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서 때려치우겠다'는 직원 말대로 해줬다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1. 17: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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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때려치운다'는 직원, 바로 놓아주면 안 되는 이유

회사를 운영하거나 다니다 보면, 간혹 홧김에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부하 직원을 볼 수 있다. 이럴 때엔 본인 뜻에 따라 해고 통지를 내려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현행법에선 순간적으로 충동에 휩쓸려 내린 퇴사 결정을 공식적인 사직 의사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이동근)는 지난 3월 A씨가 게임 제작 업체인 B사를 상대로 낸 전직 및 해고 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B사는 A씨에게 해고 시부터 복직 때까지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인 매달 54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사 팀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17년 대표와 면담하며 승진 및 연봉 인상 등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대표는 "승진은 어렵고 연봉 인상은 생각해보겠다"고 답했지만, 이후 A씨의 요구를 거절하며 "인사 및 연봉에 불만이 있어 관리자급인 팀장으로서 역할 수행이 적절하지 않으니 팀원으로 일해달라"고 통지했다. 이에 반발한 A씨는 홧김에 "그건 그만두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 차라리 그럴 바엔 그만두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B사 대표는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그만둔다고 한 것"이라며 업무 인수인계를 준비할 테니 A씨에게 이틀간 연차휴가를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B사는 A씨가 연차휴가를 간 동안 'A씨가 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사내에 공지하고, 팀장을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A씨는 복귀 후 "퇴사하지 않겠다"고 항의했지만 사측은 "자발적으로 퇴사했으니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통보했다.


재판부는 "A씨가 처우개선 요구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인식해 감정적인 대응을 한 것으로 사측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며 "A씨가 한 일련의 언동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전격적 부당한 하향 전직 요구를 받은 당일 화가 나 감정적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민법 제107조 1항 단서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 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달에 비슷한 판결이 하나 더 있었다. 2012년 제지업체 M사에 입사해 해외영업부문장으로 근무한 김모씨는 2015년 2월 오전 업무회의 중 대표이사 호출에 따라 대표이사실에서 개별 면담을 했다. 대표이사는 해외영업부문을 2개 부문으로 나누고 그중 한 부문을 김씨가 담당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을 알려 줬다. 김씨는 이대로 조직을 개편하면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이 줄어들게 된다며 불만을 표했다.


김씨는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업무회의 장소로 돌아와 참석자들 앞에서 “더 이상 회의를 할 필요가 없다. 나 그만둔다”란 취지로 말을 했다. 김씨는 이어 비서에게 임원이 사용하는 사직원 양식이 있는지 문의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사직서를 제출하지는 않았다. 대표이사는 곧이어 열린 임원 회의에서 다른 임원으로부터 김씨가 다른 직원들에게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김씨의 사직 의사가 명확한 것으로 보고 후속 인사를 준비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던 김씨는 같은 날 오후 오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김씨는 대표이사로부터 “후속 인사 지시까지 마무리한 상황이고 당신은 회사와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는 당일 김씨를 퇴직 처리했고, 김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출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사직 의사표시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설령 이런 의사표시를 했다고 해도 이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라며 부당 해고를 인정했다. M사는 중노위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중노위와 같은 판단을 했다. 1심 역시 “M사의 근로관계의 종료는 해고의 정당한 이유와 절차를 결여한 것으로서 부당해고”라며 김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대표이사와의 면담 과정에서도 사직 의사를 밝힌 점을 인정하지만, 이는 인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평소 다혈질적인 성격이 순간적으로 나온 것으로 실제로 사직할 의사는 없었다”고 했다.


법원은 회사가 김씨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어긴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며 “M사가 김씨에게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증거가 없다”고 했다. M사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역시 1심 판단을 인정했다. 해당 판결은 M사가 상고를 포기하며 확정됐다.


지난 1월에도 직원이 "계속 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것만으로는 사직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있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유진현)는 1월 1일 헬스장 운영자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 해고 판단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A씨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가 운영하는 헬스장의 헬스 트레이너인 B씨는 2018년 7월 회의 시간에 A씨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근무 시간에 업무와 무관한 전기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공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가 꾸짖으며 "계속 트레이너를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B씨는 "계속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며칠 뒤 A씨는 ‘근무시간 내 사적인 업무를 보고, 반성을 하지 않은 데다 동료들 앞에서 퇴사하겠다고 했으니 퇴직 처분을 하겠다’는 내용으로 B씨에게 권고사직 통지서를 보냈다. B씨가 퇴직 요청서를 먼저 제출하지 않으면 해고를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B씨는 "한 달 안에 그만두겠다고 한 적 없다"며 "계속 일하겠다"고 항변했다. B씨는 같은 해 11월 서울지방노동위에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노동위는 B씨 주장을 받아들여 복직 판정을 했다. A씨가 불복하며 재심까지 갔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에 A씨는 "정당한 해고였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 역시 "부당 해고가 맞다"며 B씨를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근로기준법에 따라 구체적 해고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했어야 한다”며 “A씨가 보냈던 권고사직 통지서에는 B씨의 구체적인 잘못이 무엇인지 등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트레이너를 계속할 생각이 없다는 B씨의 발언은 일을 당장 그만둔다기보다는 앞으로 직업을 유지할 뜻이 없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며 "그러므로 이는 A씨의 일방적 의사에 따라 B씨를 해고한 것"이라고 했다.


글 jobsN 문현웅

디자인 플러스이십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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