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오니 남은건 전역비 2만원과 PC 1대뿐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4: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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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한 지 10년 만에 메이플스토리로 '초통령'된 만화가
만화가 서정은
'코메'로 아동 만화계 대통령 등극
"나를 위한 작품" 차기작은 낚시 만화

지난 2월 100권을 마지막으로 완결이 난 만화. 15년 동안 누적 판매 부수 1800만권 이상을 달성했다. 지금까지 판매한 책(권당 두께 약 1cm)을 쌓으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 칼리파(828m) 217개 높이인 셈이다. 90년대 초등학생 필독서였던 이 만화책은 바로 ‘코믹 메이플스토리’다.


넥슨이 2003년 출시한 RPG 메이플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든 학습만화다. 만화는 기획, 작화, 시나리오로 구성하는데 이 중 작화는 서정은(40)작가가 맡았다. 서작가는 1994년 축구만화 그라운드 파이터로 데뷔해 700~800권의 만화를 그린 베테랑이다. 경기도 안산 화실에서 서정은 작가를 만나 그의 만화 인생을 들었다.

완결한 코믹 메이플스토리

1994년 데뷔, 매킨토시로 그림 그리기 시작


서정은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였다. 그림을 그리면 하루가 행복했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만화 연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만화 작가 인식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지만 서작가의 부모님께서는 그의 꿈을 반대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아버지의 격려로 문제지에 만화를 싣기도 했다.


"출판사에 다니시던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학습지 뒤에 만화를 넣자고 아이디어를 내셨습니다. 아이디어가 뽑혔고 만화 공간을 제게 맡겨주셨습니다. 문제를 다 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흥미 위주의 소재로 그렸죠. 독자 반응도 괜찮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강남대학교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했다. 대학교 2학년 때는 보이스 클럽이라는 잡지에 그라운드 파이터를 연재했다. 서작가의 데뷔작이다. 그즈음 매킨토시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다. 매뉴얼도 없어 하나씩 눌러보면서 기능을 익혔다. 이 기능을 어떻게 만화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그라운드 파이터를 9회까지 연재하다 군대를 갔다. 군 생활 후 전역한 그를 맞이한 건 IMF 외환위기였다. 가족은 해외로 떠났고 서작가 손에는 전역비로 받은 2만원과 아버지가 남긴 컴퓨터가 전부였다.

출처: 코믹 메이플스토리 팬카페, 디지털 만화 규장각 캡처
국내 최초 3D 모델링을 도입한 만화 팝업(좌), 98년도에 연재했던 드래곤 쇼크(우)

외환위기 후 메이플스토리와의 만남


서작가는 지금의 아내이자 당시 여자친구였던 김영진 작가 집에 얹혀살면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찍이 쌓은 컴퓨터 그래픽 실력으로 다른 작가 그림에 색을 입혀주거나 표지 작업을 맡았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 잡지 '점프', '히트' 등의 표지를 그렸다. 당시 페이지당 25만원을 받고 작업했다. 밤낮없이 일해 가족이 남긴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언젠가는 되겠지'하는 작은 희망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1998년에는 만화 잡지 찬스에 드래곤 쇼크를 연재했다. 독자 반응은 좋았지만 한 살짜리 남자아이 나체를 그렸다가 청소년 보호법에 걸렸다. 벌금 300만원을 내고 연재를 중지했다. 1년 뒤 만화 '팝업'을 연재했다. 국내 최초 3D 모델링으로 작업한 만화기도 하다. 지금은 대부분이 컴퓨터로 작업하지만 당시에는 서정은 작가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더 많았다.


"'3D는 획일화다', '작품성이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들이 했던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어렸기 때문에 새로운 걸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성 작가들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은 노하우가 있는데 저같이 어린 작가들이 단시간에 능가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걸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술로 만화를 그린 거죠."


2001년에는 디지털 만화 작법서 '넌 아직도 톤 붙이니?'를 출간했다.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중국 심양대학교 만화과에서는 교재로 쓰기도 했다.

출처: 서울문화사 홈페이지, YES24
현재 서정은 작가가 작업 중인 만화들.

'코메' 만나 아동 만화계 대통령으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소위 말하는 히트작이 없었다. 그러다 2003년 메이플스토리를 만났다. 아케이드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만화로 만든 서울문화사 최원영 상무는 메이플스토리를 보고 코믹 메이플스토리를 기획했다. 최상무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만화를 해온 서정은 작가와 함께 하기로 했다. 코믹 메이플스토리는 최강 검사가 되는 게 꿈인 소년 도도의 모험 이야기다.


서작가는 밑 그림에 색칠을 하는 역할로 시작했다. 5화부터 본격적으로 작화 작업을 맡았다. 시작할 때는 10권까지만 예상했다. 갈수록 예상치 못한 큰 인기를 얻어 2011년에는 상도 받았다. 그때까지도 100권까지 그릴 줄을 몰랐다고 한다. 게임 인기와 함께 코믹 메이플스토리 인기도 올라갔다. 주인공이 같은 ‘수학도둑’도 출간했고 쿠키런을 바탕으로 한 ‘쿠키런 어드벤처’도 그렸다.


포털 사이트에 코메 팬카페도 생겨 최대 12만명까지 가입했다. 10권을 낼 때마다 사인회를 열었는데 첫 번째 사인회 때 3000여명의 팬이 몰렸다. 그의 인기는 초등학생 사이에서 많았다. 사인해 달라는 팬들이 너무 몰려서 자녀 운동회에 못갔다고 한다. 또 초당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에는 학교 측에서 전교를 메이플스토리로 꾸며 놓기도 했다. 항상 좋은 반응만 봤던건 아니다. 인터넷에는 악성 댓글도 많았다. 처음엔 하나 하나 다 읽으면서 상처도 받았다. 그러나 악성 댓글도 관심이고 생각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나중엔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이렇게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2019년 2월까지 15년 동안 100권으로 코믹 메이플스토리를 마무리 지었다. “만화를 그릴 때는 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작화가 이 세 박자가 잘 맞아야 합니다. 의견 차이도 있었지만 서로 잘 조율하면서 15년의 시간동안 잘 이끌어온 것 같습니다. 마감이 있는 날에는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작업했어요. 마감을 못지키는 것을 ‘펑크낸다’고 하는데 15년 동안 한 번도 펑크를 낸 적이 없습니다. 독자들이 주는 사랑에 보답하려고 노력했죠.”

출처: 서정은 작가 페이스북
겉으로 보기에는 검이지만 검집을 빼면 낚시대가 들어있다.

"하고 싶은 얘기할 것" 차기작은 낚시 만화


코믹 메이플스토리가 아동 만화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지만 서작가는 작업을 할 때 만화를 그만 그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전에는 만화가 취미였습니다. 그 취미가 일로 변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지긋지긋한 게 만화였습니다. 펜을 들면 어깨가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였죠. 그때 다른 취미를 찾았습니다. 바로 낚시입니다.”


서작가는 소문난 낚시꾼이다. 낚시채널인 FTV 제작위원과 명예 스태프를 맡고 있다. 내년 시작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도 낚시 웹툰이다. “동생을 둔 소년가장인 주인공이 주변 쓰레기로 낚싯대와 루어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아 끼니를 때웁니다. 그러나 폐지와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당해낼 수 없어서 물속에 직접 들어가죠. 물속 쓰레기로 장비를 만들면서 물고기 습성, 움직임 등을 파악합니다. 그렇게 가난한 주인공이 낚시 전문가로 성장한다는 내용이에요.


메이플스토리를 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연구 중입니다. 3년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5년째 계속하고 있어요. 직접 검 로드(낚시대)를 만들어서 특허도 내고 박람회에도 출품했습니다. 검 로드는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땀이 안 차도록 한 검 매듭을 활용해 만든 낚싯대 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검을 모티브로 만들었죠. 쓰레기로 루어도 만들어 화실 식구이자 배스 낚시 경력 9년 차 안지연 작가가 테스트도 하고 있습니다.”


웹툰 속 주인공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건 모두 서작가가 현실에서 연구하고 실험까지 해 증명한 장비인 셈이다. 낚시 만화를 하고 싶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젊은 층에게 낚시를 소개하고 싶어서고 또 다른 이유는 나를 위한 작품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독자를 위한 만화를 그렸습니다.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하면 안됐을 거예요. 100권까지 했으니 ‘제 얘기도 한 번 들어주실래요?’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죠. 앞으로 나올 작품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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