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다, 대본을 쓴다, 녹음을 한다..이 남자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5. 10:2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디지털 시대의 작가'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 '라이너'를 만나다

10여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잡지나 신문에 실린 영화 평론·리뷰 기사였다. 지하철 역 가판대에 놓인 1000~2000원짜리 영화 잡지는 직장인이나 대학생을 중심으로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영화 평론가들이 부여하는 별 평점과 한줄 평에 영화 산업 전체가 큰 영향을 받던 시기다. 2010년대 들어서는 스마트폰 확산으로 모바일 인터넷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영화 블로그나 커뮤니티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기존 영화 평론가들이 쓰는 글보다는 소위 ‘입소문’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최근에는 유튜브 이용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영화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영화 유튜버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각자 고유한 콘셉트와 개성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유명 영화 유튜버의 경우 각종 영화 관련 행사에 주요 인사로 초대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강연자로 나서기도 한다. 영화 흥행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영화 제작사나 배급사들은 이들이 올리는 리뷰 영상을 꼼꼼히 모니터링한다. 영화 홍보를 위한 협업을 제의하기도 한다. 

출처: 라이너 제공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 '라이너'

영화 유튜버들이 인기를 끌자 우후죽순 많은 사람들이 영화 유튜버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성공할 확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영화에 관한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고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재주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 ‘라이너의 컬처쇼크’는 주목할 만하다. 본격적으로 영화 리뷰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한 2017년 5월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구독자수 2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라이너’는 깔끔한 분석과 명확한 전달력, 신뢰가는 음색으로 호평받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라는 리뷰 콘셉트로 다른 영화 유튜버들과 차별화 된 컨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라이너는 오프라인으로도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서울 신도림에 있는 영화관 씨네큐와 협업해 한 달에 한 번씩 영화 GV상영회를 연다. 라이너 본인이 선정한 좋은 영화를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서 보고, 영화가 끝난 후 한두 시간 가량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다. 영화 관련 팟캐스트 방송에도 출연 중이며, 9월부터는 MBC ‘섹션TV 연예통신’ 영화 코너에 패널로 얼굴을 비출 예정이다. 8월20일 서울 광화문에서 라이너를 만났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영화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 라이너입니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것은 ‘라이너 TV’라는 게임 관련 채널이었지만, 지금은 ‘라이너의 컬처쇼크’ 채널을 운영하는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로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 라이너 제공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 '라이너'

-라이너란 이름은 어떻게 지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영화 유튜버를 하고 있지만 저는 원래 소설가를 꿈꿨고, 제 이름으로 소설도 4권 출간한 경험이 있어요.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시인이셨고, 아버지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시와 소설을 좋아했어요. 라이너라는 이름은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어렸을 때 릴케의 시집 전집을 사서 읽을 정도로 정말 좋아했던 시인이죠. 릴케의 원래 이름은 ‘르네’ 마리아 릴케였어요. 하지만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가 ‘좀더 남자다운 이름으로 바꾸라’고 요구했고, 릴케는 라이너로 이름을 바꿨어요. 저도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라이너’란 이름으로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매 영상에서 ‘제 리뷰는 영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는데, 이러한 콘셉트를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영화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가 된 이상 제가 좋아하는 영화만 골라 리뷰를 할 순 없어요. 우리나라에 개봉하는 거의 모든 영화를 리뷰해야 하기 때문에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상업성만 추구하는 영화도 직접 보고 리뷰를 해야합니다. 좋은 영화만 리뷰한다면 저도 늘 즐겁고 할 이야기가 너무 많겠지요. 하지만 좋은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영화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렇다면 모든 영화를 가리지 않고 리뷰해야하는 입장에서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하나의 잣대, 공통된 잣대로 리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선택한 기준이 바로 ‘비판’입니다. 비판이라는 명확한 방향을 세우면 좋은 영화든 나쁜 영화든 확실하게 리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유튜버들이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유튜버의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전달 매체의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는 것보다는 영상을 통해 편하게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매체의 힘과 영향력, 전달력이 글보다 영상이 훨씬 더 센 거예요. 예전에는 TV나 신문, 잡지 기사를 통해 영화에 관련된 정보를 얻었지만 지금은 생각날 때 즉각 유튜브를 열어 관련 영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유튜브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리뷰 글을 썼다면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저를 아시진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글 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영상이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라고 생각해요. 단지 제 생각을 전하는 방법이 문자에서 영상으로 바뀐 거예요. 제가 만드는 리뷰 영상도 결국 글로 된 대본이 있어야합니다. 저는 스스로 디지털 시대의 글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출처: 라이너 제공
팬 싸인회 현장에서

-리뷰 영상 제작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요.
“우선 영화를 보는 게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죠. 그리고 집에 와서 대본을 씁니다. 아무리 빨리 써도 4시간 이상은 걸려요. 그리고 준비한 대본을 녹음해요. 이후 녹음된 대본과 합이 맞게끔 영상을 편집합니다. 저는 영상 편집을 전문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이 있어서 편집은 다른 분보다는 수월하게 하는 편입니다. 편집에는 보통 12시간 이상 시간이 걸려요. 이후 썸네일을 제작하고 영상 인코딩을 거쳐 최종적으로 업로드 합니다. 20분짜리 영상 만드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는 게 보통입니다.”


-일부 영화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말이나 욕설, 낚시성 제목을 써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선정적인 제목이나 썸네일을 이용해 조회수를 올리는 게 물론 잘못된 일이지만, 유튜버의 수익 창출은 조회수가 기본이기 때문에 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어그로를 끌어볼까’ 하고 유혹에 빠지기도 해요. 하지만 제목을 정할 때는 제가 말하려고 하는 주제가 함축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개봉 영화를 주로 리뷰하기 때문에 썸네일은 영화 스틸컷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독자가 늘고 영향력이 커진 만큼 영상을 제작할 때 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1년 반 전에 제가 올린 리뷰 영상을 보시면 지금 올라오는 영상보다 완성도가 떨어져요. 지금은 구독자가 늘면서 영상 하나 하나마다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고 있습니다. 논리 전개도 조심스러워졌고, 제가 리뷰하는 기준이 한 쪽으로 치우친 게 아닌가 늘 고민하죠. 철저한 비판을 하되 더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리뷰가 분명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정보 오류는 없는지, 논리가 빈약하진 않은지 점검하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출처: 라이너 제공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 '라이너'

-라이너 컬쳐쇼크 영상은 대부분 15~25분 분량인데요. 평균적인 대본의 분량은 어떻게 되는지, 장문의 대본을 늘어지지 않게 잘 쓰는 비법은 무엇인가요.
“보통 영상마다 A4용지 4~5장 정도의 대본을 준비합니다.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는 40장에서 50장 정도예요. 대학 시절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소설가가 되기 위해 매일 글쓰는 연습을 했어요. 평균 2만자, A4용지 10장 정도 분량의 글을 매일 쓰는 훈련을 했는데, 그게 지금 대본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지금도 제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안에 영화 비평 관련 책을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본격적으로 영화 유튜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소설가가 원래 꿈이었고 소설도 출간했지만 글쓰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아버지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입시학원에서 언어 영역 강사를 하며 돈을 벌었어요. 학원 강사로 일한 시간이 7년입니다. 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던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너무 우울해서 강의가 끝나면 술도 많이 마셨어요. 그랬더니 2012년 말 건강이 악화돼 강사 일을 쉬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유튜브는 그 직후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게임 관련 영상을 올렸는데, 게임은 제가 좋아할뿐더러 제가 잘 이야기 할 수 있는 분야였어요. 유튜브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만약 돈을 못 벌더라도 다시 강사를 하면 된다는 생각에 ‘일단 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았고, 전업 유튜버가 됐습니다. 2017년에 제가 게임보다 더 좋아하는 영화를 소재로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격적으로 영화 리뷰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이 유튜버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같지 않은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저는 운 좋게도 잘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같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의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제대로 찾은 것 같아요. 제가 만약 먹방 유튜버나, 뷰티 유튜버가 됐으면 절대 잘하지 못했을 거예요. 원하는 일이 아니니까 괴로웠겠죠. 저는 영화보는 게 다른 무엇보다도 행복하고, 영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고, 말하는 것을 좋아해요. 제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출처: 라이너 제공
GV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라이너

-유튜버가 된 이후 생긴 생활 습관이 있는지.
“예전보다 좀더 목적 지향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았는데, 지금은 뭐든 계획을 세우려고 하는 편이에요. 다이어리나 달력에 계획을 꼼꼼히 적고 시간 관리를 잘 하려고 노력하죠. 담배나 술도 끊고 건강해지려고 노력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잘 쉬려고 노력해요. 저는 사람의 에너지뿐 아니라, 사람의 의지도 한정적인 자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쉬지 못하면 의지가 안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하루 3~4시간씩 자며 영상을 만들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니 얼마 못 가 퍼지게 되더라고요. 지금 나의 체력이 고갈됐고, 의지가 악해졌다면 과감하게 내려놓고 잘 쉬는 게 좋습니다. 지금 일을 하는 것보다 푹 쉬고 내일 일하는 게 훨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라이너의 ‘인생 영화’ 세 작품만 꼽는다면.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요. 너무 좋은 영화가 많거든요. 하지만 세 작품만 고른다면 ‘그래비티’, ‘록키’, ‘화양연화’를 꼽겠습니다. 그래비티는 우주에서 불의의 사고로 조난당한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딛고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예요. 볼 때마다 힘을 내게 하는 영화입니다. 록키는 건강이 악화돼 학원 강사일을 관뒀을 때 많이 봤던 영화예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던 때 의지가 됐던 영화입니다. 젊지만 가난한 길거리 복서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는 스토리가 정말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양조위, 장만옥이 나온 화양연화는 ‘내 인생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찾아올까’ 생각하게 만든 영화에요. 화양연화보다 앞서 나왔던 ‘첨밀밀’을 정말 좋아했는데 화양연화를 보고 첨밀밀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유튜버로서 영화 리뷰뿐 아니라 좀더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어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구상 중인 프로젝트로는 유튜브 드라마나 유튜브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현재 호러 장르의 미스터리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어요. 웹드라마는 단순히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을 유지한 채 분량만 짧게 짧게 줄인 형식이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는 유튜브 드라마는 시청자들과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방식으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영상 매체를 통해 일하고 있지만 저는 결국 디지털 시대의 작가고,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많은 분들에게 양질의 컨텐츠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글 jobsN 이준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