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이태원에 등장한 신종직업? 그녀가 들고 있는 팻말에는..

조회수 2020. 9. 25. 17: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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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거지인가요..구걸로 돈 버는 사람들

지난 2월 말레이시아를 여행 중이던 한 러시아인 부부가 아기를 공중으로 던지는 거리 공연을 했다. 이들 옆에는 “우리는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며 “돈을 달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이들을 체포했다. CNN과 BBC 등 주요 외신들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했다.

출처: Zayl Chia Abdulla 페이스북(@zac.abdulcheah) 캡처

이 러시아 부부처럼 여행지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가리켜 ‘베그패커’라고 한다. '구걸하다'는 뜻의 'beg'와 '배낭 여행객'을 뜻하는 'backpacker'의 합성어다. 베그패커는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그냥 돈을 달라는 ‘구걸형’, 사진이나 물건을 사달라는 ‘판매형’, 공연을 할 테니 돈을 내라는 ‘공연형’이다. 베그패커는 구걸로 돈을 번다. 이 돈으로 숙박·교통·식사 등 여행 경비를 해결한다. 관광 비자로 외국에서 돈을 버는 행위는 대부분 국가에서 불법이다.

출처: 조선DB
무전여행을 비판한 신문 기사(조선일보 1965년 8월 12일자) 사진은 전북 남원 거리의 무전여행족 모습.

베그패커는 우리나라 1960년대 후반의 무전여행객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무전여행객은 구걸 행위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 단속 대상이었다. 처음 무전여행족은 최소한의 돈만 들고 전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젊은이들은 무전여행을 낭만과 모험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송은영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한국학논집에 실은 논문 ‘1960년대 여가 또는 레저 문화의 정치‘를 보면 무전여행족은 1910년대 후반 등장해 1960년대 초반에 인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무전여행은 1960년대 초중반부터 민폐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돈 없는 무전여행족들이 기차에 무임승차하거나 가정집에 찾아가 구걸을 하는 등 민폐를 끼쳤다. 경찰은 무전여행객들에 대한 집중단속에 나섰다.  


1962년 9월 내무부 치안국은 주민들에게 무전여행족을 보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경찰은 오늘부터 각 기업체나 버스 정류장 등을 돌며 무전여행객들을 단속하기로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도 무전여행객들을 발견하면 파출소에 즉시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까지 붙었다. 조선일보 1965년 8월 12일자에는 구걸과 같은 무전여행이 사회문제라며 비판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출처: JTBC 방송 캡처

최근 1960년대 후반의 무전여행객처럼 베그패커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신촌·홍대·인사동·이태원 등에서 베그패커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사진이나 그림을 팔거나 어설픈 한국어로 적은 글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취업 비자를 받지 않은 외국인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판다면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 즉 강제퇴거 대상이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베그패커 행위에 대해 위법성을 판단하고 계도나 경고 조치를 내린다”고 했다. 또 “중대한 경우에는 출국조치까지 검토한다”고 덧붙였다.


베그패커의 행위는 경범죄 처벌법 위반이기도 하다. 물품을 억지로 사라고 하거나, 재주를 부리는 대가로 돈을 달라고 하는 경우다. 공공장소에서 구걸해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귀찮게 한 경우도 처벌받는다.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베그패커의 또 다른 특징은 대부분 유럽, 북미 등 서양인이라는 점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베그패커들은 원래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를 자주 갔다”고 했다. “최근 한국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우리나라로 오는 베그패커가 늘었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백인에게 관대한 것도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베그패커들은 한국인이 대체로 서양인에 호의적이라는 점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출처: 코코넛 발리 홈페이지 캡처

동남아에서는 이미 베그패커가 사회적 문제다. 지난 2017년 한 30대 독일 남성은 싱가포르 입국을 거부당했다. 이 남성은 2014년 태국 방콕에서 베그패커 논란으로 강제추방 당한 적이 있었다. 남성은 다리가 심하게 붓는 희소병을 앓고 있었다. 방콕 시민들의 동정심을 유발해 구걸했다. 시민들은 남성을 위해 5만바트(약 191만원)를 모았다. 하지만 이 남성은 이 돈을 술값으로 다 썼다. 또 태국 외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 베그패커로 살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구걸해 모은 돈으로 수년간 해외여행을 했다. 태국인들은 분노했고 남성은 강제로 쫓겨났다.

출처: 타이비자 홈페이지 캡처

같은 해 한 여성은 태국 방콕의 짜뚜짝 공원에서 어린 딸을 데리고 구걸했다.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옆에 딸을 세워둔 채 “얼마든 상관없다”며 “딸 사진을 사달라”고 했다. 그는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며 “딸과 함께 귀국할 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이 여성은 도망갔다던 남편과 함께 태국 북부 관광지인 치앙마이 시내에 나타났다. 이날도 그는 딸을 데리고 구걸을 했다. 태국 시민들은 “이들은 여행비를 마련하려는 베그패커”라고 비난했다. “해외에 나올 정도로 여유가 있는 외국인들이 현지인을 속여 불법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분노했다.


이처럼 구걸하는 외국인 베그패커가 늘어나자 태국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부터 새로운 규정을 마련했다. 관광객 비자로 입국할 때 1인당 1만바트(약 38만원), 1가족당 2만바트(약 76만원)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태국 출입국관리국은 “여행객이 일정 금액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입국 거부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에는 ‘길거리 구걸 금지법’이 있다. 관광객이 돈을 구걸하는 행동은 처벌받는다. 또 관광 당국은 백인들의 구걸 행위를 비판하기도 했다. 베트남 외교부는 베그패커들을 적발해 해당 대사관에 알리기도 했다.  


이 교수는 “베그패커들에게 외국 여행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지만 관광비자로 경제 활동을 하는 불법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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