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만원 들고 영국 땅 밟았던 한국청년은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5: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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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컵밥·미숫가루·삼각김밥..'큰 물'에서 사업하는 한국인 음식 사업가들

“단디해라(똑바로 하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 셰프는 연예인 아니다.”


50대의 나이에도 매일 17~18시간 주방에서 일하는 이가 있다. 운동 한번 해본 적 없어도 하도 프라이팬을 흔들다 보니 팔에 근육이 붙었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 시청자는 거침없이 표현하는 그녀를 두고 ‘독설 아지매’라 했다. 한국에선 ‘아지매’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빈의 요리 여왕’이다. 오스트리아 한식 레스토랑 ‘킴 코흐트(Kim Kocht·김이 요리한다)’ 김소희(54) 메인셰프의 이야기다.

./조선DB

김소희 셰프 어머니는 부산 남포동에서 카페와 수퍼마켓을 했다. 그 돈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오스트리아로 떠난 딸의 유학비(헤업스트 슈트라세 패션·예술 대학)를 댔다. 김 셰프는 졸업 후 자기 가게를 내 의상 디자이너로 7년간 일했다. “몇 번이나 돌아오고 싶었는데 이 악물고 버텼다”고 했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 진로를 바꿨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밥장사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 요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장에서 6~7kg 연어를 사서 매일 12시간 이상 생선 자르는 연습을 했다. 손과 머리카락엔 생선 비린내가 뱄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코를 움켜쥐고 피했다고 한다. ‘서양인 입맛을 알려면 와인 맛을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에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 2001년 ‘킴 코흐트’를 열었다.

출처: 킴 코흐트 공식 홈페이지
킴 코흐트 레스토랑의 요리와 양념통들.

상추쌈, 비빔밥, 약초수제비, 비빔국수 같은 음식을 맵고 짜지 않게 요리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열광했다. 손님이 밀려들어 3개월에 한 번씩만 예약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빈에 5개 식당을 냈다. 요리책 20권을 내 ‘요리책의 오스카상’이라는 ‘구어만드(Gourmand) 쿡북 어워드’도 받았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셰프다.


400만원으로 창업한 회사 영국의 ’와사비’ 김동현 대표


영국에는 대형 일식 프랜차이즈점가 여럿 있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인이 창업한 ‘고추냉이(Wasabi)’다. 와사비 김동현(46) 대표는 1990년대 도쿄에서 요리 공부를 했다. 1999년 26살에 영국에 갔다.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은 단돈 400만원. 그로부터 4년 후 2003년 런던 한복판에 ‘와사비(wasabi)’를 창업한다.

출처: 와사비 공식 홈페이지
영국 유명 일식 프렌차이즈는 한국인 김동현 대표가 창업했다.

김 대표는 비싸지 않은 가격대의 패스트푸드 스타일의 초밥을 만들어 시장을 공략했다. 직장인들이 간편하게 포장해갈 수 있도록 도시락 형태로 만들었다. 삼각김밥·유부초밥·카레라이스 등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게 했다. 새우·연어·스시·롤 등 초밥 한 개를 낱개로 포장했다. 초밥이 생소했던 외국인들도 취향대로 고를 수 있었다.


반응이 좋자 마크스펜서(M&S)·프렛(Pret) 등 대형 식품 유통업체에 입점할 수 있었다. 리즈대학(University of Leeds)과 캠브리지(University of Cambridge) 등 대학가 근처에도 매장을 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각김밥’은 영국인들에게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호응을 얻었다. 저렴한 가격대로 신선한 채소와 생선으로 메뉴를 구성해 인기였다.

./와사비 공식 홈페이지

그는 과거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런던에 처음 도착했을 때 스시 음식점이 거의 없었다. 초밥을 포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쟁반에 담는 것뿐이었다"라고 밝혔다. 다양한 초밥을 간편한 도시락 형태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성공 요인이다. 매장 내에는 키오스크 등을 설치해 더 간편하고 빠르게 음식을 먹고 갈 수 있도록 했다. 2013년 매출 1200억원을 돌파했다. 2014년 미국에 진출해 뉴욕 타임스퀘어에 1호점을 냈다.


김 대표는 일식으로 영국 시장을 개척했지만 한국 음식을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2011년 홀본(Holborn)에 한식 레스토랑 ’김치(Kimchee)’를 냈다. 영국 대형박물관 근처에 있다. 일식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와사비와 달리 ‘김치’는 한식 프리미엄 레스토랑이다. 비빔밥·김밥 뿐만 아니라 한국식 간식인 미숫가루·매실차·한국식 토스트 등도 판다. 지하1층과 지상1층에 테이블 약 170개가 있다. 레스토랑 한쪽 벽면은 한글이 적힌 대리석으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오픈키친으로 숫붗구이·짬뽕·김치볶음밥 등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치’ 두 번째 지점은 런던 킹스크로스에 있다. 

출처: 김치 공식 홈페이지
와사비 김동현 대표가 만든 한식 고급 레스토랑 '김치'.

김 대표는 디저트 사업에도 확장하고 있다. 2017년 7월 캠브리지 라이온 야드(Lion Yard) 쇼핑센터에 베이커리 매장 ‘소보로(Soboro)’를 열었다. 그는 올해 영국 HSBC은행으로부터 3000만 파운드(약 446억원)를 투자받았다.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점포를 늘려가는 ‘캘리델리’ 최금례 회장


켈리 최(Kelly Choi·본명 최금례·51) 회장은 도시락 브랜드 ‘스시 데일리(Sushi Daily)’를 운영한다. 2017년 매출은 5000억원. 유럽 10개국에 700여개 매장이 있다. 그녀의 고향은 전북 정읍이다. 고등학생 때 서울로 올라와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면서 학비를 혼자 벌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면서 1988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1995년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갔다. 그러나 ‘최고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친구 제안으로 광고 회사를 창업했다. 9년간 회사를 운영했지만 남은 것은 빚 10억원 뿐이었다. 당장 살고 있던 집을 민박집으로 내놓고 돈을 벌었다. 그녀가 다시 일어난 계기는 도시락 창업을 통해서였다. 2006년 프랑스에는 마침 초밥·주먹밥 등 아시안 푸드 열풍이 불었다. 

출처: jobsN, 켈리델리 제공
'캘리델리' 최 회장과 스시데일리 매장 모습.

최 회장은 먼저 요식업계 멘토를 찾았다.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10억원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을 밝히면서 반드시 사업으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녀의 간절함에 김 대표는 많은 조언을 줬다. 맥도날드 유럽 CEO 드니 하네칸에게 컨설팅을 받으러 그의 비서를 지냈던 사람을 수소문하기도 했다. 그에게 매장을 보여주고 컨설팅을 받는데 성공했다. 스시 조리법은 프랑스 대통령이 중요 행사 때마다 찾는다는 야마모토 셰프 밑에서 배웠다.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는 그의 식당을 세 번이나 찾아가 설득했다. 파리 시(市) 창업지원사업에 뽑혀 자본금 3만유로(약 3900만원)을 지원받았다.


2010년 8월 프랑스 리옹 까르푸에 첫 매대를 냈다. 패션을 전공한 최 회장은 알록달록 보기 좋은 스시 도시락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매대에서 즉석에서 초밥을 만들어 파는 모습을 보여줬다. 밥을 얇게 말아채소 등으로 속을 채워 넣었다. 매대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7만5000유로(약 9700만원) 매출이 났다. 직원 수 5500여명, 프랑스 도시락 시장 점유율은 50%로 업계 1위다. 최 회장의 창업기는 프랑스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교제에 올라가기도 했다.


노량진 ‘컵밥’ 아이템을 미국 NBA 야구장으로 옮기다


‘유타 컵밥’으로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송정훈 대표. 그는 한국에서 부모 속 썩이는 ‘딴따라’였다. 학창시절 내내 춤에 빠져 살면서 비보이 크루로 활동했다. 1997년 국내 최초 전국댄스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군대에 다녀온 그에게 “미국에 딱 6개월만 다녀오라”고 했다.

출처: 컵밥(@cupbob)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노량진 컵밥'으로 미국에 진출한 송정훈 대표는 비보이 크루 출신이다.

그는 랭귀지 스쿨 6개월 과정을 들었다. 자신의 특기인 ‘춤’을 가르쳐주면서 동료들과 친해졌다. 미국에 남아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업을 구상했다. 첫 번째 사업인 ‘고릴라 VIP’ 카드를 만들었다. 제휴를 맺은 음식점마다 쓸 수 있는 종합 쿠폰 카드였다. 프랜차이즈 100개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송 대표는 유타대학 앞에 선 푸드트럭을 보고 한국의 노량진에 있는 컵밥이 떠올랐다. 푸드트럭에서 컵밥을 팔면 반응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트럭을 구입했다. 10년 넘게 미국에서 한·일식집을 운영하는 지인을 찾아갔다. 6개월 동안 메뉴 개발에만 매달려 5가지 레시피를 만들었다. 2013년 5월 유타 시내에 열린 행사장에서 첫 개시를 했다. 준비한 150인분이 금세 동났다. 그러나 행사장 이후 거리 장사에서는 매출이 잘 나지 않았다. 하루 판매량이 10~20개 정도였다.

출처: (@cupbob)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노량진 컵밥'의 노란 푸드트럭.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이벤트를 선보였다. 텀블링을 하고 큰소리로 ‘컵밥’을 외쳤다. 유타 컵밥 SNS 행사도 벌였다. 댓글을 많이 단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파티를 벌이고 도시락을 배달해줬다. 마니아층이 생기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2015년 가을엔 유타 NBA 재즈 경기장 운영자가 먼저 입점을 제안했다. 이곳에서 개당 12달러(약 1만3000원)에 팔아 3시간 동안 보통 1500~2000개의 컵밥이 팔려나간다. 핫도그·나쵸 등 다른 메뉴를 제치고 매출 1위다. 2018년 유타주·아이다호주 등에서 푸드트럭 5대, 매장 12개, 스타디움 매장 13개를 운영한다. 연 매출은 100억원 이상 난다. 

출처: (@cupbob)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CUPBOB은 유타 NBA 재즈 경기장에 입점해 매출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컵밥 장학금’을 만들기도 했다. 장사를 처음 개시한 유타대학에 1만달러(약 1136만원)를 기부했다. 그는 2018년 잡스엔과의 인터뷰에서 “한식을 대표할 수 있는 컵밥 프랜차이즈로 기업을 일구겠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이동기 혁신성장본부장은 “해외 식품 사업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현지에서 살면서 시장을 분석했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한식이 일식·중식·타이푸드에 비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시아 푸드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본부장은 “서양인에게 아시아 음식은 건강식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한식은 일식보단 저렴하고 중식보단 칼로리가 낮다는 장점으로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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