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 남자, 누군가 했더니..

조회수 2020. 9. 28. 15: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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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대신 '거리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서울역 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할 때였어요. 노숙인 한 분을 시설로 데려와 목욕을 시켜드렸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안내도 해드렸어요. 그런데 불과 한 시간도 안 지나서 갑자기 쓰러졌어요. 심폐소생술까지 했는데 결국 돌아가셨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야기를 나누던 분이었어요. 정말 허망했죠.


집이 아닌 길이나 공원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말하는 노숙인. 서울시가 4월 발표한 ‘2018년 노숙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에만 3478명이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이중 보호시설에서 머무르는 노숙인은 2747명. 나머지 731명은 거리에서 먹고 자는 일을 해결한다.


남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노숙인 옆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노숙인에게 무료 급식소를 안내한다. 또 노숙인이 머무를 수 있는 보호시설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일하는 8년차 사회복지사 이상은(35)씨를 만났다.

출처: jobsN
이상은 사회복지사.

-간단한 이력을 소개해달라.


“2012년 3월 입사했다. 노숙인에게 잘 곳을 제공하는 보호시설 운영을 맡았다. 오후 6시20분부터 10시까지 숙박 신청을 받았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상담도 했다. 이후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거리 상담활동을 했다. 또 노숙인들에게 쪽방이나 고시원을 지원해주는 일도 했다. 2018년부터는 후원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어떤 기관인가.


“서울시에서 위탁해 성공회유지재단이 운영하는 노숙인 복지시설이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상담·의료 서비스도 한다. 또 노숙인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용노동부 등 다른 기관과 함께 민간 일자리를 주선해준다.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노숙인을 고용하기도 한다. 청소 등 기관 운영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긴다. 직원 수는 약 50명이다.”


-주로 어떤 분들이 노숙을 하나.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1998년 문을 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을 잃어 거리에 나온 분들이 많았다. 이혼 등 가정 해체로 노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은 노숙 생활을 하는 이유가 다양해졌다. 가정 불화나 건강 문제 등으로 스스로 거리에 나온 사람도 많다.


노숙인이 유별난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누구나 장애가 생길 수 있지 않나. 노숙인 중에서도 중소기업 사장이나 임원이었던 사람도 있다. 또 대학 교수를 하다가 개인적인 이유로 거리에 나온 분도 있었다.


노숙인 대부분 보호시설이나 쪽방에서 생활한다. 지하철역 근처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노숙인은 소수다. 거리 노숙인 일부는 알코올·정신 질환이 있다. 이 소수의 모습이 노숙인 전체의 이미지로 보여지고 있어서 안타깝다.”

출처: 조선DB
서울역 앞의 노숙인.

-거리에선 무슨 상담을 하나.


“먼저 노숙인들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확인한다. 여름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있는지, 겨울철에는 동사할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있는지 본다. 그 다음에는 노숙인에게 다가가 기관을 소개하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 듣는다. 직장을 못 구하고 있다고 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밥을 못 먹었다고 하면 무료로 식사할 수 있는 곳을 알려준다.”


-위험하지는 않나.


“1998년 설립 후 21년째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 각지에서 직원들이 365일 노숙인들을 만났다. 대부분 유니폼만 봐도 우리가 누군지 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노숙인에게 다가가지는 않는다. 눈 인사부터 시작해 천천히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알코올이나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부 회의를 열고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논의하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 노숙인이 많나.


“서울역 주변에 노숙인이 가장 많다. 지하도를 따라 을지로까지 노숙인들이 생활한다. 영등포·청량리 근처에도 노숙인들이 있다. 요즘에는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잠실 석촌호수 근처에도 노숙인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것은.


“하루 단위로 잠자리를 제공한다. 저녁에 입실해 다음날 아침 퇴실한다. 다음날 저녁에 다시 신청하면 또 하룻밤 잘 수 있다. 사회복지사와 상담한 결과에 따라 수용 여부를 정한다. 또 저녁 식사도 준다. 겨울에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다. 매일 160~180명 정도 온다. 많을 땐 200명까지 잔 적도 있다. 요즘은 하루 120~150명 정도 찾는다.”

이상은 사회복지사 제공

-센터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시설에서 생활하려면 규정을 따라야 한다. 당연히 술을 마실 수 없다. 또 자는 시간이나 씻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시설 구조가 찜질방과 비슷하다. 단체 생활을 해야 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좀 불편하더라도 밖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 하는 노숙인들이 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90세 노숙인이었다. 오래 전 경찰이 실종신고를 접수한 상태였다. 살아 있었음에도 여러 행정적인 지원을 못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요건을 충족했다. 월 70만원가량 지원받을 수 있었다. 또 고령이라서 돌봄 서비스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종 기간이 길어져 법원이 이 노숙인을 사망자로 분류한 상황이었다. 수소문 끝에 아들을 찾았다.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지 않았다. 다시 도와주면 또 사고를 칠 거라 했다. 주민등록을 살리는 걸 거부하더라. ‘그냥 이렇게 살게 두라’고 했지만 이분은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었다. 결국 사회보장번호(임시 주민번호)를 발급받아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다시 센터로 돌아오는 사람은 없나.


“물론 있다.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또 스스로 노숙인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뽑는 직무에 따라 간호사나 영양사도 지원할 수 있다. 그 외 우대조건은 없다. 예전에는 빈곤퇴치 운동가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주로 왔다. 요즘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


-사회복지사 처우는.


“다시서기희망종합센터처럼 정부 위탁으로 운영하는 기관은 처우가 비슷하다. 같은 일을 하면 급여도 같다. 우리 기관은 정규직·계약직 사회복지사를 뽑는다. 정규직 사회복지사는 9급 공무원의 95% 정도 받는다. 2012년 입사했을 때 첫 월급은 200만원 정도였다.”

이상은 사회복지사 제공

-뿌듯할 때는.


“사회복지사는 원래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한다. 노숙인을 돕는 우리는 직접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우리가 도움을 줬던 노숙인들이 몇 년 뒤에 음료수 박스를 들고 찾아올 때가 있다. ‘사회복지사님 덕분에 잘 살고 있다’고 웃으며 음료수를 건넨다. 이럴 때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애로사항은.


“노숙인에게 오늘 당장 잘 곳을 마련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노숙인이 빈곤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도록 돕는 건 쉽지 않다. 스스로 거처를 마련하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목표다. 짧은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종종 힘에 부칠 때가 있다. 또 현장에서 알코올·정신 질환이 있는 분들이 욕을 하거나 과격하게 행동할 때도 있다.”


-이 분야 관심 있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노숙인 복지시설에 들어왔다. 직접 발로 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숙인 복지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그만큼 보람도 느낄 수 있다. 관심이 있다면 지원해보라.”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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