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산후조리원 알바하던 제가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죠

조회수 2020. 9. 28. 11: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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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두 벗은 신데렐라

영화 〈롱 리브 더 킹〉은 2017년 〈범죄도시〉라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 6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강윤성 감독의 신작이다. 서슬 퍼런 조폭 두목이 등장하는 건 여전하지만 그는 이제 소시민의 영웅이 되려고 한다. 달라진 건 또 있다.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롱 리브 더 킹〉에는 주인공 장세출(김래원)의 개과천선에 방아쇠를 당기는 인권 변호사 강소현이 등장한다. 이 강단 있고, 정의로운 변호사가 바로 원진아다.


“저는 이 영화를 ‘멜로’로 읽었어요. 감독님의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나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산다는 건 어쩌면 비현실적인 이야기잖아요. 그걸 가능하게 만든 게 김래원 선배의 눈빛이었고요.”


한 사람의 눈빛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그는 작품을 통해 배웠다. 영화 〈강철비〉의 정우성, 드라마 〈라이프〉의 조승우, 영화 〈돈〉의 류준열… 그가 여태까지 작품을 통해 만난 ‘선배’들의 면모다. 이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제 몫을 다 해내기에도 숨이 턱에 차던 시간이었다.


“제가 겁이 많은 스타일은 아닌데, 작품을 시작할 때는 항상 겁쟁이가 돼요. ‘잘해낼 수 있을까’ 두렵고 걱정되죠. 그럴수록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더 다가갔어요. 제가 못하면 저뿐 아니라 작품 전체에 누를 끼치는 거니까요. 먼저 다가가서 질문도 많이 하고 모르는 건 물어봤어요.”


오히려 현장에 가면 두려움이 사라졌다. 현장은 자질을 증명하는 오디션장이 아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같은 팀’이고, 서로를 돕기 위해 함께한다는 사실에 안심이 됐다. 그의 첫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김진원 감독과 첫 영화 주연 작인 〈롱 리브 더 킹〉의 강윤성 감독은 배우 원진아를 두고 같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인물을 다 흡수하지 못한 것 같았는데, 현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처음엔 미숙해도 나중엔 찾아낸다


원진아를 수식하는 첫 번째 말은 ‘신데렐라’였다. 2017년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주인공에 낙점됐을 때, 120:1의 경쟁을 뚫은 그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 이전까지 그는 독립영화 몇 편에 출연한 무명의 배우였다. 인생의 잭팟이 터진 것 같았지만, 원진아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꿈꾸던 순간인데, 도망가고 싶더라고요. 다 제가 잘하고 있나 보고 있는 것 같고 마지막 16회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살도 많이 빠졌고, 스스로를 갉아먹던 시간이었죠.”


물론 그는 16회까지 무사히 드라마를 마무리했다. 무명 배우 원진아, 2PM 출신 이준호라는 불확실한 카드를 갖고도 드라마는 확실한 호평을 받으며 마니아층을 양성했다. 원진아가 맡은 인물 하문수는 매일 새벽 일어나 엄마가 운영하는 사우나를 청소하고 건축사무소로 출근한다. 어릴 때 큰 사고를 겪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고 매일을 살아낸다. 김진원 감독은 “원진아에게는 문수와 닮은 모습이 있었다”고 했다. 훗날 〈라이프〉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조승우는 “목욕탕 청소하는 신 보고 놀랐다. 제대로 하더라”고 말했다.


“제가 청소 아르바이트를 오래했거든요. 어떻게 힘을 줘야 잘 닦이는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웃음)


보험회사 계약직부터 산후조리원 도우미, 청소, 서비스직까지 그의 아르바이트 경력은 다채롭다. 그중 가장 오래한 건 영화관 아르바이트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를 하기 직전까지도 홍대와 신촌 등지 영화관에서 일했다.


“언제 데뷔할지는 모르지만 제 생활비는 제가 벌어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알바만 하다가 끝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죠. 틈틈이 독립영화 오디션을 보고, 합격하면 촬영하고, 다시 알바 하는 생활이었어요.”


원진아는 천안에서 자랐다. 중학교 방학 때 딱 한 달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이렇게 재밌는 일이?!’ 싶었다. 대사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고, 눈물이 나는데 그걸 사람들이 집중해서 봐주는 게 짜릿했다. 집안 사정으로 학원이나 레슨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계속 갖고 있었다. 연기학과 입시에 낙방한 뒤 일반대학에 들어갔다. 시간 낭비 같아 1년 만에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3남매 중에 맏딸이기도 하고, 늘 부모님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스무 살부터는 계속 알바를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건 못 하고 일만 하는 게 안쓰러웠는지 부모님이 ‘서울 가서 너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몸 안에 스민 노동의 기억

올해 초 영화 〈돈〉을 찍고, 난생 처음 무대인사라는 걸 해봤을 때다. 영화관에서 만난 알바생들을 보고 왈칵 눈물이 났다. ‘저기 저 자리에, 저 유니폼을 입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서 있었는데’ 싶어서다.


“지금도 어리둥절하고 꿈같을 때가 있어요. 처음엔 ‘신데렐라’라는 말이 무겁더라고요. 작은 영화지만 연기도 계속해왔는데, 보는 사람들이 ‘어디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나왔지?’ 하는 것도 어색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운이 좋았고, 좋은 분들을 만나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이제 와 연기를 할 때는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생활인으로 살았던 경험, 몸 안에 스며든 노동의 기억은 연기에도 활기를 더해준다. 그가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건축사, 〈라이프〉의 소아과 의사, 〈돈〉의 주식 브로커, 〈롱 리브 더 킹〉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여성의 느낌을 위화감 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생계를 통해 발견한 생활인의 품격 덕분이다. 반대로 인생의 가장 찬란할 줄 알았던 순간이, ‘고행의 시작’이었다는 걸 일찍 알아차린 것도 그에겐 큰 공부다.


“‘신데렐라의 왕관을 자연스럽게 벗었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가 기뻐요. 그 이후에 작품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내려놓는 연습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많이 물어보고, 많이 배우자는 자세로 현장에 가요. 그러다 보면 현장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는 〈롱 리브 더 킹〉 촬영 기간 동안 목포에 머물며, 촬영이 없는 날에도 촬영장에서 살았다. 그렇게 뛰고 구르며 한 시절을 살다가, 시사회와 인터뷰로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웃는 요즘은 오히려 좀이 쑤신다. 어서 현장에 나가고 싶어 몸이 가렵다. 생활의 감각을 가득 채운 채, 현장의 공기를 온몸으로 흡수하는 그의 엔진은 지금 뜨겁다. 원진아의 질주는 이제 시작이다.


글 jobsN 유슬기
사진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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