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뭉친 H.O.T.가 H.O.T.를 못 쓰는 속사정

조회수 2020. 9. 28. 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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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이름 못 쓴다고요?" H.O.T. 콘서트가 무산 위기 처한 이유

“9월 고척 스카이돔에서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가 열립니다.”


공연 기획사 솔트이노베이션은 6월24일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의 공연 개최 소식을 발표했다.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이저스는 원조 아이돌 그룹 ‘H.O.T.’를 부르는 말. 이들이 잘 알려진 이니셜 대신 긴 이름을 쓰는 이유는 H.O.T.에 대한 상표권이 없기 때문이다.

MBCentertain 유튜브 캡처

H.O.T. 상표권 소유자는 김경욱 전 SM엔터테인먼트 대표다. 그는 H.O.T.를 기획하고 직접 멤버를 뽑은 인물이다. 2018년 10월 H.O.T. 복귀 콘서트를 앞두고 김 전 대표는 공연 기획사 측에 로열티를 내라고 요구했다. “무료나 자선 공연이라면 몰라도 티켓 값을 받는다면 상표권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기획사 측은 로열티 지급을 거부했다. H.O.T. 대신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라는 이름을 내걸고 콘서트를 열었다. 김 전 대표는 콘서트를 기획한 H.O.T. 멤버 장우혁과 솔트이노베이션을 고소했다. 또 작년 9월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에 대한 상표권 출원도 신청했다.


솔트이노베이션은 특허청에 H.O.T. 상표권 무효 소송을 냈다. 하지만 특허청은 김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특허심판원은 “김 전 대표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상표권을 얻었다”며 “배타적 권리를 인정한다”고 했다. 김 전 대표 법률대리인은 "상표권을 두고 소송 중인데도 두 번째 콘서트를 연다니 유감”이라고 밝혔다. 김 전 대표는 추가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1998년 5월 김 전 대표가 취득한 H.O.T. 상표권 유효 기간은 2028년 6월까지다. 일각에선 “상표권 분쟁 때문에 콘서트를 못 여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청년농부 인스타그램 캡처

◇청년 농부는 못 쓰는 ‘청년농부’··· “연회비 10만원 내라”

젊은 농부들은 ‘청년농부’라는 이름을 걸고 농산물을 팔 수 없다. 2016년 귀농한 청년들이 모여서 만든 청년농부협동조합이 명칭에 대한 상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농식품 유통과 관련이 있는 대부분 품목에 청년농부 상표권을 등록했다.


청년농부협동조합은 농부들이 11번가 등 온라인 유통 채널에 제품을 팔면서 ‘청년농부’라는 표현을 쓰자 업체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결국 11번가는 농산물 판매자들에게 “청년농부라는 표현을 모두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농부들은 반발했다. “젊은 농업인을 부르는 보통명사로 쓴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고 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표현을 두고 조합 측이 ‘상표권 갑질’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 조합 측이 연회비 10만원을 내고 조합에 가입하면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면서 논란은 커졌다. 분쟁 이후 “일방적인 권리 주장으로 정부의 청년농업인 육성 정책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년농부협동조합은 논란 이후 “명칭 사용 허용 범위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출처: (왼)화윤설화 제공, (오)조선DB
설화맥주와 설화수.

◇상표권 때문에 해외 진출하며 이름 바꾸는 회사도


지난 4월 중국 화윤설화맥주의 한국법인인 현원코리아는 “5월 한국에 슈퍼엑스(superX)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화윤설화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설화’를 만드는 회사다. 그런데 첫 한국 진출 제품으로 대표 상품이 아닌 슈퍼엑스를 골랐다. 주류업계에서는 그 이유가 “설화에 대한 상표권이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를 소유한 아모레퍼시픽한테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설화수는 설화수뿐만 아니라 설화 상표권도 갖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맥주·탄산수·주스 등 다른 품목에도 상표권을 등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라도 한국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허락 없이 설화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 화윤설화맥주는 “상표권 때문에 제품 이름을 바꿀 순 없다”며 버티고 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과 상표권 사용을 두고 협의중이라고 한다. 


해외에 진출하면서 상표권 문제로 브랜드를 바꾼 사례도 있다. 중국 게임회사 선본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는 2016년 모바일 게임 '소녀전선'을 출시했다. 2017년 6월 우리나라에도 진출했다. 2018년 7월 소녀전선을 일본에 출시하려뎐 선본재팬은 “소녀전선 일본 게임명은 ‘인형전선’”이라고 발표했다. 현지엔 소녀전선 상표권 소유자가 따로 있었다. 선본재팬은 당사자에게 상표권을 넘겨 받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소녀전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억원을 들여 홍보를 한 뒤였다. 선본재팬은 상표권 때문에 홍보 전략을 새로 짜야 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규모가 큰 기업이라도 상표권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고 말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비슷한 예로 닥치는 대로 특허를 사들이는 ‘특허괴물’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특허권이 침해당할 때만 기다리고 있다가 상대방이 걸려들면 소송을 걸어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낸다”고 했다. 윤 교수는 “기업은 위험관리 차원에서라도 상표권 소유자에 대해 철저히 사전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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