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연대 모범생이 중국이 장악한 아프리카에서 벌인 사업

조회수 2020. 9. 24. 16: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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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명문대 나온 모범생, 돌연 아프리카로 떠나 벌인 사업
류지선 아프로마 대표
20대 후반 아프리카 떠나
나이지리아에서 주얼리 사업가로

류지선(41) 아프로마 대표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의 주얼리 제품을 유통해 파는 사업가다. 나이지리아는 1억9000만명(2017년 기준)의 인구가 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3758억 달러(448조8931억원). 개발도상국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9월3일 발표한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나이지리아는 140개국 중 139위를 기록했다. 수도·전기 등 열악한 인프라가 살기 불편한 이유 중 하나다. 류 대표가 사는 나이지리아 라고스는 한국 서울로부터 1만1781km 멀다. 직항 비행기는 없고 2번 이상 경유해야 갈 수 있는 나라다.

출처: jobsN
류지선 아프로마 대표.

-아프리카에서 무슨 일을 하나.


"사업가다. 2016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주얼리 브랜드 아프로마를 창업했다. 한국의 품질 좋은 주얼리 제품을 유통해 중저가에 판다. 아프로마는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많은 오프라인 숍을 가진 쇼핑몰 '스파(spar)'에 입점해 있다. 아프리카 주얼리 시장은 명품과 중국산 두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최고가거나 최저가밖에 없다. 아프로마는 중저가 주얼리라는 빈틈 시장을 공략해 좋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브랜드다."


-한국인에게 아프리카는 낯선 곳이다. 가족이나 친척 등의 인연이 아프리카에 있었나.


"전혀 없다. 가족들 전부 한국에 있다. 나 역시 사업하기 전까진 한국에서 평범하게 대학까지 마쳤다. 이화외고·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언어를 전공하다 보니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졸업 후 기업의 해외영업 부서에 지원했다."


-첫 직장은 어디였나.


"2002년 가죽의류 수출회사에 입사했다. 어려서부터 패션·디자인 쪽에 관심이 많았다. 또 의류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워가다 보면 해외에서 사업할 수 있는 길도 자연스럽게 생길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고객 접대를 해야한다는 명목으로 노래방에서 여성 직원들에게 남자 직원을 껴안고 춤을 추게 시켰다.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겠다 생각하고 퇴사했다. 그다음 IT 회사 해외영업팀에 입사했다."


-대기업에 취업할 생각은 안 했나.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성격이었다. 대기업은 단단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수직적인 대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또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대기업에서 영업을 배웠다면 아프로마를 창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처: 류지선 대표 제공
고객에게 주얼리와 패션 악세사리 제품을 코디해 주는 류 대표(왼쪽)·대형 쇼핑몰 스파(Spar)에 입점한 아프로마(중간)·아프로아의 나이지리아 직원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대기업은 '현대에서 왔습니다', '삼성 직원입니다'하고 이름만 말해도 반은 영업에 성공한다. 어떤 회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설명할 게 수없이 많다. 한번에 계약을 따내기도 어렵다. 수차례 업체들을 만나 설득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덕에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해외 영업을 하면서 아프리카를 접했나.


"그렇다. 미래엔 개발도상국에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중동·아프리카 국가에 관심이 많이 갔다. 20대 후반, IT 회사 에피밸리 해외 영업팀에서 근무했다. KT에그와 같은 IT 제품을 통신 사업자의 환경에 맞게 개발·제조·수출하는 일이었다. 케냐·나이지리아·앙골라·남아공 등을 담당했다. 직접 아프리카에 가기 전까지는 나 역시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이미지밖에 없었다. 사자가 뛰어다니고 테러가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56개 나라로 이뤄진 지역이다. 딱 하나로 정체성을 규정하기 어려운 나라다.


아프리카를 경험하면서 이곳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접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다는 걸 느꼈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반응이 즉각적으로 왔다. 

진출해있는 경쟁업체가 적다는 것이다. 좋은 사업 아이템만 있으면 블루오션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IT 회사에서 근무하다 창업을 한건가.


"아니다. 2013년 IT회사에서 베이스캠프라는 인테리어 회사로 이직했다. 삼성이나 LG전자의 쇼룸을 만드는 업체였다. 대기업의 ATL(Above The Line·직접광고)·BTL(Blow The Line·간접광고)를 맡는 곳이다. 이직한 이유는 아프리카에 계속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영업 특성상 직원이 영업할 지역을 스스로 정해 그곳에만 붙박이로 있을 수 없다. 30대 초반, 과장까지 오르고 나니 회사와 부딪히는 게 많았다. 아프리카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해보고 싶다 제안해도 '그게 돈이 얼마 드는 줄 아나', '책임질 수 있나'는 식의 핀잔이 돌아왔다. 나이지리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베이스캠프에서라면 아프리카에서 맘껏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했다."


-아프리카에 완전히 매료된 것 같다. 살기 편한 곳인가.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의 걱정이 컸다. 모범생 코스를 밟아오던 딸이 갑자기 아프리카에 가서 일해보고 싶다고 하니 걱정을 많이 했다. 회사 사람들은 '너는 아프리카의 딸이다'는 말까지 했다. 사실 아프리카의 딸 치고는 고생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에 가려면 적어도 2개국은 경유해야 한다. IT회사에서 아프리카 지역 영업을 맡은 이후 10년째 한두 달에 한번은 갔다.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나이지리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인프라가 약하다. 수도·전기 등을 전부 사기업에서 공급한다. 라고스에 위치한 투룸(two-room)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월세만 2000달러(약 238만원)다. 한달에 한 번 이상 정전이다. 또 샤워하는 도중 물이 뚝 끊기기도 부지기수다. 스트레스가 심해 올해부터는 아예 호텔에서 장기투숙하고 있다."

출처: 류지선 대표 제공
류 대표가 살았던 월세 2000달러(약 238만원) 정도의 집. 천장의 물탱크가 새서 집이 물바다로 변하기 일쑤였다.

-주얼리 사업은 언제 시작했나.


"인테리어 회사에 있으면서 현지 쇼핑몰 업체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기회가 많았다. 쇼핑몰을 자주 가다 보니 나이지리아에는 합리적인 가격대에 퀄리티 좋은 보석 브랜드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나이지리아 여성들은 패션에 관심이 많다. 유행에 민감하고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 한다. 한국의 우수한 품질의 중저가 주얼리를 아프리카에 유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 수공예 제품을 받아서 50달러(약 6만원) 이상 200달러(약 23만원) 내외의 보석을 팔자는 계획을 세웠다. 초기 창업자본금은 5000만원 정도였다."


-왜 패션이 아닌 주얼리였나.


"이미 나이지리아에는 우리나라 섬유 업체들이 많이 진출해있다. 한국은 아프리카에 섬유를 수출하는 TOP 5에 든다. 아프리카 섬유시장을 가장 많이 선점한 나라는 중국이다. 한국의 섬유 수출 업체들이 중국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시장 자체에 관심이 없다. 단지 물건만 떼다 팔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원단부터 디자인 최종 제품, 시장 반응까지 전체를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원단 사업을 하는 이 중 나이지리아 현지에 머물면서 시장 반응을 꼼꼼히 살피고, 더 나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업체는 드물다. 이미 많은 한국의 섬유 업체들이 진출해 있고, 처음부터 제대로 시장을 공략하지 않은 탓에 현지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져 있다. 패션 대신 주얼리로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고 싶었다."


-중국 업체들과 가격 단가 등 경쟁력에서 밀리는 건 주얼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맞다. 중국에서 우리 브랜드를 충분히 카피할 수 있고 비슷한 제품도 바로 출시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퀄리티다. 국산 주얼리 제품만은 중국산 싸구려 주얼리 제품보다 품질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또 아프로마는 소비자와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구입 후 1년간 무상 보증기간을 약속한다. 명품을 제외하고선 나이지리아 주얼리 브랜드 중 보증기간을 약속하는 업체는 우리가 유일하다."

출처: 류지선 대표 제공
류지선 아프로마 대표가 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나이지리아에서 사귄 현지 친구와 함께.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


"매출은 1억원 정도다.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단기간에 많이 벌지 못하면 시장을 비난하고 여긴 안된다고 포기해버린다. 공무원의 부정부패, 유통업자들의 카르텔(담합 등을 통해 거래가격을 협정해 경쟁을 피하고 이윤을 확보하려는 행위) 등에 부딪힌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곳은 단기간 승부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보다 오래 버티면서 기회를 엿봐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주얼리 사업과 아프리카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들의 컨설팅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또 정부가 주관하는 아프리카 관련 사업들에서도 역할을 맡고 있다. 직접 통역도 하고 현지 업체들을 소개해준다. 환경도 좋지 않고 불이익도 감수해오면서 아프리카라는 나라에 오래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한국인이 돼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맡고 있는 일에 최대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아프로마는 한국 화장품 수출 사업으로 확장을 준비 중이다. 아프리카의 가장 큰 온라인 쇼핑몰 주미아(Jumia)에 국내 브랜드 화장품 5가지 정도를 입점해놓았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아프리카에서 기회를 찾길 바란다. 5년 내에 나이지리아·케냐·남아공 등의 국가로 사업 거점을 넓혀나가고 싶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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