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공무원 대신 돈 많이 못 버는 힘든 길을 선택한 이유

조회수 2020. 9. 24. 16: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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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흙으로 36단계 거쳐야.."기와가 아니라 문화재입니다"
기와 장인 김창대 제와장
공무원에서 기와장이로
숭례문 등 문화재 복원에 힘써

가마 앞에서 쇠도 물처럼 녹는 섭씨 1050도의 불을 조절하며 기와를 굽는다. 공장아니다. 전통 방식으로 기와를 만드는 김창대(48) 장인이다. 김창대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91호 제와장(製瓦匠)이다.


김창대 장인은 현재 전남 장흥 제와소에서 수제 전통기와를 직접 만들고 제작법을 제자들에게 전승하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763호 창덕궁 부용정 등 문화재 복원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제와장으로 사명감을 갖고 전통문화 계승에 힘쓰고 있지만 처음부터 제와장을 꿈꿨던 건 아니다. 11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제와장으로 전업한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본인 제공
김창대 장인

◇도자기에서 기와로


-기와가 아니라 도자기를 전공했다고 합니다.


"프라모델처럼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 부산공예고등학교에 입학해 도자기과를 전공했습니다. 그때 기능경기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했죠. 18살에 전국 기능 경기대회에 나가 도자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걸 보시고 학교에서 졸업 후 아이들에게 도자기를 가르쳐달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당시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을 치르고 합격해 부산광역시교육청 산하 모교에서 일을 시작했죠. 말단이었지만 학교 시설 관리 및 실기교육 보조로 일했습니다."


-고 한형준 제와장께 기와를 배우고 싶어 찾아갔다고 합니다.


"1998년 7월 MBC에서 방영한 한형준 선생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재밌을 것 같아 문화재청에 주소와 연락처를 문의했어요. 당시에는 기와와 문화재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워낙 저 같은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주말은 물론 방학마다 찾아가고 휴직까지 하면서 가르쳐달라고 조르니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기와 만드는 일은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이라고 청소 같은 잡무만 시키셨어요. 잡무도 열심히 하니 기와흙 만드는 것부터 알려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고 한형준 선생님과 기와 시범 성형 중(좌), 흙 반죽하는 모습(우)

◇제와장으로서 받은 훈련


-기와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주세요.


"7단계 36공정으로 기와를 만듭니다. 가장 먼저 다섯 가지 흙을 섞어 기와흙을 만듭니다. 유기물이 많이 들어있는 '검은 질', 철분이 들어있는 '붉은 질', 철분과 사토가 섞인 '누런 질', 기물의 피부 역할을 하는 카오린 성분이 많은 '흰 질', '석영질 사토'를 섞어 기와원토를 만들죠. 2주 이상 숙성 후 기와 흙편을 만드는 담무락 과정을 거칩니다. 숙성 한 반죽으로 암키와, 수키와를 성형을 하고 문양이 있는 막새를 제작해서 무늬를 찍습니다. 건조 후 가마에 넣고 익힙니다. 가마에 넣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을 계속 봐줘야 합니다."


-전수받은 기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요.


"흙 반죽입니다. 호되게 배웠습니다. 불 보는 법도 중요하지만 흙이 모든 제작 과정을 견디려면 잘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다섯 가지 흙을 적절하게 배합하는 게 중요하죠. 배합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직사광선에서 기와가 금 가거나 형태가 변합니다. 제가 처음 만든 기와도 한 쪽이 갈라지고 형태도 이상하게 변했어요. 알맞은 배합을 맞추기가 힘들었죠."


-불 보는 법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무슨 과정인가요?


"기와가 자연환경에 노출될 때 동파, 무너짐 등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기와를 구울 때 불이 적정 온도까지 올라가야 이를 견딜 수 있는 견고함이 생깁니다. 섭씨 970도에서 내구성이 형성이 되고 섭씨 1050도에서 완전히 익으면서 자연환경에 노출돼도 끄떡없는 기와가 탄생하죠. 온도가 이보다 더 올라가면 단단하긴 하지만 기와가 휘거나 부풀어 오릅니다. 불 조절하는 것을 불 보는 법이라고 해요.


기와를 굽는 소성(塑性) 과정은 ‘말림불-훈증-피움불-초불-중불-대불-막음불-흙물덮기-요출’ 순입니다. 크게 말림불로 기와 잔여 습기를 제거하고 8~12시간 동안 피움불로 습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초불로 화력을 높입니다. 중불은 가마 내부 기와가 섭씨 800~900도에 이릅니다. 대불로 온도를 섭씨 1000도 이상으로 올리죠. 숯이 가라앉으면 연소실에 나무를 가득 넣어 막음불을 만듭니다. 이후 굴뚝에 좀구멍만 남기고 화구와 창불 창문을 황토로 막습니다. 4일 후 문을 터서 숯을 꺼내고 이튿날 기와를 꺼냅니다. 이렇게 불을 조절할 때 온도계를 보긴 하지만 계속 가마 안을 눈으로 보고 그림자 등으로 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살펴야 합니다.”


-좋은 기와는 어떤 기와인가요.


“좋은 기와는 모든 과정을 거쳤을 때 ‘은은한 은회색’ 빛을 냅니다. 또 일정한 규격을 갖춰야 합니다. 수분 흡수율은 9~12% 정도, 기와가 1800N(뉴튼)이상 견딜 수 있으면 됩니다.”

출처: 본인 제공
대불 작업. 막음불 직전 가마 내부가 아주 밝은 노란색을 띈다. 섭씨 1000도가 넘는다.

◇공무원 그만두고 제와장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제와장으로 전업하셨다고요?


“공무원으로 재직할 때 학교 게시판에 한국 전통문화대학 모집 공고 포스터를 봤습니다. 그걸 보고 전통미술공예과에 지원했습니다. 선생님께는 배우는 단계였지만 기와를 더 깊게 배우고 싶었습니다. 당시 공무원을 그만두고 기와를 흙으로 빚는 물건이 아닌 문화재로서 더 많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2년 동안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서류 심사-심층 면접-실습을 거쳐 2003년 3월 전통미술공예과에 입학했습니다.”


-주변 반대는 없었나요.


“미친놈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것도 보람 찬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또 한국 전통문화대학에 입학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학생 때는 30~40대 사람들과 경쟁해서 우승하고 나니 ‘내가 잘하는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러나 한 선생님을 만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완벽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면서 저의 자만심이 무너졌습니다. 그 만큼의 실력을 쌓고 싶었습니다.”


-숭례문 복원도 하셨습니다.


“2008년 보물 1호 숭례문이 불탔습니다. 그걸 보고 마음이 아팠는데 복원 문의가 들어왔습니다. 기와를 배운 지 13년 차였죠. 한 선생님, 팀원들과 함께 복원 작업에 합류했습니다. 기와 부문 총괄을 맡았지만 실질적인 업무는 한 선생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숭례문 기와를 만들 때 10여명의 작업자가 필요했습니다. 학교 후배는 물론 기와에 능한 사람 9명 정도를 채용해 함께 작업했습니다.


또 숭례문 기와에 맞는 가마 복원작업부터 시작했죠. 숭례문에 쓰인 기와를 만든 등요 기와가마를 복원했습니다. 국내에 있는 여러 가마를 다니고 연구하면서 등요기와가마가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이 나와 이 가마를 복원했습니다. 숭례문 기와는 다른 기와보다 크기가 컸습니다. 이를 고려해 흙 배합부터 다시 해서 기와를 만들었죠. 두 달 정도 걸려 고증에 맞는 흙 배합을 찾았습니다. 가마, 흙 배합부터 시작해 고증을 통해 숭례문 지을 당시와 가장 비슷한 기와를 만들었습니다.”


-힘들었다고 합니다.


“정해진 기한 안에 무조건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또 그동안은 표준 규격에 맞는 KS기와를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규격에 맞게 만들다 보니 강도, 수분 흡수율 등이 뛰어나다는 의견이었죠. 수제 기와는 이에 못 미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숭례문 복원을 완성하고 나서 수제 기와가 잘 버티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이의 제기가 없었습니다. 뿌듯하면서도 수제 기와를 못 믿는 여론에 대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완공 후 좋은 평가가 나왔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당시 숭례문 완공식 이후 바로 한현종 선생님께서 돌아가셔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숭례문 복원시 사용한 등요기와가마(좌), 숭례문 복원 후(우)

◇한 선생님의 가르침 이을 것


-제자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고 계신가요.


“한 선생님께서는 기와장이가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마음 다시 잡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님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가르침을 받들어 다섯 제자에게 전통 기와 제작 방식을 그대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 그 방식 말고도 본인의 감을 기르라고 가르칩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고 가르치죠. 기와를 만들 때 자를 대고 규격을 정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 맞춰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눈 감고도 할 수 있게 훈련을 하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수제 전통기와를 더 정확하게 연구해서 전통방식으로 기와를 만드는 방식이 사라지지 않도록 연구할 것입니다. 저뿐 아니라 후배들이 할 수 있도록 계속 이어 나갈 것입니다. 또 후배들에게 전통을 계승하는 일도 충분히 매력 있고 가능성 있는 일이니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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