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널 사랑해' 부르던 혼성그룹 멤버의 놀라운 새 직업

조회수 2020. 9. 25. 11: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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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널 사랑해' 부른 '비쥬' 여성 멤버 최다비는 지금?

8월 3일 tvN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이 방송된 직후 인터넷 포털에는 ‘비쥬’, ‘누구보다 널 사랑해’가 검색어 순위 맨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 1990년대말 활동했던 인기 그룹 ‘비쥬(bijou)’의 히트곡 ‘누구보다 널 사랑해’가 퀴즈 문제로 출제됐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비쥬를 다시 무대에서 보고 싶다’, ‘비쥬의 여성 멤버인 최다비의 근황이 궁금하다’는 내용의 글이 수 없이 올라왔다.


프랑스어로 ‘보석’을 의미하는 비쥬는 1998년 데뷔한 혼성 그룹으로, 최다비(최희진)와 주민(박준규)으로 구성됐다. 비쥬는 거의 모든 곡을 멤버들이 직접 작사·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했다. 비쥬의 1집 타이틀 곡인 ‘Love Love’는 미디엄 템포 풍의 곡으로 상큼한 멜로디와 노랫말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댄스 음악이 주를 이루던 당시 가요계에서 비쥬의 노래는 ‘신선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노래 중간에는 프랑스어로 된 나레이션이 들어갔는데, 이는 홍익대 불문과 출신인 최다비가 노랫말을 쓴 것이다. 비쥬는 ‘Love Love’로 MBC 음악캠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최다비가 작곡한 2집 타이틀 ‘누구보다 널 사랑해’(1999년)도 큰 인기를 끌었다. 

출처: 나무위키
'Love Love' '누구보다 널 사랑해' 등으로 사랑을 받았던 그룹 '비쥬'

당시 여성 멤버 최다비는 청순한 이미지와 맑고 깨끗한 음색으로 남성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 3집을 끝으로 비쥬에서 탈퇴한 그는 솔로 가수의 길을 걸었다. 2003년 발표한 솔로 1집 타이틀 곡인 ‘Never say never’는 재즈 풍이 가미된 리듬과 멜로디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무대에서는 프랑스인이 직접 무대에 나와 프랑스어로 된 랩을 불렀는데, 당시로서는 상당한 파격이었다. 최다비는 2006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2집 앨범 ‘Neofeeling’을 발표했다. ‘홈 레코딩’ 기법으로 모든 곡의 작사·작곡·편곡·연주·믹싱을 홀로 해낸 앨범이었다. 하지만 TV출연을 하지 않아 예전 앨범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집 발표 이후 지금까지 10년이 훌쩍 넘도록 최다비는 대중의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TV출연은 솔로 1집 활동 당시인 2003년 12월이 마지막이었다. 몇 해 전 추억의 가수를 다시 무대에 세우는 jtbc프로그램 ‘슈가맨’이 인기를 끌면서 ‘비쥬를 보고싶다’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았지만, 끝내 출연이 성사되지 않아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러던 중 올해 3월부터 최다비가 숭실대 불문과에서 초빙 교수로 강의를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인기 가수였던 사람이 실용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해 교수가 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8월 13일 광화문에서 최다비를 직접 만나 그간의 근황과 그의 새로운 직업,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출처: 최다비씨 제공
현재 숭실대에서 초빙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는 최다비씨

-근황을 궁금해 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2006년에 솔로 2집을 냈고, 2007년에는 경인방송에서 라디오 DJ를 했었어요. 하지만 이후 가수로서 음악 활동을 계속하지는 않았어요. 가수 활동은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의 일을 찾아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간 프랑스 철학이나 사회학에 관련된 책들을 많이 보면서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 고민했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2010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했고, 2013년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어요. 연구분야는 ‘음악 사회학’이었어요. 음악 산업과 사회 변화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예요. 음악이 이제는 연구 대상이 된 셈이죠. 파리 8대학에서 최종적으로 논문을 완성해 작년 12월 박사 학위 논문 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박사 학위를 딴 뒤 ‘숭실대 불어불문과에서 초빙 교수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지인이 알려줘 지원했고, 운 좋게 선임이 되면서 올해 3월부터 강단에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결혼은 2011년에 했습니다.”


-가수 활동을 중단한 이유와 이후 진로로 학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한때 가요계에 있으면서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한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내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 안에 있는 것을 자꾸 꺼내 보여주기만 하고, 채워지는 게 없었죠. 어느 정도 선을 넘으니까 피로해지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내실을 다지고 싶었고, 자연스레 학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배운다는 것,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채우는 행동이잖아요. 처음부터 강단에 서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연구 자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에요. 강의를 하는 것은 연구자로서 선택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인 것이죠.


한창 가수 활동을 할 때도 ‘평생 가수로 살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음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능 중 하나일 뿐이잖아요. 하나의 기능만 하면서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더욱 성장하고 싶었죠. 지금은 연구자가 됐지만, 연구자나 가수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면에서는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음악 활동이나 연구자로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나 기본적으로 ‘창작’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죠.”

출처: 최다비씨 제공
최다비씨는 올해 1학기 숭실대에서 '프랑스 문학과 예술', '불문학 번역' 등 2개 강의를 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어떤 주제였나요?
“박사 학위 논문은 ‘음악 산업 태동기의 프랑스 샹송 스타의 창조’라는 주제로 작성했어요. ‘스타 산업’이라고 흔히 이야기 하죠. 프랑스에서 어떻게 샹송 스타가 만들어졌는지 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논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음악 산업 쪽에 몸을 담은 적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생긴 주제였죠.”


-지난 학기에 맡았던 강의는 무엇이었나요?
“대학원에서 1개 강의, 학부에서 1개 강의를 했어요. 학부에서는 ‘프랑스 문학과 예술’이라는 과목이었는데, 프랑스의 공연 예술과 오페라, 현대 뮤지컬 등을 다룬 수업이었어요. 대학원에선 ‘불문학 번역’ 강의를 했는데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쓴 ‘소리’(Bruits)란 책을 번역하고 관련 레포트를 쓰는 수업이에요. 이 책은 음악의 기원과 발전사, 현대에서 음악이 상업화되며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담은 책인데, 어려운 내용임에도 학생들이 잘 번역하고 수업에 열심히 임해줘 참 고마웠어요.”


-처음 강단에 섰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비쥬 최다비를 알아보는 학생은 없었나요?
“처음부터 알아보는 학생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TV에 제 노래가 나오면서 학생들로부터 ‘검색어 1위를 하셨다’고 문자가 오기도 했어요. 처음 강단에 섰을 때는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보니 많이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어요. 사실 강단에 설 줄 몰랐는데…이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하고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경험이 굉장히 중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혼자 연구하는 것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일 같아요.”

출처: 유튜브 캡처
비쥬 '누구보다 널 사랑해' 활동 당시 최다비씨

-비쥬 시절 이야기를 해보죠. 비쥬는 어떻게 결성됐나요?
“오래 전 이야기인데 오디션을 봐 들어갔던 회사에서 만든 그룹이 비쥬였어요. 남자 멤버인 주민씨와는 회사에서 알게 된 동료였고요. 비쥬란 이름은 제가 낸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불문과 출신이라서요. 최다비라는 예명은 회사에서 지어줬는데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어요.”


-당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데요.
“너무 바빠서 제대로 밥을 못 먹는 날이 많았어요. 활동을 한창 할 때는 스케쥴이 하루에 7~8개일 정도로 바빴거든요. 차안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도 많았죠. 라디오 방송이나 라이브 공연도 정말 많이 했었고, 지방 공연도 정말 많았어요. 그때는 HOT나 SES, 핑클 등이 활동하던 시기였고, 팬덤 현상이 어마어마했었죠. 저도 팬 레터를 많이 받았었어요.”


-2000년 3집 이후 소속사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비쥬를 탈퇴했습니다.
“1집이 크게 성공한 이후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데 여러가지 걸림돌이 많았어요. 저는 제가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1집의 성공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을 하기 원했고요. 소속사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었죠. 온전히 제가 원하는 음악을, 내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솔로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비쥬 활동 당시 아쉬움은 없었나요?
“팬분들이 저희 음악을 사랑해주시고,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는 점은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은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어요. 다만 많은 미디어가 저의 음악, 음악적 재능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저 ‘청순하고 예쁜 보컬’의 이미지에만 집중했던 것 같고, 그 점은 굉장히 아쉬워요. 비쥬 활동 당시 거의 모든 곡을 저희가 공동 작업으로 만들었는데도 ‘곡은 남자가 만들고, 여자는 보컬을 하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제가 가수 활동을 하면서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 총 49곡이나 되지만, 잘 모르시는 분이 많을 거예요. 제가 미디어에서 귀여운 아이돌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음악적 부분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았던 게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많이 아쉽죠.”

출처: 최다비씨 제공
최다비는 "음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지만, 현재로선 연구자로서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슈가맨’프로그램이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비쥬 멤버로서 출연해달라’는 요청은 없었나요?
“출연 요청이 몇 번 있었는데 제가 고사했어요.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 제가 학위 논문 마무리 작업 때문에 너무 바빴었고, 연구하던 흐름이 한번 깨지면 다시 회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요. 많은 분들이 그때의 저희 모습을 기억하시고 아직도 사랑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방송에 다시 나갔다가 좋은 추억만 괜히 망가뜨릴까봐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연구자로서의 앞으로의 계획은? 다시 가수 활동 계획은 없는지.
“지난 1학기에도 수업을 하면서 논문 한 편을 제출했고, 지금도 다른 논문을 준비 중이에요. 올해 하반기에는 숭실대뿐 아니라 성신여대에서도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프랑스 문화를 기본 연구로 하면서 앞으로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책을 많이 내고 싶어요. 유기체처럼 살아 있는 문화 현상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그것을 학문적인 결과물로 도출하는 게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지만, 현재로선 학문에 집중하고 싶어요. 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좋거든요. 연구자로서 좀더 충실한 삶을 살고 싶어요.”


글 jobsN 이준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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