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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5분의 1, 가족들 불안..그럼에도 삼성을 그만둔 이유

조회수 2020. 9. 18. 14: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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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쏙, 휴대용 공기청정기 만들었어요"
삼성전자 사내 벤처 C랩 출신 김강남 ‘블루필’ 대표

“삼성전자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걸어서 출퇴근했어요. 상쾌해야 할 출퇴근길이 미세먼지 때문에 곤혹스러웠죠. 마스크를 쓰면 입김이 올라와 안경이 뿌옇게 됐고, 필터 기능이 좋은 마스크일수록 입자가 촘촘해서 숨쉬기가 더 어려웠어요.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 삼성전자 연구소에서 8년째 일하던 김강남 씨. 그는 2016년 5월,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Creative Lab) 공모전에 휴대용 공기청정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출품했고,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돼 창업 지원을 받았다. 2017년 11월에는 ‘블루필’을 설립하면서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했다.


“C랩은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같은 창의적인 문화를 조직에 심기 위해 2014년부터 시작한 제도예요.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되면 1년 동안 사무실과 인력, 개발비용을 지원받으면서 마음껏 연구개발할 수 있죠. 매년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수 아이디어로 선발됐습니다. 1년여 연구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삼성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창업했습니다.”


블루필 직원은 현재 아홉 명으로, 그중 네 명이 삼성전자 출신이다. 김강남 대표와 나이와 경력이 비슷한 이강민, 이상민, 방명배 이사가 함께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블루필에 합류했다. 공기청정기 필터, 청소기 모터, 양산화 과정 등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전문가들이 모이면서 막강한 인력을 갖췄다. 연봉이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드는 데다 일은 많고 책임도 무거웠지만 ‘우리 손으로 만든 새로운 제품을 세상에 내놓아보자’라고 의기투합했다. 가족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떠난다며 불안해했지만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도 삼성전자에 재입사할 수 있으니 안심하라”고 설득했다.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공기청정기 사용이 늘었지만, 휴대용 공기청정기는 아직 없습니다. ‘미세먼지를 걸러낸 후 바람을 이용해 호흡기에 불어넣어주면 되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였죠. 처음에는 헤파 필터를 사용해 만들어봤는데 바람이 잘 나오지 않았어요. 시행착오를 거쳐 미세먼지에 전기를 띠게 한 후 흡착하는 전기 집진 필터를 개발했고, 현재 특허 출원 중입니다. 전기 집진 필터는 씻어서 재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교환해야 하는 필터보다 경제적이죠. 시제품은 이미 만들었지만, 여러 가지 테스트를 거쳐 양산화해야 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연봉은 5분의 1, 일은 늘었지만…

블루필에서 만든 초소형 휴대용 선풍기. 휴대용 공기청정기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본격 출시 할 예정이다.

이들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19’에 참가해 휴대용 공기청정기와 초소형 휴대용 선풍기를 선보이면서 주목받았다. 블루필은 휴대용 선풍기로 먼저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개발하던 중 초소형 휴대용 선풍기도 개발해 2018년 5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를 통해 선보였고, 7776명으로부터 2억 4600만 원 정도의 선주문을 받았다.


“시장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휴대용 선풍기가 나와 있었지만,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으면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휴대용 공기청정기에 모터와 팬, 필터 기술이 필요하다면 휴대용 선풍기에는 모터와 팬 기술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을 활용해 작고 귀엽고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죠. 크기와 무게는 다른 제품의 절반 정도지만 바람의 세기를 두 배로 늘린 초경량, 초소형, 초고속, 초강풍 휴대용 선풍기를 개발했습니다. 디자인을 세련되게 하고, 초절전 설계로 충전 후 최대 24시간까지 연속 사용할 수 있게 했죠. 3~4개월 동안 시제품을 100개까지 만들어보면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시장은 그의 예측대로 반응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홍콩, 대만, 호주 등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10만 대 이상 판매했다. 블루필은 2019년 4월 중순,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휴대용 선풍기를 새로 내놓는다. 이번에는 백화점, 마트, 면세점, 헬스&뷰티 스토어, 대형 서점 문구 코너, 온라인 쇼핑몰 등으로 판로를 넓히고 유럽, 미국, 캐나다, 남미, 동남아, 호주, 뉴질랜드 등 전 세계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휴대용 선풍기와 공기청정기 외에도 내년 말까지 네댓 가지의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떤 제품인지는 아직 대외비라면서 그들이 가진 핵심 기술을 활용해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제품이라고만 귀띔해준다. 창업 초기부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고백한다.


“지난해 첫 제품 출시 당시 여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불량이 발견돼 모터 5만 개를 버려야 했고, 고객서비스 체계를 갖추지 않았는데 주문이 쏟아져 쩔쩔매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어요. 시행착오나 실수도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직원들이 실수해도 ‘배우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야.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을 통해 성장하게끔

김강남 대표와 세 명의 이사들이 삼성전자 출신 전문가들이라면 나머지 다섯 명 직원들은 1~3년 경력의 새내기들이다. 김 대표는 “젊은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즐겁게 일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삼성전자에서 대기업의 복지제도를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 직원들도 비슷한 혜택을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그중 하나가 출퇴근 시간을 스스로 정하는 자율 출퇴근 제도입니다. 자율적으로 일할 때 창의성이나 능률이 더 커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원들이 배우고 경험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최대한 지원해주려 합니다. 일하는 동안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대기업에 있을 때는 맡은 일만 하면 됐지만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보니 마케팅, 디자인, 회계, 인사 등 배워야 할 일도, 신경 써야 할 일도 많아졌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 C랩을 통해 창업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고, 아침에는 눈이 금방 떠진다”라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이들은 왜 고액 연봉의 안정된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까?


“우리 손을 거쳐서 내놓은 제품을 사람들이 좋아해줄 때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만의 아이디어와 기술로 불편함을 해소해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우리 회사의 비전입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는 트렌드에 맞춰 1인용 제품을 개발하고, 레드오션 시장에서 블루오션 시장을 만들어나가려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기청정기, 휴대용 선풍기 시장으로 들어가되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글 jobsN 이선주

사진 jobsN 김선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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