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 100평 VIP 공간에 공룡 꽉꽉 채워 넣은 사연

조회수 2020. 9. 29. 10: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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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맞아 연회장 통째로 공룡 채웠죠" 호텔 패키지 개발이 직업인 사람
롯데호텔서울 조미란 매니저 인터뷰
은행원 꿈꿨지만 인턴 후 진로 변경
“휴가 중에도 전화기에 손이 간다”

어린이날을 앞둔 5월 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 본관 37층 연회장에는 다소 특별한 조형물들이 설치됐다. 국산 애니메이션 업체 초이락컨텐츠팩토리가 개발한 ‘공룡메카드’ 조형물들이다. 연회장 한 쪽에는 어린이들끼리 ‘배틀’을 할 수 있는 공룡 팽이 경기장이, 다른 한 켠에는 맨발로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생겼다. 입구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형 공룡 모형들이 세워졌다.


이날 오픈과 동시에 가족 동반 고객들이 꾸준히 들어섰다. 이를 초조하게 살피며, 연회장에 불편함이 혹시라도 있는지 살피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공룡 놀이터와 객실 이용을 결합한 패키지를 개발한 조미란(32)씨. 그는 롯데호텔서울 판촉팀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주된 업무는 객실 패키지 개발 및 판매다.


jobsN은 2일 조씨를 만나 인터뷰 했다.

출처: jobsN
조미란 매니저.

-당신은 누구인가.


“9년차 호텔리어다. 예약과에서 7년간 근무한 뒤 판촉을 담당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호텔 패키지를 개발하고 영업하는 일을 맡고 있다.”


-호텔업에 투신하게 된 이유는. 관련 학과를 나왔나.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에는 금융권으로 진출하고 싶었다. 안정적이고 수입도 많지 않나. 이 때문에 졸업 전 자산관리사, 한국재무설계사(AFPK), 증권투자상담사 등 자격증도 땄다. 그런데 투자증권사에서 영업 담당 인턴을 해보면서 진로를 바꿨다. 돈과 숫자에 내가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이화여대 국제회의센터에서 7개월간 교육을 받으면서 호텔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입사 당시 원서는 몇 개 냈나.


“열 개 좀 안되게 냈다.”


-특급호텔이 동시에 열 곳에서 공채할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호텔은 서너 곳 냈고, 금융사에 5곳 가량 냈다. 금융으로는 안 가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래도 졸업반이라 취업의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몇 곳 냈다. 다행히 롯데호텔에 합격해 입사했다.”


-첫 부서는 어디였나.


“예약 담당이었다. 판촉을 하기 전까지 나는 7년간 예약을 맡았다. 2011년 입사 후 롯데호텔서울 판촉팀에서 예약을 주로 맡았다. 2017년에는 롯데 속초리조트 오픈 때문에 파견을 가서 7개월간 객실팀 소속으로 역시 예약을 담당했다.”


-같은 직무인데 왜 팀이 다른가. 그리고 지역에 따라 예약 직원이 하는 일이 다른가.


“일단 예약과는 전화를 받고, VIP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 등이 기본 업무다. 하지만 위치와 고객층에 따라 방점이 다르게 찍힌다. 가령 서울 호텔의 경우에는 MICE(회의·관광·전시·이벤트) 행사 고객이 절대 다수다. 따라서 예약을 받으면서, 의전이나 부대 서비스 등을 함께 조정해야 한다. 이를 패키지처럼 상품으로 묶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판촉팀에서 일한다. 하지만 속초는 휴양형 리조트다. 체크인 및 체크아웃, 객실관리를 맡는 객실팀과 함께 일하면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객실 관련 민원을 해결하기 좋다.”


-예약을 담당하면서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면.


“세제 알레르기가 있는 일본인 고객이 있었다. 침구나 시트도 물세탁을 해야 하고, 타월 역시 마찬가지다. 세제 성분이 남아 있는 섬유가 피부에 닿으면 얼굴 등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고객이었다. 이분을 위해 침구 등을 다시 준비하느라 관련 부서와 많은 협의를 했다.”


-까다로운 고객이 오면 내부 부서에서 볼멘 소리도 많겠다.


“물론이다. 타 부서에 일을 더 시키는 느낌이라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jobsN

VIP 많은 37층에 공룡 놀이터…“호캉스 트렌드 아까워서”


조 매니저는 최근 롯데호텔서울 37층에 공룡메카드 체험관을 열었다. 공룡메카드는 어린이들이 게임카드를 바탕으로 작은 공룡(타이니소어)을 키워 배틀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우정을 그린 만화영화다. 체험관에서는 투숙하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게임, 팽이 돌리기, 덤블링, 모래놀이 등을 할 수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호텔에 놀이터를 100평 가까이 되는 크기로 지은 이유가 있나.


“그동안 롯데호텔서울은 비즈니스를 전담으로 하는 특급호텔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도 내국인 투숙 비중은 15%에 그친다. 반면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 아쿠아리움 등이 근처에 있는 잠실 롯데호텔월드는 내국인 비율이 50%에 달한다. 그런데 요즘 ‘호캉스’(호텔 바캉스) 트렌드가 이제는 표준처럼 굳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걸 바꿔보고 싶었다. 호캉스 트렌드를 놓치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약간은 파격적으로 VIP 구역으로 분류되는 37층에 놀이터를 만들었다.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5월 1~6일 운영한다.” (37층은 놀이터가 있는 연회장이 면적의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은 고급 중국음식점 도림이 쓴다. 2018년 북한 대표단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간 곳이기도 하다.)


-예약을 하다가 패키지 설계를 하는 판촉매니저로 업무를 바꾼 이유는.


“예약과에서 처음에는 고객 응대를 담당하다가, 나중에는 온라인 여행사의 예약 및 프로모션을 담당했다. 온라인 여행사에서 판매한 객실이 잘 배정되는지, 예약에 이상이 없는지를 관리했다. 그러다가 ‘온라인 여행사는 네가 좀 잘 아니, 아예 맞춤형 상품을 설계해 보라’는 지시를 받고 직무를 바꿨다.”


-직무 변경이 싫지는 않나.


“호텔은 하나의 작은 마을과 같다. 어떤 곳에서는 방을 내어주고, 다른 곳에서는 음식을 주고, 어떤 사람은 손님의 스케줄을 관리한다. 이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순환보직이 원칙처럼 굳어져 있다. 나 역시 예약을 하면서 보지 못했던 호텔 경영의 다른 면을 배울 수 있다.”


-자신이 담당한 패키지 상품 중 대표작이 있다면.


“캠핑 상품이 있다. 객실 내에 어린이용 텐트를 설치하고, 샤워가운과 트래블키트를 제공했다. 아이를 위한 색칠공부 세트도 넣었다. 꽤 반응이 좋았다. 2018년 크리스마스 때는 선착순 100팀 투숙객을 위해 산타클로스 행사를 열었다. 호두까기 인형, 유니세프 양말, 마스크팩, 더치커피 등을 넣은 박스를 전달했다. 고객 반응도 좋았고 내부 평가도 좋았는데, 내가 산타옷을 입고 배달해야 했던 점이 고역이었다.”

출처: 롯데호텔 제공
'올 어바운 키즈' 패키지. 객실 내에 어린이용 텐트와 장난감을 비치해 재미를 살렸다.

출근하면 경쟁사 동향 체크…산타클로스도 직접 해


호텔리어를 만난 김에 몇 가지 궁금증에 대해서도 물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아침에 출근하면 신문 기사를 읽는다. 경쟁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신라, 포시즌스 등 주요 경쟁사는 아예 홈페이지를 들어가 신규 패키지를 리뷰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나서 제휴 거래처를 만난다. 상품 구성에 대해 조건을 협의한다. 가서 만나기도 하고 전화를 할 때도 있다. 그 외에는 사무실에서 상품 기획을 하거나, 홍보용 자료를 만들기도 한다. 롯데멤버스(롯데그룹 포인트 ‘엘포인트’를 운영하는 기업)와 협의해 고객들에게 문자를 뿌려달라는 요청도 한다. 그리고는 저녁에 실적과 상품을 분석하고 퇴근한다.”


-소위 ‘몸으로 하는 일’은 없나.


“많다. 직접 선물을 포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창고에 적재하거나 프런트에 전달하는 것도 전부 직접 해야 한다. 패키지를 설계하는 것은 정말 일의 일부고, 이 패키지가 잘 운영되는지는 담당 매니저가 몸으로 겪어야 한다. 요즘도 연휴 시즌에는 하루 이틀 정도 출근해서 고객 반응을 살핀다.”(조 매니저는 이번 어린이날 시즌에는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떠난다.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에 나와 패키지 점검을 한 덕분이다.)


-직업병이 있다면.


“호텔 투숙을 하면 체크인부터 칫솔까지 모든 것을 살펴본다. 내가 고른 패키지가 최상의 선택이었는지 늘 고민한다. 그리고 예약과와 판촉팀을 거쳤기 때문에 워낙 전화를 많이 받아왔다. 이 때문에 휴가 중에도 늘 전화에 집중한다.”


-어떤 사람이 호텔업에 적합한 인재인가.


“기본기를 갖추지 않고 스페셜리스트만 고집하려는 호텔리어 지망생들이있다. 호텔에 대해 환상을 버려야 한다. 궂은 일부터 배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여러 부서를 거치면 저절로 현장 경력과 실력이 쌓인다.”(조 매니저는 예약과 재직 당시 호텔롯데 전체에서 전화모니터링 평가 1위, 영업사원 중 사내 세일즈스타상 2회를 받은 경험이 있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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