봄, 다시 문을 연 민박집에 윤아가 돌아왔다. 이효리는 그를 버선발로 반겼다. 윤아는 익숙한 모습으로 사장 부부와 일감을 나눠 가졌다.


“책임감으로 버틴 것 같다”

윤아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엑시트〉가 7월 31일 개봉했다. 영화는 20일 만에 755만 관객을 모았다. 〈엑시트〉는 CJ엔터테인먼트가 아껴둔 여름 텐트폴 영화다. 텐트폴(tentpole)이란 텐트를 세울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기둥을 뜻한다. 영화계에서는 연휴나 방학 등 성수기에 배정하는 ‘흥행이 보장된 영화’를 말한다. 대부분 흥행 감독과 배우를 기용하고 대자본을 투입한다.


〈엑시트〉는 조금 다르다. 이상근 감독은 단편 영화로 미장셴 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받기는 했지만 상업 영화로는 첫 데뷔다. 믿고 보는 조정석이 있긴 하지만,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건 첫 주연을 맡은 윤아다.


“주연이라는 부담감에 억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저 나한테 주어진 역할을 잘해내자, 주변에 폐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현장에 갔어요. 영화에 나오는 분들과 잘 어우러지기만 한다면 제 할 몫은 다한 거라고 생각했죠.”


이상근 감독은 주연 배우를 발탁할 때 가장 먼저 ‘체력’을 봤다. 〈엑시트〉는 히어로 없는 재난 영화다. 도심 한가운데 유독 가스가 퍼진 전대미문의 재난 앞에서 두 주인공은 그저 연기를 피해 몸을 던지고 매달리고 구르고 달려야 한다. 조정석은 영화계에서 ‘몸을 잘 쓰기’로 유명하다. 윤아는 국가대표 걸그룹으로 10년 이상 활동했다. 〈효리네 민박〉에서 보여준 털털한 모습도, 영화 〈공조〉에서 보여준 허술한 모습도 그 안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매일매일 뛰었어요. 뛰다 보면 오늘이 어제인지, 어제가 오늘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평소에 달리기는 좀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각오하고 들어갔죠. 그런데 저는 장거리가 아니라 단거리에 맞는 선수였더라고요.(웃음) 나중에는 아무리 뛰고 싶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서 눈물이 났어요.”


소녀시대에서 윤아의 체력은 중간 정도다. 그는 근력이 아니라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대를 채웠다. 세계 무대를 누비며 와이어를 탄 경험, 영화를 준비하며 매일 클라이밍에 매달린 훈련으로 웬만한 장면은 대역 없이 찍었다.


영화 속 가스 재난은 한국의 청춘들에게 펼쳐진 ‘앞이 캄캄한 현실’을 은유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 앞에 낭떠러지가 있을지, 사닥다리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공허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조정석이 맡은 용남과 윤아가 맡은 의주의 고군분투는 2019년 한국 청년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열세 살의 나이에 국내 굴지의 기획사 오디션에 단 한 번에 합격, 소녀시대의 센터로 찬란하게 살아온 그에게도 ‘앞이 캄캄한 시절’이 있었을까.


“처음부터 가수가 되겠다, 배우가 되겠다고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저에게 주어진 기회에 그때마다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늘 좋은 결과가 오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던 때도 있었어요. 더 노력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어 자책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조금 편해지고 있어요. 잘 되지 않은 일도,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하고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믿음

가수 윤아의 날들은 눈부셨지만, 배우 임윤아의 길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소녀시대로 데뷔하기 전 그는 2007년 드라마 〈9회말 2아웃〉에 출연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오디션에서도 숱하게 떨어졌다. 소녀시대 데뷔 이후 〈너는 내 운명〉 〈사랑비〉 〈총리와 나〉 〈THE K2〉 〈왕은 사랑한다〉 등의 드라마를 찍었다. 일일드라마부터 미니시리즈, 현대물과 사극, 억척 발랄한 캔디와 비련의 여주인공까지 섭렵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윤아의 연기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지만, 작품 운이 따르지 않거나 시청률이 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영화 〈공조〉에 출연하게 됐다.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청순가련한 주인공이 아닌 허당미 가득한 백수로. 2017년 영화는 7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반기 최고 흥행작이 됐다.


“영화를 본 분들은 〈공조〉의 민영이 제 원래 모습과 제일 비슷하다고 해요.(웃음) 역할의 분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죠. 주연이냐, 조연이냐와 상관없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공조〉의 민영이는 백수였는데, 〈엑시트〉의 의주는 취업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윤아가 맡은 의주는 컨벤션홀에서 일하는 부지점장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국어 교사를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점장의 괴롭힘(?) 속에 알바생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의주는 책임감 강하고 정의롭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손님들을 먼저 챙기는 사명감도 갖고 있다. 의주를 연기한 윤아는 평소 쌓아둔 체력뿐 아니라 책임감도 함께 꺼내 쓴 것 같다.


“20대의 저는 쉬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물론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지나온 시간이 어느 것 하나 쓸모없는 게 없다는 것도 알아가는 중이고요. 이제는 좀 여유를 갖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려고요.”


센터의 무게는 곧 왕관의 무게다. 그 무게를 여린 어깨로 견뎌온 윤아는 이제 영화의 센터를 맡아도 주변 인물과 조화롭다. 걸그룹에게 서른은 더 이상 소녀가 아닌 나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윤아는 이제 소녀가 아니더라도, 센터가 아니더라도 빛나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글 톱클래스 유슬기
사진제공 SM엔터테인먼트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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