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으로 물 나르던 아이에게 자유를 준 이 가방, 알고보니..

조회수 2020. 9. 28. 13: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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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나르는 일로 하루 여는 우간다 아이들 위해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제품디자인을 공부했다. 핀란드로 건너가 석사 학위를 땄다. 본인 명의의 스튜디오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그는 돌연 동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났다. 수도 캄팔라의 한 재래시장에 4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박중열(40) 제리백 대표는 아프리카에서 물통 ‘제리캔’(jerrycan)을 담는 가방을 만든다. 제리캔이란 우간다에서 쓰는 플라스틱 물통. 제2차 세계대전 때 쓰던 휘발유통의 이름을 따왔다.

출처: 제리백 제공
우간다 어린이들은 매일 휘발유통처럼 생긴 제리캔을 들고 물을 나른다.

-간단한 이력을 소개해달라.


“2004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해 제품디자인학을 전공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핀란드 알토 대학에서 지속가능한 디자인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2011년 논문 때문에 처음 우간다에 갔다. 핀란드에서 우간다 출신 비정부기구 활동가를 만났다. 그 분이 사회적 문제를 다룬 논문을 쓰려면 우간다를 가보라고 권했다. 2012년 5개월 동안 우간다에서 생활했다.


처음부터 가방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매일 무거운 물통을 손에 쥐고 나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특수 제작한 가방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업 구상과 제품 디자인을 거쳐 2014년 법인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했다. 원래는 나무 재질의 장난감을 만들고 싶었다. 석사 논문이 진로를 바꿔 놓은 셈이다.”


-제리백은 어떤 회사인가.


“제리캔을 담는 가방 ‘제리백’을 만든다. 제리백은 평소에는 책가방으로, 물 뜨러 갈 때는 물통을 담을 수 있는 가방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이다. 우간다에선 어린이들이 매일 제리캔을 들고 우물가에 가서 물을 떠온다. 상하수도 시설이 부족해 생활용수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로 가득 찬 제리캔의 무게는 10kg 정도다. 성인 남성이 들어도 가볍지 않은 물통을 10살 아이가 들고 옮긴다. 또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야 해서 교통사고 위험도 있다.


우간다 아이들이 물통을 편하게 나를 수 있도록 돕는 배낭을 만들었다. 운전자가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빛을 받으면 어두운 곳에서도 밝게 빛나는 반사판을 넣었다. 또 눈에 잘 보이는 원색의 천을 썼다. 제품 하나가 팔리면 하나를 기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우간다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출처: 제리백 제공
박중열 대표.

-우간다에서 제품을 만들었다고.


“첫 2년 동안은 재봉 기술이 있는 우간다 여성을 고용해 현지에서 제품을 만들었다. 한국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한국으로 물건을 부쳤다. 문제는 배송비였다. 판매가가 4만~5만원인데 배송비가 만원이었다. 또 품질을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어려웠다. 그래서 2016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 판매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우간다에서는 현지 아이들에게 기부할 제품을 만든다. 가방을 많이 팔아서 기부하는 양도 늘리는 게 목표다.”


-매출이 궁금하다.


“2018년 매출은 2억8000만원이다. 2017년에는 1억원 정도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올해엔 고용노동부에서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사회적기업은 영업 활동을 하는 동시에 취약계층을 돕는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사업 자체를 이어갈 수 없다.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작년 11월 미국 LA에 법인을 세웠다. 올해부터는 북미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지금까지 회사를 키워오면서 힘들었던 점은.


“가방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업체들이 질 좋고 값싼 상품을 대량 생산한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우간다의 사회문제를 알리는 것도 힘들다. 한국은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나라가 아닌가. 우간다에서 물을 나르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출처: 제리백 제공
제리백을 멘 우간다 아이들.

-우간다 스튜디오와 연락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매일 현지 상황을 보고받는다.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등 문제가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우간다로 날아간다. 5년 동안 한국과 우간다를 오가며 사업을 해왔다. 이제는 한 달 생산 계획을 미리 짤 수 있다.


현지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동아프리카 국가들 중 영국의 식민지였던 곳이 많다. 부족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웬만큼 영어로 할 수 있다. 나도 간단한 현지어 정도는 쓸 수 있다.”

제리백 제공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사업 초창기 때 현지 우물가를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제품을 무료로 나눠 줬다. 전날 가방을 줬던 아이와 다음날 우연히 마을 교회 앞에서 마주쳤다. 보통 아이들은 낯선 외국인한테 말을 잘 안 건다. 그런데 이 아이는 나를 기억하고 내 손을 잡아 주면서 고맙다고 했다. 가방에는 물통과 꽃이 함께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가방을 멘 뒤로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길가에 핀 꽃을 따 가방에 담아 왔더라. 몇 년 전 일이지만 지금까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 계획은.


“체험형 제품·서비스를 늘리려 한다. 매년 1월 고객과 함께 우간다로 여행을 떠나는 ‘제리백 원정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지 여성 근로자들과 제품을 함께 만들어본다. 또 시장에서 재료를 사 음식도 요리해 먹는다. 물을 나르고 아이들에게 가방을 전달하기도 한다. 고객들은 직접 우간다의 사회문제를 보고 제리백이 왜 필요한지 알아간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도 많이 깨는 것 같다.


요즘은 소비자들에게 우간다를 비롯한 제3세계의 사회 문제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가방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도 만들 계획이다. 다양한 고객들과 만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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