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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이스크림 장인’으로 뽑힌 최초의 한국인, 알고보니…

“오직 한 길만 바라봐 해외에서 인정받은 한국인 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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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장인’(匠人). 현실에서는 누구나 실력을 인정하는 한 분야 전문가를 부르는 말로 쓴다. 이들은 한 우물만 파면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50년간 맞춤 정장을 만들어온 이경주(70) 종로양복점 대표, 55년 동안 성우이용원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이남열(69) 이발사 등이 대표적인 장인이다.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장인들이 있다. 전문 분야는 다르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같다. 이들은 예술 제본·아이스크림 제조·현악기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다.

JTBC News 유튜브 캡처

15년 동안 책 어루만져 프랑스 대통령에게도 인정


예술 제본가 조용덕(44)씨. 책을 한장씩 뜯어내 다시 묶어 새로운 천이나 가죽을 입힌다. 오랜 세월에 겉표지나 속지가 바랜 책을 복원하는 것도 그의 일. 프랑스 파리에서 15년째 예술 제본을 하고 있는 조씨는 한 권 작업에 2~6개월을 쏟아붓는 장인이다.


한국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그는 2002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인 캘리그라피를 배웠다. 2004년 책에서 우연히 제본을 하는 중세시대 수도사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봤다.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제본 공방에서 문하생 생활을 시작했다. 2007년 제본 분야 프랑스 공인 자격증을 땄다. 지금은 파리 13구에서 동업자와 함께 공방을 운영한다.


조씨는 올해 프랑스 최고 장인에게 주는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 제본 분야 수상자로 뽑혔다. MOF는 프랑스 정부가 4년마다 200여개 전문직업 종사자를 심사해 선정하는 국가 공인 명장 자격이다. 조씨는 4년 전 결선에서 탈락했다. 재수 끝에 ‘예술 제본 장인’으로 인정받았다. 5월13일 소르본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메달을 받았다. 엘리제궁 만찬장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김영모와 김영훈 부자.

출처조선DB

이날 또 다른 한국인도 MOF 메달을 받았다. 김영훈(38)씨가 아이스크림 제과 분야 장인으로 뽑힌 것. 김씨는 노동부에서 선정한 기능한국인 제과 1호 '김영모과자점' 대표 김영모(66)씨의 둘째 아들이다. 요식업 분야에서 외국인이 MOF 수상자로 뽑힌 건 김씨가 처음이다.


프랑스 직업학교에서 제과를 배운 그는 2011년 MOF에 도전했다. 제과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대회에서 고배를 마신 김씨는 묵묵히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8년 만에 아이스크림 제과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맛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좋은 재료로 최고의 맛을 내려고 노력했다”고 문화일보에 말했다.


커피 외길 걸어 ‘세계 1위 바리스타’ 오르기도


4월11~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WBC(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 2003년 호주인 폴 바셋이 우승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회다. 전주연(32) 바리스타는 올해 WBC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예선 포함 전 세계 바리스타 3000명 중에서 1위였다.


유치원 선생님을 꿈꾸던 전씨.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4학년 때 어린이집에 실습을 나갔다. 자신이 꿈꾸던 유치원 선생님의 모습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실력 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커피 전문가로 꿈을 바꿨다. 남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과감히 진로를 바꾸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바리스타 전주연씨.

출처WCE 제공

2009년 WBC를 알고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바리스타를 꿈꾼다면 WBC 무대에는 꼭 한 번 올라야겠다고 다짐했다. 세계 대회 출전 자격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국내 대회에서 3년 연속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결선에 올라갔지만 우승을 못했다. 세계 대회에 나가려면 한국 대회에서 1등을 해야 했다.


전씨는 10년 만인 2018년 한국 대회에서 처음 1위를 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대회가 열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갔다. 결과는 14위. 전씨는 “이번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연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2019년 또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 대회에 이어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던 전주연씨는 이제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세계적인 바리스타다.


첼로 만들어 ‘스트라디바리우스’ 고향에서 금메달


첼로를 만들어 이탈리아에 이름을 알린 청년도 있다. 2018년 9월 정가왕(29)씨는 제15회 크레모나 국제현악기제작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첼로 부문 금메달을 땄다. 크레모나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 고(故)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고향. 1976년부터 3년마다 열리는 권위있는 대회다.

TV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정씨는 단풍나무로 만든 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출품했다. 현의 균형감과 깊은 소리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크레모나 콩쿠르는 수상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이 없으면 우승자를 뽑지 않는다. 정씨는 2009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첼로 부문에서 1위를 했다. 대회를 주최한 크레모나 바이올린 박물관은 그가 만든 첼로를 2만4000유로(약 3200만원)에 매입했다. 이 작품은 역대 수상작과 함께 박물관에 영구 전시할 예정이다.


명장들은 입을 모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전주연 바리스타는 “새벽 2~3시까지 연습하고 쪽잠을 잔 뒤 출근길에 나섰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WBC 무대에 서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자(父子) 명장’ 김영모씨도 한 분야에서 인정받으려면 끈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입구까지만 가본 사람들은 정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른 채 불평만 하다 끝납니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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