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에 떠난 뒤..월급 130만원 받던 조교의 놀라운 현재모습

조회수 2020. 9. 28. 11: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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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학과 졸업 후 떠난 유학..월급 130만원 받던 미국 대학 조교의 현재 연봉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황지영 교수
한양대 의류학과 졸업 후 20대 후반에 미국 유학
우수 강의상·교수상 수상해 미국 학계 인정

“한국과 미국 소비자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를 대하는 태도예요. 미국에선 고급 백화점을 가도 직원들이 직원들이 손님들을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반면 한국 소비자는 상대적으로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이 강해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황지영(42) 교수는 스물일곱에 미국 유학을 떠났다. 30대 중반에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University of North Carolina-Greensboro) 교수직을 얻었다. 학계에선 마케팅 전공 교수이자 리테일(Retail) 전문가로 통한다. 방학엔 한국에 돌아와 도서출판·강연·방송활동 등을 활발하게 한다. 2019년 4월 미래 유통산업 트렌드를 예측한 '리테일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보통신 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인공지능·드론·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아마존·이케아·우버 등의 글로벌기업이 어떻게 유통과정을 바꾸는지 등을 연구한다. 황 교수의 취미는 쇼핑보다 쇼핑하는 사람들 관찰하기다. 

출처: jobsN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황지영 마케팅학과 교수(The University of NorthCarolina GREENSBORO).

국내 의류학과 졸업 후 처음엔 직장생활


“2001년 한양대 의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얼마간 중소 패션회사에 들어가 패션 MD로 일했죠. 인력이 부족한 회사여서 매일 밤 열한시까지 야근하는 삶을 반복했습니다. 오래 일하다 보니 허리가 아파왔어요. 그런데도 병원 가겠단 말을 못 하고 상사 눈치를 살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했습니다. 돈을 모아 유학 준비를 했죠.”


회사에서 받던 월급은 200만원 미만. 월급은 적었지만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직장에서 가장 재밌었던 업무는 데이터로 현상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전년도와 비교해 올해는 어떤 패션이 유행하는지, 똑같은 옷이 특정 매장에서 더 많이 팔렸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밤새워 자료를 들여다보며 연구했다. 유통학을 더 자세히 공부하고 싶었다. 2002년 하반기 미국 유학준비를 했다. 2003년 8월 미시간 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 국제유통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가족 반대가 컸죠. 집안 형편이 좋은 건 아니었거든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제가 일곱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미국 대학원 한 학기 등록금은 800만원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과 가족 지원을 받아 유학자금을 마련했죠. 언어 때문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여섯 명이 팀을 지어 세 시간 동안 토론하는데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제 의견을 내는 것도 익숙지 않은 데다 영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아 좌절했습니다. 유학 후 1년 정도 잠을 거의 못 잤어요. 20대 후반의 나이에 가족 지원을 받아 유학을 떠났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 /jobsN

대학원 졸업후 취업좌절···고민 끝에 박사과정 밟아


각고의 노력 끝에 나머지 1년은 우수한 성적을 내 장학금을 받았다. 석사를 마친 뒤 미국 기업에 취업할 생각으로 유통 기업 20~30곳에 이력서를 냈다. 전부 떨어졌다. 함께 유학하던 외국인 동기들도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기업이 외국인 직원을 고용하려면 취업비자(H1B)나 각종 절차 증명서 등을 발급해야 한다. 그러나 석사 출신의 외국인을 고용할 곳은 많지 않았다. 서류 지원부터 좌절당하자 오기가 생겼다. 2006년 오하이오 주립대(Ohio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박사 2년 차 교수님이 저보고 수업을 직접 해보라 하셨어요. 일주일에 한 번 50분간 강연했어요. 70명 수강생을 앞두고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강연하려니 긴장했죠. 하지만 외국인이라 오히려 학생들 반응이 좋았어요. 대다수 미국인들은 태어난 주를 벗어나지 못해요. 한국에선 G마켓 등 온라인 쇼핑이 활발하다, 싸이월드 같은 소셜미디어가 있다는 사례를 소개했죠. 온라인 강국인 한국 이야기에 미국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국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들은 조교를 많이 한다. 조교는 월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원 조교의 월급은 1100달러(130만원) 정도. 황 교수는 한 달에 약 700달러(80만원)를 집값으로 냈다. 집값을 뺀 나머지 돈으로 생활하기 빠듯했다. 2007년 하반기 이후 금융위기가 닥쳤다. 1달러에 900원 정도였던 환율은 1달러에 1600원 정도로 뛰었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유학비로 2배 비싸진 미국 물가를 감당해야 했다. 황 교수는 지도교수 덕분에 힘든 고학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출처: 황지영 교수 제공
최근 출판한 '리테일의 미래' 책을 들고 인터뷰하는 모습, 2017·2018년 UNCG Teaching Award(UNCG 대학에서 주는 티칭 상)를 수상하고 있는 모습. 황교수는 전체 조교수 중 1명으로 최고의 교수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미국 지도 교수, 논문 발표회 앞두고 "쿠키 하나도 준비하지 마"


“박사 논문을 발표할 때였습니다. 교수님들을 위해 다과라도 준비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발표 전 지도 교수님이 오셔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어요. ‘쿠키 하나, 생수 한 통도 준비하지 마. 논문 그 자체를 심사하는 거지 그 외의 것은 관심 없다.’ 제가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만 다른 조교도 마찬가지였죠. 지도교수 생일선물로 머그컵 한 개 정도를 드렸어요. 미국 교육계는 원칙을 중요시해요. 조교를 교수의 사적인 일에 동원한다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황 교수는 박사 과정을 마친 후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었다. 논문 발표가 끝나자 마침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에서 국제 비즈니스 전공 포스트닥터(post doc·박사후연구원)를 모집했다. 박사후연구원은 대기업 직장인 못지않은 넉넉한 월급을 받는다. 황 교수는 플로리다 대학과 2년 계약을 맺은 뒤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

jobsN

포닥 과정 중에는 학장의 추천을 받아 핀란드 알토대학(구 헬싱키경제대학)에서 국제 마케팅을 가르칠 기회도 있었다. 포닥 3년 차에 2012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마케팅학과 교수직에 지원했다. 미국 교수 임용 과정은 1년 기간을 두고 이뤄진다. 예를 들어 다음 해 가을학기에 강연할 교수명단을 전년도 상반기에 꾸린다. 후보생을 상대로 여름에 1차면접을 본 뒤 겨울에 2박3일간 면접을 본다. 


“미국에서는 교수를 한 명 고용하면 최대 20~30년을 함께할 동료라 보기 때문에 꼼꼼히 검증해요. 면접 당일 오후부터 면접관과 미팅을 합니다. 진지한 분위기에서 하는 면접은 아니고 식사를 한다든가 산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죠. 어떤 연구를 하는지, 무슨 계획이 있는지 등을 공유합니다. 편한 분위기지만 흐트러져선 안돼요. 면접단은 30명 정도로 학장·부학장·마케팅학회 교수진 등입니다. 매 순간 태도를 살핍니다. 교수 임용을 할 때 인성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이에요.”


황지영 교수는 면접에 합격해 2013년 7월 마케팅 전공 조교수(Assistant Professor of Marketing)로 부임했다. 미국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하는 교수직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 두 번에 걸친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강연한 지 3년째 되는 해와 6년째 되는 해 발표 논문 수·연구 실적·학생 평가 등을 고려해 학교에서 교수 점수를 매긴다. 결혼한 교수들 사이에선 이 심사를 받는 시기에 ‘이혼율이 가장 높다’는 말도 나온다. 하루아침에 대학교수에서 실직자가 될 수 있기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까다롭다는 정교수 심사과정 모두 통과···연봉은 1억원 이상


황 교수는 이 심사를 모두 통과했다. 2019년 정년을 보장하는 부교수(Associate Professor)로 승진해 8월부터 근무할 예정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정년이 없어 교수가 원할 때까지 평생 일할 수 있다. 75세의 노교수도 강단에 설 수 있다. 미국 교수의 연봉은 전공과 경력별로 다 다르게 받는다. 황 교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UNCG(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Greensboro) 우수 강의, 2017년 우수 연구자·강의상을 수상했다. 연구실에 틀어박히기보다 현장에서 사람들의 소비성향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쇼핑몰에 가면 커피숍부터 찾는다. 자리에 4~5시간씩 앉아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미국에선 목소리만으로 음악듣기·쇼핑하기 등의 기능을 갖춘 AI스피커가 생활가전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AI스피커 사용자는 스피커가 없는 소비자보다 평균적으로 400달러 이상 물건을 더 구매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AI스피커 특징 중 하나는 사용자가 정확한 브랜드를 가리켜 주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휴지가 떨어졌을 때 ‘휴지 주문해줘’라고 하지 ‘크리넥스 시켜줘’라고 안 해요. 여러 브랜드 중 특정 물건을 담는 것은 주인의 취향을 분석한 인공지능이 하는 역할이죠.”

출처: 황지영 교수 제공
(왼)미국 FOX TV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오)2017년 UNCG의 경영대학 단과대에서 조교수 레벨에게 주는 연구상과 티칭상을 황지영 교수가 수상했다는 기사.

"교수라는 직업도 미래엔 위기···앞으로 감성 중요해질 것"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예측하는 황 교수에게 교수라는 직업의 전망은 어떤지 물었다. 황 교수는 “세계적으로 교수라는 직업 자체가 위기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의 강연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온라인 러닝 플랫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이비리그의 온라인 강의와 주립대학교수가 경쟁하는 셈이다. “학교 자체의 브랜딩과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였지만 미국 사회에 도전한 게 잘한 선택이었다 생각해요. 삼십대 초반까지 자리를 잡지 못해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박사나 박사후 과정을 밟는다 해도 교수직이 확실해지는 건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 봤을 땐 지금은 웃으며 과거를 얘기할 수 있지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았어요. 앞으로 학생들에게 감성을 가르치는 교수로 남고 싶어요. 인공지능은 미래 대다수 직업을 대체할 거라 여겨집니다. 이런 시대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창의력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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