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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닙니다, 인천 소방서 '미대 오빠'가 직접 그린 겁니다

조회수 2020. 9. 28. 10: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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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계의 미대 오빠' 시민을 위해 그림 그리는 소방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꿈은 줄곧 화가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 화재 현장에 출동해 불을 끈다. 또 불을 끄던 손으로 시민들을 위해 소방 관련 그림을 그린다. 인천 계양소방서에 근무 중인 이병화 소방관(28)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병화 소방관 제공

-자기소개를 해달라.

인천 계양소방서에서 일하고 있는 소방관 이병화다. 현재 예방안전과에서 소방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보통 언론홍보와 행정업무를 본다. 추가로 소방 관련 그림과 벽화를 그린다. 각종 포스터나 홍보물, 웹툰도 만든다. 인천소방학교 훈련탑 셔터 벽화, 인천문학경기장 소화전 급수탑 그림, 계산119안전센터 벽화, 인천 ‘오토배너호’ 화재 진압 장면을 그린 그림, 석남동 화재 그림을 그렸다.

출처: 이병화 소방관 제공
오토배너호 화재 진화 그림.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인천 오토배너호 화재 사건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세를 탔다. 작년 오토배너호 화재는 인천항 개항 이후 최악의 화재로 꼽힌다. 오토배너호는 5만 톤이 넘는 대형 화물선이었다. 불길을 3일 넘게 잡지 못했다. 소방관 1명이 다치고, 약 75억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큰 사건이었다.


한 소방관분이 그림을 보고 연락을 주셨다. 당시 화재 현장에서 불을 껐다고 했다.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그림을 간직하고 싶다고 하셨다.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쓴 오영환 소방관도 오토배너호 그림을 봤다고 했다. 그림 중간 부분을 가리키며 ‘그때 저쪽에서 불을 껐다’고 하시더라. 당시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에 뛰어든다. 그 절박하고 간절한 순간을 그림에 담는다. 그림이 의미 있게 남는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는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어릴 때부터 혼자서 무언가를 끄적거리면서 놀았다고 하더라. 꿈이 화가였다. 인천고등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대학 입시 때문이었다. 용인대학교 회화학과에 들어갔다.

출처: 이병화 소방관 제공
이병화 소방관의 아버지는 현재 인천영종소방서 119 재난대응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꿈이 화가였는데 왜 소방관이 되었나.
외할머니를 많이 따랐다. 대학교 3학년 때, 할머니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증손주를 빨리 안겨드리고 싶었다. 결혼을 일찍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했다. 현실적인 고민이 컸다. 그림을 계속 그리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또 불안정한 미래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직업군인을 생각했다. 하지만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소방관이다. 소방관으로 25살 때부터 일을 시작해 33년간 근무 중이시다. 현재 인천영종소방서 119 재난대응과에서 과장을 맡고 계신다.


아버지처럼 소방관이 되자고 결심했다. 대학교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소방관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졸업할 때까지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대신 운동을 꾸준히 하며 체력을 키웠다. 학교 선배와 학교 앞을 지나는 강을 따라 일주일에 2~3번 하루 2시간씩 뛰었다.

이병화 소방관 제공

-소방관이 된 과정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1월 대방역에 있는 소방공무원 학원을 등록했다. 소방공무원 시험은 1년에 한 번 있다. 4월에 필기시험을 봤다. 4달 정도 공부하고 필기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붙었다. 체력시험도 통과했다. 체력시험은 왕복 오래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제자리멀리뛰기, 악력, 배근력, 좌전굴 부분을 본다. 좌전굴은 유연성을 측정하는 종목으로 앉은 자세에서 윗몸을 앞으로 굽히는 자세다. 하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1차 필기점수가 너무 낮았던 게 문제였다. 인천 지역은 필기시험에서 합격자를 3배수로 뽑았다. 합격점이 60점이다. 30명 중 20명 안에 들지 못한 정도였다. 면접시험이 끝나니 7월이었다. 10월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했다. 컴퓨터활용능력2급 자격증과 1종대형면허를 땄다. 11월부터 다시 학원에 다녔다. 2016년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소방관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2016년 시험 합격 후 6개월 대기기간이 있었다. 2017년 2월 인천소방학교에 입학했다. 지역마다 소방학교가 있다. 4개월 정도 훈련을 받았다. 구조훈련, 구급훈련, 화재진압, 체력단련, 실습뿐 아니라 각종 이론도 배운다. 훈련을 마치고 2017년 6월1일 인천계양소방서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천계양소방서 작전119안전센터에서 화재진압 출동부서였다. 1년 6개월간 근무했다. 화재 현장에 다니며 불길을 잡았다. 현재는 예방안전과에서 소방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이제 7개월 차다.

출처: 이병화 소방관 제공
인천소방학교 셔터.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그림 그리게 된 사연.
소방학교에 있을 때 김창수 지도관님이 회화동아리를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미대를 졸업한 것을 아셨다. 9명씩 5개 조로 나눠 동아리 활동을 했다. 합창, 춤, 생활체육, 볼링 동아리도 있었다.


지도관님이 셔터에 벽화를 그려보라고 제안하셨다. 당시에는 화재 진압 경험도 없고 무엇을 그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사진을 많이 찾아봤다. 평일에는 훈련을 받아야 하니까 못했다. 주말에 틈틈이 했다. 45명의 동기가 모두 나서서 도와줬다. 다 함께 힘을 합쳐 4일 만에 끝냈다. 도안이나 밑그림은 혼자 다 했다. 그렇게 진압대원이 소방호스 들고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긴 벽화가 탄생했다.

이병화 소방관 제공

‘그림 그리는 소방관’이 별명이었다. ‘미대오빠’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는 소방관으로 알려진 계기는 소방청 행사였다. 2017년, 소방국이 소방청으로 독립해 기념행사가 열렸다. 소방의 날 행사 때 공연, 전시가 있다. 직원분이 인천소방학교 훈련탑 셔터 벽화를 보고 인천에 그림 그리는 직원이 있다고 청에 보고하셨다. 전시회에 쓸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소방관이 서울, 충북에 한 분씩 더 있다. 세 명이 함께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나눠 소방 관련 그림을 그렸다. 조선시대 소방관인 멸화군 부분과 1970~1980년대 근대 소방 부분을 맡았다. 한 달 정도 그림을 그렸다.


이후 소방방재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서울, 충북에 있는 선배 두 분과 인터뷰를 했다. 많은 소방관이 보는 신문이다. 이후 인천소방본부, 인천중부소방서, 경기도 양평 소방서 등에서 그림을 그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주로 홍보 포스터, 캐릭터, 만화 등을 그렸다. 소방 관련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그려달라고 한다. 당직이 아닌 날, 휴무 날 조용한 곳에 가서 1~2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작년 초부터는 거의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출처: 이병화 소방관 제공
계산119안전센터 건물 외벽에 걸린 그림.

-지금까지 그린 그림들은 무엇인지.
계산119안전센터 벽화를 그릴 때가 가장 재밌었다. 밤에도 그림을 그려야 했다. 조명이 없어서 야간 활동 때 쓰는 소방 조명을 설치했다. 반장님이 옆에서 음악도 틀어주시고 농담도 하시며 힘을 주셨다. 많이 도와주셔서 재밌게 작업을 했다.

이병화 소방관 제공

2월부터 ‘인천소방’ 페이스북 페이지에 ‘시민은 모르는 소방관 이야기’를 주제로 소방 웹툰도 연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 1회 올렸다. 업무가 많아져서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올린다. 처음 소방 웹툰을 연재하는 것이 부담이었다. 사람들도 많이 그려야 하고,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 적절한 소재도 찾아야 한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했다. 그곳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포스터는 소방차가 오면 길 터주기, 비상구에 물건을 쌓아놓지 않기 등 생활 속 소방 관련 주제를 다룬다. 주로 관공서에 보내거나 캠페인 때 배부한다.

출처: 이병화 소방관 제공
현재 작업중인 벽화.

지금은 인천 도두리 1교 밑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서운체육공원 옆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볼 수 있다. 계양봉사단, 소방안전추진협의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 정도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총 3개의 그림이다. 각 50m로 총길이는 150m다. 사용하지 않는 빈 벽을 소방 관련 그림으로 채운다. 시민들이 일상 곳곳에서 쉽게 소방 관련 정보를 알 수 있게 한다.

이병화 소방관 제공

-그림을 그려서 수익이 생기는지.
벽화, 웹툰, 포스터를 그려서 생기는 수익은 전혀 없다. 재능기부 차원이다. 비번이나 휴무 때 그림을 그린다. 힘들지만 그래도 인정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겨서 좋다.


-앞으로의 목표는.
일로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지칠 때도 있다. 포스터, 웹툰 등은 처음 그려보는 분야라서 어렵고 막막했다. 그래도 웃으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시민들이 그림을 통해 더 쉽고 편하게 정보를 얻었으면 한다.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한 적 없다. 시민들 옆에서 도움을 주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 화재 현장에서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다.


글 jobsN 임헌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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