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컹크 냄새난다' 기피하던 외국인들까지 사로잡고 20억

조회수 2020. 9. 24. 17: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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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컹크 냄새나서 안 쓴다" 미국 미쉐린 스타 셰프 마음 돌린 참기름 회사
쿠엔즈버킷 박정용 대표
연구 끝에 저온 압착 장식 착유 성공
국내산 참기름·들기름으로 해외 진출

'피부관리를 위한 페이스 오일(face oil)과 마스크 팩. 음식에 곁들여 먹는 페스토(pesto).'


각 다른 용도로 쓰이는 제품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참기름이다. 모두 참기름 혹은 참깻묵(참기름을 짜고 남은 부유물)으로 만들었다. 보통 참기름은 고온 압착으로 짜내기 때문에 부유물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쿠엔즈버킷(QUEENS BUCKET)은 참깨를 '저온 압착(낮은 온도에서 기름을 짜내는 공법)'으로 가공해 건강한 참기름을 생산하는 동시에 참깻묵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참기름 스타트업 쿠엔즈버킷은 박정용(51)대표와 16명의 직원이 함께하고 있다. 참기름과 들기름을 만드는 이 회사는 2012년에 시작해 현재 국내뿐 아니라 4개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참기름 하나로 20억원 이상 투자를 유치하고 매출 18억원을 올린 박 대표를 서울 광희동 방앗간에서 만났다.

출처: jobsN
쿠엔즈버킷 박정용 대표

◇방식 바꿔보고자 참기름으로 사업 시작


박정용 대표가 참기름에 관심을 가진 건 약 15년 전이다.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참기름을 생산하는 곳의 착유 방법이 모두 똑같다는 걸 발견했다. 고온 압착 방식이었다. 박대표는 이 방법을 바꾸고 싶었다.


"참기름을 만드는 곳을 다녀봤지만 3대째 기름을 짜는 곳이나 1년도 안 된 곳이나 같은 방법을 쓰고 있었어요. 시대는 변하는데 기름 시장은 멈춰있었습니다. 또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에게 유리한 시장이었죠. 고온 압착방식은 짧은 시간에 많은 기름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고온에서 볶으면 기름이 쉽게 분리되니까요. 그러나 씨앗이 타기 때문에 맛과 향이 강해집니다. 방부 성분도 많아져 오래 보관할 수도 있죠. 단순히 다르게 만들고 싶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에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두려웠지만 작은 부분을 바꿔보자는 결심으로 2012년 회사를 나왔다. 자료를 조사하다가 문득 커피가 떠올랐다. 커피는 '고온 로스팅'과 '저온 로스팅'이 있는데 참깨도 낮은 온도에서 착유하면 다른 맛의 기름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박대표는 참깨를 들고 유럽으로 떠났다. 저온 압착을 하는 올리브유 제조 업체를 찾아가 참깨 압착에 적합해 보이는 기계를 사용해보고 수입했다.

출처: 쿠엔즈버킷 제공
참기름 만드는 과정. 참깨를 볶으면서 적외선 처리하는 기계(맨 왼쪽)를 거쳐 착유기(가운데)에 넣으면 참기름(맨 오른쪽)이 된다. 이때 나오는 참깻묵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연구 끝에 저온 압착으로 착유 성공


수입한 기계로 서울 역삼동 한 아파트 단지 내에 18평 남짓한 방앗간을 차렸다. 그러나 올리브유를 생산하던 기계로 참깨 기름을 뽑기 쉽지 않았다.


"기계가 자주 고장났어요. 깨는 씨앗 속 섬유질이 기름을 머금고 있습니다. 이를 분리하기 위해선 열을 가해야 합니다. 높은 열을 가할수록 섬유질이 쉽게 깨져 기름이 많이 나와요. 낮은 열을 가하면 양은 적지만 섬유질 손상 없이 기름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기계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자꾸 고장이 납니다. 1년 가까이 연구한 끝에 낮은 온도에서 기름을 추출하고 고장도 나지 않게 기계를 보완했습니다."


박 대표는 원적외선으로 섭씨 140~160도에서 깨를 볶아 기름을 짠다. 섭씨 330도에서 볶는 고온 압착 방식보다 섭씨 180도 정도 낮은 셈이다. 겉과 속을 균일하게 볶아 탄화를 방지할 수 있다. 깨 본연의 색과 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깨 상태가 그대로 기름에 나타나기 때문에 원재료도 직접 관리한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추천한 종자로 깨를 재배하는 농가에서 원재료를 공급받고 있다.


이렇게 생산하는 참기름과 들기름은 양이 고온 압착 방식의 70% 수준이다. 가격이 기존 참기름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참기름 200㎖ 3만3000원, 같은 용량 들기름은 2만5000원이다. 판매도 동네에서만 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다 한 입씩 먹어보고 한 두 병 사가는 정도였는데 어느새 입소문이 퍼졌다. 백화점에 입점해보라는 손님의 권유로 입점 요청을 했고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었다. 이후 현대 백화점, 신세계 등에서 판매 중이다.

출처: 쿠엔즈버킷 제공
서울 중구에 위치한 쿠엔즈버킷 도심형 공장이자 방앗간(오른쪽). 글로벌 디자인 웹진 '디자인붐'이 '됫박을 쌓아 놓은 듯한 기름 회사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여행 정보 사이트 '코네스트'에서 주간·월간 인기 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이 하루 20~30명씩 찾는다고 한다. 착유 장비(왼쪽)가 통유리 안에 있어 들여다 볼 수있다.

◇도심형 공장이자 방앗간 마련


수요가 늘자 공장을 증축해야 했다.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벤처창업기업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클러스터 입주 자격을 얻었다. 생산 공장을 익산에 마련했다. 그러나 판매처와 거리가 멀었다. 역삼동처럼 도심형 공장을 다시 마련하고 싶었다.


"역삼동에 사무실을 차렸던 이유는 도심에서 방앗간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나이 드신 분들만 가고 없어져 가는 장소지만 전에는 방앗간이 한 공동체의 사랑방이었습니다. 이 의미가 도시 안에서 다시 살아났으면 했습니다. 또 대부분 식품 제조공장이 도시 밖에 있기 때문에 원거리 유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에 짜낸 신선한 기름을 수도권 전역에 그날 받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2019년 4월 서울 중구 광희동에 총 5층짜리 도심형 공장이자 방앗간을 열었다. 1층은 카페 겸 매장, 2~3층에는 기름을 내는 기계가 들어서 있다. 통유리로 돼 있어 참기름 제조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다. 4층에는 쿠키와 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지하 1층은 카페 겸 동네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반상회를 열기도 한다.

출처: 쿠엔즈버킷 제공
쿠엔즈버킷에서 생산하는 제품.

◇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먼저 찾는 참기름


박정용 대표가 만든 참기름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쓰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이 직접 박대표를 찾아와 시음 및 테스트를 하고 계약을 맺었다. 홍콩 프리미엄 마켓부터 미국, 싱가포르 등 미쉐린 레스토랑과 식재료 매장에 수출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참기름 효능을 잘 알고 있지만 향이 강해 잘 쓰지 않습니다. 스컹크 냄새와 비슷하다고도 해요. 대신 은은한 향과 맛이 나는 올리브유를 선호합니다. 우리 기름은 저온 압착식으로 추출해 올리브유처럼 은은하게 재료 본연의 맛이 나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거부감없이 쓸 수 있는 것이죠.”


저온 압착식이기 때문에 참깻묵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고온에서 추출한 참기름 부유물은 타기 때문에 걸러야 하지만 낮은 온도에서 나온 참깻묵은 깨끗하다. 피부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영양소도 들어있어 박 대표는 이를 팩으로 만들었다. 또 땅콩버터 맛이 나 식재료로도 연구 중이다. 실제 영양분도 높아 가축 사료로도 사용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먼저 찾는 기름이지만 힘들 때도 있었다. 투자받기 전에는 자금 마련을 위해 전세금을 빼기도 했고, 참기름은 다 똑같다는 인식 때문에 투자자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외면을 당했다. 박대표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고객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회사가 없어질까 봐 일주일에 한 번씩 방앗간에 들려 참기름을 사준 고객, 믿고 투자해준 직원, 항상 응원해준 가족에게 감사하죠.”


이런 박정용 대표의 목표는 기름 전문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좋은 기름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신선한 상태로 전달하는 기업으로 계속 크고 싶습니다. 쿠엔즈버킷의 쿠엔즈(QUEENS)는 ‘Qualified Unaltered food Enables Eco Nutrition Saver’의 약자입니다. 질좋으면서은 식품으로 영양을 지킨다는 의미죠.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퀸즈가 아닌 쿠엔즈로 읽는데 이 의미를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또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를 똑같이 실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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