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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4년만에 부활했던 '문재인 대통령 구두' 회사, 지금은..

조회수 2020. 9. 29.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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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구두' 별명도 좋지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신발 만들고 파

작년 가을부터 여성화 개발에 힘쓰고 있어요. 왜 남자 구두만 만드냐는 항의를 많이 받았거든요. 롯데백화점 팝업스토어에도 진출했습니다. 이제는 ‘대통령의 구두’를 넘어 남녀노소 누구나 신을 수 있는 구두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2017년 ‘대통령이 신은 구두’로 화제를 모은 아지오(AGIO). 문재인 대통령 취임 무렵 SNS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2016년 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무릎 꿇고 참배하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대통령의 구두는 밑창이 까져 있었다. 시민들은 대통령의 검소한 모습을 칭찬하는 동시에 구두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이 구두를 만든 주인공은 유석영(57) 구두만드는풍경 대표. 유 대표는 시각장애 1급이다. 1~6급 중 가장 중증 장애로, 좋은 눈의 시력이 0.02이하인 사람이 1급 판정을 받는다. 가족력으로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력이 나빠졌다. 앞을 볼 수 없는 그는 지금 청각 장애인들과 함께 구두를 만들고 있다.

출처: jobsN
유석영 구두만드는풍경 대표.

-’대통령 구두’로 화제를 모았을 땐 폐업 상태였다고.


“2010년 창업해 2013년 영업 부진으로 폐업했다. 구두 시장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관장직을 맡다가 회사를 차렸다. 경영 지식이 부족했다. 또 장애인 제품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있었다. 청각장애인 6명이 장인의 지도를 받아 구두를 만들었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은 품질이 떨어질 거라는 인식이 있었다. 해마다 적자폭이 커졌다. 결국 4년 만에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뒤에는 어떻게 지냈나.


“경기도 장애인생산품 판매시설 원장직을 맡았다.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을 지방자치단체에서 구입하도록 독려하는 기관이다. 경기도 여러 공공기관을 다니면서 장애인 생산품을 많이 사달라고 요청했다. 2017년 ‘대통령 구두’가 화제를 모으면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면 좋겠다는 응원을 많이 받았다. 사직서를 내고 다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패 후 다시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구두가 화제를 모으면서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돈다발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와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다.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두려웠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려면 상당한 노력과 자본은 물론 전문성까지 있어야 한다. 매일 사람들이 찾아왔다.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였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찾아갔다. 그는 폐업 전에도 구두 한 켤레만 받고 흔쾌히 우리 회사의 모델을 해줬다. 경제학 전공자인 만큼 냉정하게 판단해주리라 믿고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생각이었다. 한참 생각하더니 ‘제품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닌데, 나도 조합원으로 나설 테니까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시즌 2’를 시작했다.”

출처: 구두만드는풍경 제공
아지오의 구두. 내피에도 천연 소가죽을 쓴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출범했다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특정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10만~50만원 사이에서 시민들에게 출자를 받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2017년 11월15일 창립총회를 하고 12월 고용노동부에서 사회적협동조합 인증을 받았다. 협동조합 중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소득 증대에 도움을 주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같은 달 경기도 성남에 공장을 차리고 2018년 2월부터 제품을 만들고 있다.”


-어떤 사람들과 일하고 있나.


“직원 수는 17명이다. 청각장애인 10명, 지체장애인 1명, 그리고 시각장애인인 나까지 12명이 장애인이다. 나머지 5명은 비장애인으로 지원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40년 경력의 구두장인이 청각장애인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비장애인이지만 부모님 중 한 분이 청각장애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구두만 만들어왔다. 복지관에 있을 때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재개업 후 매출은 얼마나 늘었나.


“고객이 3배 이상 늘었다. 2018년 3월부터 12월까지 매출은 9억원이었다. 하지만 원가가 높아서 순이익이 크지는 않다. 한 달 매출이 8000만~9000만원인데 고정비용으로 6000만~7000만원이 들어간다. 우리의 목표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이다. 이익이 생기면 모두 장애인 직원 고용이나 처우 개선에 쓴다. 입사 초기에는 생산 기술을 가르쳐야 해서 시간과 비용이 더 들어간다.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는 게 목표다.”

출처: 구두만드는풍경 제공
구두만드는풍경은 재개업을 하면서 공장을 파주에서 성남으로 옮겼다.

-고정비용이 생각보다 높은데.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고급화’에 집중했다.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서는 경쟁력이 없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구두 내피를 만들 때는 돼지 가죽이나 합성 가죽을 쓴다. 우리는 천연 소가죽으로 내피를 만든다. 소가죽은 합성 가죽보다 신축성이 좋아 착용감이 편안하다. 또 우리는 제품을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손님들의 발 사이즈를 일일이 잰다. 고객의 발 모양대로 틀을 그려서 생산을 시작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간다. 당연히 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주 고객층은 누구인가.


“아무래도 40~50대 중년층이 많다. 요즘은 20~30대 청년 손님이 늘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구두를 사주거나 친구끼리 선물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서 입소문을 듣고 구입하는 분들이 많다. 매출 비중은 정장화·캐주얼화가 비슷한 수준이다.”

출처: 구두만드는풍경 제공
아지오 홍보모델 유시민 이사장과 가수 유희열씨. 이들은 구두 한 켤레만 받고 흔쾌히 모델로 나섰다.

-아지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나.


“장애인이 만든 구두라 품질이 낮을 거라는 편견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물건을 팔러 나가면 구걸하는 줄 알고 1000원권 지폐를 구두에 넣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우리 구두를 5년 넘게 신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긍정적인 인식이 퍼진 것 같다.


소비자는 물건을 살 때 가격도 보지만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고른다. 아무리 ‘대통령 구두’라는 별명이 있어도 제품과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아직은 우리 제품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만큼 영업을 안 했다는 뜻이다.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우리는 직원에게 기술을 가르치면서 제품을 만든다. 다른 공장보다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 기술자를 고용해 물건을 만들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 설립 이념이 ‘청각장애인의 자립’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재정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많은 고객분들이 재구매를 하는 등 사업 취지에 공감해주신다. 우리가 노력하면 재정적인 문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회사를 성장시켜서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주고 싶다. 나는 CBS 방송 리포터였다. 이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회사 규모가 커진다면 나보다 경영이나 영업을 잘 하는 사람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고 본다. 최종 목표는 청각장애인들이 100년 이상 이 회사를 이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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