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사 수석입학→2학년 중퇴→서울시립대, 그리고 8년 후..

조회수 2020. 9. 24. 17: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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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입학한 해사 1년 만에 중퇴, 이번엔 공인회계사 시험 수석 합격입니다

군인을 꿈꾸는 청년이었다. 2009년 해군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해 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강직성 척추염이 발목을 잡았다. 척추에 염증이 생기고 척추 마디가 점점 굳어지는 척추관절병증이다. 병역 면제까지 받을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다. 청년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다시 수능을 봐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11학번으로 입학했다. 한 번 찾아온 방황은 오래갔다. 수업에 빠지고 학교 바깥을 서성였다. 피시방 아르바이트부터 막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졸업이 다가오면서 공인회계사(CPA·Certified Public Accountant)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4년간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결국 2019년에는 최고 득점자로 시험에 붙었다. 금융감독원 주관 제54회 공인회계사 시험 수석 합격자 남동신(29)씨의 이야기다.

출처: 본인 제공
제54회 공인회계사 시험 수석 합격자 남동신(29)씨.

-수석 합격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정말 기쁘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2019년 시험은 다른 해보다 어려운 편이었다. 나름 잘 봤다고 생각했지만, 발표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해졌다. 시험에 떨어지는 꿈을 열 번 넘게 꿨다. 수석 합격이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느낀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햇수로 6년 동안 시험을 준비했는데.


“1차와 2차 시험이 있다. 1차 시험은 객관식 필기시험이다. 경영학·경제원론·상법·세법개론·회계학을 본다. 영어 과목은 토익·토플·텝스 등 공인영어시험 성적으로 대체한다. 1차 시험 합격자는 같은 해와 다음 해 2차 시험을 볼 수 있다. 2차 시험은 주관식 절대평가 시험이다. 세법·재무관리·회계감사·원가회계·재무회계 과목을 본다. 만일 1차 시험을 붙은 해에 본 2차 시험에서 60점 이상 맞으면 다음 해 2차 시험에서 그 과목을 뺀 나머지만 본다. 쉽게 말해 첫 2차 시험에서 네 과목을 60점 이상 맞으면 다음 해엔 한 과목만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2014년 공부를 시작해 2015년 1차 시험을 봤다. 불합격이었다. 2016년에도 떨어졌다. 2017년 처음 1차 시험에 붙었다. 1차 시험에만 신경 쓰느라 2017년에는 2차 시험에서 5과목 모두 떨어졌다. 이럴 때는 보통 1차 시험을 다시 본다. 그런데 나는 2018년 1차 시험을 안 보고 2차 시험만 준비했다. 불합격하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5과목 중 3과목만 붙었다. 그만두려 했더니 부모님과 친구들이 말렸다. 그래서 눈 딱 감고 1년만 더 해보겠다고 했다. 2019년 1차 시험에 붙고 나서 바로 2차 시험을 봤다. 전 과목 모두 60점을 넘어야 합격이다. 올해 합격자 평균 점수는 60.8점이다. 나는 78.8점을 받았다.”


-어떻게 공부했나.


“1차 시험 문제는 2차 시험보다 상대적으로 쉽다. 빨리 푸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 기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실제 시험 시간의 절반 안에 모든 문제를 풀어서 90점 이상 맞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다. 쉬운 객관식 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이는 수험생이 많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때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한다. 문제를 빨리 풀면서도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


2차 시험을 잘 보는 방법도 비슷하다.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도저히 못 풀 것 같은 문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아는 문제는 다 맞히는 게 목표였다. 강의를 듣는 것보다 혼자 공부하면서 실력을 많이 키웠다. 문제가 안 풀린다고 무조건 인터넷 강의를 찾지 않았다. 어떻게든 혼자서 해법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출처: 본인 제공
남동신씨가 적은 공부 일정표.

-올해 시험은 더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압박감을 느끼면 실제 시험에서 불리하다. 예를 들어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쉽게 당황한다. 또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올해 떨어지면 내년에 붙을 거라고 자기암시를 했다. 최대한 편하게 시험을 보려고 애썼다. 간절히 합격하고 싶은데도 떨어져도 괜찮다고 되뇌었다.”


-합격 비결이나 공부 습관이 있다면.


“하루 9시간 정도 공부했다. 공부 시간을 늘리려 해도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최소 60시간은 공부하는 게 목표였다. 비결은 단순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는 거다. 2018년에는 시험 직전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걸 못 이겨냈다. 지금 돌아보면 아쉽다. 그 시기만 잘 넘겼으면 합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올해엔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1시간 이상 공부했다. 놀고 싶거나 쉬고 싶은 마음은 무시했다. 책상 앞에 앉으면 오직 공부만 생각했다. 그러니 슬럼프도 오지 않았다. 공부하는 기계로 살았다.


시험 전 1주일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이때 수험생이 많이 흐트러진다. 남은 기간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시험 직전 1주일 동안 공부할 부분을 미리 정했다. 아무리 공부해도 틀릴 것 같은 문제는 아예 쳐다도 안 봤다. 대신 1주일만 더 공부하면 확실히 맞힐 수 있는 문제를 따로 골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전략이 통했다.”


-원래 군인이 꿈이었다고 들었다.


“경기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다.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미국에선 군인이 존경받는 직업이더라. 나라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을 대우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래서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특별히 해군을 고른 이유는 없다. 제복이 멋져 보였다.”


-해군사관학교도 수석으로 입학했다.


“2009학년도 수능을 봤다. 1교시 언어영역을 봤는데 100점을 맞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언어·수리·외국어 세 과목 다 만점을 맞아보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수리(나형)에서 세 문제나 틀렸다. 그전까지는 거의 틀려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전체 성적은 생각보다 잘 나왔다. 그해 수능이 어려운 편이었는데 전 과목에서 10문제도 안 틀렸다. 2009년 해군사관학교(67기)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다. 평소엔 괜찮았지만 육체 활동이 늘면 고통이 찾아왔다. 쇄골·어깨·골반·무릎 등 온몸이 아팠다. 바늘 수만개가 동시에 뼈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아파도 참았다. 수석 입학도 했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학교에서도 치료를 받으면서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관학교는 군인을 육성하는 기관 아닌가. 1년 내내 훈련이 이어졌다. 훈련에서 계속 빠지는 걸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다. 꿈을 안고 찾아온 곳이었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런 식으로 학교에 다니느니 그만두는 게 낫겠더라. 2010년 3월 중퇴했다. 일상 생활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아졌다. 그래도 5년 정도 치료를 더 했다. 지금은 다행히 통증이 사라졌다.”

출처: 본인 제공
수험생 시절 남동신씨.

-8개월 만에 다시 수능을 쳤다.


“어쨌든 대학은 가야 했다. 다시 수능 공부를 했다. 하지만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수능 몇 주 전까지 술을 마시고 피시방에 갔다. 당연히 첫 시험보다 성적이 안 좋았다. 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11학번으로 두 번째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일반 대학은 사관학교와 환경이 아주 달랐다. 엄격한 환경에서 공부한 탓에 자유로운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또 목표 의식도 없었다. 수업에 자주 빠졌다. 3년 동안 고깃집·편의점·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냈다. 막일이나 택배 일도 했다. 세상 경험을 하고 싶었다.


방황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어느새 취직해야 할 때가 왔다. 학점이 나쁘고 스펙도 없었다. 또 필기시험이나 면접에 합격할 자신도 없었다. 세무학 전공이지만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과 동기가 많았다. 보통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면 세무 공무원으로 지원한다. 나는 군인을 그만뒀기에 공직에는 미련이 없었다. 일반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면 회계법인에 입사할 수 있지 않나. 가족도 세무사보다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도전을 결심했다.”


-앞으로 계획은.


“한 회계법인에 취직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부터 출근한다. 한 달 정도 교육을 받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 학교에서 세무학을 전공하지 않았나. 세법 관련 지식을 쌓아 조세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다. 나중에는 우리나라 세법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


-수험생에게 남기고 싶은 말.


“공인회계사 시험은 수험생마다 공부 기간이 천차만별이다. 1년 만에 붙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몇 년 동안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수험생 때 종종 예전 수석 합격자들의 합격 수기를 봤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어떻게 하루 14시간씩 공부하나. 과연 사람이 맞나 싶었다. 그런데 나처럼 5년 넘게 공부하고 다섯 과목을 유예한 사람도 수석으로 붙는다. 수험 생활이 힘들겠지만, 희망을 품고 공부해 좋은 결과를 얻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일처럼 기쁠 것 같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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