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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소주연구원이 털어놓은 뜻밖의 애로상항

‘소주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 98년생 초록병은 이렇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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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는 참이슬이다. 2001년부터 세계 증류주 판매량 부문에서 19년 연속 1위다. 1998년 10월 출시한 참이슬은 지금까지 약 301억병이 팔렸다. 20세 이상 성인 한 명당 716병을 마신 셈이다.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참이슬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출시 1년 전 막내로 개발에 참여해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증류주파트 파트장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25년 차 주류연구원인 이원정(49) 하이트진로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이원정 하이트진로 수석연구원.

출처jobsN

-이력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연세대학교에서 식품공학 학·석사를 취득했다. 1994년 졸업 후 하이트진로에 입사했다. 주류개발팀 증류주 파트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증류주란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든 양조주를 증류해 만든 술이다. 증류는 액체를 가열할 때 생기는 기체를 식혀서 다시 액체로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한국의 소주·중국 고량주·서양의 위스키 등이 증류주에 속한다. 그동안 참이슬·일품진로1924 등을 개발했다.”


-참이슬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입사 후 3년 동안 식품연구팀에 있었다. 1996년 주류개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주력 상품은 ‘진로’였다. 보조 상품으로 ‘산뜻 소주’, ‘나이스 소주’ 등 여러 제품을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깨끗한 소주’를 콘셉트로 1997년 말부터 1년 동안 참이슬을 개발했다.”


-’깨끗한 소주’란 무엇인가.


“소비자가 맛이 깔끔하다고 느끼면서 실제로 불순물 없이 깨끗한 소주다. 개발을 시작할 때부터 술 제조에 대나무 숯을 활용하기로 했다. 숯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효과가 있다. 섭씨 800도 고온에서 구운 대나무 숯을 ‘칼럼(column·기둥)’이라고 부르는 2톤 짜리 저장 탱크에 채워 원료인 물과 주정(에탄올)을 통과시킨다. 병으로 만들기 전 한 번 더 불순물을 걸러낸다.”

하이트진로 이천공장과 공장 내부.

출처하이트진로 제공

-시장 반응은 어땠나.


“출시 1년 만에 주력 상품인 진로를 제치고 참이슬이 매출 1위로 올라섰다. 1998~1999년 전국적으로 숯 열풍이 불었다. 대나무 숯을 쓴 베개·이불·옷감 등 다양한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시대적 흐름을 타고 인지도가 올랐다. 당시 사람들은 소주에 대나무 숯을 쓴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겼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소주 연구 과정이 궁금하다.


“마케팅팀과 함께 맛 콘셉트를 정하고 개발팀에서 레시피를 만든다. 회사에서 시장 상황을 보고 알코올 도수를 정한다. 연구소는 도수와 맛 개발 방향에 대한 지침을 받고 시제품을 개발한다. 시제품 2~3개를 본사에 보내면 본사는 조사 기관에 의뢰해 소비자 수천여명을 대상으로 맛 평가를 받는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개발과 조사를 반복한다.”


-리뉴얼 기준이나 시기는.


“참이슬은 출시 후 20년 동안 9번 정도 리뉴얼을 했다. 평균 2년마다 알코올 도수나 첨가물 함유량을 조정한다. 3개월마다 조사기관에 의뢰해 성별·연령대별로 소비자 반응을 파악한다. 결과를 보고 리뉴얼 시기나 방향을 정한다.


가장 큰 변화는 알코올 도수를 꾸준히 낮춰온 것이다. 순한 소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출시 당시 참이슬 알코올 도수는 23도였다. 20년 만에 17.2도까지 내려왔다. 2006년 20도가 무너졌을 때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소주에 과일 원액을 타먹거나 다른 주종과 섞어 마시는 ‘믹스(mix) 주’가 유행이다. 하지만 판매량 기준으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jobsN

-소주의 도수는 계속 내려갈 전망인가.


“섣불리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15도 밑으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 같다. 13~15도인 와인·청주와 경쟁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떤 회사에서는 15도 짜리 소주도 만든다. 우리는 아무리 내려도 앞으로 5년 동안은 16도대에 머무를 것 같다.”


-소주에 들어가는 원료는 무엇인가.


“식약처 규정에 따라 원료는 병에 표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물·주정·첨가물이 들어간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정이다. 주정은 쌀·밀·옥수수 등 전분질 원료로 만드는 무색투명한 액체다. 모든 주류회사는 국가에서 지정한 회사로부터 주정을 공급받는다.


첨가물로는 감미료인 효소처리스테비아와 결정과당 두 가지를 쓴다. 효소처리스테비아는 감미도가 설탕의 약 100~200배에 달한다. 청량한 맛을 낸다. 결정과당도 당도가 설탕보다 1.8배가량 높은 감미료다. 알코올은 단맛도 있지만 쓴맛도 있다. 쓴맛을 줄이기 위해 미량의 첨가물을 쓴다. 일반 음료수에 들어가는 양 수십분의 1, 수백분의 1 수준이다.”

목통으로 일품진로를 숙성시키는 모습.

출처하이트진로 제공

-제조 과정에서 공업용 알코올을 쓴다는 말도 있다.


“오해다. 소주는 식품이지만 유류·담배와 함께 국가의 주요 세원이기도 하다. 식약청뿐만 아니라 국세청·세무서 등 관리감독 기관이 많다. 감독기관 몰래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원료를 쓸 수 없다. 정부의 감시가 없더라도 굳이 공업용 알코올을 쓸 이유가 없다. 소주의 원료인 주정이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1919년 미국에서 금주령을 내렸을 때는 공업용 알코올로 몰래 술을 담그는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주가 물에 타서 만든 희석주라는 논란도 있었다.


“소주는 증류기의 종류에 따라 증류식과 희석식으로 나눌 수 있다. 증류 과정을 1회만 거치는 단식 증류기로 만들면 증류식 소주다. 주질이 상대적으로 깨끗한 편은 아니지만 숙성 과정에서 다양한 향을 낼 수 있다. 반면 연속식 증류기로 만드는 희석식 소주는 원액이 깔끔하고 깨끗한 편이다. 참이슬이 이에 속한다.


희석식 소주만 물에 타서 만든다는 것은 오해다. 소주를 만들려면 물은 꼭 필요하다. 증류식 소주도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기 위해 희석 과정을 거친다. 주세법에서도 예전에는 증류식과 희석식 소주를 구분했지만 2013년 ‘소주’라는 표현으로 통일했다.”


-국내용과 수출용 소주의 맛이 다른가.


“70여개 국가에 제품을 수출한다. 나라마다 주류법·첨가물법 등이 다르다. 미국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 주(州) 등에서는 25도 이상 술에 리터당 1.7%의 세금을 매긴다. 1도만 낮추면 세금이 리터당 0.67%로 줄어든다. 그래서 24도 짜리 ‘진로 24’ 를 수출한다. 특정 첨가물을 못 쓰게 하는 곳에서는 대체재를 쓴다. 일반인은 맛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하이트진로 제공

-소주 연구원은 술을 얼마나 자주 마시나.


“근무 중에 시제품을 시음한다. 마시지는 않고 맛을 보기 위해 잠시 머금었다가 뱉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회식 때 시제품을 한 병 정도 마셔본다. 음식과 궁합이 맞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다. 주류연구원이라서 특별히 술을 더 마시지는 않는다.”


-술 연구원에게 필요한 자질은.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신 맛 평가를 잘 해야 한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어떤 술의 도수가 더 높은지 감별하는 훈련을 한다. 단맛과 짠맛을 구분하는 능력도 키운다. 소주에 들어가는 감미료의 농도를 바꿔서 마셔보고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본다. 노력으로 충분히 단련할 수 있지만 타고나는 부분도 있다. 연구원마다 맛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 나는 단맛과 쓴맛에 예민하다. 어떤 사람은 짠맛이나 신맛을 잘 본다.”


-보람있을 때는 언제인가.


“소주 연구원이라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만든 제품을 고객이 소비하는 모습을 식당·술집 등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반면 과자 연구원은 아무리 자신이 만든 제품이 많이 팔려도 이 모습을 직접 보기 어렵다. 과자는 보통 집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먹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다른 테이블에서 술이 맛있다고 감탄하는 손님한테 ‘그거 제가 만들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웃음)”

/jobsN

-애로사항은.


“2년 주기로 맛을 개선한다. 리뉴얼 제품 출시 일정이 정해지면 6개월 전부터 불안감이 밀려온다. 출시일까지 연구소에서 내놓은 시제품이 소비자 평가에서 7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평가를 통과하기까지 수 개월 동안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같은 제품을 두고 누구는 달다고 하고, 누구는 쓰다고 한다. 영업사원이 고객한테 받은 피드백을 사내 게시판에 올린다. 나쁜 말이 나오면 뜨끔하다. 이런 스트레스가 1년 내내 이어진다. 익숙해질 때쯤 다시 리뉴얼을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앞으로 계획은.


"참이슬은 내 자식 같은 술이다. 막내 시절 우연히 인연을 맺어 20년 동안 함께해왔다. 앞으로도 맛 개발에 힘써 국민한테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소주로 만들겠다. 이제 정년까지 10년 정도 남았다. 은퇴하기 전 한 번 더 히트상품을 내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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