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유일한 경쟁자이자 넘어야 할 상대는 소주, 그 이유는.."

조회수 2020. 9. 18. 15: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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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핫플레이스 '우바' 인기 칵테일 개발한 바텐더의 근황
연남마실 대표 이민규 바텐더 인터뷰
W서울·JW메리어트 동대문 거쳐 창업
‘월드클래스’ 바텐더 대회 우승도

지금은 30~40대가 된 기성세대들도 한때는 20대의 화려함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그 정점에 있던 핫플레이스 중 하나로 W서울 워커힐의 ‘우바’가 꼽힌다. 2004년 오픈한 W서울워커힐 호텔(현 워커힐비스타호텔)의 1층 로비에 있는 라운지바다.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최한 IT월드컵 ‘이매진컵’ 경기가 모두 끝나고 작별 파티가 열렸던 곳도 우바다.


이민규(38)씨는 그 때 메인 바텐더였다. 우바 재직 당시 글로벌 1위 주류 회사 디아지오가 주최한 바텐더 대회 ‘월드클래스’에서 국내 대회 및 세계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해외 W호텔의 바텐더 교육 등을 맡기도 했다. 이후에는 JW메리어트 동대문에서 식음료 팀장으로 일하다가 2017년 말 훌쩍 업계를 떠났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그는 부인과 함께 1년간 세계여행을 마치고 올해 초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숲길공원 인근에 자신의 바 ‘연남마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4월 24일 이씨를 만나봤다.

출처: jobsN
이민규 바텐더.

W호텔 오픈 멤버로 입사…상하이·도하 파견도


-원래 바텐더를 꿈꿨나.


“아니다. 본래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는데 호텔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학교를 그만두고 호텔 학교를 다시 다녔다. 그러다가 바텐더라는 목표를 세우고 입사하게 됐다.”


-첫 직장은 어디였나.


“2003년 코엑스인터콘티넨탈호텔 벨데스크였다. 체계적으로 고객 응대를 하고 남자들만 일하는 곳의 우정 등도 느낄 수 있었지만, 바텐더에 대한 욕심이 있어 그만뒀다. 이듬해 W서울워커힐 오픈을 앞두고 공채가 있어, 시험을 보고 입사했다.”


-바텐더는 어떤 시험을 치르나.


“W호텔 내에서 열린 채용박람회를 통해 시험을 봤다. 1차 전형이 면접이고 2차 전형이 서류평가였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8명이 동기로 입사했다.”


-호텔 바텐더는 어떤 일을 하나.


“일단 서비스업이다. 하지만 칵테일만 만들어주는 직업은 아니다. 술의 기원이나 역사, 칵테일에 얽힌 스토리를 함께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고객에게 전달하는 이 음료의 기원이나 재료 구성 등에 대해 프레젠테이션(PT)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한다.”

출처: jobsN
이씨가 개발한 '쓰리섬진앤토닉' 칵테일.

-일하면서 대표 업적이 있다면.


“우바에서 인기가 많았던 칵테일인 ‘쓰리섬진앤토닉’을 개발했다.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유통되는 주류의 종류가 많지 않았고, W호텔에서 자체적으로 수입해오는 술이 많았다. 그 때 맛 본 여러가지 술 중 진 3가지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진 3가지를 섞고, 시트러스 향이 있는 3가지 과일(레몬 등)을 넣어서 만든 칵테일이다. 지금도 날 기억하는 손님이 찾는 경우가 있어 만들어준다.”


-해외 W호텔과 협업도 했나.


“그렇다. 카타르에 있는 W도하 리노베이션 작업에 참여했다. 카타르는 이슬람 국가로 호텔이 아닌 곳에서는 술을 마시기가 어렵다. 역설적으로 호텔은 매일 매일이 파티다. 정말 다양한 국적의 많은 사람이 온다. 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시설 보수, 서비스 개선 등을 담당했다. 어떨 때는 손님이 너무 많아 하루에 몇 백잔씩 서빙하기도 했다.


W상하이 오픈 때도 파견을 가 함께 근무했다. 이 때도 서비스 품질 관리와 교육, 음료 개발 등을 했다. W와 같은 스타우드호텔앤리조트 계열인 알로프트베이징 오픈 때도 바 운영을 코치했다.”


삼수 끝에 국내 바텐더 대회 우승…세계대회서도 1위


이 대표는 2011년 월드클래스 바텐더 대회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전에 2009~11년 국내 대회에 3번 도전, 2번 준우승 후 우승했다. 마지막 참가인 2011년 국내 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세계대회에 참가해 ‘스파이시 마켓 챌린지’ 부문에서 우승했다.


-월드클래스 바텐더 대회에 출전하게 된 이유는 뭔가.


“벌써 10년 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다.(웃음) 그동안 바텐더 대회는 많았지만, 세계 최대 주류회사에서 하는 신설 대회라 특별했다. 2009년에 첫 대회 공고문이 나올 때도 ‘우승자는 영국 런던에서 세계 대회를 치른다’는 말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준우승을 2번이나 했는데 또 나가서 굳이 우승을 하고 싶었나.


“왠지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jobsN
디아지오 월드클래스 바텐더 대회 책자에 나온 이민규씨의 모습. 책자 속 사진을 촬영했다. 디아지오코리아에서 사진 사용 허락을 받았다.

-왜 2번은 우승을 못하고, 3번째에는 우승을 했다고 생각하나.


“출전 당시에는 긴장해서 그렇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 등 나름대로의 분석을 했다. 하지만 지금 심사위원(이씨는 이후 이 대회의 심사위원을 수차례 맡았다)으로서 옛날의 나를 돌이켜 본다면, 컨디션이 한 가지 이유고, 다른 이유는 심사위원과의 ‘케미’ 아니었나 싶다. 심사위원이 생각한 출제 기준과 콘셉트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다.”


-대회는 어떻게 치렀나.


“국내 대회는 우선 필기시험, 클래식 칵테일 만들어서 PT하기, 창작 칵테일 테스트, 위스키를 고객에게 서빙하는 ‘바틀 서브(bottle serve)’ 테스트 등이 있다. 글로벌 대회에서는 스파이스 마켓 챌린지라는 부문이었는데, ‘아시아의 색다른 허브와 향신료를 디아지오의 술과 매치해 칵테일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 출제 문제였다. 뉴델리 현지 시장에서 매운 재료 등을 구매해 칵테일을 만들고 PT했다. 나는 캐러웨이 씨앗, 인도 매운 고추, 암추르(망고를 말려서 가루로 만든 인도 향신료) 등을 활용해 2가지 칵테일을 만들었다.”


(당시 월드클래스 2011년 대회 보고서에는 심사위원이었던 ‘바텐더의 전설’ 살바토레 칼라브레제의 평가가 적혀 있다. 그는 이씨의 칵테일을 음미한 뒤 “20년 전만 해도 바텐더들은 허브 정도만 사용하면 됐지만, 오늘날의 바 산업은 주방과 융합하고 있으며 바텐더들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변하고 있다”면서 “이씨의 칵테일은 캐러웨이의 강렬한 첫 맛과 이를 날려버리는 고추의 매운 맛의 마무리가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술 마셔도 민감…같은 업종 종사자 배려해 말은 안 해”


-JW메리어트 동대문의 음료팀장을 그만두고 2017년 말 세계여행을 떠났는데.


“JW메리어트 동대문에서는 음료팀장으로 일했다. 조식에 들어가는 음료부터 연회까지 ‘마시는 것’을 총괄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연회장에서 급히 구조물을 변경한다던가 하면 다같이 의자 옮기고 세팅 바꾸는 등 정신이 없었다. 메뉴에 없는 칵테일을 시키면 내가 만들어주는 일도 많았다.


그러던 중 2017년 말 일을 그만뒀다. 호텔업계에서 14년 가량 쉼없이 일했는데 삶을 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재충전을 할 겸 삶의 2막을 고민했다. 그래서 아내와 둘이 훌쩍 떠났다.”


-돈은 얼마나 들었나.


“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페루-볼리비아-칠레 등 남미, 영국-프랑스-이태리 등 유럽 등 해서 3차례에 나눠 1년간 여행했고 약 3000만원 정도 들었다.”


-창업을 하게 된 이유는.


“여행하면서 아내와 이야기를 했다. 작지만 내 사업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 싶어 창업했다.”


-매출은 좀 나나.


“아직 제대로 영업한 지 두 달 정도 됐다. 몇 달 동안은 메뉴 세팅 단계라 생각한다.”


-부인과 함께 창업하게 된 이유가 있나.


“아내도 호텔 식음료 전문가다. W호텔에서 함께 근무했고, 이후 쉐라톤 디큐브시티에서 식음료 총괄을 했다. 함께 일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보려고 창업을 결심했다. 이전에 호텔에서 근무할 때는 아내와 내 근무 사이클이 맞지 않아, 자주 못 보고 약간은 애틋한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4시간을 아내와 함께 한다. 삶의 동반자로서, 또 직장 동업자로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출처: jobsN
이민규 바텐더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인 '네그로니'를 소개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 있다면.


“오래된 칵테일인 ‘네그로니’다. 진과 스위트 버무스, 캄파리 등이 들어간다. 밸런스가 좋고 식전 술로 잘 어울린다. 네그로니 백작이 만들었다는 스토리도 좋다.”


-바텐더로서 직업병이 있나.


“어디서 어떤 술을 마셔도 민감하다. 가령 맥주를 먹으면 관청소가 잘 안됐는지, 탄산의 함유량은 어떤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같은 업(業)을 하는 사장에게 실례가 될 수 있어 말은 안하는 편이다.”


-당신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소주.”


-그 이유는.


“소주 때문에 한국 주류 애호가들이 다양한 술을 맛볼 기회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를 바꿀 새 칵테일을 꾸준히 개발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본다.”


-이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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