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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40명뿐…매주 죽은 사람과 대화 나누는 직업입니다

법의학자 유성호 “한 해 100명 이상의 시체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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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들은 법의학 수업이 터닝포인트
현재 국내 법의학자 수는 40여 명
주 업무인 부검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

살아생전 죽은 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직업이 있다. 죽은 자가 남긴 메시지를 해석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법의학자다. 법의학자는 과학이나 의학적 지식으로 범죄수사를 돕는다.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부검이 주 업무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국내 법의학자는 모두 합해 40명 정도. 법의학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다 보니 한 해 동안 100명 이상의 부검을 한 사람이 맡는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법의학자가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O tvN ‘어쩌다어른’에서 법의학 자문과 강연을 맡은 서울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47)다. 

유성호 교수.

출처jobsN

유 교수는 윤일병 사건의 진실을 풀어낸 주역이다. 윤일병 사건은 2014년 선임들의 구타와 가혹 행위로 인해 후임병이 숨진 사건이다. 질식사로 묻힐 뻔했던 억울한 죽음을 부검을 통해 밝혀냈다. 눈앞에 놓인 사실에 먹먹할 때도 있었다.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사망한 여성을 부검하며 울음을 참았다. 이렇듯 죽음에 얽힌 실마리를 찾는 중요한 직업이지만,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리는 이유가 뭘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유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의학자는 무슨 일을 하나요?


“법의학은 법률에 관련한 의학지식을 연구·적용하는 학문입니다. 법의학자는 말 그대로 법의학을 전반적으로 다뤄요. 법률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의학적 지식은 정확한 사망원인입니다. 때문에 사망원인을 밝히는 부검이 주 업무죠.”


-부검 외에 다른 업무는요.


“의료분쟁 중 의학적 지식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의 유전자 검사나 혈중알코올농도 계산을 하기도 해요.” 


-어떤 과정을 거쳐야 법의학자로 일할 수 있나요?


“법의학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과대학을 졸업해야 합니다. 의대는 예과 2년, 본과 4년의 교육과정이 있어요. 이후 5년간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거칩니다. 법의학은 전문의 과정이 따로 없어서, 해부병리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는 경우가 많아요. 레지던트는 의사 면허를 딴 후 3~4년간 전문의 수련 과정을 밟는 전공의를 말합니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법의학자의 90% 정도가 병리학을 전공했어요. 레지던트 수련 후 법의학 감정기관에서 1~2년 정도 전임의(펠로우)로 일하며 실무를 익힌 후, 비로소 법의학자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부검과정을 설명해주신다면요.


“사망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검찰의 지휘 아래 부검 영장을 신청합니다.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담당 지역에 따라 법의학자를 배정해요. 법의학자는 담당 형사를 만나 초동 수사결과나 의료기록을 확인합니다. 사전검토를 충분히 한 후 부검을 합니다. 경찰에 1차 소견서를 전달하고 최종의견을 내기까지 15~20일 정도가 걸립니다. 부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해석·감정이 필요하죠. 최종 부검감정서가 나오면 검찰이 수사 종결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때 추가 감정서를 작성하거나 법정 증언을 하기도 해요.”

유성호 교수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출처21세기북스 제공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때도 있나요?


“네. 부정맥으로 급사한 경우 그럴 수 있어요. 반면 범죄사건은 거의 다 밝혀집니다.”


-가장 많은 사망원인은 무엇인가요?


“작년에 260건의 부검을 했어요. 이중 타살로 사망한 경우는 얼마 없습니다. 1년에 인구 10만 명 당 1명 이하가 타살당하죠. 대부분 병사나 사고사, 자살로 죽습니다. 자살은 법의학과 가장 관련이 깊은 죽음이기도 합니다. 높은 자살률과 고독사 등이 사회문제를 대변하기 때문이죠.”


-부검이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고요.


“부검은 살인사건 때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망원인을 모를 때도 해요.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혀내는 게 국가적으로 중요하거든요. 국민이 어떤 병으로 죽는지 알아야 국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지원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요새도 폐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있어’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세요. 그런데 폐결핵 사망자가 더러 있습니다. 주로 저소득층에서 일어나죠. 이런 사실들을 모아 통계청에 전달하면 폐결핵에 대한 의료예산을 새로 배정할 수 있어요.”


◇ ‘1명이 100명 부검’ 여전히 인력난


유 교수는 현재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와 국과수 촉탁 법의관을 겸임하고 있다. 15년간 1,500여 구의 시체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주로 국과수를 통해 의뢰가 들어온다. 유족이 사망원인을 정확히 알고 싶어 하면 부검을 하기도 한다. 가족의 이유 없는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법의학자의 이야기를 다룬 MBC '검법남녀 시즌2'의 부검장면.

출처MBC 제공

-우리나라 법의학자 수가 40명 정도라던데.


“현재 실무를 보는 법의학자는 40여 명입니다. 그중 30명 정도가 국과수 소속 공무원이에요.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죠. 저처럼 대학교수로 일하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사설 법의학자도 있는데, 7~8명 정도예요. 이분들은 주로 검안을 합니다. 검안은 부검하지 않고 눈으로 시신 상태를 살피는 겁니다.


국과수에서 5급 사무관직으로 매년 법의학자를 뽑아요. 8명 모집했는데, 올해 딱 2명 지원했습니다. 대학들 상황도 다르지 않아요. 40개 의대 가운데 10곳만 법의학교실을 두고 있습니다.”


-법의학자 수가 유달리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세 가지를 고려한다고 해요. 돈과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그리고 직장이 서울에 있느냐입니다. 국과수 법의관의 연봉은 평균 6000만~6500만원 정도. 전국 의사 평균 연봉인 1억5600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죠. 또 국과수는 부산·대구·광주·대전에 지방 분원이 있어요. 전국 순환근무가 필수죠. 주말에도 종종 부검해야 하니 워라밸을 꿈꾸기도 어려워요. 직업적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죠.”


-처음부터 법의학자를 꿈꾼 게 아니라고요.


“원래는 정신과를 전공하려 했어요. 학부 때 들었던 이윤성 교수님의 법의학 수업이 전환점이었죠. 이 교수님이 ‘지금이 최악이다. 국내 법의학계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 거다’라고 하셨어요. 지나고 보니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과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의학이라는 점이 매력적이거든요.” 

/jobsN

-교수님의 일주일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겠네요.


“부검은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마다 하고 있어요. 남은 요일은 법의학 관련 대학강의와 연구에 시간을 쏟고요. 이밖에 문서감정이나 의료감정을 해요. 법의학과 관련 없는 일과로 글 쓰는 준비를 하기도 해요. 물론 법의학의 외형을 넓히는 목적의 글이기는 합니다. 일 년에 딱 이틀 쉬는데, 구정과 추석 당일이에요.”


◇ 누군가는 알려야 할 법의학 


-방송출연과 언론 인터뷰를 꾸준히 하고 계시는데.


“법의학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 시간을 내기 힘들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에서 법의학 자문과 강연을 맡은 유성호 교수.

출처SBS ‘그것이 알고 싶다’, O tvN ‘어쩌다어른’ 캡처

-이후에 관심도가 달라졌나요?


“전보다 법의학자를 꿈꾸는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많아요. 편지나 이메일을 통해 법의학 관련 질문을 보내오기도 합니다. 시간을 내 답장을 해줘요. 최근에는 진로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법의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선 의대에 진학해야 하니 공부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해요. 다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을 기르면 좋겠습니다. 법의학자는 죽은 사람을 대합니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놓인 망자에 대해 숙연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요. 그도 한때 살아있는 생명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법의학자로 살아온 삶은 어떤가요?


“직업을 통해 자신을 성숙시킬 수 있습니다. 법의학자로 일하며 다양한 계층을 만나며 성장한 제 모습을 느껴요. 또 죽음에 대해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죽음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내가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는지를 그려보면서요.”


글 jobsN 장은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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