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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사고로 크게 다쳤지만..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1: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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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다쳤지만 도망가야 했습니다" 농촌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

7월22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에서 승합차 사고가 발생했다. 4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큰 사고였다. 차 안에는 16명이 타고 있었지만, 경찰이 현장에서 발견한 사람은 13명뿐이었다. 사고 직후 3명은 현장에서 사라졌다. 이들은 다친 몸을 이끌고 도망가야 했다. 외국인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이다.

출처: 조선DB
7월22일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도로에서 승합차 사고가 발생했다. 차 안에는 60~70대 할머니들과 30~40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이날 새벽 충남 홍성에서 경북 봉화군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고랭지 채소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농촌은 급격한 고령화로 일손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층이 부족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작년 농가인구는 231만4982명이다. 이 중 60세 이상 인구가 135만172명으로 절반 이상이다. 80세 이상은 23만5000여명으로 전체 농가인구 중 10%에 달한다. 

JTBC 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충남 논산시에서 8년째 딸기 농사를 하는 A씨. 50대인 A씨는 마을에서 젊은 층에 속한다. 그는 “60~80대가 마을 전체의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농가에는 젊은 일손이 없다”며 “말이 안 통해 불편해도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A씨도 현재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A씨는 “E9비자가 있는 캄보디아 노동자를 고용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E9비자는 비전문취업비자라고 한다.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에게 주는 비자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실 관계자는 “E9비자가 있는 외국인 근로자는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9비자가 있으면 한국에 들어와 3년간 일할 수 있다. 3년의 체류기간이 지나고, 사업주가 재고용 의사가 있다면 비자를 1년 10개월 연장할 수 있다. 체류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이다. 이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E9비자가 있어도 최대 4년 10개월 뒤에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에서 더는 일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작년에는 취업비자 유효기간이 끝난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 씨가 법무부의 미등록체류자 단속 중 5m 공사장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단속을 피하려고 몸을 숨기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외국인 노동자 중 불법체류자는 점점 늘고 있다. 법무부는 2018년 말 기준 국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이 236만7607명이라고 밝혔다. 그중 10%가 넘는 26만4004명이 불법체류자다. 2017년 16만7140명보다 63% 급증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생긴다.


충남 서산에서 한 건설현장에서 인력관리일을 맡고 있는 B씨. 그는 요즘 청년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이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B씨는 “아무래도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허드렛일을 잘 안 하려고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예를 들어 공사 현장에서 덤프트럭에 흙을 실어 나를 때 떨어진 흙이나 돌들을 빗자루질을 해 정리해야 한다. 도로나 공사현장에 흙이나 돌들이 쌓여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려는 국내 젊은이들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고 설명했다.

출처: JTBC 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1960~1970년대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간 광부와 간호사의 모습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출처: JTBC 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1960~1970년대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간 광부와 간호사의 모습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

이번 강원 삼척 사고에서 차에 타 있던 외국인 노동자 9명 모두 태국 국적인 불법체류자였다. 농촌의 고령화와 일손 부족 문제로 농촌에서는 불법체류자라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이 농촌 인력 시장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 다. 농촌에서는 불법인 걸 알면서도 외국인 노동자을 쓴다. 당장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 머물고 있는 불법체류 노동자 중 몇 명이 농촌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불법’으로 머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와 실태를 파악할 방법이 없다. 강원도청 농정국 농정과 인력지원팀 관계자는 “농촌에서 일손이 부족해 인력시장에서 불법체류자를 고용한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농촌에서 일하고 있는 불법체류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농촌의 불법체류 노동자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불법체류자와 관련한 법적 처벌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로 적발한 외국인은 강제퇴거 조치를 받는다. 또 최대 10년간 입국규제를 받는다. 불법 고용주는 범칙금 부과부터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JTBC 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이와 함께 불법체류자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법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고에서 사라진 노동자들도 본국으로 쫓겨날까 봐 치료도 못 받고 도망간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강원 삼척 사고에서 외국인 노동자 9명 중 2명은 사고 직후 숨졌고, 3명은 중상을 입고 삼척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 1명은 경상자로 퇴원했고, 나머지 3명은 현장에서 사라졌다. 홍성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사라진 3명과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명 중 중상을 입은 1명은 센터의 설득으로 사고 이틀 뒤 병원에 입원했다.


김인숙 홍성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얼굴을 많이 다쳤다”며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망간 3명은 불법체류자인 사실이 드러나면 본국으로 쫓겨난다고 생각했고, 치료비에 대한 걱정도 들어 도망갔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김 센터장은 “불법 체류자여도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법보다 인권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실에 맞지 않는 현 제도를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현실적으로 농촌 인력이 부족한 게 맞고, 한국에서 장기간 일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이어 “농가의 현실에 맞게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광석 인하대 이민다문화정책학 전공 교수는 “현재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부처 간의 협업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서 관련 문제를 총괄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작업환경이 도시보다 열악한 농촌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관련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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