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 앞 수천번의 망치질, 그의 온몸엔 1300도 불똥 흉터가..

조회수 2019. 7. 2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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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쓴 식기입니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황금빛 방짜유기

1300도가 넘는 뜨거운 불길 앞에서 수천 번의 망치질을 반복한다. 까맣게 산화한 표면을 벗겨내면 숨겨진 황금빛 속살이 드러난다. 그렇게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방짜유기가 탄생한다. 30여년 방짜유기를 만든 무형문화재 43호 방짜유기장 이종덕(58)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종덕 선생 제공

-자기소개를 해달라.
전라북도 익산에서 방짜유기를 만드는 이종덕이다. 방짜는 구리와 주석을 녹여 만든 놋쇠를 불에 달군 뒤 망치로 두드려가며 만드는 방식이다. 방짜유기는 1300도가 넘는 불 속에서 구워낸 놋쇠에 망치질해 만든 유기그릇이다.


방짜유기 외 전통유기는 두 가지가 더 있다. 먼저 불에 녹인 쇳물을 틀에 부어 만든 주물유기가 있다. 쇳물을 끓여 붓기만 하면 완제품이 나온다. 두번째는 부분만 달궈 만드는 반방짜유기다.


방짜는 충청도 사투리로 좋은 사람이나 물건을 뜻한다. 방짜유기는 유기 종류 중 가장 질이 좋다. 깨지거나 휘지 않는다. 또 살균 효과도 있다. 꽃을 꽂아 놓으면 다른 도자기나 스테인리스 용기보다 싱싱함이 오래간다.

이종덕 선생 제공

-언제부터 방짜유기를 만들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방짜유기 공장에 들어갔다. 방짜유기를 만든 건 아니다. 사무직으로 일했다. 옆에서 보니 관심이 생겼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곁눈질로 보고 혼자 따라 해보기도 했다. 방짜는 망치질을 해 두드려가면서 만드는 것이라고 하더라. 말로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행동은 달랐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진짜 방짜가 아닌데 속여 팔더라. 주물유기처럼 틀에 부어 만들고선 방짜유기라고 팔았다. 수입한 제품을 살짝 변형 시켜 판매하기도 했다.


전통문화에는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년 뒤 회사를 나왔다. 유기 행상으로 물건을 팔며 돈을 벌었다. 1992년 본격적으로 방짜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공방을 인수해 전북 지역에서 방짜유기를 만들던 어르신들을 모셔왔다. 전북지역은 예로부터 방짜유기가 유명했다. ‘경국대전’에도 국가에서 전주와 남원에 유기장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인근에 방짜유기를 만들던 분들이 있었다.


방짜유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짜’ 방짜유기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역에서 오래 방짜유기를 만들었던 어르신들도 방짜유기를 만드는 방법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다. 대학교에 전문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의 독학으로 익혔다. 계속 연습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한 일도 했다. 당시 한 어르신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방짜유기가 나오냐고 물었다. 금을 넣으라고 하더라. 얼마만큼 넣어야 하냐고 다시 물었더니 ‘많이’ 넣으라고 하더라. 당시 딸의 돌잔치 때 들어 온 금반지 수십 개를 쇳물에 넣었다. 질척한 상태로 나오더라. 실패였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조언이었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현장에서 일해도 배움에 목이 말랐다. 이론적인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공부하고 연구했다. 1997년 유한전문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했다. 1999년 강남대학과 도예과에 편입했다. 200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금속공예학과에 입학해 전문적인 공부를 이어나갔다. 방짜유기 전문학과가 없어 공예 관련 학과에서 공부했다.

이종덕 선생 제공

-방짜유기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방짜유기는 구리 78대 주석 22를 합금한 놋쇠를 뜨거운 불에 달궈 망치로 두드려 만든 유기그릇이다. 조선시대 때 쓰인 ‘방짜’는 구리 1근(600g), 주석 4냥 5돈(168.75g)을 합금한 놋쇠를 두드려 만든 그릇을 뜻했다.


먼저 구리와 주석의 비율(78:22)을 정확하게 계량해 합금한다. 1300도가 넘는 용광로에 넣어 녹인다. 이를 ‘용해’ 작업이라고 한다. 녹인 쇳물을 ‘물판’이라고 하는 무쇠로 만든 동그란 틀에 쇳물을 붓는다.


동그란 모양의 놋쇠 덩어리가 나온다. 이를 ‘바데기’라고 한다. 바둑알처럼 생겨 바둑이라고도 부른다. 바데기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쳐서 넓게 펴는 작업을 한다. 이를 ‘네핌질’이라고 한다.


이후 ‘우김질’과 ‘제질’ 작업을 한다. 예를 들어 달항아리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달항아리의 구체적인 모양을 잡기 전 위와 옆으로 흙을 붙이고 늘린다.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전에 바탕을 만드는 거다. 이 작업이 ‘우김질’이다. 이때 여러 개의 바데기를 포개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달항아리 모양대로 윗부분을 오므리고 중간부분을 나오게 하는 작업을 ‘제질’이라고 한다. 원하는 형태를 대강 잡는 작업이다.


이후 ‘담금질’을 한다. 불에 달군 바데기를 찬물에서 급냉 시키는 작업이다. 바데기는 더 단단해진다.다음 ‘벼름질’을 한다. 담금질을 하면 바데기가 꼬이거나 비틀어진다. 뜨거운 금속을 갑자기 냉각시키면 모양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망치로 두드려서 편다. 울퉁불퉁한 모양을 고르게 다듬는다. 균형을 다시 잡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가질’을 한다. 표면에 산화피막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표면 전체를 갈아낸다. 산화피막을 벗겨내면 방짜 고유의 금빛 색깔이 나온다.


망치질을 할 때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욕심을 부려서 더 치면 깨진다. 무엇을 만드냐에 따라서 우김질과 제질 작업을 수십번, 수백 번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순한 모양은 몇 시간이면 만든다. 어려운 모양은 몇 달도 걸린다. 많은 두드림 끝에 방짜유기 하나가 탄생한다.

이종덕 선생 제공

-청와대에 납품한 적 있다던데.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 대통령 전용 식기를 납품했다. 당시 청와대에 있던 대부분의 그릇은 영국, 프랑스 등 외국산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통그릇을 썼으면 한다’고 하셨다더라. 청와대에서 전국의 주요 놋그릇을 다 수거했다. 성분을 분석하고 품평회를 했다. 품질을 인정받아 청와대에 납품했다. 재료가 똑같더라도 방짜가 아니면서 방짜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방짜는 망치질로 두드려서 그릇을 만드는 방법이다. 틀에 부어서 주물로 만든 것은 방짜가 아니다. 좋은 원료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 순수도가 좋다는 평을 받았다.


2006년 제31회 전승공예대전 본상을 받았다. 또 2010년엔 전북공예품경진대회 금상을 받았다. 이후 2011년 전북무형문화재 제43호에 이름을 올렸다.

이종덕 선생 제공

-그릇만 만드는지.
그릇뿐 아니라 꽹과리, 징과 같은 악기도 만든다. 현재 국립국악원,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이 쓰고 있다. 그릇보다 꽹과리나 징 같은 악기가 방짜유기의 하이라이트다. 악기는 원료가 좋다고 해서 소리가 다 좋은 건 아니다. 기술이 있어야 한다. 징 같은 경우, 비슷한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다 다르다. 음을 잡기 위한 일은 까다롭다. 황새망치로 두들겨서 소리를 잡는다. 황새망치는 황새주둥이 같이 생긴 작은 망치다. 작은 떨림이 고르지 않거나 어느 한 부분에서 더 떨린다면 망치로 두들겨 맞춘다.


징과 꽹과리는 만드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가격이 싸다. 인건비도 안 나온다. 하지만 이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만두지 못한다. 전통을 잇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한다. 전문 예인들 80~90%는 내가 만든 악기를 사용한다. 또 악기 외 불교용품으로 사용하는 종, 무속인들이 쓰는 징도 만든다.


-1300도가 넘는 불 앞에서 작업하려면 힘들 것 같다.

온 몸에 상처가 있다. 불 앞에서 오랜 시간 일한다. 불똥이 튀어 생긴 흉터가 많다. 그래도 일하는 게 즐겁다. 수십 년간 뜨거운 곳에서 일해서 힘들진 않다. 익숙해졌다. 단순히 날씨가 더워서 땀을 흘리는 것과 일할 때 땀이 나는 것은 다르다. 불 앞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더위를 즐기게 된다. 

출처: 이종덕 선생 제공
이종덕 선생은 2017 세계태권도선수대회 개막식 공연 때 직접 만든 좌종을 제공했다.

-방짜유기 가격은.
1인용 식기는 약 18만원에 팔고 있다. 부부용 식기는 50만원 정도다. 식기 세트를 1000만원 어치 사가는 손님도 있다. 6~7명이 먹을 수 있는 밥그릇, 국그릇, 수저세트, 컵 등 대부분의 식기를 포함한 가격이다.


좌종(坐鐘)의 가격은 수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다. 좌종이란 앉아서 치는 종을 말한다. 범종처럼 걸어놓는 종이 아니다. 똬리 받침 위에 올려 놓는다. 전라북도 무주에서 열린 2017 세계태권도선수대회 개막식 공연 때 좌종을 지원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뿌듯했다. 이 좌종은 개당 5000만원이다. 아직 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일반 좌종은 500만원 정도다. 일반 좌종보다 크기가 더 크다. 제작기간이 4~5배 이상 더 걸린다. 클수록 소리가 더 좋지만 만들기 더 힘들다.


-수입이 궁금하다.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벌 때도 있다. 한때 잘 벌 땐 한달에 4000만~500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나가는 게 더 많다. 재료비가 워낙 비싸다. 많이 물건을 만들 땐 재료비로 한 번에 1억원 정도를 썼다. 주석의 가격이 비쌀 땐 1kg에 3만원이다. 한 번 주문할 때 5~10톤 단위로 주문한다.


예를 들어 도자기 원료가 100원이라고 하면, 방짜유기 원료는 1만원이다. 도자기보다 약 100배 비싸다. 일반 사람들은 도자기 그릇 크기와 방짜 그릇 크기가 비슷하면 가격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짜유기의 재료비가 워낙 비싸다. 한때 귀금속에 속할 정도였나.


-앞으로의 꿈.
사람들이 방짜유기를 많이 썼으면 좋겠다. 전통을 지켜가는 사람 입장에서 힘들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전통문화에 투자해서 지원해줬으면 한다.또 방짜유기를 많이 배우러 왔으면 좋겠다. 전통의 맥이 끊길까봐 걱정이다. 대학에서도 방짜유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쳐서 전통을 잇는 사람들을 많이 배출하면 좋겠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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