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2번 망한 30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것으로 대박났다

조회수 2020. 9. 29. 10: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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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제일 싫었는데, 막걸리로 대박 났네요
막걸리 양조장·스타트업 제이케이크래프트
200일 기다려 만드는 막걸리 '기다림'
막걸리 누룩으로 만드는 비누·샴푸도 인기

부산 사직구장 근처에는 60평 남짓한 규모의 막걸리 양조장이자 스타트업 ‘제이케이크래프트’가 있다. 간판이 없어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향긋한 꽃향기와 술냄새가 풍긴다.


이곳에서 만드는 막걸리 이름은 ‘기다림’. 꼬박 200일을 기다려 종류별로 하루 200병만 만든다. 부산 특산주로 뽑혔고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막걸리 효모로 비누와 샴푸도 만든다. 의외의 히트상품이다. 주문생산 플랫폼 카카오메이커스에서만 2만7000개를 팔았다. 2018년 제이케이크래프트의 매출액은 4억원. 제이케이크래프트를 이끄는 조태영(37) 대표가 직접 막걸리를 빚는다. 직원 8명이 함께한다.


조 대표는 “사실 막걸리가 제일 싫었다”고 한다. 막걸리를 빚는 것도 모자라 막걸리 효모로 만든 제품까지 개발한 그가 털어놓은 뜻밖의 고백이다. 그는 일본에서 8년간 와인을 공부했다. 일본 공인 소믈리에이자 사케 전문가다. 2017년 건국대 양조학 석사를 땄다. 지금은 부산신라대 제약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효모, 유산균 등 미생물을 연구한다. 조 대표의 창업 계기와 제이케이크래프트의 경쟁력에 대해 들었다. 

출처: jobsN
부산 사직동 '제이케이크래프트'에서 만난 조태영 대표

막걸리 비누·샴푸 경쟁력


‘기다림’ 막걸리는 ‘막 걸러서 만든 술’ 이미지를 깼다. 조 대표는 매일 아침 병에 담을 막걸리를 시음하는 일로 하루를 연다. 고두밥을 짓는 일도 그의 몫이다. 막걸리 200병을 만들려면 쌀 50kg으로 밥을 지어야 한다. 술을 발효할 때 필요한 누룩을 만드는 데 100일이 걸리고 술을 담가 발효하는 데 100일이 걸린다.


젊은층이 막걸리를 싫어하게 만드는 요인을 모두 뺐다. ‘막걸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인공적인 단맛과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탄산이다. 또 심한 숙취도 막걸리를 꺼리게 만든다. “탄산이 숙취를 유발하는 대표 원인인데요. 인공으로 탄산을 주입하는 콜라나 사이다와 달리, 알코올에서 나온 탄산은 메탄가스를 포함하고 있어서 몸에 좋지 않습니다. 탄산이 생기지 않도록 발효법을 달리했어요.”


막걸리는 병 라벨에 16, 25, 34 셋 중 하나의 숫자를 단다. 언뜻 보면 알코올 도수 같지만 아니다. ‘미생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온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숫자 16을 단 막걸리는 16도에서 100일간 발효했다는 뜻이다. 향기가 풍부하고 쌉싸름한 맛이 특징이다. “잘 발효된 막걸리는 부드러운 꽃향기와 신선한 과일향이 납니다. 각 온도마다 향과 목넘김이 다릅니다. 그만큼 미생물, 즉 효모가 중요해요.”

출처: 제이케이크래프트 홈페이지
조 대표가 만드는 기다림 16, 25, 34, 각각 하루 200병씩만 만든다. 라벨에 적힌 숫자가 고객 관심을 유도한다. 조 대표는 "고객이 한번이라도 '16도가 무슨 뜻이다'고 묻게 만든다"며 "젊은층에게 '전통술', '막걸리' 임을 강조하지 않고 매력을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 모 화장품 광고를 보면 ‘술 빚는 장인의 손이 아기 같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이다. 이는 누룩 덕분이다. 누룩은 곡류에서 번식한 효모를 말한다. 효모는 발효를 일으키는 ‘균’을 말한다.


“저는 늘 술은 사람이 아니라 ‘미생물이 만든다’고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보조역할 뿐이에요. 효모는 미생물이자 균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에선 효모, 균 연구가 미흡해요. 술을 비롯해 고추장, 된장, 김치 등 우리나라 산업에서 사용하는 효모 99.5%가 수입산입니다. 단 0.5%만 토종균입니다. 효모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아쉽죠.”


조 대표가 막걸리 누룩을 이용한 비누와 샴푸를 만든 이유다. 막걸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을 때부터 염두에 둔 아이템이다. 우리 토종밀인 앉은뱅이밀로 만든 누룩을 이용해 수제 비누와 샴푸를 개발했다.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효모 덕분에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아도 피부에 도움을 준다. 거품도 풍부하게 난다. 그런데 수제 비누는 원료는 좋지만 쉽게 물러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조법을 자체 개발했다.


“아무리 원료와 성분이 좋아도 사용할 때 불편하면 소비자는 다시 찾지 않습니다. 비싸게 주고 산 비누인데 몇번 쓰니까 녹아버린다면 무용지물이에요. 반면 막걸리 비누는 단단해서 물러지지 않습니다.”

출처: 제이케이크래프트 제공
막걸리 효모로 만든 비누와 샴푸.

늘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고민했다


2003년 전역 후 3개월 만에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도 겨우 읽을 때였다. 당시 외국인이 일본 대학에 입학하려면 일본어능력시험 2급을 따야했다. 난이도는 1~2년 학습자 수준이다. 그는 단 2문제 차이로 ‘턱걸이’ 합격을 했다.


“어릴 때부터 술, 특히 와인·칵테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일찍이 진로를 정했죠. 관광·식음료 교육이 잘 갖춰져 있는 일본을 택했습니다. 3개월 동안 시험 전날까지 주구장창 기출문제만 풀었습니다. 대학 면접 대비도 일어 잘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질문과 답을 통째로 외웠어요. 언어는 수단일 뿐이었기 때문에, 만약 일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어도 무작정 갔을 거예요.”


일과 언어를 동시에 배우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하루 13시간 동안 접시만 닦을 때도 있었다. 낮에는 학교 공부, 밤에는 일을 했다. 그렇게 도쿄관광전문대에서 2년간 식음료를 공부하고 신주쿠 힐튼호텔에서 소믈리에로 일했다. 그러다 또다시 토요대에서 4년 동안 관광학과 외식산업을 공부했다. 학비는 늘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학업과 병행하며 일할 때도 제가 좋아하는 와인, 식음료를 공부할 수 있는 곳에서 했습니다. 와인 판매도 하고 미슐랭별을 받은 오래된 음식점에서 일했어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2011년 귀국했다. 소믈리에로 일하며 직장인으로서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소믈리에는 와인의 품종, 역사 등 ‘와인 뒷이야기’를 고객에게 전달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제가 와인을 만들어보지도 않고 양조장의 철학을 말한다는 점이 고민이었어요. 제가 공감하지 않는데 고객이 공감할까 하는 의문이 있었죠. 또 5년 동안 매일 50병을 시음해봐도 최고급 와인은 못먹어본 게 많았어요. 그런데도 ‘마셔본 것처럼’ 말해야한다는 걸 깨달으니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제겐 더이상 소믈리에 일이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농업을 배우고자 호주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비를 벌기 위해 부산대 앞에 6000만원을 투자해 카페를 차렸다. 하지만 미숙한 운영으로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유학비를 벌기는커녕 유학을 포기해야 했다. “제가 일본에서 일했던 곳이 늘 손님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해서 잘된다’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직원으로 일할 때와 사업을 운영하는 건 천지차이였죠.”


이후 유통·무역 회사를 차렸다. 헌옷을 수입해 동남아로 재수출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얼마 안가 2012년 폐업했다. “철이 없었어요. 이전 실패를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공부와 경험이 부족한 분야에 섣불리 도전하면 쓴맛만 본다는 걸 깨달았어요.”

출처: 제이케이크래프트 제공
막걸리 누룩을 만드는 모습.

’막걸리에 대한 편견 깨고 싶었다’


제일 잘하는 일로 돌아왔다. 전국으로 와인·사케 강의를 다니면서 건국대 대학원에서 양조학을 공부했다. 또다시 ‘주독야경(晝讀夜耕)’을 했다. “문과인 제가 이과인 생물, 화학을 공부하려니 첨엔 만만치 않았습니다. 중학교 생물, 화학 교과서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이때 막걸리 등 우리 전통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러 술을 직접 만들어보고 양조장에 주조 체험을 다니면서부터다. 원래 막걸리는 입에도 안 댔다. 선호하는 술 10 순위를 매기라고 하면 막걸리는 순위에 없었다.


“막걸리 제조 체험을 가면 공감하기가 힘들었어요.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었습니다. 품질관리가 안되요. ‘물 얼마나 넣어야 하나’고 물으면 ‘한 됫박 넣으면 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냥 물이 퍼지는 대로 넣어요. 온도도 ‘손등이 따뜻할 정도’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너무 다르죠. 그렇게 만들다보니 매번 맛이 다릅니다. ‘수제라서’ 그렇다기엔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편차가 아니었습니다.”


전통이기 때문에 지켜야한다는 생각에도 공감이 힘들었다. “‘왜 막걸리를 만들어야 하냐’고 하면 ‘우리 전통이라서’, ‘우리 술이라서’가 이유입니다. 그런데 전통만 강조해선 젊은층이 관심 갖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 “사실 막걸리는 잘못이 없었어요. 단점을 걷어내고 장점을 강화하니 막걸리도 매력이 넘쳤습니다. 고루한 이미지와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또 제가 원하는 소규모 양조장에 적합한 주종이었어요. 막걸리는 가양주입니다. 집에서 담그는 술이에요. 반면 사케나 맥주는 이미 공장화가 됐습니다.”

출처: 제이케이크래프트 제공
조 대표가 들고 있는 게 우리 토종밀인 '앉은뱅이밀'로 만든 누룩이다.

차별화를 위해 양조장을 시골이 아닌 도심에 지었다. 자본금은 2억원. 앞서 두번의 사업 실패로 벼랑 끝에 섰다. 각오가 남달랐지만 행정 문제로 막걸리를 만들기도 전에 폐업 위기에 닥쳤다. “먼저 시설을 갖추고 구청 등 관련 기관에 허가를 받으러 가야 합니다. 저도 양조장을 차린 다음 서류를 갖춰서 허가를 받으러 갔는데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이유는 도심에 양조장을 지은 ‘선례’가 없어서였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제가 젊어서였어요. ‘젊은데 술은 만들어봤냐’면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죠. 그렇게 1년 넘게 아무것도 못하고 흘려 보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 레스토랑 40여군데에 납품한다. 백화점과 마트 등에서 입점 문의가 들어온다. 최근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했다. “무리하게 유통망을 늘리고 싶진 않습니다. 소규모 양조장이기도 하고 품질관리를 위해서입니다. 하루 200병만 만드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게 목표입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싶습니다.” 

출처: jobsN
조태영 대표.

매력 있는 전통이 100년 간다


그는 막걸리 효모, 유산균을 이용한 바이오산업까지 내다보고 있다. 효모 연구와 기술이 회사의 핵심 자산이다. 앞으로도 선보일 제품이 많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 효능이 좋다고 해도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소비자가 효용을 느끼려면 생활 속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생각에 생활용품부터 시작했습니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다음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재해석할 생각이다. “전통도 매력이 있어야 해요. 다음 세대가 공감해야 전통이 유지되고 100년이 갑니다. ‘크래프트’가 손수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입니다. 다음 세대에게 먹힐 아이템을 끊임 없이 연구할 겁니다. 저 ‘미친놈’ 소리 좋아합니다. ‘막걸리로 이런 것도 하느냐’는 소리 꼭 듣겠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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