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벨도, 정류장도 없는 서울에서 단 1대뿐인 마을버스입니다

조회수 2020. 9. 25. 11:3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직접 문 열고 타세요"..서울에 한 대뿐인 '승합차 마을버스'
12인승 스타렉스 마을버스 성북 05번
좁은 골목길과 언덕 누비며 운행
버스는 단 한 대, 기사는 3명뿐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특별한 마을버스가 있다. 12인승 스타렉스로 운행하는, 서울에서 단 한 대뿐인 ‘승합차 마을버스’ 성북 05번이다. 승합차 마을버스는 11~15인승 차량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다. 전에는 서울 다른 곳에서도 승합차 마을버스가 다녔다. 하지만 15인승 프레지오로 아현역과 넓은마당을 운행한 마포 04번은 아현동 재개발로 2009년 없어졌다. 성북 15번은 승객 편의를 위해 2013년 말 25인승 카운티로 차종을 변경했다. 현재는 성북 05번이 유일한 승합차 마을버스다.

출처: jobsN
승합차 마을버스 성북 05번.

성북 05번은 정릉2동주민센터에서 정수빌라까지 왕복 약 2km만을 운행한다. 정류장도 6개에 불과해 종점에서 정수빌라까지 6~8분이면 도착한다. 짧지만 언덕이 많아 걷기 힘든 구간이다. 노선을 따라 걸어가면 15~20분 정도 걸린다.


2001년부터 이 마을버스를 운행한 하일수(70)씨를 8월7일 오후 7시 15분에 만났다. 하씨는 정년인 만 61세가 지났지만, 회사와 1년 단위 계약을 맺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출발 시간까지 대기 중인 버스에는 승객 없이 하씨 혼자였다. 19분쯤 승객 한 명을 태운 채 버스는 8월7일 37회차 운행을 시작했다.

출처: jobsN
성북 05번 기사 하일수씨.

◇승객 수 적어 버스는 단 한 대뿐… 오전·오후 1시간씩 운행 쉬는시간


-승객이 한 명뿐이네요?


“빈 차로 운행하는 경우도 많아요. 사람들 몰리는 출·퇴근 시간 외에는 승객이 별로 없어요. 버스가 꽉 차는 경우는 하루에 1~2번 있을까 말까 해요. 꽉 찬다 해봐야 12명 정도밖에 안되겠지만. 그래서 1대만 운행해요. 2대를 운행할 필요가 없죠”


-버스가 한 대밖에 없나요?


“네. 한 대를 기사 3명이 돌아가면서 하루에 총 48회 운행해요.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 40분까지 1명이 24회, 오후 2시 40분부터 막차 11시까지 또 다른 1명이 24회 이렇게요. 번갈아가면서 쉬고요.”


-그럼 한 분이서 8시간 반을 계속 운행하시는 거예요?


“중간에 식사시간이 있어요. 오전 11시,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식사시간이에요. 이때는 운행을 쉬어요. 그 시간에 식사도 하고, 쉬고, 주유도 하고 볼 일을 다 보죠. 다른 버스랑은 다르게 하루에 2시간씩 운행을 쉬는 거죠.”


-배차 간격은 20분인가요?


“맞아요. 한 번 운행하는데 15분 남짓 걸려요. 종점에서 서 있다가 다시 시간 맞춰서 출발하죠. 한 대로 운행하다 보니까 버스를 놓치면 승객들이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해요. 4~5분 기다리는 것도 지루한데, 20분은 얼마나 길겠어요. 다른 건 괜찮은데 그게 좀 아쉽죠.”


-2016년까지는 혼자서 이 버스를 운전하셨다고.


“승객이 없으니까 버스를 오후에만 운영했어요. 오후 1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기사 한 명만 있어도 충분했죠. 또 일요일을 포함해 공휴일에는 운행을 안 했어요. 승객이 없으니까. 2017년부터 서울시와 협의해서 다른 버스처럼 매일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운행해요.”


-하루 평균 승객은 몇 명인가요?


“공식적으로는 모르겠어요. 운행하면서 세 본 적은 있죠. 여러 번 세 봤는데 하루에 200명은 안 넘어요. 평균 120명 정도? 많은 날은 150~160명 타는 것 같아요.”


실제 7일 저녁 7시 20분부터 8시 40분까지 버스가 5번 운행하는 동안 승객은 15명뿐이었다. 노선을 운영하는 대진여객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1달 운행 수입으로 기사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시 보조금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기사 월급은 매달 운행 일수에 따라 다르지만, 200만원 안팎이다.


◇정류장·하차벨 없어 탈 땐 손들고, 내릴 땐 “내려주세요”

 

다른 마을버스보다 크기는 작은 미니버스지만, 내부는 여느 버스와 똑같다. 노선 안내도부터 요금 표, 요금함, 카드 단말기에 cctv도 있다. 성인 기준 현금 1000원, 카드 900원으로 요금도 동일하다. 승·하차 방식은 조금 다르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기사가 자동으로 문을 열어주는 일반 버스와 달리, 승객들이 스스로 문을 열고 버스에 오른다. 하차벨도 없다. 승객이 “내려주세요”하고 기사에게 직접 알린다.

출처: jobsN
성북 05번 버스 내부.

-안내방송이 안 나오네요?


“외부인이 적고, 대부분 주민들이 이용해서 안내방송을 할 필요가 없어요. 노선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정류장도 따로 표시할 필요가 없죠. 다들 근처에 서 있다가 버스가 보이면 손 흔들어서 올라타는 방식이죠.”


-불편하진 않으세요?


“불편할 게 뭐 있나요. 손들고 서 있는 사람이 보이거나 내려달라고 하면 세우면 되니까요. 어차피 승객들도 우리 버스 방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승객분들이 다들 버스에 오르면서 인사를 하시네요.


“얼굴이 익어서 그렇죠. 이 버스를 운전한 지 오래되기도 했고요. 오래 사신 분들은 얼굴도 알고 그래요. 인사도 매번 나누고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기도… 좁은 골목 운행은 애로사항

 

“어제 커피 잘 마셨습니다.” 하씨는 저녁 8시 8분쯤 정수빌라에서 내리는 한 승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저 분도 아시는 분이신가요?


“저분이 정수빌라 관리위원회 전 총무였어요. 며칠 전에 엄청 더웠는데 에어컨이 고장 났었어요.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갔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전했죠. 승객들한테도 에어컨이 고장 났다, 죄송하다 양해를 구했죠. 그런데 저분이 내리면서 잠깐 기다려달라 하더라고요. 잠시 후에 큰 통에 아이스커피를 타서 갖다 줬어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이렇게 승객분들이 알아주고, 챙겨줄 때 보람을 느끼죠.”


-다른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많죠.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2002년쯤 종점에서 아이 엄마가 급하게 버스를 탄 적이 있어요. 출발 시간이 안 됐는데 다짜고짜 빨리 좀 가달라고 했죠.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까 아이가 유리 조각을 밟아서 병원에 갔대요. 근데 의료보험증을 두고 왔나 그래서 집에 갔다 와야 했던 거죠. 바로 출발했고, 회차지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태우고 내려왔어요. 지금이야 버스 배차를 다 전산화해서 시간을 딱딱 맞춰서 출발해야 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런 시스템이 없어서 가능했죠. 갑자기 비가 쏟아진 날은 한 할머니가 장독 뚜껑을 열어놓고 왔다고 빨리 좀 출발하자고 한 적도 있었고요.


한 번은 은평구에서 초등학생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한 대밖에 없는 마을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나 봐요. 자기 꿈이 마을버스 기사라 하면서 한참을 구경하고 갔어요.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신기하죠.”


-운전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세요?


“아무래도 길이 좁으니까 신경이 많이 쓰이죠. 특히 정수초교에서 정수빌라 올라가는 길은 차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들어요. 좁은 길에 주차한 차량이 많아서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량이랑 서로 사인을 잘 주고받아 비켜줘야 해요. 종점인 주민센터로 돌아갈 때도 일방통행 길인데 양쪽 다 주차가 돼 있어 지나가기 힘들 때가 많아요. 그럴 때는 계속 차가 다니는 길인데 사람들이 좀 배려해서 주차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골목도 골목인데, 언덕이라 경사도 심하네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힘들어요. 제설 작업도 늦어질 때가 많아서요. 그럴 때면 정수빌라까지는 못 가고, 중앙하이츠까지만 운행해요. 승객들은 가달라고 하지만 안전 문제니까요. 실제로 몇 년 전에 빙판길에 언덕 오르다 차가 헛돈적이 있어요. 그 후로는 길이 얼면 단축 운행을 하죠.”

출처: jobsN
성북 05번 버스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 모습.

노선 대부분이 골목길, 언덕이라 하씨는 속도보다는 안전을 중시했다. 백미러와 후방 카메라를 보면서 서 있는 차들을 요리조리 피했다.


승객들은 하씨와 대진여객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버스를 이용한 김현실(49)씨는 “이 버스가 없었으면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갔을 것”이라며 “언덕길이라 걸어 다니기 힘든데 노선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글 jobsN 박아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