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jobsN

왕따, 3수, 공시생 7년…관종 아나운서가 털어놓은 뜻밖의 얘기

자존감 바닥 취준생→관종 아나운서, 그리고 새로운 도전

340,818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스스로 '관종'이라 말하는 장성규 아나운서
디지털 콘텐츠·예능 방송에 집중
돌고 돌아 찾는 진짜 꿈

관종. 관심종자.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 싶어하는 정도가 남보다 심한 이를 가리키는 유행어다. 누군가는 ‘넌 관종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화를 내겠지만 아나운서 장성규(36)는 반긴다. 악플에 대댓글을 달고 한술 더 떠 캡처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장근석, 비와이를 패러디하고 망가지는 분장도 거리낌 없이 한다. 사람들이 ‘골때린다’ 하면 ‘고맙다’고 반응한다.


자신을 향한 비난이나 험담도 재치있게 웃어 넘기는 ‘멘탈 갑’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그는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시절을 보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어요. 대학은 3수를 했죠. 대학생 때는 공무원·공인회계사 준비만 7년을 했어요. 자존감이 바닥이어서 남들이 칭찬을 해줘도 ‘그냥 하는 말일 거야’ 하고 스스로를 부정했습니다.”


자존감 바닥 취준생 시절을 딛고 일어난 그는 아나운서·MC들의 롤모델로 성장했다. 얼마 전엔 ‘프리’ 선언을 했다. 디지털 콘텐츠와 예능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젠 자신의 인생을 마주볼 줄 안다. 어린 시절부터 직장인으로서 7년간의 삶을 담은 에세이 ‘내 인생이다 임마’도 냈다.

JTBC 사옥에서 만난 장성규 아나운서. 그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범관종'을 꿈꾼다. "사실 저는 멘탈이 약해요. 못이겨서 악플 캡처하고, 해시태그 달면서 괜찮은 척 하는 거예요. 저를 응원해주는 댓글을 보면서 치유합니다."

출처jobsN

디지털 콘텐츠계 선구자 아나운서


활동 영역에서 ‘디지털 콘텐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튜브에서만 2개 고정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예능 뉴스 ‘뉴스페이스’와 관종을 내세운 ‘관종투어’다. 조만간 직업 소개 콘텐츠 ‘워크맨’도 시작한다.


일찍이 디지털 콘텐츠에 뛰어 들었다.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유트브 채널 ‘짱티비씨’를 시작했다. 아나운서 중에선 처음이자 유일했다.


영상 출연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기획 단계부터 스태프와 함께한다. “식사 하다가, 수다 떨다가 아이디어가 나와요.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를 업그레이드 하기도 하죠. ‘짱티비씨’할 때 신촌 포장마차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영상을 찍은 적이 있어요. 떡볶이, 어묵 국물을 담아드리면서 시민분들과 소통을 했습니다. 의미 있고 반응도 좋았어요. 조회수가 30만이 넘었습니다. 여기서 착안한 방송이 ‘워크맨’입니다. 직업을 하루 동안 경험하면서 그 직업의 장단점을 소개하는 콘텐츠예요.”

매주 화요일 밤 9시 20분 유튜브에서 생방송 하는 '뉴스페이스'.

출처뉴스페이스 영상 캡처

그가 출연 하는 디지털 콘텐츠는 ‘B급’을 표방한다. 유치함과 촌스러움, 어설픔이 유머 속에 묘하게 섞였다. 정확한 발음과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뻔뻔한 표정을 하고서 남을 웃긴다. JTBC 입사 초창기 우연히 찾은 캐릭터다.


“2012년 국진 형님과 함께한 ‘김국진의 현장박치기’란 시사 고발 예능이 있어요. ‘아는 형님’ PD인 최창수 형이 당시 조연출이었습니다. 같이 해보자고 하셔서 좋다고 했죠. 그런데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 ‘잠입 취재 프로다, 키스방 같은 데도 갈 수 있겠냐’였어요.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상대가 저를 믿고 맡겨줬으니, 망설이거나 자세히 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분량은 스튜디오에서 5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시사를 다루긴 하지만 예능을 접목했으니 웃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얼굴을 망가뜨리고 웃긴 몸동작을 했다. 하지만 녹화가 끝난 뒤 스태프들은 긴급 회의를 했다. 급기야 ‘재녹화’를 선언했다.


“열정이 과해 오버를 했어요. PD, 작가분들이 ‘성규야, 웃기려고 하지 말고 진지하게 앵커처럼 해’라고 했습니다. 재녹화 때 정색하고 뉴스 보도하듯이 했는데 그게 빵 터졌어요. 그때 알았죠. 이게 진짜 나구나.” 제옷을 입은 그는 훨훨 날았다. 분량이 5분에서 10분, 20분으로 늘더니 공동 진행까지 맡았다.

그는 자신의 기사는 물론 기사에 달린 댓글까지 모두 확인한다. 댓글에 대댓글을 달고 이걸 캡처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출처장성규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스스로를 속이다 찾은 진짜 꿈


어릴 적부터 방송을 동경했다. “예전에 ‘캠퍼스 영상가요’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진행자였던 호동이 형을 보고서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마이크를 잡는 방송 진행자가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는 진행자 기질을 타고났다. 고등학교 때는 전교회장을 했다. 전국 만담대회에서 1등을 해 라디오 방송에 나간 적도 있다. 대학생 때는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앞장서서 했다. “발표 전 날 직접 대본을 써서 글자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연습했어요. 동그라미 50개쯤 그려놓고 하나씩 지우면서 반복해 읽었습니다. 실전에서 술술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남들이 ‘잘한다’, ‘아나운서 같다’고 했을 때 ‘그런가’ 싶다가도 포기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이후엔 회계사 시험 공부를 했다. “빨리 안정적인 사회 생활을 하고 싶어서 공무원을 꿈꿨어요. 회계사 공부는 수학에 자신 있어서 시작했습니다. 둘 다 목적 없이 공부하다보니 잘 안됐죠.”


‘마이크를 쥐고 싶다’는 꿈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맘 속에서 짓눌렀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총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할 때는 패배감만 학습했다. “뭘 하든 안풀리던 시기였습니다. 숙주나물 공장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는데, 일당도 높고 나름 일이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다음부터는 오지말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렇게 안풀리는데 무슨 아나운서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도국 아나운서 시절 모습.

전환점은 사소한 계기였다. 아내와 연애 시절 패배감에 찌든 그의 모습에 ‘네가 아닌 것 같다’며 이별을 말했다. 학창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와 술을 마시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털어 놓았다. ‘정신차리고 취업 준비나 제대로 하라’고 나무랄 줄 알았던 친구는 도전해보라고 격려했다. “‘어울린다’는 친구 말에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되물었어요. 외면했던 꿈을 제 앞에 바로 들이댄 기분이었습니다.‘”


친구가 불씨를 당겼고, 얼마 후 만난 그의 스승이 불씨를 키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은사님을 찾아뵀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성규 아나운서하면 잘할 것 같은데’ 하셨어요. 전교회장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잘할 것 같다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반대가 극심했다. 늘 그를 지지하던 어머니마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뒤늦게 꿈을 확신한 그에게 거칠 게 없었다. 급기야 누나 신용카드를 몰래 들고 나가 학원비로 거금을 결제했다.


운도 따라줬다. 2011년 MBC가 신입 아나운서를 뽑는 예능 방송 ‘신입사원’ 참가자를 모집했다. 아나운서 준비 두 달 만이었다. 그에게는 아나운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입사를 하려면 졸업예정자여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시험 준비를 하느라 휴학을 오래 해서 4학기를 더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졸업하면 서른인데 가망이 없었죠. 나이도 학력도 안보는 ‘신입사원’에 꼭 지원해야 했습니다.”


그의 수험번호는 1230번. 5500명이 지원했다. 필기 시험과 카메라 테스트를 통과해 방송 출연을 했다. ‘최종 3인’ 문턱에서 탈락했다. “‘아 이제 어떡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5일 후에 당시 MBC에서 JTBC로 이적한 주철환 본부장님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그때 입사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2011년 9월 JTBC 1기 아나운서로 사회생활 시작했다.

2011년 MBC 신입사원 방송에 출연한 모습. 순발력과 입담으로 주목 받았다. 아나운서, 진행자에게 순발력과 대응 능력은 필수 역량이다. “평소 친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제 모습입니다. 사실 남을 웃기는 사람이 따로 있기 보다는, 편한 친구 앞에서는 누구나 유쾌한 사람이 되요. 친한 사람 앞에서는 매력이 드러나요. 카메라 앞에서 긴장되겠지만, '친구와 함께 한다' 생각하고 계속 훈련하다보면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예요.”

출처MBC '신입사원' 캡처

그는 ‘예스맨’이었다. PD가 출연을 제안하면 무조건 ‘좋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장성규’ 이름을 알린 건 뉴스가 아닌 예능 ‘아는 형님’이다. ‘프로듀스 101’ MC였던 배우 장근석을 패러디 한 ‘장티처’로 출연했는데 시청률이 대박이 났다. 이후 ‘아는 형님’에 단골로 출연했다.


이 무렵 회사에서 디지털 콘텐츠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짱티비씨를 하기 위해 아침 뉴스 앵커자리까지 그만뒀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또 분장하며 웃기는 모습을 보여드리다 갑자기 뉴스를 진행하자니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손석희 사장님이 아침 뉴스 자리를 직접 제안하셨는데, 그 자리를 그만두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하겠다는 제게 별말씀 안하셨어요. ‘네 뜻이냐, 그럼 그렇게 해라’라고 하셨죠.’”


초기 성적은 좋지 못했다. 라이브 방송 동시 접속자수가 10명 언저리다. “2~3개월 동안 속이 타들어갔어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죠. 그래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딱 10개월만 해보자 마음먹었는데 하나둘씩 반응이 터지는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배우 장근석을 패러디에 '아는 형님'에 장티처로 출연했다.

출처유튜브 '스튜디오 룰루랄라' 영상 캡처

꿈이 명사가 아닌 동사이길


아나운서는 경쟁률이 높은 분야다. 방송사마다 1년에 남녀 각각 1~2명씩을 뽑는다. 그마저도 뽑지 않고 넘어가는 해도 많다. 지상파 방송국의 경우 경쟁률이 2000 대 1에 달한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재수, 삼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조언 대신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짱티비씨를 같이 한 인턴 친구가 있어요. 제가 포장마차에서 하루 일하는 영상을 찍은 친구입니다. 실력이 좋아서 제가 ‘넌 꼭 PD가 될 거다’라고 장담한 친군데, 아쉽게도 PD 꿈을 이루지를 못했어요. 무슨 말로도 위로가 안되요. 그런데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정 해보고 안되면, 국어 교사 생각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절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그 친구는 혼신의 힘을 다해봤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었어요. 얼마 전 그 친구에게서 안부 문자를 받았는데 국어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른스럽고 대견하고 정말 행복해보였어요. 최선을 다한 후 포기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다 느꼈습니다.”


그는 청년들의 꿈이 명사가 아닌 동사이길 바란다. 또 꿈이 진짜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라 조언한다. “시험 공부를 할 때 저는 스스로를 속였어요. 회계사는 제 꿈이 아니었죠. 진짜 꿈은 ‘마이크를 잡는 사람’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업이 아나운서였어요. 특정 직업이나 합격이란 단어에만 매달리는 건 아닌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관종' 다음으로 미는 별명은 '믿보규'다. ‘믿고 보는 장성규’ 또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장성규’다. “'히든싱어'하면 현무 형이 떠오르듯, ‘이 프로그램이면 장성규지’라는 믿음을 주는 진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작성자 정보

jobsN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