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국에 넣어 먹으려 산 조개 때문에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1:5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대한항공 기내식으로도 나오는 '가짜 고기' 만들고 있습니다"

고기를 만드는 회사다. 그런데 진짜 고기가 아니다. 콩·밀 등 식물성 원료를 쓴 대체육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치킨·삼겹살·불고기부터 해산물까지 못 만드는 ‘가짜’가 없다.


베지푸드는 1999년 문을 연 1세대 대체육 제조 기업. 식물에서 단백질을 추출해 고기를 만든다. 채식주의자뿐만 아니라 절·학교·기업도 주요 고객이다. 또 대한항공 기내식으로도 베지푸드 제품이 나온다. 연 매출은 20억원. 미국·대만·프랑스·캐나다 등에 수출도 한다. 이승섭(51) 대표의 목표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체육을 찾게 만드는 것이다.

출처: 베지푸드 제공
이승섭 대표.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건국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다. 고기는 물론 우유·달걀·벌꿀도 안 먹는 비건(vegan)이다. 학생 때부터 채식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취직했다. 건설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일했다. 휴가 때 대만으로 여행을 갔다. 우연히 대체육으로 만든 소시지를 먹었다. 맛있었다. 이걸 한국에 가져와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만 채식 전문 회사를 찾아다니며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한국에 채식 문화를 퍼뜨리고 싶다고 6개월 동안 기업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회사 기밀이라며 알려주지 않더라. 제조 기술이 없으니 창업을 포기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습학원을 열었다.


채식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1년간 운영한 학원을 접고 다시 대만으로 갔다. 여전히 기술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공장 견학은 허락했다. 기계 설비 등을 보면서 직접 기술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1999년 베지푸드를 창업했다. 국내외 자료를 하나씩 모아 실험을 하면서 대체육을 만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한 셈이다.”

출처: 베지푸드 제공
베지푸드의 채식요리 전문점 '오세계향'에서 만드는 음식들.

-채식을 결심한 계기는.


“1993년 대학교 4학년 때 채식을 결심했다. 빌라 지하방에서 자취를 했다. 어느 날 친구가 된장국에 조개를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알려줬다. 수업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조개 1000원어치를 샀다. 요리에 쓰고 남은 조개를 다음날 먹으려고 부엌에 뒀다. 자려고 누웠는데 부엌 쪽에서 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신경이 쓰여 잠이 안 왔다. 처음엔 쥐가 범인인 줄 알았다. 불을 켠 뒤 자세히 보니 살아 있는 조개들이 입을 벌려 나는 소리였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해산물을 자주 먹었다. 대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고향에 내려가 친구를 만나면 싱싱한 회를 먹었다. 그때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고요한 새벽, 부엌에서 살아 움직이는 조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꼭 생명체를 잡아먹어야 끼니를 때울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또 ‘얘도 생명인데 끓는 물에 들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채식을 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가죽 제품도 안 쓴다.”


-대체육 제조 과정이 궁금하다.


“식물성 원료로 대체육을 만든다. 대체육은 동물 세포를 배양해 만드는 배양육과는 다르다. 일부 채식주의자는 배양육을 먹지 않는다. 어쨌든 동물 세포를 키워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건은 동물의 알, 꿀 등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을 모두 거부한다. 반면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은 채식을 하지만 아주 가끔 육식을 한다. 또 페스코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처럼 채식을 하지만 유제품·어류 등을 먹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콩에서 단백질을 추출한다. 이를 ‘분리대두단백’이라 한다. 동물 사료를 만들 때 쓰는 압출·가공기계 ‘익스트루더’(extruder)에 분리대두단백을 넣는다. 기계가 고온으로 가열하고 압력을 가하면 부피가 커진다. 대체육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식물성 원료를 쓴 양념을 더해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출처: 베지푸드 제공
베지푸드는 채식 요리만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도 한다.

-어떤 제품을 만드나.


삼겹살·스테이크·돈가스·불고기 등을 만든다. 삼겹살에는 비계가 있지 않나. 실제 삼겹살처럼 보이도록 구약나물 알줄기로 만든 곤약을 이용해 비계를 만든다. 소고기냐 돼지고기냐에 따라 익스트루더에 들어가는 재료도 조금씩 다르다.


새우나 회 등 식물성 해산물 제품도 있다. 학교나 기업은 주로 요리 재료인 패티를 사 간다. 우리는 사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품도 만든다. 식물성 해산물을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우를 어떻게 식물로 만드냐는 것이다. 곤약에 전분 등을 넣어서 제조한다. 식물성 해산물이라고 말 안 하면 가짜인지 모를 것 같다고 말해주는 고객이 많아 뿌듯하다. 그만큼 대체육을 잘 만들었다는 뜻이니까.”


-대체육이 왜 좋은가.


“육식 문화 자체가 문제다. 우리나라 성인 3000만명 가운데 1000만명이 고혈압 증세가 있다. 또 심혈관계 질환으로 죽는 사람이 암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 육식 위주 식습관 때문이다.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혈관을 막아 병이 생긴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이미 육식의 문제점을 깨닫고 채식 위주 식단으로 바꾼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갑자기 고기를 끊을 수는 없다. 가끔 삼겹살도 먹어야 하지 않나. 그럴 때 고기 대신 대체육을 먹자는 것이다.”


-주요 고객은 누구인가. 대한항공에 납품도 한다고.


“개인·기업 고객이 있다. 매출 비중은 기업과 개인 고객이 6대 4다. 유치원이나 대학교 학생 식당에 납품하고 있다. 또 봉은사·해인사 등 사찰도 주요 고객이다. 대한항공도 채식주의자 승객에게 제공하는 기내식을 만들 때 우리 제품을 쓴다. 보름마다 300봉지(봉지당 250g) 정도 사간다. 한 봉지에 5000원 정도다. 한 달에 300만원어치 납품하는 셈이다.”

베지푸드 제공

-최근 해외 대체육 제조회사들이 한국에 진출했다. 베지푸드의 경쟁력은.


“회사가 문을 연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허송세월하지 않고 열심히 대체육을 연구했다. 미국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드’가 대표적인 대체육 제조업체다. 두 회사 제품을 다 먹어봤다. 먹고 나니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제품보다 크게 뛰어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 또 이들은 햄버거 패티가 주력 상품이다. 우리는 대체 달걀이나 해산물 등 다양한 식품을 만든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애로사항.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큰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와 같은 편견을 깨는 게 힘들다. 육식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 있다. 코끼리를 보라. 덩치가 그렇게 큰데 채식을 한다. 기린도 마찬가지다. 또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도 채식주의자였다. 요즘엔 이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육식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짜 고기와 더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말하는 고객도 있다. 식감이 고기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도 노력하지만 원료가 다르지 않나. 질감이 완전히 같을 순 없다. 부족한 2%는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는 사실로 채우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우리의 목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도록 만드는 거다. 사람들이 식물성 고기를 맛보고 ‘굳이 진짜 고기를 먹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동물·환경을 보호한다는 취지도 중요하지만 일단 맛있어야 먹지 않겠나. 맛있는 대체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또 나중에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대체육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전 세계 전파하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