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었어? '기생충' 다송이 그림 주인공, 알고보니..

조회수 2020. 9. 25. 1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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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속 그림 그린 사람이 '북치기 박치기' 외치던 청년이라고요?
후니훈·지비지로 활동하는 정재훈 씨
영화 기생충 다송이 그림 원작자
"할아버지까지 그림 그리고 음악할 것"

"침팬지를 그린 거죠?" 

"아뇨, 자화상이에요."


영화 '기생충'에서 최우식(기우 역)과 조여정(연교 역)이 극 중 조여정 아들 다송이의 자화상을 보고 나눈 대화다. 큰 눈에 갈색 빛 얼굴을 한 자화상은 침팬지를 닮았다.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이 그림은 사실 원작자가 따로 있다. 작가 정재훈(39) 씨다. 그림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영화를 통해 그의 작품이 세상의 빛을 봤다.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그의 예명을 들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는 바로 데뷔 20년 차 래퍼 겸 비트박서 후니훈이다. 2000년대 중반 국내에 비트박스 열풍을 일으킨 실력자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펜을 든 사연은 무엇일까.

출처: jobsN
래퍼 겸 작가 정재훈씨. 작업실은 작품과 미술도구들로 가득했다.

◇1998년 유니티로 데뷔


정재훈 씨는 어렸을 때부터 뉴키즈온더블럭, 바닐라 아이스 등 다양한 장르의 팝을 듣고 자랐다. 그중에서도 랩을 좋아해 래퍼의 꿈을 키웠다.


-1998년 댄스 그룹 유니티로 데뷔했다.


"래퍼 데뷔를 꿈꾸며 소속사에 들어갔다. 랩 담당 멤버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데뷔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때문에 소속사가 1년 만에 팀을 해체했다. 마지막 날 사장님이 2만원씩 나눠줬다. 그게 끝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음악을 했다. 뮤지션들이 모여 발표하는 앨범에 참여하고 김조한 형을 만나 함께 작업도 했다. 2004년에는 그룹 투데이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투데이로 활동을 시작한 그때 광고도 찍어 이름을 알렸다."


-그 광고가 '북치기 박치기' 별명을 만들어 준 그것인가.


"그렇다. 통신사 광고였다. 카피라이터가 대사에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를 넣고 나머지는 나한테 맡겼다. 처음엔 '비트박스를 잘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북 치고 장구 치고'였다. 그러나 너무 길고 입에 안 붙었다. 고민 중에 광고에 같이 출연한 형이 '짧게 박치기로 해라'는 말을 듣고 '북치기 박치기'가 탄생했다."


-투데이로도 길게 활동을 못 했는데….


"인연이 아니었다. 1집을 내고 방송 활동도 조금 하다가 각자의 길을 갔다. 그때부터 혼자 활동했다. 솔로 앨범도 준비했는데 발매를 앞두고 엎어졌다. 4년 반이라는 시간이 날아갔다. 절망에 빠져있다가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소집 해제 후 싱글 앨범도 내고 쇼미더머니에도 출연했다. 홀로 활동하다 보니 돈이 부족했다. 랩 레슨을 시작했다. JYP, SM,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에서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2PM 등 연습생과 신인 가수에게 랩을 가르쳤다. 그렇게 2015년까지 레슨을 했다."

출처: 오서환 유튜브, MBCkpop 유튜브 캡처
한 통신사 광고에 출연한 후니훈(좌), 투데이로 활동하던 시절(우).

◇음악 내려놓고 펜을 들다


-그즈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음악에 대한 갈증은 있었지만 스트레스가 컸다. 잠시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그때 '그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랩과 함께 좋아한 것이 그림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래피티(grafiti·벽 같은 곳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를 좋아했다. 내가 그린 디자인으로 스티커도 제작했었다. 그때 경험을 살려 펜이랑 종이를 들고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장르의 그림을 그린 건가.


“처음엔 그냥 그렸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조카와 안토니오 가우디 전을 다녀온 후였다. 흥미가 없이 보다가 마지막에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는 가우디의 말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이 세상 모든 게 직선과 곡선으로 이뤄져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이후로 크레파스, 마커, 파스텔 등을 이용해 직선과 곡선으로 이뤄진 나만의 패턴을 만들기 시작했다.” 


-계속 그림 활동만 했나. 


“집에서 그림만 그렸다. 작가로서의 예명은 ZIBEZI(지비지)다. 친구들이 어디냐고 물을 때마다 ‘집이지’ 하고 대답했던 것에서 따왔다. 작품이 쌓이고 SNS에도 올리자 지인들이 전시도 해보라고 했다. 댄서 지인 연습실 바닥에 작품을 세워놓은 게 첫 개인전이었다. 이후 종종 작품을 공개했고 독일에서도 한 번 했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본인 제공
영화에 나오는 다송이의 자화상(좌), 왼쪽 하단에 있는 작품이 봉준호 감독이 '이 그림 참 좋네요'라고 말한 그림이다(우)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


-기생충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지인이 봉준호 감독님팀에 있었다. 봉 감독님, 미술 감독님, 연출팀 등이 영화에 필요한 작품을 찾고 있어 지인이 내 그림을 보여줬고 그 중 크레파스, 파스텔 등으로 그린 그림이 봉 감독님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2018년 5월 태국 여행 중에 연락을 받고 한국에 들어와 그림들을 들고 영화사로 찾아갔다. 작품을 쭉 보던 감독님께서 하나를 가리키더니 ‘이 그림 참 좋네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영화를 위한 그림을 그리게 됐다.”


-어떤 그림을 그렸나.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나니 봉준호 감독님께서 ‘침팬지 모습을 한 인간을 그리고 스키조프레니아존(schizophrenia zone·조현병 구역)을 신경 써달라. 그 외엔 작가님께 다 맡기겠다’고 하셨다. 3개월 동안 열일곱 작품을 그려 보여드렸지만 한두 군데씩 부족했다. 결국 서른 개쯤 그렸을 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다송이의 자화상이다. 오른쪽 하단 스키조프레니아존은 검은색으로 칠했다. 이 외에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그림을 그렸다. 메인 그림을 완성한 후여서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고 모든 작업이 즐거웠다.”


-개봉하기 전까지는 아내도 몰랐다고 하는데….


“영화 작업을 한다는 것만 알았다. 작업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림 그릴 땐 철저히 혼자였다. 나 역시 그림은 그렸지만 작품이 영화에 어떻게 쓰이는지 시사회 전까지는 몰랐다. 스태프만 모여서 하는 기술 시사회도 혼자 보고 왔다. 영화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영역이 생각보다 커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뿌듯했고 감사했다. 정식 개봉 후에는 아내와 극장에서 11번을 봤다.”


-개봉 후 알아본 사람들도 있나.


“알아보고 연락한 사람이 있어 신기했다. 음악에서도 연습하고 녹음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그림을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어 했던 노력이 통한 것 같아 기분 좋았다.”

출처: 정재훈 인스타그램 캡처
한편 정재훈 씨는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다송이 생일파티에서 음대 선배로 출연했다.

◇"할아버지 돼서도 그림 그리고 음악 할 것"


-미국에서 전시도 할 예정이라고.


“기생충 미국 개봉에 맞춰 한 달간 전시를 연다. 한국에서는 7월31일부터 8월11일까지 영화에 나온 작품만 모아서 ‘스키조프레니아 전’을 열었다. 900만 관객 돌파 축하 자리에서 감독님이 먼저 전시회 안 하냐고 물으셔서 열었다.”


-작품을 팔기도 하나.


“팔기도 하고 선물로 주기도 한다. 보통 30만원부터 팔고 있다. 가장 비싸게 팔린 건 1000만원 정도다.”


-음악 활동도 계속할 예정인가.


“계속 준비하고 있다. 내 그림으로 개인전도 열고 좋은 기회로 영화에도 나왔다. 이제는 음악을 펼쳐 보이고 싶다. 2020년을 목표로 3곡에서 5곡 정도 준비 중이다. ‘음악으로 성공해야지’라는 생각보다 앨범을 낸 후 꾸준히 음원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지만 지금과 같은 생각으로 살고 싶다. 또 지금처럼 음악이랑 그림을 하면서 살고 싶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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