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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나이키부터 청와대까지…그거 다 저희가 만들었어요

“활자 1만1172자 일일이 디자인하는 게 우리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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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0자. 한글 글꼴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활자 수다. ‘뷁’처럼 표준어가 아닌 글자까지 구현하려면 1만1172개 조합이 필요하다. 타입디자이너(type designer)는 글꼴 하나를 만들기 위해 길게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활자와 씨름한다.


이수현(26)씨는 산돌 1년차 타입디자이너. 산돌은 1984년 문을 연 한국 최초 폰트(font·서체) 서비스 회사다. 35년 동안 글꼴 600여개를 만들었다. 2018년 산돌 매출은 60억원. 폰트 전문가 40여명이 일한다. 이수현 타입디자이너에게 글꼴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이수현 산돌 타입디자이너.

출처산돌 제공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을 전공했다. 2018년 2월 졸업해 같은 해 7월 산돌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지난 12월부터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선택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학원에 다니며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디자이너가 꿈은 아니었다. 성적에 맞춰 전공을 고르다가 디자인학과에 들어갔다.


학교에서는 드로잉뿐 아니라 시각·멀티미디어 디자인 등을 두루 배웠다. 글꼴 디자인도 배웠지만 수박 겉 핥기 식 수업이었다. 서체 디자인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휴학 후 활자디자인 교육 기관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에 들어갔다. 이론 수업도 듣고 글꼴 제작도 직접 해봤다.”


-입사 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서체를 만들었다고.


“글꼴을 만들어 상용화까지 해보고 싶었다. 2018년 3월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글씨를 쓰는 세로쓰기 전용서체 ‘나리운’ 제작을 목표로 크라우드펀딩을 했다. 목표액은 300만원이었다. 후원자 215명이 총 1587만원을 모금했다. 목표액의 529%를 달성했다. 세 달 후 나리운을 출시했다. 나리운은 아시아나항공 광고를 포함해 책이나 그래픽 디자인 분야 등에서 쓰이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펀딩이 끝난 뒤에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만난 디자이너분 소개로 산돌 인턴으로 지원해 입사했다.”

아시아나항공 광고에 서체 '나리운'이 쓰였다.

출처Asiana Airlines 유튜브 캡처

-지금 맡고 있는 일은.


“2020년 1월 출시를 목표로 본문용 서체를 만들고 있다. 본문용 서체란 책·문서 본문에 쓰이는 글꼴이다. 독자가 책을 볼 때 가장 오랜 시간 보는 글자다. 그만큼 독자가 보기에 편안하고 가독성이 높은 서체를 만들어야 한다. 작년 7월부터 1년째 제작 중이다.


이미 출시한 글꼴의 자족(字族)을 늘리는 일도 한다. 자족이란 한 서체를 뿌리로 갈려 나오는 글꼴 집합을 말한다. 같은 글꼴이라도 굵기·기울기·장식 등에 따라 글자 형태가 조금씩 달라진다. 두꺼운 글꼴을 써야 할 때도 있고 이탤릭체처럼 기울여 쓸 때도 있지 않나. 자족을 늘릴 때마다 활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새로 디자인해야 한다. 짧아도 수 개월 이상 걸린다.


고객 의뢰로 맞춤 글꼴을 제작하는 ‘커스텀 프로젝트’(custom project)도 한다. 새로운 글꼴을 만들어 달라고 할 때도 있지만 시중 서체의 자족을 늘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다.”


-글꼴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커스텀 프로젝트와 산돌 자체적으로 서체를 만드는 ‘리테일 프로젝트’(retail project) 제작 과정이 다르다. 커스텀 프로젝트는 고객 요청이 들어오면 시안을 여러 개 만들어 보여준다. 그중 고객이 선택한 시안을 바탕으로 폰트를 제작한다. 제작하는 동안 주기적으로 고객한테 피드백을 받는다. 고객이 정해준 마감 일정에 맞춰 글꼴을 완성해 납품한다.


리테일 프로젝트는 절차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경영진 지시로 글꼴을 만들기도 한다. 어떨 때는 디자이너가 ‘이런 서체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커스텀 프로젝트와 달리 제작 기한은 따로 없다.


글꼴은 ‘글립스’(Glyphs)라는 서체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든다. 손글씨를 모티브로 만든다면 종이 위에 글씨를 써 원도(原圖)를 만든다. 원도란 활자를 만들기 위해 그리는 도면이다. 제작한 원도를 스캔하거나 촬영해 디지털 파일로 만든다. 디지털 이미지를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나 글립스로 옮겨 윤곽선을 따고 작업을 해나간다.”

(왼)2월 출시한 'Sandoll 코믹스텐실' 글꼴 작업 장면. (오)서체를 검수하는 모습.

출처산돌 제공

-주로 어떤 고객들이 서체 제작을 의뢰하나.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리뉴얼하는 기업들이 폰트 제작을 의뢰한다. 하나의 제품에 쓰는 일회성 서체보다는 기업 이미지와 어울리는 회사 대표 글꼴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네이버·카카오 등의 서체를 제작했다. 대표적인 서체로는 ‘Sandoll 격동고딕’, ‘Sandoll 정체’ 등이 있다. Sandoll 격동고딕은 청와대·나이키 등의 홍보 영상에 쓰였다. Sandoll 정체는 민음사가 세계 문학 작품을 새로 번역한 ‘쏜살문고’ 시리즈 등 출판물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폰트 디자인만의 매력이 있다면.


“‘글꼴 디자인’이 디자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글꼴은 그래픽·영상·편집 등 다른 디자인에서도 쓰인다. 그만큼 활용도가 높다. 또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글’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도 폰트 디자인만의 매력이다.”


-타입디자이너의 처우가 궁금하다.


“디자인 산업 전반적으로 처우가 좋은 편은 아니다. 다른 산업군과 비교하면 일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다. 그래도 회사 근무환경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산돌 폰트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월·연단위 정액제로 이용할 수 있다. 가장 비싼 요금제는 월 3만9900원, 연 47만8800원이다. 서체 제작에 들어가는 공수를 감안하면 가격대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시장에서 글꼴에 대한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해준다면 디자이너 처우는 더 좋아질 거라고 본다.”

Sandoll 코믹스텐실 서체를 디자인한 이들. 맨 오른쪽이 이수현 디자이너.

출처산돌 제공

-뿌듯할 때는.


“책이나 TV 광고에서 우연히 내가 만든 서체를 볼 때가 있다. 산돌에서 만든 글꼴만 600여종이다. 글꼴 종류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내가 만든 서체인지 알아볼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만들었거나 제작에 참여한 서체는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본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내 서체를 마주칠 때 행복하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발 몽골 울란바토르 노선 신규 취항을 기념으로 5월 광고를 만들었다. TV에서 우연히 광고를 봤는데 영상에 내가 만든 글꼴 ‘나리운’으로 쓴 문구가 나왔다. 광고와 서체가 잘 어울려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이런 사람에게 이 일을 추천한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1년 이상 매달려야 할 때가 있다. 나는 한 가지 일에 금방 싫증나는 성격이 아니라 괜찮지만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타성에 젖지 않고 오랜 시간 몰두할 수 있는 사람에게 타입디자이너를 권한다. 제작 기간이 길어질수록 서체에 대한 애정도도 올라간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느끼는 성취감도 크다. 디자이너라 해서 야근을 많이 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야근하는 날은 거의 없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지금 제작하고 있는 글꼴을 별 탈 없이 상용화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디자이너로서 내 이름을 걸고 서체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산돌은 직원의 개인 활동을 장려한다. 오후 6시부터 1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학원에 다니거나 개인 디자인 작업을 한다. 경험이 조금 더 쌓이면 회사 일과 개인 작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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