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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신혼에 찾아온 암..무기력하고 무기력한 삶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1. 18: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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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이겨낸 세 아이 엄마가 경력단절 여성 위한 회사를 차린 이유
김민정 모이니 대표
유학→자궁내막암 투병→아이 셋 양육→창업
“경력 단절된 엄마들이 행복한 회사 만들 것”

“언제 병이 나을지 모르던, 내일이 없던 삶이었어요. 일은 하고 싶은데 써주는 사람은 없었죠. 저와 같은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회사를 만들자고 시작했습니다.”


3월 13일 만난 김민정(43) 모이니 대표가 건넨 명함에는 ‘경력단절방지 프로젝트’라는 글자가 써 있었다. 그가 2016년 7월부터 운영하는 모이니는 육아·가정 용품 제작·판매 스타트업이다. 현재는 첫 제품으로 세면대 쿠션 ‘힙비’를 판매 중이다. 세면대 위에 올려놓으면 쿠션이 아기 몸을 받쳐주어 엄마 손목에 통증없이 아기를 편하게 씻길 수 있는 신개념 세정 도구다.


작년 1월 출시해, 독일과 홍콩 국제 육아박람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국내·외에서 입소문이 나고 있다. 소량이지만 벌써 4개국에 수출도 했다. 김 대표는 “수백억을 버는 스타트업들과 비교하면 아직 보잘 것 없지만, 하루하루 잊고 있던 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출처: jobsN
김민정 모이니 대표.

밀라노 유학하다 전업주부로


김 대표는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예쁘게 만드는 일을 하는 제품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이탈리아 유학을 꿈꿨다. “당시만 해도 디자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이탈리아 아니면 프랑스였어요. 언젠간 반드시 유학을 가겠다고 생각하고 이탈리아 펜팔 친구를 구해 편지 교류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에 원서를 넣었지만 낙방했다. 대신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로 50일간 여행을 갔다. 그 때 김 대표의 눈에 들어온 곳이 폴리테크니코 디 밀라노(밀라노 공대)다. 김 대표는 “이 학교는 수입이 없는 1인 거주 학생의 경우 1년에 100만원 정도만 내면 됐다”며 “이 곳을 내가 유학할 학교로 정하고 한국에 돌아와 입시 준비와 이탈리아어 공부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낮에는 한 작은 무역회사 경리로 일하며 학비를 모았고, 밤에는 주한이탈리아문화원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웠다. 나중엔 아예 이탈리아어 학원에 근무하며 공부했다. 그렇게 2년을 준비했고, 1998년 9월 이탈리아 폴리테크니코 디 밀라노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제품디자인을 배웠다”며 “무언가를 기획하고 설계하는 것이 그렇게 재밌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방학 중에 한국을 찾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도 캐나다에서 유학하다 방학때 한국에 들어온 상태였다. 어렵게 시작한 유학이지만 김 대표는 학업 대신 결혼을 택했다. 유학을 포기하고 남편을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다. “오래 전부터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학업을 핑계로 결혼을 미루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때가 2002년도니까 대학 3학년, 27살때였어요.”

출처: 김민정 대표 제공
모이니 CI. 오른쪽은 김 대표와 세 아이들.

갑자기 덮쳐온 암과 불투명한 미래


그는 캐나다 사스케치원에 살았다. 캘거리에서 차로 8시간 떨어진 곳으로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추울 땐 체감온도가 영하 40도였고, 베란다엔 1년 중 절반 이상 눈이 쌓였다. 신혼생활을 즐기던 그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병원을 찾았다. 그리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자궁내막암 초기 진단을 받은 것. 자궁내막암은 주로 폐경기 여성에게 나타나는 병인데 당시 김 대표의 나이는 29살이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호르몬 치료와 광역동 치료(빛으로 암을 치료하는 것)를 받았다. 2005년 3월, 병이 발견된 지 1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병마는 끈질겼다. 2006년 재발했고 5~6개월간 항암치료를 받았다. “암이 초기라 그렇게 심한 육체적 고통은 없었지만 미래에 대한 인생 계획을 전혀 세울 수가 없었어요. 무기력하고 무기력했어요.”

다행히 치료가 잘 돼 2006년 가을 두 번째 완치 판정을 받았다. 김 대표는 미래를 그리는 삶을 살고 싶었다. 완치되자마자 여기저기 취업 원서를 냈다. 토익 시험 점수도 900점 이상을 받았다. 하지만 서류 상 대학 중퇴에 31살 기혼 여성을 신규 채용하는 곳은 없었다. 그는 “영어학원, 카드회사 콜센터, 일반 회사 계약 사무직 등에 지원했지만 날 써주는 곳이 없었다”며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고 했다.


그는 ‘임신이 호르몬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병원의 조언대로 2007년도 시험관 시술을 했다. 세쌍둥이가 찾아왔지만 16주만에 떠났다. 유산이다. 자궁내막암 치료를 위해 수차례 조직검사를 하면서 자궁경부가 짧아진 것이다.


“내 삶을 추스려야 될 것 같아 남편을 두고 홀로 핀란드로 3개월간 떠났습니다. 핀란드 통나무집에 거주하며 힘을 얻었죠. 이름 없는 작가들이 모인 핀란드 공방을 보면서 나중에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때 ‘모이니’라는 회사 이름을 지었죠.”

출처: jobsN
김민정 대표.

아이 키우며 불편한 점을 사업 아이템으로 풀어


그는 2009년 다시 시험관을 해 기적적으로 아들딸 쌍둥이를 얻었다. 2012년에도 딸이 하나 더 찾아왔다. 아이들을 키우는 건 또다른 세계였다. 김 대표는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 속 불편한 점이 하나씩 보였다. 그것들을 개선할 제품 기획 등을 해보며 사업 아이디어를 모았다”고 했다.


2014년 막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자, 김 대표는 “사업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싶은데 여러 사정 상 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나말고도 많잖아요. 이들과 함께 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엄마들이 가장 잘 아는 육아·가정용품 분야로요.” 남편은 김 대표를 응원하며 적극 가사를 분담했다.

출처: 모이니 제공
세면대 쿠션 힙비 사용 모습.

2015년 그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지원하는 6개월짜리 챌린지 사업을 따냈다. 5000만원을 지원받고 아이디어를 시제품까지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탄생한 게 세면대 쿠션 ‘힙비’다. 세면대에 설치해 아이를 쿠션에 앉히고 엄마 손목 통증 없이 편하게 씻길 수 있는 제품이다. 김 대표는 “최근엔 유사 제품이 3~4개 나왔지만, 힙비 개발 당시에는 세면대 쿠션이란 제품 자체가 없었다”며 “육아 커뮤니티에 여러 차례 설문을 돌리며 제품 필요성과 개선점을 찾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2016년 7월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이 제품을 본격 개발했다. 쉽지 않았다. 여러 정부 지원도 신청했지만 “이 제품엔 기술력이 없다”는 혹평도 받았고, “애엄마가 창업할 수 있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특히 ‘남편은 무슨 일을 하기에 아줌마가 사업을 하느냐’는 뉘앙스의 말이 정말 기분 나쁘더라고요. 생산 공장을 찾는 과정에서도 공장 기술자들이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 있어요. 사업에 대해 빨리 알려고 전국에서 열리는 창업 관련 강의는 다 찾아 듣고 다녔습니다.”


김 대표의 모이니는 2017년 9월 코트라 지원 대상 업체로 꼽혀 독일 퀼른 육아박람회도 참석했다. 김 대표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며 “여러 피드백을 받아 상품을 개선했고 2018년 1월 국내에 힙비를 정식 출시했다”고 말했다.

출처: 모이니 제공
제품 개발 회의 중인 김민정 대표 모습(왼쪽)과 올 1월 홍콩 국제육아용품박람회에서 힙비 제품을 발표 소개하는 모습.

경력 단절 엄마들을 위한 일터 꿈꿔


힙비는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작년에 참석한 홍콩 육아박람회와 퀼른 박람회에서 호평을 받았고, 소량이지만 홍콩과 필리핀, 태국, 일본 등 4개국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메이저 육아용품 업체와 사업 협력을 논의 중이다. 김 대표는 “아직은 매출을 이야기하기 보잘 것 없는 수준이지만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다”며 “올해는 상품성을 개선한 후속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모이니가 세면대 쿠션 제조업체에 머무르길 거부한다. 그는 경력 단절 위기에 놓인 엄마들을 위한 일터를 꿈꾼다. “제가 느꼈듯이, 엄마들이 육아를 하고 있다고 꿈이 없는 건 아니에요. 결혼 전 어마어마한 일을 한 엄마들도 애 낳고 하다보면 세월이 훌쩍 지나고 다시 사회생활하기 어렵잖아요. 내 마지막 커리어가 10년 전이라고 말하는 엄마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엄마들과 진짜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좋은 일터가 되는 것이 모이니의 꿈입니다.”

출처: 모이니 제공
작년 9월 독일 쾰른육아박람회 모이니 부스 모습(왼쪽). 오른쪽은 작년 12월 싱가포르 한국 제품샵에 모이니 제품이 입점한 모습.

그는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몸이 아파 병원을 오가며 미래를 계획할 수 없었을 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건넨 말이 있어요. ‘너는 너의 템포대로 살거야’ ‘인생은 마라톤이니 남들과 같은 시기에 무언가를 이루지 않는다고 해서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어요.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잖아요. 모이니를 통해 더 많은 엄마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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