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에 술도 못 마시던 27살 신입은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5: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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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학력에 술도 못 마시던 이 남자의 지금 직업은?
류시섭 이랜드리테일 킴스클럽 수산부문장
"항상 배우는 자세, 일은 알아갈수록 어려워"

류시섭(49)씨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대신 직장 생활을 빨리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가 현 직장인 이랜드리테일 킴스클럽에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나이는 27살이었다. 게다가 그는 술도 마실 줄 모른다. 여러모로 한국 사회에서는 두각을 보이거나 인정받기 힘든 부류다.


그러나 류씨는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했다. 킴스클럽 고졸 전형 입사자 중 최초로 대리와 과장을 특진으로 승진했으며, 점장 업무도 고졸사원 중 최초로 맡았다. 그의 현재 직책은 수산부문장이다. 킴스클럽에서 다루는 수산물 전체의 구매와 유통, 관리 등을 총괄하는 자리다. 류 부문장이 온갖 제약을 극복하고 이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이랜드 제공
류시섭 이랜드리테일 킴스클럽 수산부문장.

-우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요.


“어릴 적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다 결국 공부를 택했는데, 만족할 정도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3수를 했지만 원하는 수준의 대학에 갈 수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와중에 군대까지 다녀오다 보니 나이를 너무 먹어버렸고, 더 이상 입시에 매달리긴 어려울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취업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킴스클럽이 첫 직장이었나요?


“아닙니다. 보험회사에 들어가 4년 정도 법인 영업 업무를 했습니다. 솔직히 일 자체는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술’이었습니다. 제가 술을 전혀 못하다 보니 이래저래 고객 접대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결국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었죠.”


-킴스클럽을 새 직장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일단 우선적으로는 술을 마실 필요가 없는 업종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지점에서도 매력을 느낀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신입에게도 상당한 업무 자율성을 부여해 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이야 킴스클럽이지만, 1997년 입사 당시엔 이천일아울렛이었죠. 저는 서울 중계점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는데요. 부서 지망을 받을 때 힘들어도 많이 배울 수 있는 파트에서 일하고 싶다 하니 채소, 즉 농산물 부서를 배정해 줬습니다. 그 코너의 전권을 아예 넘겨주고 본인 주도하에 열심히 잘 꾸려보라 하더군요. 이런 업무 스타일이 개인적으로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입사 초반부터 특진을 거듭했다 들었는데요.


“일에서 많이 배우려면, 일을 많이 하는 수밖엔 없었죠. 하루에 3~4시간씩만 자고 오전 5시 30분 즈음에 출근해 자정까지 일했습니다. 거의 매일을요. 그런 모습을 윗분들이 예쁘게 봐주신 덕에 승진을 빠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입사 5년 만인 2005년에 천호점장을 맡았는데요. 점장이라 하니 꽤 높아 보이지만, 사실 당시 저희 조직 내에선 대리~과장급 정도가 맡는 자리였습니다. 아무튼 고졸사원 중에서는 제가 최초이긴 했죠.”


-그다음 직책인 킴스클럽 유통본부 영업총괄 자리 역시 고졸사원 최초로 맡은 것인지요?


“그렇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왜냐면 제가 해당 부서 창설 멤버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2004년 12월 즈음에 이랜드 계열사였던 뉴코아가 이천일아울렛을 인수합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기존 이천일아울렛엔 없던 영업총괄 부서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하는 현장 직원과 원산지에서 상품을 사들이는 구매조직 사이의 교량을 맡아 커뮤니케이션과 조율 등을 하는 것이 주요 업무죠. 저는 거의 부서 창설 시기였던 2005년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니 유통본부 영업총괄 관련해선 고졸 출신 최초 수식어를 붙이기가 다소 적절하지 않죠.”

이랜드 제공

-유통본부 영업총괄을 맡을 때까지 여전히 농산물 관련 업무를 했나요?


“거의 그렇습니다. 사실, 유통본부 영업총괄을 맡은 후로도 수산이나 축산 쪽은 지식이 그리 깊지 않았습니다. 영업총괄인 만큼 물론 농산물뿐 아니라 수산과 축산도 취급은 했지만, 제가 한 업무는 주로 직원들 관리였으니까요. 제가 상품을 직접 다룰 일은 거의 없었죠.”


-그렇다면 수산 업무를 맡은 계기는 무엇인지요.


“2011년 중반 즈음에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수산바닥원가찾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무튼 유통본부 영업총괄은 농·수·축산물을 가리지 않고 맡는 조직이니, 비록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제가 이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죠. 아무튼 해당 프로젝트는 중간 유통 마진을 줄여 최초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킴스클럽의 경영 이념 실천을 위해 진행한 것인데요. 어민과 직거래를 했을 때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으며, 어민 역시 직거래를 하면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칠 때보다 얼마나 더 벌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했죠.”


-그렇게 중간 유통업자들을 배제하는 것이 가능했나요?


“솔직히 쉽지 않죠. 그게 쉬우면 이미 모두가 직거래를 했겠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튼 맡은 일이니, 조사를 하고 가설을 세워 직거래 시 발생할 수 있는 성과를 예측해 보고했죠. 그랬더니 최고경영자께서 저를 아예 수산 부문 MD, 즉 상품기획자로 발령을 내셨습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한 상황임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자 최선을 다한 모습이 신선했다 하더군요.”


-MD, 즉 상품기획자는 어떤 업무를 하는 사람인지요.


“상품 원자재 구매부터 소비자 최종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설계하고 관여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구한 재료를 고객의 취향에 맞춰 가공하기도 하고, 반대로 고객의 취향에 맞지만 시장에 없는 상품을 찾아다니기도 하죠. 원래 맡고 있던 유통부문 영업총괄직과는 직급상 위아래를 논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유통에선 MD가 핵심이고 꽃이기 때문에 저 역시 맡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수산물에 대한 지식이 없음에도 업무 수행이 가능했는지요?


“모르고서는 불가능하죠. 그러니 일단 배워야 했죠. 매일 포구에 가서 어민과 뱃사람들을 만나며 현지에서 먹고 자기를 거듭했습니다. 어느 업종이나 그렇듯 어업 역시 이방인이나 뜨내기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있는데요. 그 분위기를 깨고 친분과 신뢰를 쌓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2년쯤 지나고 나니 그분들께 현지인 급으로 대우를 받으며 거래를 틀 수 있더군요. 나중에 들으니 다른 업체 MD들처럼 하루 이틀만 있다가 갈 줄 알았는데 저는 상주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합니다. 제가 첫해 한 달간 배운 것이 다른 마트 MD들 10년 배운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도 하고, 다른 마트 MD는 속일 수 있지만 저는 아는 게 많으니 속일 수 없다고도 하고요. 당시 한 해 평균 이동거리가 헤아려보니 지구 2바퀴 돈 정도더라고요. 국내 포구만 다녔는데 말이죠. 1년 중 5~6개월은 집 떠나 외지에서 지냈고요.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애들이 한참 커나갈 시기에 함께하지 못했으니까요. 많이 이해해주긴 했지만, 그래도 섭섭함이 아주 없을 순 없죠. 저 역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그럼 정말 속는 일 없이 모든 일이 잘 진행됐나요?


“아뇨. 그렇게까지 하고도 종종 당했습니다. 한번은 오징어를 선주와 직접 계약해 현장에서 인수하기로 했는데, 막상 가보니 다른 곳에서 한 마리당 20원 정도씩 더 주겠다 제의했다며 이미 팔아치워 버렸더군요. 사들인 냉동 오징어가 알고 보니 이중계약에 걸려 있어서,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뻔한 적도 있었고요. 창고 앞에서 이틀간 버틴 끝에 간신히 물량을 사수했지만요. 남에게 속은 건 아니지만 제 공부가 부족해 사고가 터진 적도 있었습니다. 포구에서 오징어를 싸게 사들인 것까진 좋았는데, 이를 보관하고 옮기기 위한 얼음이나 인부 등을 미처 생각하지 못해 기껏 구한 상품을 망쳤던 사례인데요. 결국 마리당 500원에 산 오징어를 품질기준 미달로 마리당 100원에 공급해야 했습니다. 그 덕에 각 단계별 주요 준비 사항을 꼼꼼히 체크하는 습관이 들었으니 얻은 것도 있긴 하지만요.”

이랜드 제공

-사례들이 모두 오징어 이야기네요.


“제가 수산에서 처음 담당했던 상품이 오징어, 꽃게, 새우 등이라서요. 경험이 부족했던 시절이니 아무래도 실수도 더 많았죠. 사실 새우 쪽에도 아픈 기억이 있긴 합니다. 새우 유통 단계를 줄이고자 2018년에 새우 양식장과 연계해 저희가 직접 새우를 기르려는 시도를 했어요. 하지만 질병 피해를 입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어요. 올해는 바이오플락이라는 새 방식으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실패했던 양식 방식이 농산물로 치면 ‘노지 재배’고, 바이오플락은 일종의 ‘비닐하우스 재배’ 방식이죠. 지금은 새우들이 잘 크고 있어요.”


-수산부문장을 맡은 뒤로도 여전히 한 해에 지구 2바퀴씩은 도시나요?


“수산부문장 발령은 올해 3월에 났으니 아직 뭐라 하긴 어렵지만요. 예전만은 조금 못하더라도 최대한 열심히 돌아다니려 하고 있죠. 지금은 막 연평도에 가려던 참이었어요. 연평도에선 9~10월 즈음에 고기가 좀 잡히는 편인데요. 그때 어민들을 찾아가면 조금 늦죠. 한창 바쁠 때니 저를 상대할 틈이 없으니까요. 미리 가서 인사도 드리고 이야기도 나누려면 적어도 지금쯤엔 찾아가는 게 옳죠.”


-본인 스스로는, 학력 등 여러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기업 부문장 자리까지 오른 원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서울대 연고대 가는 능력과, 필드에서 성과 내는 능력은 다르다고요. 즉, 제가 서울대 연고대를 가지 못했더라도 사회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이라 스스로를 믿은 거죠. 물론 제 여건 때문에 많이 힘들긴 했습니다. 가끔은 같은 성과를 내도 학력이 모자라 대우를 더 못 받는다 느낀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다짐을 버리지 않았어요. 또한 저의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상시 일하는 동시에 지식을 쌓으려 노력했고요. 저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전문가다, 마스터다 그렇게 평가 내린 적이 없어요. 오히려 모르는 것, 배울 것은 점점 더 많아지는 듯해요. 실제로 꽃게와 새우는 처음으로 일을 맡았던 때보다 지금이 더 다루기 어렵고 알아가야 할 부분도 훨씬 많다 느껴져요. 그런 마음가짐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수산부문장으로서 향후 어떤 계획이나 포부가 있으신지요?


“국내 생선 소비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선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손질과 조리가 불편한 데다 비린내까지 나는 식재료입니다. 단독주택에 비해 환기가 어렵고 악취에 민감한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세대가 늘어나는 요즘엔, 아무래도 생선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이 때문에 저는 장기적으로 집에서 손질이나 조리를 하지 않고도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생선 상품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상품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싸 쉽게 사 먹기 어렵죠. 이를 극복하고 전 국민이 불편 없이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생선 상품을 내놓는 것이 제 꿈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특정 생선 상품뿐 아니라 모든 수산물의 중간 유통 과정을 최소화해 국민들에게 신선한 식재를 싸게 공급하는 것이 장기적 목표입니다. 킴스클럽을 이용하는 고객분들이 다른 매장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싼 가격을 누리는 동시에, 어민 분들도 유통업자에게 가격 후려치기를 당하는 일 없이 적절한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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