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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뛰어다니고, 환풍구 기어가던 '전지현'이 바로 접니다

조회수 2020. 9. 21. 17: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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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하는 일이 가장 자신있는 격투기 선수 출신 스턴트우먼

영화나 드라마에서 화려한 격투씬을 선보이거나 주인공을 대신해 위험한 액션 장면을 찍는 연기자를 ‘스턴트맨’이라 한다. 우리가 화면으로 보는 아찔한 장면들 대부분은 이들이 몸을 던져 만들어낸 것이다. 전문성을 갖추고 액션 연기에 두각을 나타내면 액션 배우나 무술감독으로 성장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많지 않지만 이런 일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 9년차 스턴트우먼 김경애(33) 씨는 영화 ‘베를린’에서 전지현 대역으로 건물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탈출하는 씬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 탄탄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 베테랑 연기자다. 그가 소속된 서울액션스쿨을 찾아가 스턴트우먼이란 직업에 대해 들어봤다.

출처: jobsN
9년차 스턴트우먼 김경애씨

- 오늘 영화 촬영을 위해 지방으로 갈 예정이라고 들었다. 바쁜 직업인 것 같다.

“영화를 촬영하는 한 달 동안 부산에 머물 예정이에요. 비행기를 배경으로 제작되는 영화에요. 세트장이 부산에 있는데, 거기서 액션 배우들에게 무술 지도를 하러 갑니다. 어제는 남양주에서 드라마 촬영을 했어요. 요즘은 영화 외에 방송 채널도 많아져서 무술팀을 필요로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어요. 덕분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 경력이 9년차다. 그동안 수 많은 작품들에 출연했을 것 같은데.

“출연한 작품이 워낙 많다보니 모두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스턴트우먼으로서 첫 작품은 기억에 남아요. 영화 ‘블라인드’에서 김하늘 대역이었요.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위험한 장면마다 대역으로 연기했어요. 영화 ‘도둑들’에서는 전지현 대역으로 환풍구를 기어가는 장면이나 액션 씬을 찍었고, ‘암살’에서 총격씬을 찍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김태리 대역을 연기했습니다. 주로 지붕을 뛰어다니고 담벼락을 넘는 씬이었어요.”


- 스턴트맨이나 스턴트우먼의 수요가 많은지. 어떨 때 캐스팅 되는지 궁금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스턴트맨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제일 많아요. CF광고나 예능에서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개그콘서트나 코미디 빅리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찾아요. 개그맨이 장풍을 쏘면 그걸 맞고 날아가는 스턴트맨이 필요하죠.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액션 장면이 아니더라도 스턴트맨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빠르게 운전하는 자동차 씬의 경우 조수석에 대역 배우가 타요.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해서 배우 대신에 대역을 쓰는거죠. 배우가 다치면 작품 전체에 영향을 받을 수 있거든요.” 

./jobsN

- 이종격투기 선수였다던데. 스턴트우먼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와 함께 체육관을 다니면서 격투기를 시작했어요. 운동을 좋아했거든요. 당시 관장님의 권유로 우연히 시합을 나갔는데 재능이 있었나봐요. 시합을 준비하던 선수의 부상으로 대타로 링에 올라가서 압도적으로 이겼어요. 무엇보다 격투기라는 운동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격투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종격투기로는 돈을 벌기 힘들었어요. 이종격투기 시장이 워낙 작은데다, 여자 격투기 종목은 환경이 열악해요. 프로로 경기를 뛰어도 받게되는 개런티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운동을 하면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교무보조로 일했어요. 학교에서 일한 이유는 퇴근도 빠르고 방학이 있어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운동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어요. 그때 운동을 멈추고 제가 몸을 써서 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계속 찾아봤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 가장 자신있었거든요. 그러다 발견한 게 서울액션스쿨이었어요. 그때 본격적으로 스턴트우먼이라는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 흔한 직업은 아닌데, 스턴트우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술감독이 스턴트우먼을 작품에 캐스팅합니다. 완벽하게 준비돼 있지 않으면 캐스팅될 수 없죠. 그래서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고 스킬을 숙지하고 있어야 해요.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 저는 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울액션스쿨에 지원했어요. 액션스쿨을 만든 정두홍 감독님을 비롯해서 유명한 무술감독님들이 많이 계신 곳이라 이곳에서 시작하면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액션스쿨의 경우 1년에 한 번씩 기수생을 선발해요. 보통 3월에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가 나죠. 원서를 내고 면접과 오디션을 통과하면 6개월 간 정식으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요. 그 과정을 졸업하면 서울액션스쿨의 멤버로 무술감독님과 함께 다양한 작품에 출연합니다.”

출처: 김경애씨 제공
드라마 '미스터선샤인'

- 서울액션스쿨의 선발 과정과 어떤 트레이닝을 받는지 궁금하다.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과 오디션을 봐요. 먼저 무술감독님들이 면접을 보는데, 저에게는 지원하게 된 이유와 각오 등을 물어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디션에서는 준비해 온 걸 보여 달라고 해요. 보통 자신의 주특기에 따라 태권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지원자들은 기계체조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저는 이종격투기를 했기 때문에 쉐도우 복싱과 발차기, 낙법 등을 했어요. 너무 엉성하게 오디션을 봐서 떨어진 줄 알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나중에 들었는데 면접관들은 지원자들의 눈빛을 가장 먼저 본대요. 정신이 올곧은지, 눈빛이 살아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더군요.


서울액션스쿨에 기수생으로 합격하면 6개월 간 엄격한 트레이닝을 받아요.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교육을 받는데, 처음 한 달간 계속되는 체력훈련이 가장 힘들어요. 액션스쿨이 있는 파주 헤이리 인근 4킬로를 뛰고 시작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개의 오르막이 있는 코스를 매일 뛰죠. 얼마나 힘든지, 뛰는 도중에 못 하겠다며 첫날에 그대로 집에 간 친구도 있었어요. 체력훈련을 받는 동안 많은 기수생들이 포기하고 나가요. 제가 속한 기수에서는 40여명이 시작했는데, 한 달이 지나자 20명만 남았어요. 체력훈련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조금씩 기술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낙법과 와이어 타는 방법, 승마부터 스쿠버까지 스턴트맨으로서 필요한 기술을 배워요. 그렇게 6개월 동안 다양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액션스쿨에서 트레이닝을 받을 때 학비를 내면서 배우게 되는지.

“액션스쿨은 처음 생길 때부터 액션 배우들을 길러내는 양성소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실력있는 스턴트맨을 만들어서 같은 소속으로 보유하는게 목적이기 때문에 트레이닝하는 기수생들에게 무료로 가르쳐줍니다. 대신에 트레이닝 과정을 졸업하고 작품에 캐스팅 돼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 까지는 특별한 수입이 없어요. 그래서 그동안에는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를 해요. 저는 당시 살던 합정역 인근 빵집에서 6개월 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김경애씨 제공
영화 '도어락'

- 정식으로 액션 스쿨 멤버가 되면 어떤 생활을 하게되는지.

“트레이닝 과정을 졸업하면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에 퇴근해요. 대부분 시간은 액션스쿨에서 운동을 합니다. 트레이닝할 때와는 질이 다른 기술을 연습해요. 고난이도의 액션 기술을 배우죠. 그러다 서울액션스쿨에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무술감독을 통해 캐스팅돼서 촬영 현장으로 갑니다. 액션스쿨로부터 월급을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모두 프리랜서 개념으로 일합니다. 캐스팅 돼서 촬영을 하면 그에 따라 출연료를 받는 시스템이죠.”


- 스턴트우먼으로 일하게 되면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개인마다 차이가 많아요. 실력이 좋아야 자주 캐스팅이 되니까요. 드라마나 영화 제작이 많은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수입도 달라집니다. 스턴트우먼과 남자 스턴트맨의 차이도 있어요. 액션 장면이다 보니 남자의 경우 여자보다 굉장히 수요가 많죠. 드라마나 방송의 경우 캐스팅돼서 촬영하면 편당 방송국에서 책정된 출연료를 받아요. 영화의 경우 함께 작업하는 기간에 따라 일당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 출연료를 모두 합치면 월 평균 4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 같아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는 월 출연료가 700만원 넘은 적도 있습니다.”


- 스턴트우먼 9년차다. 액션을 촬영하는데 이제 능숙할 것 같은데.

“9년이 됐는데 아직도 어려워요. 경험이 많다보니 오히려 두려움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초년 시절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더 용감했거든요.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예전보다 조심성이 생겼어요. 그걸 극복하는게 스턴트우먼이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끊임없이 연습하고 노력합니다.” 

출처: 김경애씨 제공, 드라마 '역적' 캡처
영화 '부산행'(좌), 드라마 '역적'(우)

- 직업에 대해 말하는데 생기가 느껴진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지.

“다이내믹한 삶을 사는 스턴트우먼이 저와는 정말 잘 맞는 직업 같아요. 촬영을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며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해요. 영화 ‘베를린’ 촬영 때는 라트비아의 아름다운 도시 리가에서 열흘 간 머물렀어요. 일하다 보면 하루는 격투씬을 찍고, 다음날은 말을 타고 달리기도 해요. 어떤 날은 물에 들어가고 어떤 날은 높은 곳에서 점프도 하죠. 공들여서 찍은 장면들을 화면을 통해 봤을 때,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나올 때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일에 대한 애정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직업이에요.”


- 평소 몸 관리는 어떻게 하나.

“항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에 꾸준히 운동해요. 출연 작품이 정해지면 거기에 필요한 기술을 연습하죠. 이외에도 늘 신경써야할 부분이 있어요. 이 일을 하면서부터는 계속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여배우들이 워낙 마른 체형이라 대역으로 연기하려면 배우들의 사이즈에 맞춰줘야 하거든요. 대역은 사이즈가 가장 중요해요.”


- 마지막으로 꿈이 있다면.

“작은 꿈이 하나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스턴트우먼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내가 대역으로 액션을 연기했을 때, 감독과 배우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고 그걸 본 관객들이 그 장면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글·사진 jobsN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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