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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까지 출동할 정도, 대박난 동네 빵가게의 놀라운 매출

조회수 2020. 9. 28. 14: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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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성북동길에서 연매출 100억 하는 빵가게의 비밀
성북동면옥집·빵공장 창업한 윤동원 대표
외환카드 출신으로 KAIST MBA 거쳐 창업
“최고급 재료와 훌륭한 제빵사 영입해 성공”

삼청터널을 지나 길상사 방향으로 차를 몰다보면 한적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서울 성북구 대사관로. 각국의 대사관과 관저들이 몰려있어 도로명도 ‘대사관로(大使館路)’다. 한 채에 10억원을 넘어서는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다.


이 한적한 동네에 시끌벅적한 랜드마크가 하나 있다. 성북동면옥집·빵공장. 이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랜드마크 같은 외식업소다. 매주 주말이면 빵집이나 냉면집을 찾으려고 차들이 줄을 선다. 어떤 때는 주차하려는 차가 많아, 차량 흐름에 방해가 된다며 경찰관이 출동할 정도다. 가게 입구에는 아예 ‘불법 좌회전 금지. 신고가 많은 지역입니다’라는 안내문까지 큼지막하게 있다.


두 가지 매장을 합해 매출은 연간 100억원 가량 난다.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성북동사람들박앤윤의 윤동원 대표. 윤 대표는 지인과 함께 성북동사람들박앤윤(이하 성북동사람들)을 창업해 말 그대로 ‘대박’을 냈다. 말투에서도 성공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향후 확장에 대한 고민이 느껴졌다. “매출은 100억원 가량 나지만, 교외에 비슷한 콘셉트의 빵공장이 많이 생겨서 2호점을 두고 고민이 많습니다.”


jobsN은 최근 윤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윤동원 대표

-본래 요리사나 외식경영자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 대학 시절 경영학(호스피탈리티 복수전공)을 공부해 꿈이 금융인이었다. 사회 첫발은 외환카드에서 시작했다. 당시 ‘카드버블’(1990년대 말 정부가 신용카드를 통한 경기 부양을 시도하고 또 규제를 완화해서 신용카드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 하지만 그때 부실채권 문제 때문에 신용불량자 발생 등 문제도 많았다)때라 일이 참 많았다. 영업총괄팀과 종합기획팀을 거치면서 고객분석, 영업실적 관리, 해외 업무 등을 3년간 맡았다.”


-금융 전문가로서의 커리어를 왜 포기했나.(윤 대표는 재무위험관리사(FRM) 자격이 있다. 재무분석사(CFA)는 레벨2까지 합격했다.)


“당시 근무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FRM이나 CFA를 공부하는 사람도 적었던 때였다. 하지만 금융권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외환딜러나 금융전문가보다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이후 어떤 사업을 했나.


“2003년 11월 프랑스 화장품을 국내에 판매하는 법인을 세웠다. 100년 넘은 화장품 브랜드의 국내 판권을 따냈는데, 자본이 너무 부족했다. 나는 본사에 낼 라이센스비 정도만 준비했고 어떻게든 사업을 해보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광고비부터 마케팅 전략, 판매망 구축 등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었다. 수십억원이 필요한데 몇 억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셈이었다. 3억원 손해보고 1년여 만에 접었다.


그리고 나서 당시로서는 뜨는 시장이었던 중국을 배우기 위해 지인이 운영하는 중국 대상 무역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뭘 배웠나.


“2005년 중국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에 있는 무역회사였다. 다이소 같은 100엔샵에 납품하는 생활용품 제작사였다. 그곳에서 중국 시장과 소위 ‘중국사업’에 대해서 배웠고, 인맥도 쌓았다.”

출처: jobsN
윤동원 대표

기업가정신 알려준 KAIST…MBA에서 배운 것은 기업가정신·재무기법·중국시장


중국에서 ‘무역 공부’를 마친 윤 대표의 다음 행선지는 KAIST MBA였다. 2007~09년 재학했다. 그는 KAIST에서 기업가 정신을 배우고 ‘재무적 사고’를 배웠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막연하게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에서 ‘해외에 먹히는 외식사업’으로 범위를 좁히게 된 것도 이때다.


-KAIST에 입학하게 된 이유는.


“경력 전환 겸해서 해외 MBA 과정 입학을 준비했는데, KAIST를 먼저 다닌 친구의 추천으로 입학했다.”


-대학원에서 뭘 배웠나.


“중국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였다. 무역현장은 나도 꽤 배웠지만, 심도 있는 중국인과 중국,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는 대학원에서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나 역시 여러 차례 실패했지만, 결국은 실패를 이겨내고 안정적인 성공을 할 수 있었다. 그 원천이 기업가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신 재무기법을 많이 배웠다. 나도 금융 출신이지만, 자산을 펀드화(fund化)하는 등 신종 기법에 대해서는 한 수 배웠다. 물론 창업 당시에는 도움이 안됐지만, 회사를 키우려는 지금은 꽤 많은 도움이 된다.”


-2년간 전업 대학원생으로 공부하는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했나.


“아내가 일해서 나를 부양했다.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졸업 이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한 번 더 실패를 했다. 호주 시드니에서 현지 교포와 함께 요거트 아이스크림집을 했는데 1년 정도 운영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몇천만원 손해를 봤다.


이후 외환은행 때 모시던 선배의 권유로 2011년 ‘서래갈매기’를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업체 서래스터에 입사했다. 이후 해외사업을 키웠다. 전세계 10개국에 직영 10곳, 가맹 70여곳 등 80여개 매장이 있다. 이 중 중국 매장이 60곳이고, 한국 매출보다 크다. 한국 본사로 송금되는 로열티만 최소 월 2000만~3000만원 선은 된다.”

출처: jobsN
윤동원 대표

‘투잡 기업가’ 생활…고민 묻자 “2호점” 대답


윤 대표는 2015년 9월 성북동면옥집을 시작으로 성북동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 인터뷰를 한 김에 창업 과정과 성공의 비결을 물어봤다.


-왜 성북동 대사관로에 식당을 지었나.


“처음에는 면옥집부터 했다. 외식사업을 하려고 부지를 알아보는데 이곳이 눈에 들어왔다. 성북동 대사관로 중심 쪽에서 이곳만 근린생활시설용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은 대부분 주택용지다. 게다가 10년 이상 성북구에 거주한 경험으로 봤을 때, 이 쪽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감으로’ 여긴 딱 냉면집 자리라는 확신이 들었다.”(윤 대표는 지인과 함께 설립한 성북동사람들 법인을 통해 성북동 면옥집과 빵공장이 있는 1322㎡(약 400평) 부지를 40억원에 매입했다. 물론 대출을 32억원 받고 샀다. 이후 주차장이 없어 인접한 부지를 추가로 매입했다.)


-냉면집 옆에 빵집을 지은 이유는.


“처음 오픈할 때 면옥집이 있었던 곳에는 가정집이 있었다. 이걸 개조해서 냉면집으로 열었다. 옆 부지에는 새로 건물을 지었다. 건물을 짓는 동안 냉면집 손님들이 공통적으로 커피를 찾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또 냉면과 커피는 여성 고객이라는 타깃이 같았다. 그래서 스타벅스 등 주요 커피 브랜드의 입점을 요청했는데, 다 거절당했다. 그래서 빵집 겸 카페를 차리게 됐다.”


-냉면이나 빵, 커피에 대한 노하우가 없지 않았나.


“그렇다. 요리사, 파티셰 등을 소개받아 영입했다.”


-어떻게 영입했나.


“밀가루 등 식자재 납품상들에게서 이름이 알려진 분을 영입했다. 식자재 유통업자들은 고객사가 잘되면 꾸준히 납품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고객사에 좋은 요리사를 소개해 줄 수 있다.”


-재료는 어떻게 쓰나.


“딱 한 가지 원칙이 있다. 가장 비싼 재료를 쓴다. A급 요리사를 영입하고, 비싼 재료를 쓰면 음식 맛은 난다고 생각한다. 다만 냉면집 콘셉트를 잡을 때는 고민을 좀 했다. 오장동 등 전통이 강한 스타일로 갈 것이냐, 아니면 달콤·매콤하면서도 트렌디한 강남 백화점 스타일로 갈 것이냐에 대한 선택이다. 요리사와 상의해 후자로 잡았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성북동면옥집·빵공장을 운영하지만, 서래스터의 해외사업 총괄도 여전히 겸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을 반으로 나눴다. 낮 2시까지는 성북동에서 일하고, 낮 2시 이후와 해외 출장을 가는 시간은 서래스터를 위해 일한다. 사실 쉴 새 없이 미팅도 하고 재료도 구하러 다녀서 세부적인 일과는 그때그때 다르다. 월 1회 정도 중국 등 해외 출장을 간다.


그리고 요즘에는 2호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성북동면옥집·빵공장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니 이 브랜드로 2호점을 내고 싶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콘셉트의 빵공장이 교외에 몇 개 생겨서 고민이다.”


-사업을 하면서 멘토가 있다면.


“나를 요식업으로 입문시켜준 서상규 선배가 있다. 외환카드 재직 당시 내 사수였던 과장인데, 그때 나를 좋게 봐서 새로운 기회를 접하게 해줬다. 그리고 성북동사람들을 창업하기 전 중국 사업을 맡겨 준 박철 서래스터 대표가 있다. 해외사업의 기반을 잡아준 것은 물론이고, 지금도 파트너 겸 멘토로서 많은 도움을 준다.”


-외식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내가 다른 창업자들에게 조언할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 갖고 있다. 그리고 요식업은 매력이 있다. 마케팅부터 관리, 영양, 인성 등 사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업종이라고 생각한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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