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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넘게 붙었다, ‘스튜어디스 합격 성지’라 불리는 곳

“50년 넘게 ‘승무원미소’ 담아낸 사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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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개발한 특수렌즈로 인물사진 찍어
승무원 지망생 많이 찾아와 ‘승무원 사진관’
세계 곳곳 돌아다니면서 사진으로 기록하고파

“항공사 승무원 합격자 40%가 우리 사진관에서 입사서류에 붙일 사진을 찍은 해도 있어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사진관 앞. 입구에 서 있는 입간판에는 '1967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통의 사진관'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이 사진관의 이름은 '미도'. 2018년 서울시는 미도를 ‘오래가게’로 선정했다. ‘오래가게’는 문을 연 지 30년 넘은 가게들 중 서울시가 유구한 전통이 있다고 판단한 상점이다. 50년 넘게 100여명이 넘는 승무원 준비생, 무수히 많은 가족 단위 손님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강일웅 사장(82)을 만났다.


◇ 100여명 넘는 승무원 배출해···‘승무원 사진관’


-본인 소개를 해달라.


“60년 넘게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이자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미도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강일웅이다.”

미도사진관의 강일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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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사진관을 차린 계기가 궁금하다. 이름에 어떤 뜻을 담았나.


“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았다. 공군 장교로 30살 넘어서 사회에 나왔다.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취미를 살려 사진관을 차렸다.


이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은 건 아니다. 사진관 간판을 달 때 어느 위치에서 보든 읽기 쉬운 이름을 찾고 있었다. 짧고 간단한 이름이 필요했다. 만들고 나니 ‘미도’라는 이름이 듣기 좋고 말하기도 쉬워서 지금까지 상호명으로 계속 쓰고 있다.”


-미도사진관이 개발한 렌즈가 있다고 들었다.


“얼굴형을 보정해주는 특수 렌즈다. 동그랗거나 긴 얼굴을 알맞은 비율로 갸름하게 만들어준다. 요즘엔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나서 사진이 맘에 안 들면 포토샵으로 보정한다. 하지만 이 렌즈를 개발한 80년대 후반에만 해도 이런 기술을 많이 안 썼다. 당시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다음 보정 과정을 따로 거치지 않고 바로 인화를 했다.”

강일웅 사장은 미도사진관만의 특수렌즈를 개발해서 인물 사진을 촬영하는 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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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렌즈를 왜 만들었나.


“사람들이 사진 찍을 때 살짝 미소만 짓거나 무표정으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활짝 웃어보라고 말하면 얼굴이 커 보이지는 않을지 걱정하더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맘 편히 웃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놀이공원이나 전시회에 가면 볼 수 있는 거울이 생각났다. 앞에 서면 실물보다 훨씬 날씬해 보이는 거울 말이다. 이 거울의 원리를 이용해서 특수 렌즈를 만들었다.”


-미도사진관에는 ‘승무원 사진관’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던데.


“손님들 중에 승무원 지망생들이 많았다. 우리 사진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진관은 특수 제작한 렌즈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얼굴을 자연스럽게 사진에 담아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라. 어느 해에는 국내 항공사 신입 승무원 53명 중 21명이 우리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을 정도다.”


-사진관에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 사진이 걸려 있다. 미도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인가.


“그렇다. 나는 이 사진들을 ‘명예의 전당’이라고도 부른다. 시험에 합격해 현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승무원이 된 손님들한테 유니폼 입은 사진을 무료로 찍어줄 테니까 사진관에 걸어 놔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다. 액자 가운데 부분에 있는 큰 얼굴 사진은 여기서 사진을 찍은 약 100명의 승무원 얼굴을 합성해 만든 것이다. 사진을 찍으러 온 승무원 지망생들한테 어떤 미소를 지으면 좋을지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었다.”

사진관 한편에는 미도사진관에서 입사사진을 찍은 뒤 승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가운데 부분의 큰 얼굴은 약 100여명의 승무원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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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사진 찍으며 사진작가 길 걷기 시작


-사진은 언제부터 찍기 시작했나.


“1954년에 첫 카메라를 샀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수업 준비물을 사러 한 상점에 들렸다. 진열장을 들여다보니 원래 사려던 준비물 옆에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상점 주인한테 카메라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고,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설명해줬다. 주인 말을 듣고 나서 카메라에 끌렸다. 홀린 듯이 샀다. 이후 시간이 나면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부산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사진 동아리에서 꾸준히 활동했다.”


-당시엔 주로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전쟁 폐허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찍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시 나라 전체가 망가졌고 사람들은 가난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기 위해 얼마 있지 않은 음식을 나눠 먹었다. 전쟁 고아들은 폭격으로 무너진 집 앞에서 고무줄 놀이를 했다. 서로한테 의지하면서 고난을 이겨내려 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찍어 이들의 웃음과 눈물을 사진에 담았다.”

강일웅 사장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강일웅 사장이 직접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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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5년 전쯤 대학 동아리 후배들과 강원도 영월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사진 구도를 맞추는 데 정신이 팔려 뒤가 낭떠러지라는 사실을 잊었다. 무방비 상태로 뒤로 걸어가다가 떨어졌다. 당시 갈비뼈 7개가 부러졌을 정도로 크게 다쳤다. 사진을 찍을 때면 매번 기분이 좋았는데 이 때는 죽을 뻔했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우리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일이 잘 풀리는 사람들을 볼 때. 하루는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를 탔다. 한 승무원이 나한테 와서 인사를 하더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우리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었다. 또 사진을 기분 좋게 받아가 미도사진관을 다시 찾는 사람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취업 후 결혼을 해서 아이 사진 찍어준다고 사진관에 다시 온 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내가 사진을 오래 찍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면서 사진을 더 열심히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958년에 사진 찍었던 장소를 2013년에 다시 방문해 세월의 흐름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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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 사진 시대 저물었지만 아쉽기보단 설레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아쉬울 것 같다.


“사진관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님이 줄어서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 흐름을 거스를 순 없지 않나. 많은 사람들이 사진 찍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오히려 좋다. 요즘엔 핸드폰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사진사이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아쉽기보다는 사진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설렌다.”


-매출은 얼마인가.


“한 달에 300만원 정도 번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없다. 손님이 한창 많을 때는 하루에 300명씩 와서 사진을 찍었지만 이젠 많이 줄었다. 가게 상황이 좋지 않아서 언제까지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이 있나.


“작업 사진들은 하나같이 다 소중하다. 하지만 볼 때마다 감회가 다른 사진은 있다. 수년전에 사진을 찍었던 장소에 다시 가서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금 사진으로 담아낼 때면 기분이 오묘하다. 사진관 한편에 걸려 있는 사진은 내가 1958년에 사촌형이 군대 갈 때 마중 나가서 찍은 것이다. 가족들이 가거대교 밑에 모여 사촌형이 탄 배를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있다. 2013년에 다시 가서 사진을 찍으니 약 60년 전 그날이 눈앞에 그려졌다.”

강일웅 사장의 최종 목표는 사진집 만들기. 사진집 제목으로 쓰인 '칙칙폭폭'은 손녀딸이 직접 손글씨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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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목표는.


“카메라 하나 들고 멀리 유람을 떠나고 싶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기록을 남겨 내 이름으로 사진집을 내는 것이 최종 목표다. 사진 활동을 시작한 지 60주년 되는 해에 그동안 찍은 사진들로 사진집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 못 만들었다. 80살이 넘은 지금은 생각을 좀 바꿨다.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사진활동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비용이 들더라도 내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하나의 작업물로 남기면 충분히 가치있지 않을까. 나 자신한테 고생했다고 한마디 건네는 셈 치고 시간과 노력이 담긴 사진활동을 사진집으로 남기고 싶다.”


글 jobsN 신재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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