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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 영상보며 한국어 배운 캐나다 회계사가 한국서 하는 일

조회수 2020. 9. 28. 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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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 영상으로 한국어 배웠어요" 잘 나가던 캐나다 회계사가 한국에 온 이유는?
캐나다 회계사 출신 ‘폴서울’ 폴 푸르니에씨
짤막한 코믹 상황극 ‘스케치 코미디’ 크리에이터
틱톡 개설 6개월 만에 구독자 15만명 눈앞

‘유튜버 홍수의 시대’다. 이젠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 유튜버들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한국과 출신국 문화를 비교하는 이들이다. 이들 중 ‘한국어로 웃겨보겠다’는 포부를 가진 외국인 크리에이터가 있다.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면 “외국인, 유병재 영상으로 욕 공부하다!”라는 코믹 영상이 눈에 띈다.


‘외국어 콩트’라는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은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 ‘폴 알렉산더 푸르니에’씨다. 폴은 캐나다에서 잘 나가는 회계사였다. 하지만 꿈을 찾아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지금은 14만7000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1인 크리에이터다.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아닌 다른 오직 틱톡 구독자 수다.

/jobsN.

-간단한 자기소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온 폴 알렉산더 푸르니에다. 한국에 온 지는 2년 반 정도 지났고, 6개월 전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캐나다에선 회계사로 일했다. 지금은 ‘폴서울’이라는 유튜브 채널과 틱톡을 운영하는 엔터테이너다.”


-1인 크리에이터가 된 계기.


“회계사로서 삶은 안정적이지만 지루했다. 평생 직업으로 삼을 자신이 없었다. 무언가 색다른 도전이 필요했다. 예전에 한국에서 1년간 살았다. 좋은 기억이 가득했다. 그때를 잊지 못해 한국으로 무작정 넘어왔다. 구체적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 고민 없이 ‘가서 영어나 가르쳐야겠다’는 식은 아니었다. 코미디언은 항상 꿈꿔온 직업이었다. 한국에 온 후 우연한 계기로 영상 제작 업체에서 잠시 일했다. 일하다 보니 직접 영상을 만들고 싶더라. 그때부터 ‘엔터테이너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폴서울' 유튜브 캡처.
(좌) 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를 만난 폴. (우) 1인 2역을 연기한 폴.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나.


“어릴 적부터 미디어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광고 디렉터였다. 그래서 TV 광고에 나온 적도 있고, 작은 극장에서 연기도 몇 번 했다. 그중에서도 코미디에 대해선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코미디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떠올려야 하는 장르다. 문화, 시사 등 어떤 분야도 다룰 수 있어 매력적이다. 회계사 시절에도 스탠드업 코미디(1인 코미디 공연)를 몇 번 했다.”


-성장 과정을 좀 더 듣고 싶다.


“중산층에서 태어나 무난하게 자랐다. 운동 좋아하고, 비디오게임 좋아하고. 평범하게 자랐다. 그렇게 대학교를 들어가 회계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전공을 살려 회계사 자격증을 땄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남들이 좋다고 하는 대로 살았다. 회계사도 어머니가 바랐던 일이었다. 글로벌 은행그룹 BNP파리바, 기업 컨설팅그룹 딜로이트에서 일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일’을 하고 싶더라. 사표를 내고 회계 컨설팅사무소를 열었다. 하지만 그 또한 진정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지루한 회계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15년 전 한국에서 살았다고.


“대학교 1학년 때 캐나다에 온 한국 학생들하고 친하게 지냈다. 호기심이 생겨 휴학하고 한국에 왔다. 그땐 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어학원을 다녔다. 그때 만난 한국인들은 대부분 친절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에 외국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운 좋게도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처음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었다. 10개월 동안 아주 행복했다.”

출처: 본인 제공.
(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습. (우) 회계사 시절.

 -문화 차이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나.


“15년 전 한국인들에게 외국인이란 낯선 대상이었다. ‘안녕하세요’라고만 해도 사람들이 놀랐다. 한국말 몇 마디만 해도 신기해하더라. 사진 찍자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당황스러웠다. 서양엔 없는 나이 문화, 윗사람에 대한 예절 등으로 고생하진 않았다. 문화 차이를 충격이 아닌 새로운 도전과제로 즐겁게 받아들였다.”


-틱톡을 시작한 계기.


“작년 말 유튜브 구독자 증가세가 주춤했다. 유튜브엔 주로 블랙코미디(풍자성 유머)를 올렸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이 썩 좋아하는 것 같지 않더라. 어떻게 해야 유튜브채널이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1인 크리에이터 후원 이벤트에 갔다. 작년 12월이었다. 그곳에서 틱톡 콘텐츠 매니저를 만났다. “당신 유튜브를 봤다. 재밌다. 틱톡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더라. 그때 난 틱톡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새로운 시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프랑스인 친구랑 찍은 영상 3개를 시험 삼아 올려봤다. 풍자 없는 단순히 ‘웃긴 영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큰 반응이 돌아왔다. 일주일 만에 구독자 수가 1만5000명을 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틱톡을 시작했다.”


-어떤 내용의 콘텐츠를 만드나.


“스케치 코미디(5분 안팎으로 만드는 코믹 상황극. ‘콩트’와 비슷하다.)다. 혼자서 여러 역할을 맡는 영상이 많다. 할머니, 동네 친구,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 요정 ‘지니’ 등 별의별 연기를 해봤다. 유튜브에는 풍자가 담긴 블랙코미디 영상을 주로 올린다. 예를 들면 한국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한국 음식 다 맛있어요’, ‘K-POP 사랑해요’ 등 반응 영상을 올리는 외국 유튜버들을 패러디한 적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 스타일이다. 틱톡에 올리는 영상은 조금 다르다. 짧고, 가볍고, 단순한 코미디를 올린다. 주 사용 연령대가 낮아 콘텐츠도 거기 맞춘다.”

출처: 본인 제공.
작년 한국에서 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캐나다와 유머 코드가 다르진 않나.


“일반화는 위험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차이는 있다. 가령, 캐나다에선 성 문제나 정치 세태를 풍자하는 개그가 흔하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런 소재를 건드리기 힘들다. 반면 슬랩스틱, 우스꽝스러운 분장 등 시각적 요소가 강한 코미디는 서구 문화권보단 한국에서 인기가 더 많다. 하지만 유튜브, 넷플릭스 덕분에 서구 코미디 프로를 접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풍자성 유머도 갈수록 큰 인기를 끌지 않을까.”


-틱톡과 유튜브 수입은.


“틱톡은 유튜브보단 인스타그램에 가까운 플랫폼이다.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가 아니다. 스폰서나 광고로 돈을 번다. 지난달에 처음 돈이 들어왔다. 100만 원 정도였다. 지금 구독자가 15만명에 약간 못 미친다. 매주 5000명 정도 늘어나니, 수입도 그만큼 많아지지 않을까. 그에 비해 유튜브 채널은 수입이 적다. 월평균 20만원 이하다. 한동안 업로드를 쉬었다. 하지만 요즘 빠르게 성장 중이다. 2년 동안 구독자를 7000명 모았는데, 지난달에 늘어난 인원만 1000명 정도다.”


-한국에서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처음엔 캐나다에서 번 돈으로 생활했다. 취업 비자도 없었다. 1년 정도 지나서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도 계속 일하는 중이다. 하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 유명한 외국인 유튜버나 방송인들도 대부분 영어 선생으로 일했던 경험이 몇 년씩 있다.”

/jobsN.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회계사 시절은 전혀 그립지 않다. 지금 삶에 만족하며 산다. 스스로 내린 선택을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다. 사실 나이가 적지는 않다.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이다. 도전하기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든 본인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틱톡도, 유튜브도 점점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생각이다.”


-앞으로 목표는.


“코미디로 먹고살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물론 유명한 스타가 되면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고, 삶이 행복하다. 원하는 일을 하면서, 모자라지 않을 정도 돈을 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삶이 아닐까.”


글 jobsN 김지상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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