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범 취급받아가며 스승 없이 명장 반열에 오른 장인

조회수 2020. 9. 25. 11: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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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도굴범 취급 받기도.. 스승 없이 명장 반열 오른 도예장인

[한국의 장인] ③ 도예장인 이명균 도공


뛰어난 스승 밑에서 수십년 배워도 명장 소리를 듣기 힘들다. 그러나 이명균 도공(53)은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해 도자기 명장 반열에 올랐다. 국립박물관은 그가 만든 청자다기세트(차를 마실 때 쓰는 차 주전자와 찻잔 등의 그릇)를 방문한 국내외 귀빈에게 선물로 준다. 그가 만든 4~5인용 다기세트 가격은 약 180만원선이다.


그의 스승은 옛 가마터에서 주운 도자기 파편이다. 삽으로 가마터를 파다가 문화재 도굴범 취급을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스승은 시행착오였다. 도자기를 굽고 굽고 또 구웠다. 도자기의 특성을 결정하는 좋은 흙을 찾아 산만 바라보며 다니기도 했다. 바위가 깨지고 부스러져 결국 흙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산 정상의 바위를 보면 산 아래 흙을 가늠할 수 있다. 덕분에 만들고자 하는 도자기에 적합한 좋은 흙을 남들보다 쉽게 얻는다. 8월1일 경기도 이천 도예 공방 예문방에서 이명균 도예장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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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흙이 단단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도자기로 변신하는 것이 신기하다.


“도자기는 흙으로 만들지만 흙이 아니다. 흙이 유약을 입고 불에 들어가 물성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한다. 이 과정에 도공의 기술과 경험과 기술이 스며들어 예술품으로 태어난다.”


-도자기를 만드는 흙이 따로 있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차이가 없는 흙이지만 도공은 철 성분이 든 흙인지 구리 성분이 든 흙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청자를 만들 때는 철분이 든 흙으로 용기를 만들고, 구리 성분을 함유한 흙은 진사 도자기를 만들 때 쓸 수 있다.”


도자기는 우리가 고령토라고 부르는 흙으로 만든다. 경북 고령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중국 강서성 경덕진의 가오링(高陵)에서 나오는 점토 이름이다. 우리말로 고령이다. 이 곳에서 만든 도자기가 유명해지자, 이 곳에서 나는 점토와 비슷한 흙을 영어로는 카올린 (kaolin)이라 부른다. 우리는 고령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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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만들 때 고령토를 사용하는 이유는. 


“고령토는 순백색 또는 회색인데 물을 첨가한 뒤 모양을 잡으면 그 형태가 변하지 않는다. 또 건조하면 단단해지기 때문에 도자기의 원료로 가장 좋다.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면 흰색으로 변하는데 그게 바로 백자(白磁)다.” 고령토는 도자기의 몸체를 만들 때 사용되는 태토와 초벌구이한 도자기에 입히는 유약으로 쓴다.


-도자기의 색은 유약을 이용해서만 내는 줄 알았다.


“유약만으로 도자기의 원하는 색을 내는 것은 중국 방식이다. 우리는 유약 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흙으로도 도자기의 색을 구현한다. 중국의 청자를 깨면 흰색이지만 고려청자는 속까지 푸른 빛이 감돈다.


우라는 만들고자 하는 도자기에 따라 금속 성분과 양이 다른 흙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청자를 만들 때는 철성분이 2%쯤 들어간 고령토로 용기를 만든다. 흑자는 철성분이 8% 안팎인 흙을, 진사 도자기를 만들때는 철 대신 구리 성분이 함유된 흙을 사용하는 식이다.”


진사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구리 성분이 함유된 유약이나 안료를 사용해 검붉은 색을 띄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해지는 유물로 판단했을 때 진사 자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조금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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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를 만들 때 불도 중요하다고 들었다. 


“원하는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 조절의 달인'이 돼야 한다. 쉽게 배울 수 없다. TV에서 보면 불땀 좋은 소나무 장작을 가마에 던져 넣으면 그만인 것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한국 전통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환원불’과 ‘산화불’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산화불과 환원불을 쉽게 설명하면 가마에 장작을 넣을 때 불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 산화불이고, 입구로 불길이 나오면 환원불이다.


유럽은 구리 성분이 들어간 흙으로 만든 용기를 산화불로 구워 하늘색 자기를 만든다. 우리는 산화불을 이용해 하늘색 도자기를 만들 수 있고, 환원불을 이용해 검붉은 색이 감도는 진사 도자기도 만들 수 있다. 불을 잘 이용하면 같은 흙으로도 더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산화불과 환원불, 유약 뿐만 아니라 용기를 만드는 흙에 섞인 금속 성분의 함량을 이용해 도자기의 색을 조절하는 기술은 한국이 최고다.”


-기술만 놓고 보면 정말 한국의 도자기가 세계 최고인 것 같다.


“고려시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역품이 청자였다. 송나라에서도 청자를 만들었지만 고려 청자를 으뜸으로 쳤다. 일본도 우리의 도자기를 엄청 좋아했다.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른다. 도자기를 얻기 위해 벌인 전쟁이라는 말이다. 일본 국보인 기자에몬 이도다완은 한국에서 건너 간 작품인데 추정 가격이 1000억원 이상일 정도로 귀하게 대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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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의 길로 들어서 게 된 배경은.


“80년대에 한양공고를 졸업했다. 그땐 공고를 졸업하면 취업이 쉬웠다.그래도 집에서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나도 대학진학을 고민했다. 경기도 이천으로 시집 간 누나 집에 바람 쐬러 왔다가 우연찮게 도자기 공방을 구경하고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도자기를 배우기로 결심했고, 바로 도예공방에 취직했다. 당시 공방은 철저한 분업체제였다. 그 곳에서 조각과 불때기를 배우고 독립했다.”


-도자기를 배운지 6년만에 공방을 만들어 독립했다. 너무 빨랐던 것 아닌가.


“젊었기에 그런 결정이 가능했다. 근거는 없었지만 자신감도 있었다. 도자기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포부가 있었는데 당시 공방에서는 철저한 분업 시스템 때문에 모든 과정을 배우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했다. 실패하더라도 직접 만들면서 배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빨리 독립한 탓에 고생도 많이 했다. 배워야 할 게 태산이었다. 하지만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야 했다. 좋은 흙을 찾아 이천과 여주의 산을 누볐다.


제대로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옛 가마터도 수없이 찾았다. 도자기 파편을 주우면 공방에 가져다 놓고 색을 재현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공부를 해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좋은 흙을 쓴다고 무조건 좋은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였다.


만들려는 도자기에 따라 함유된 금속 성분이 다른 흙을 써야 하는데 도자기 파편을 본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약도 제대로 만들어야 했고, 불도 배워야 했다.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공예과가 아니라 무기재료를 전공으로 선택했던데.


“겉으로 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흙에 함유된 금속 성분에 따라 다른 도자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의 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공부를 하면서 도자기 재료에 대해 원리를 깨닫게 됐다. 이제는 청자·백자·분청사기 등을 내 생각대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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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었다지만 이름도 없는 작가의 작품을 고가에 사려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만든 작품을 들고 인사동 등을 돌며 납품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름없는 젊은 작가의 도자기를 사 주는 곳이 없었다. 아이 분유값을 걱정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요즘 청자 다구를 주로 만든다고 들었다. 청자 다구에 빠진 이유는.


“2011년 명지대 산업대학원에서 특강을 할 때 차 명인 박동춘 선생을 만났다. 하루는 박 선생이 차 맛과 향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다구가 없어 고려시대 골동 차잣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 얘기 듣고 청자로 다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도공을 진로로 택할 때처럼 바로 실행에 옮겼다.


박 선생이 사용하던 고려시대 청자 찻잔을 기준 삼았다. 가스 가마를 사용하다가 지금은 전통 장작가마로 작품을 만든다. 박 선생이 사용하는 찻잔의 80% 정도 수준에 오른 것 같다. 고려시대 찻잔을 100%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아들과 딸 모두 도예를 공부했다고 들었다. 자녀들과 매일 나란히 앉아 도자기를 빚다보면 많이 부딪힐 것 같다.


“자식이 크면 친구가 된다던데 요즘 옆에서 작업하는 아들이 동료처럼 느껴진다. 가업을 이어받을 후계자 겸 동료가 생겨 너무 든든하다. 요즘 딸은 도자기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 같아 기다리고 있다.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 앞 세대가 그동안 이뤄놓은 기법이나 스타일을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수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나는 자식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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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주로 어떤 작업을 하는가. 


“아들은 처음 1년 정도는 ‘흘기’라는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작업을 했다. 그 후에는 우리공방의 도자 브랜드 ‘바탕’을 론칭했다. 아들은 사물의 원초적 본질을 탐구하고, 그 본질을 담은 물건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온고지신을 추구하는 나와 달리 시대를 반영한 작품을 추구하는 것 같다.


아들이 만든 ‘바리 시리즈'는 스님들의 식사 수행법인 발우공양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는 건강한 식사에 대한 염원을 담은 그릇이라고 하는데 나쁘지 않았다. 클라우드 펀딩을 받아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나보다 훨씬 낫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도자기에 관심을 보였나.


“나는 자식들이 도공 일을 했으면 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은 흙을 연음한 ‘흘기’로 지었다. 딸의 이름은 슬로 지었다. 성과 합하면 이슬이다. 도자기를 만들 때 물도 중요하다.


아들은 기대와 달리 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도 불편해 했다. 자신이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자신의 정체성이 규정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는 독특한 이름 때문에 놀림감도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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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가업을 잇게 된 배경은.


“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적성검사를 했는데 적성에 맞는 직업1군에 도예가라고 나왔다. 아들은 솔직하게 설문에 답했는데 결과가 도예가로 나오니까 도공을 천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아들이 흙과 도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도예장인의 기준에서 좋은 도자기를 꼽자면.


“개인적으로 도자기 형태가 가장 중요하고, 장식이나 문양은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식이나 문양은 기형을 완성시켜주지만 너무 튀면 안된다. 문양은 기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청자 상감 구름 학 무늬 매병을 예로 들면 구름위를 나는 듯한 잔잔한 학 문양이 고려 청자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하지만 그 문양이 어울리는 건 우아하면서도 날렵한 청자의 곡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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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은.


“다구 뿐만 아니라 실생활 공간과 어울릴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 조선시대 어울리는 기형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현대에 맞는 도자기 기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로 쓰는 하빈도 자신의 목표와 관련이 있나.


"하빈(河瀕)은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전설 속의 마을 이름이다. 중국의 태평성대를 이끈 순왕은 왕이 되기 전 하빈(河瀕)이라는 마을의 도공이었다. 그가 만드는 도자기는 어질고 착해서 버릴 게 없었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에게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질고 착해서 버릴 게 없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


글 CCBB 박지환 
jobarajob@naver.com
CC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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