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디워' 만든 헝그리 정신 한국인은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4. 17: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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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스승은 '영구 없다' 외친 심형래 감독, 10년 후 할리우드 최정상에 올랐습니다"
김기범 웨타 디지털 스튜디오 CG 총괄감독
심형래 ‘디워’로 VFX 입문
30살에 유학길 떠나 맨땅에 헤딩해
헝그리 정신으로 할리우드 제작사 리더까지 올라

“반지의 제왕·트랜스포머를 보는데 제가 한국에서 뭘 하고 있지 싶었어요.”


김기범(41) 웨타스튜디오 CG 총괄 감독은 할리우드 최고의 아티스트와 일한다. 그는 ‘반지의 제왕’ 감독 피터 잭슨, ‘아바타’를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같이 일한다. 가장 최근에 함께 작업한 배우는 윌 스미스다. 10월에 개봉하는 영화 ‘제미니 맨(Gemini Man)’의 시각효과(VFX·Visual Effects)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시각효과란 영화에 쓰이는 CG(Computer Graphics) 등 관객에게 시각적인 효과를 줄 수 있는 모든 기법의 총칭이다.

출처: jobsN
김기범 웨타디지털스튜디오 CG 감독.

김 감독은 10대 때 게임 제작자를 꿈꿨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할 때마다 게임 도입부와 세 종족 간 분쟁을 다룬 스토리에 매료당했다. 그러나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다. 실천에 옮기지도 못했다. 수능 성적에 맞춰 홍익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전공 공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미대 수업을 듣고 컴퓨터 그래픽 학원을 다녔다. 대학 4학년 때, 컴퓨터 그래픽 관련 회사에 지원했다. 수십 통의 이력서를 뿌렸지만 면접을 보겠다는 회사는 단 한 곳뿐이었다.


“첫 직장이요? 지금은 없어진 디지스케이프라는 애니메이션 회사입니다. 대학 4학년 때 제 이력서를 받아준 유일한 곳이었죠. 1년 반 정도 일하다 2001년 심형래 감독의 영구아트무비로 들어갔어요. 당시 규모가 큰 CG 제작사는 영구아트무비뿐이었어요. CG 제작 인력으로 40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사무실은 김포공항 옆 오곡초등학교라는 폐교에 있었어요. 입사하자마자 ‘디워’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예측 못할 상황이 많았죠. 한참 강원도·전남·제주도 등 전국을 쏘다니며 촬영을 하고 있다가 자금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대로 작업을 중단해야 했어요. 전 직원이 ‘자금 부족’이라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벌벌 떨었죠. 여태 해온 일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심 감독님께선 말단 직원인 저에게도 최대한 의견을 묻고 반영해주려고 하셨어요. 전 스텝들에게 한국에 없던 장르, 없던 형태의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자긍심을 갖도록 노력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대중들에겐 ‘영구 없다’를 외친 바보 캐릭터였지만 영구아트무비 직원들한텐 거친 파고를 헤쳐나가는 선장과 같은 이미지였죠.”

출처: 영화 디워 캡처
영화 '디워'의 한 장면.

디워는 2007년에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판타지 액션 영화다.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한다는 한국의 전설을 다뤘다. 영화를 본 이는 840만명. 심형래 감독은 ‘한국의 토종 판타지 영화를 전 세계에 개봉하겠다’는 일념으로 영화를 기획·제작했다. 영화 엔딩 장면에는 민요 아리랑과 함께 ‘<디워>와 저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겁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2007년 9월 미국의 2275개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디워 제작진이 들인 노력은 눈물겹죠. LA 촬영은 저와 매트 페인팅(Matte Painting·실제 사진이나 영상에 그림을 합성하는 작업) 담당 촬영감독만 갔어요. 촬영 허가도 받지 못하고 관광객인 척하면서 횡단보도 중간에 서서 건물을 찍었습니다. 예산을 아끼기 위해 포졸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스텝들의 고생과 영화의 완성도는 별개입니다. 작품 평가는 객관적으로 받아야 한다 생각해요. 처음 디워 완성작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끝냈다’였습니다. 그다음엔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스토리나 개연성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관객 사이에선 디워를 ‘봐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결국 관객을 많이 모을 수 있었죠. 하지만 객관적 성찰 없이 ‘결과가 좋았으니 괜찮다’는 생각은 경계해야 합니다. 디워가 어떤 장단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래야 한국 영화 산업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김기범 감독이 영구아트무비에서 받았던 월급은 120만~140만원. 주 6일 상시체제로 근무했다. 2007년, 결혼을 하면서 유학을 준비했다. 신혼여행비 50만원으로 필리핀 단기 어학연수를 떠났다. 나이는 서른이었다. 어학연수 과정 중에 미국 예술 대학 AAU(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지원서를 냈다. AAU에 첫 학기를 다니면서 해외 VFX 제작사에 지원했다. 공부를 하려고 유학까지 갔지만 학력을 쌓는 일보다 돈을 버는 게 우선이었다. 수십여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 오는 곳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장 값싼 월세를 얻었지만 생활비와 학비가 부담스러웠다. 일하면서 모은 돈은 점점 떨어져갔다. 다급한 마음에 떨어진 제작사에도 다시 지원 메일을 수차례 보냈다. 마침내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 싱가포르 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등을 제작한 명감독이다.

출처: ILM 홈페이지 캡처
세계적인 VFX 스튜디오 ILM에서 시각효과 작업을 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과 어벤져스.

“ILM에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 아내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요. ‘우리 이제 외식할 수 있어’ 였어요. 궁핍한 유학 생활이었거든요. ILM에 입사한 후 미친 듯 일했던 기억밖에 안 나요. 남들의 4~5배에 달하는 업무량을 소화해냈습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 모두가 퇴근할 때까지 작업실을 지켰죠. 점심은 5~10분 안에 해결했어요. 회사에서 가장 빠르게 걷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어요. 절박했던 만큼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했죠. 일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하지만 의사소통하는 게 힘들었어요. 영어를 못하면 바디랭귀지라도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VFX 엔지니어들은 보통 깜깜한 실내에서 영상을 틀어놓고 작업해요. 서로의 몸짓이나 표정은 모른 채 청각으로만 지시를 알아듣고 협업해야 하죠. 말문이 막힐 때가 많았어요. 종이에 상황별로 대답할 문장을 미리 써갔어요. 휴대폰 불빛으로 비춰가면서 총괄 감독님과 소통했습니다. 2년 정도 지나니 주변 동료들에게 성실히 일한다는 평가를 받았죠. 선배들에겐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자는 제의를 많이 받았습니다.”


김 감독은 입사 후 10년간 일에만 몰두했다. VFX 제작사는 프로젝트별로 팀장이 인원을 꾸려 작업을 하는 시스템이다. 팀장이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많이 한 스텝일수록 프로젝트를 여러 개 맡는다. 김기범 감독이 2009년에만 작업한 영화는 스타트랙·터미네이터·트랜스포머·해리포터와 혼혈왕자 등이다. 전 세계 영화관에 걸리는 작품들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일하는 의미가 충분했다.

출처: ILM 인스타그램 캡처
VFX 작업에 몰두 중인 ILM 스탭들.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은 시간 내에 주어진 예산 안에서 작업을 완수하는 것. 한국인 특유의 ‘헝그리 정신’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영구아트무비에서 예산이 끊기면 하염없이 일에서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그때의 절실함이 그를 밤낮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은 다 저렇게 일하냐’면서 혀를 내둘렀다. 업계에서 성실함과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2016년 웨타디지털스튜디오로 이직했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설립한 세계 최대 VFX 스튜디오다. 스튜디오 직원들은 시급으로 보수를 받는다. 김 감독의 커리어를 고려했을 때, 평균적으로 시간당 8만~9만원을 받는다. 연봉으로 치면 2억원 정도다.


“웨타디지털에서 만든 작품은 뭔가 달랐어요. ILM은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곳이라면 웨타디지털은 도전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었죠. 분명 주어진 예산과 시간은 똑같을 텐데 어떻게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걸까 하는 호기심 컸어요. 구성원들이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가치관에서 오는 차이였습니다. ILM이 체계적인 엘리트 집단이라면 웨타디지털은 예술가들로 이뤄져 있어요. 예를 들어 ILM에서 완성본을 총괄 감독에게 보여주면 ‘자동차가 너무 빨리 움직여’, ‘빛이 너무 밝아’ 등의 구체적인 피드백이 오죠. 하지만 웨타에서는 ‘이건 알리타(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알리타’의 주인공)가 아니야’라는 답변만 돌아와요. 그러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수정합니다. 시간제한도 없어요. 최고의 결과를 만드는 것만이 가장 큰 목표인 곳입니다.”

출처: 웨타디지털 홈페이지 캡처
웨타디지털에서 제작에 참여한 영화 아바타(왼)와 제미니맨.

김 감독이 가장 최근 작업한 작품은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가 출연한 제미니 맨(Gemini Man). 젊은 시절의 윌 스미스와 나이 든 윌 스미스가 동시에 연기한다. 액션씬보다 감정씬이 많다.


“화면이 빠르게 움직이는 액션신에 CG기법을 넣는 건 훨씬 쉬워요. 하지만 정적인 장면에선 CG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눈에 고이는 눈물, 피부 속 혈관과 미세한 근육의 떨림 등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기범 총괄 감독은 CG라는 고강도의 노동을 즐길 수 있었던 비결로 ‘동료와의 협업’을 꼽았다. 그는 VFX엔지니어들을 ‘마법사’로 표현한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가장 창의적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동양인인데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세계적인 시각효과 제작사에서 CG 총괄 감독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하지만 전 이 단점이 저를 성장하게 만든 요소라 생각해요. 언어를 쉽게 알아듣지 못하니 상대가 말하려는 핵심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술이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질문하고 배워나가는데 주저하지 않았어요. 이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났죠. 심형래 감독님의 디워를 촬영하면서 경험했던 극도의 불안감은 저를 평생 채찍질하는 원동력이었어요.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끝까지 목표한 바를 이뤄내는 것. 그게 바로 CG의 정신입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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