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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이걸 ‘고무손’이라고 불렀어요, 참 직관적이죠?”

“옛날에 고무손이라 불렸지만…” 의수족 장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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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수족연구소 이승호 소장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의수족 제작 매진
“의수족에 대한 인식 개선 필요해”

“이걸 옛날엔 고무손이라 했어요. 참 직관적으로 불렀죠?”


대한의수족연구소 이승호(69) 소장이 책상 한 켠에 놓인 의수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소장이 운영하는 대한의수족연구소는 서울 종로구 원남동 창경궁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불리던 시절 시작한 ‘보장구 제조업’이 평생 직업이 됐다. 보장구는 신체 결함 및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안한 보조기구를 말한다. 

이승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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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장은 2008년 우리나라보다 보장구 산업이 훨씬 발달한 해외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자동 의수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명실상부한 의수족 장인 대열에 합류했다. 생업으로 시작한 일에 사명감을 더해 일한 지 어느덧 40년째다.


중학교 졸업하고 의수족 제작 일 배워


-어떤 것들을 만드나요?


“정확한 직업명은 ‘의지보조기기사’에요. 제가 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때와 달리 요즘엔 국가자격증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죠. ‘의지(義肢)’는 인공사지란 뜻이에요. 선·후천적으로 팔·다리가 없는 분들의 활동을 돕는 기구죠. ‘보조기’는 말 그대로 사지의 모양은 온전하지만 동작을 제대로 취하지 못할 때 사용해요. 코나 귀가 잘려나가거나 일그러지는 경우를 대비해 관련 모형도 제작합니다. 공식 용어는 없고 ‘의코’, ‘의귀’라 불러요.”     

대한의수족연구소의 의족과 의수.

출처jobsN.

-의수족 제작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중학교 마친 직후인 1968년쯤 일자리를 구하러 경남 사천에서 상경했어요. 3남2녀 중 장남이었는데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진학을 포기했죠. 서울 와서 차 정비를 배울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힘이 약해 가스통 하나 못 굴리니 카센터에서 금방 쫓겨났지 뭐에요. 이후 광화문에 있는 5촌 아저씨 댁에 얹혀 살았어요. 이분이 보장구 제조업을 했습니다. ‘고무손’이라 간판을 달아놓고 말이죠. 집에 돈도 부쳐야 했고 눈치밥 먹기도 싫어 의수족 만드는 법을 배웠죠. 그런데 일이 적성에 잘 맞아 ‘딱 내 일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대한의수족연구소를 차린 계기가 궁금합니다.


“1979년 4월에 차렸어요. 1974년쯤 군대를 마치고 돌아와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1977년쯤 독립하려고 원호병원(현재 보훈병원)에 조건부로 취직했어요. 의수족 관련 상담 등을 하면서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의수족 연구용 방을 제공한다는 조건이었죠. 환자를 상대하면서 기술자로서 저만의 의수족 제품·기술도 개발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시설이 좋지 않아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했죠. 오래 다니지 못하고 퇴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그땐 큰 사고 당한 분들이 찾아올 곳이 서울대병원뿐이었으니 자연스레 그 옆에 자리를 잡았죠. 전국 방방곡곡에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한 번 찾아온 분들이 계속 찾아오니 자리를 옮길 수가 없더군요. 옛날에는 인터넷이 없어 어플리케이션으로 위치를 찾을 수도 없었잖아요.” 

이 소장의 보장구 관련 자격증과 특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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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수족은 어떻게 만드나요?


“모양과 기능을 구상하는 일부터 제작까지 일련의 작업을 직접 합니다. 모든 과정을 꼭 한 사람이 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저는 한 사람이 해야 좋다고 생각합니다. 의수족도 결국 몸인데 그 사람의 사정·신체특징을 알고 제작해야 더 좋은 제품이 나온다고 믿어요.


의수족은 뼈대와 외피로 이뤄집니다. 여러가지 소재를 사용할 수 있지만 뼈대는 플라스틱과 금속, 외피는 실리콘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에요. 1960년대에는 고무 느낌이 나는 합성 수지로 피부를 만들었습니다. 나무로 의족을 만들어 쓰기도 했죠. 플라스틱을 깎아 제품을 만드는 일은 조각품 제작과 같아요. 손·발가락은 단순 조각보다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본인 반대쪽 모양을 본딴 철제 형틀을 만들어 실리콘을 부어 제작하죠. 실리콘 제품은 변형·훼손 때문에 짧으면 몇 개월, 길면 3년 안에 한 번씩 바꿔줘야 해요. 형틀을 만들어 놓으면 우편으로도 물건을 받아볼 수 있죠. 손님들도 여기에 본인 형틀이 있으니 이곳만 계속 찾습니다. 손가락은 형틀을 포함해 제작에 10일 정도 걸립니다. 의수족은 1~2개월 걸려요.”

실리콘 손가락과 철제 형틀. 이 소장의 연구소에 보관중인 손가락 형틀은 800여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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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생활 습관 들여다봐야 최적의 보장구 만들 수 있어”


-40년 간 의수족을 만들면서 생긴 노하우가 있다면.


“손님이 오면 언제·어디서 다쳤는지 평소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등부터 물어보죠. 팔·다리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 알아야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보장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보장구 제작을 위한 예산을 물어봅니다. 의수족 종류는 크게 미관용·반자동·전자동 세 가지로 나뉩니다. 미관용은 몇 십만원 단위에서 구할 수 있지만 양질의 전자동 의수족은 상당히 비싸요. 허벅지에 다는 의족 같은 경우 쓸만한 제품을 구하려면 적어도 1000만원 정도 들여야 합니다. 유럽 등 외국 회사들의 최상급 제품 가격은 5000만원 이상이에요. 손가락도 형틀 제작하냐 안 하냐에 따라 가격 차가 많이 나죠. 가격 때문에 형틀을 만들지 않고 남의 모양을 본뜬 거푸집으로 제작해가기도 합니다.”

전자동 의수. 남은 팔의 이두근과 삼두근이 왼쪽 검은 버튼 을 눌러 의수를 굽히고 편다. 손가락 움직임은 배에 찬 벨트의 수축으로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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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했는데.


“2008년 손가락 5개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전자동 의수를 개발했어요. 손님 중에 기계를 전공한 분이 있었습니다. 같이 머리를 싸매고 밤낮 연구했죠. 보장구 기술은 그때나 지금이나 서양이 앞서있죠. 당시 유럽제 최상품도 손가락 3개만 움직였는데 우리가 손가락 5개를 굽혀 주먹을 쥘 수 있는 제품을 만든 것이죠. 하지만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지 못했고 자금도 부족해 결국 개발을 중단했습니다."

이 소장이 과거 개발한 전자동 의수. 주먹을 완전히 쥐었다 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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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보장구 업체들과 기술 격차가 큰 편인가요?


“외국 보장구 회사는 거대 기업이에요. 외부에서도 투자를 많이 받죠. 사람들이 진짜 손과 생김새가 다른 갈고리손·반자동의수 사용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수요가 많고 기업이 관심을 가져요. 이 일을 오래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의수 사용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어요. 사용 당사자도, 남들도 말이죠. 실제로 수요의 80% 정도가 장식 역할만 하는 ‘미관용 의수’죠. 주변 시선을 많이 의식해 최대한 팔처럼 보이는 제품을 선호한다고 생각해요. 보장구 제조업자 입장에서는 외부 투자를 받기도 힘든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미관용 제품을 팔다보니 자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아요. 단순히 비싼거 팔아 돈을 벌고 싶단 얘기가 아닙니다. 수입과 관심이 부족해 기술개발이 힘든 현실을 전하고 싶을 뿐이에요.”


900명에게 의수족 무료로 제공…“3D프린터로 전자동의수 개발 중”


이 소장은 1980년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900여명에게 의수족을 무료로 만들어줬다. 2014년 11월에는 한·베트남 문화교류협회 요청으로 베트남인 4명에게 의수족을 나눠줬다. 에티오피아, 몽골 등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국내외로 장애인을 도운 공로로 2000년과 2011년에 대통령 국민 훈장을 받았다.  

두 번 받은 대통령 표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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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어느날, 창경궁을 구경하고 오던 어느 모자가 가게에 들어와 한참 의수를 바라보는 거에요. 한쪽 팔이 없는 할머니였습니다. ‘얼마냐’ 물으시길래 ‘비싸다’고만 대답했어요. 그 의수는 당시 80만~100만원짜리였는데, 이것을 살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분이셨죠. 할머니가 한숨을 푹 쉬시는데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결혼이 네 달 남은 사실을 알았어요.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할머니한테 ‘이번엔 그냥 해드릴테니 이리 와서 치수부터 재보시죠’ 권한게 의수족 나눔의 시작이었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으셨나요?

반자동 의수. 반자동의수와 전자동의수는 관절이 움직이는 만큼 실제 팔과 생김새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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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당시는 의수족 제작업 종사자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우리 제품 품질이 독보적이었어요. 하지만 이후 점점 업자들도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수입이 줄었습니다. 부담을 안 느낄 수 없었죠. 그래도 삶에 ‘관성’이 있잖아요. 한 번 해오던 일이라 계속 했습니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비싼 의수족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장구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가 올라야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가가 10년 전과 지금 별 차이가 없어요. 1000만원짜리 의족 하나 하는 데 의료보험공단에서 약 228만원이 나옵니다. 800만원 정도를 본인이 내야 하니까 장애인분들 입장에서 부담이 많이 되죠. 제 경험상 여기 오시는 분 중 경제적으로 윤택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경제적 하위 계층이 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기 마련이고 다칠 가능성도 더 높을 수밖에 없죠.”

방문객과 상담하는 이 소장. 손님의 오른팔은 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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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이나 희망사항이 있다면.


“3D프린터를 통해 전자동의수 뼈대를 제작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요. 80% 정도 완성했습니다. 더 싼 가격으로 보장구를 제공하려는 노력이죠. 또 업을 잇기로 한 아들에게 5년째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없어도 여기 오신 분들이 편하게 의수족을 제공받도록 하고 싶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음 좋겠어요. 일하다 보니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멀쩡하던 사람도 사고나 질병을 겪으면 하루아침에 불구가 돼요. 보장구 착용자들도 적응기만 끝나면 의수족으로 일상생활 전혀 지장없이 잘 해내요. 모든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빨리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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